[묵상글]

모든 성물은 그의 것이 될 것이라

전봉석 2024. 11. 19. 22:15

 

이스라엘 자손이 거제로 제사장에게 가져오는 모든 성물은 그의 것이 될 것이라

민 5:9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시 101:8

 

 

시내 산의 언약이 체결되었다. 성막이 완공되었고, 인구 조사까지 마쳤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광야를 향해 여정을 떠난다.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성결을 요구하신다. 먼저 부정한 자(문둥병자, 유출병자, 시체에 접촉된 자)를 진 밖으로 추방하라고 명령하신다(1-4). 또한 정당한 배상을 통해 이웃에 대한 죄악을 철저히 제거하게 하신다(5-10). 영과 육의 동시에 범죄할 수 있는 간음과 의심을 공의로운 판결로 평화와 성결을 유지하게 하신다(11-31).

 

성결에 대한 요구는 거듭 강조되면서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진영이 결코 부정한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거룩한 곳이란 사실을 강조한다. 성결에 대한 요구는 앞서 레위기에서 상세하고 폭넓게 다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언급되는 까닭은 광야와 가나안에서 타락한 이방 세력과 만나게 될 백성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는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그 위상과 정체성을 망각하고 저들, 이방민족의 문화와 그 우상으로 더럽혀질 것을 주의하게 하려 하심이다.

 

이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하신 말씀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부정한 자들을 진에서 축출시키라는 명령(1-4)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문둥병, 유출환자, 주검 등으로 부정케 될 것을 주의하게 하는 것이다. 나균과 전염병, 악성피부병은 또한 공동체 생활에 위협적인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다. 전염성이 강한 것으로 자칫 개인의 문제가 공동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신앙 공동체의 순결을 오염시키는 부정 요인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성경은 이를 ‘적은 누룩’으로 비유하여 그것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으로 설명하곤 한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5:6).” 그러므로 우리의 선한 행실을 더럽히려는 악한 것들, 문화나 유행 따위는 그것이 아무리 소수라 해도 위협적이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 15:33-34).”

 

오늘에 이르러 특히 이는 혼용되거나 흡수되어 거짓을 분간하기가 점점 더 어렵다. 어떤 일에 대해서 그게 뭐 어때? 하고 말할 때 선뜻 뭐라 말해주기가 쉽지 않다. 가령 주일 예배를 꼭 교회에서 드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개인의 신앙생활과 그에 버금가는 선행으로 이를 대신하려 할 때는 그것을 옳다 그르다 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 자연스럽게 번져버린 사회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 있어 교회가 이를 거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일에 소극적일 수도 없는 일이어서, 더욱이 종교의 자유를 운운하며 자기주장을 펼칠 때는 뭐라 한들 소용이 없다.

 

어제 아침 일찍 기도를 부탁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중1 되는 아이가 돌연 난독증 증세를 보이며 글을 읽지 못하거나 문제를 풀지 못하는 증상을 보이는 것이다. 우등생으로 글을 모를 리 없는데 다음 문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문장이 이해되지 않아 힘겨워한다? 또는 문제를 푸는데 있어 그 질문의 요지를 알지 못해 다음 문제로도 넘어가지 못하는 것인데, 이를 어쩌면 좋은가? 하는 문제였다. 우선은 그냥 좀 두고 보면서 아이가 스스로 말하거나 해결할 수 있도록, 적당히 좀 아프고 슬프게 두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당장 소아정신과로 달려가서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조금 있으면 겨울방학이기도 하고, 아이 스스로 부딪쳐 넘어지든지 상처를 입든지… 그러는 동안 저들 내외는 주 앞에 자신들을 돌아보고 아이는 아이대로, 각자 하나님과 씨름할 시간을 갖자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섣불리 소아정신과를 찾고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려다 그야말로 만성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간 아이가 받았을 심리적인 압박이나 스트레스는 물론 중압감도 어느 일정부분은 아이가 스스로 당면해야 할 문제이다.

 

이런저런 요인을 서둘러서 찾으려하기보다 그런 가운데 같이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주께 맡김으로 아이도 부모도 모두가 주 앞에서 성결하기를 권하였다. 이는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요이 1:9-11).”

 

그런 가운데 저들 부부가 교회에 열심인 것과 동시에 자신들 스스로 옳은 것을 추구하려는 다소 완벽주의적인 자세를 돌아보기를 바랐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시 32:1-5).

 

다들 너무 애매한 시대를 살고 있다. 선과 악의 구분이 막연하여서 안 믿는 자들은 차치하고 믿는다고 하는 자들도 스스로 너무 많은 것을 아무렇지 않게 허용하며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오늘 성결에 대한 이 말씀은 우리의 영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린 언제부턴가 ‘친절한 타인’ 정도의 성도들로 전락하였다. 더욱이 큰 교회일수록 그런 현상은 뚜렷하여서 일부러 그 이유 때문에 큰 교회를 다닌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요즘은 서로가 이런 사이로 서로 친밀하기를 꺼려한다. 주 앞에 서기를 개인적으로 그러하고, 건강한 신앙 공동체를 애써 가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거룩은 하나님의 전적인 명령이시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살전 4:3-6).”

 

이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시는 말씀 앞에서 우리는 서로의 영적인 건강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4-45).”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곧 우리는 그 자체로 거룩한 제사, 영적 예배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러므로 더러움과 이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더러움과 깨끗함이 서로 같은 색깔이 되어 이를 교회가 수용하고 권장하기도 하는 것이어서,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사 52:11).”

 

가령 곧 성탄절을 앞두고 교회가 속한 건물 안의 교회들과 옆 건물의 교회들이 연합하여 12월 한 달을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각종 버스킹과 공연문화를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개최한다. 뭐라 하기보다 굳이 내 생각은 그것을 교회들이 주축이 되어 그러는 게 옳은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 원래 그곳이 흡연 장소처럼 이용되고, 양 옆으로 술집들이 즐비한데… 취지는 알겠으나 우리의 성탄절의 의미가 저들이 즐기는 크리스마스와 같은 의미인가? 하는 것인데,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7-18).”

 

하면,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7:1).”

 

하시는 말씀을 두고 나는 오늘의 아리송한 개념과 그와 같은 의지가 자칫 우리의 성결을 위협하는 것 같다. 엄연히 힘쓰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할 수 없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의 더러움을 혐오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연약하여 언제든지 범죄 할 가능성이 많다. 전염이 빠른 것은 죄악이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14-15).” 그러므로 오늘은 특히 간음을 주목하게 한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0:10).”

 

이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우리를 병들게 한다.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신 22:22).” 이와 같은 단호한 명령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없다. 가정을 붕괴시키고, 공동체 질서를 파괴하는 폐단으로 간음은 심각하다. 이것으로 불신이 생겨난다.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더럽혀졌거나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으나 그 아내가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든지 그의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헌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라(민 5:14-15).”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면 지옥이 따로 없다. 서로의 순결을 의심하게 되면, 가정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하여 ‘의심의 소제’라 하여,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를 드려야 한다. 이는 특별한 규례로 만드셨다(15-31).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그러므로 죄는 노출되게 돼 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시 90:8-9).

 

이를 주가 판단하실 것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119:137).

 

이에,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101: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