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민 13:30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시 109:4
바로 앞전에 저들은 음식이나 환경을 두고 애굽을 그리워하며 원망하였다(11장). 또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의 지도력을 질투하며 비난하였다(12장). 그런 그들을 아시면서 하나님은 왜 저들로 앞서 가나안을 정탑하게 하셨을까? 분명히 저들의 시선으로 오늘 본문과 같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며,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민 13:27).”
곧 들어갈 땅은 풍요로운데 그 땅을 이미 차지하고 있는 거주민들을 보고,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28-29).” 하면서 부정적인 보고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32-33).”
이에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30).” 저들이 들을 리 없다. 이에 여호수아도 합세하여,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민 14:6-7).” 하고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8).” 하고 설득한들 소용이 없었다.
이와 같이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모습의 보고를 할 것을 하나님이 모르셨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도 저들이 어떠한가, 하고 자신들의 믿음과 신앙을 직접적으로 직면하도록 그리 보내신 것이다. 이것 때문에라도 이스라엘은 기나긴 광야 40년 생활을 하는 게 마땅하였다. 곧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신앙적인 저들의 판단은 오히려 그와 같은 저들의 ‘애굽화’를 씻어내야 하는 당위적인 이유가 충분하였다.
가나안 정복은 영적 전쟁의 시작이다. 지금 이와 같은 정신 상태로는 어림없고 그러한 신앙과 믿음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하여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12지파의 대표를 세워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정탐하게 하셨고, 저들은 40일 동안 약속의 땅을 돌아보고는 하나님의 언약은 뒷전으로 미루고 불신앙에 따른 부정적인 보고와 악평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분명히 하나님은,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8).”
하고 저들을 출애굽시키신 것인데도 말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은 일찍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복된 땅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저의 것으로 주신 땅이다. 그러나 오늘 현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이 부정적으로 보고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위축시켰다. 그들에게 자신들이 들어가 정복할 수 없는 땅으로 만들어버렸다. 축복으로 소유할 수 있었던 땅을 고통과 파멸의 땅으로 팽개치게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살아가는 자들로 우리는 약속한 바, 성경이 아니면 신뢰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를 위해 우리 안에 믿음을 주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이에 우리로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6).”
결국 오늘 저들의 정탐과 그에 따른 결과 보고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과 그에 따른 느낌으로밖에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한다. 출애굽과 동시에 가나안을 향해 행군하던 백성들이, 이 척박한 광야를 1년 넘게 가로질러 다다른 곳에서 비로소 강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을 지척에 두고 이를 축복의 땅으로 받지 못하고 저주의 땅으로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으로 판단하게 된 것이다.
결국 가나안 땅을 직접 목격할 수 있도록 정탐꾼을 파견하도록 명령하신 것과 그 정탐꾼으로 선발된 12명의 명단이 제시되고, 가나안 정탐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저들로 직접 알게 하려 하신 것인데…. 저들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출 13:5-6).” 하신 축복을 걷어찼다.
불신앙의 결과로 저들은 기어이 광야에서 40년을 배회하게 된다. 앞서 만나와 메추리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그들의 성숙한 신앙과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원하셨던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저들은 결국 거절하였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먼저 정탐하게 하신 사랑인데…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이야말로 자신들의 실수와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살리시기 위함인데….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1-2).”
그런 거 보면 우리의 어쩔 수 없음이 새삼 지긋지긋하다. 우리가 천국을 목적으로 하고 주 안에서 평안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심인데, 오늘 우리는 당장 이 땅의 이런저런 문제에 함몰되어 신앙과 믿음으로 약속의 소망을 붙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리하여,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 나의 허물과 죄악도 아신다. 부족함과 연약함은 말할 것도 없다. 어제는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워 저녁 내내 고생하다 잠들어, 새벽에 일어나 교회로 왔다. 그리고 오늘은 그에 비해 견딜만하여 설교원고 초안을 작성하고, 평소 저녁과 같이 가정예배를 드리고 교회로 왔다. 별 거 아닐 수 있으나 나에게 하루 일과 중 정해진 시간에 묵상글쓰기는 귀하다. 그렇게 새벽에 속이 좀 가라앉고 교회로 나왔고, 오늘은 엄청난 눈 폭풍을 뚫고 저녁에 교회로 왔다. 사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걸 몰랐다. 그래도 길이 막히지 않아 어기적거리면서도 평안히 왔다.
교회가 참 평안하다. 나의 마음이 안전하다. 물론 집에서든지 혹은 하루 정도 못 써도 그만일 테지만 나에게 있어 묵상글쓰기란 하루 일과 중에 가장 지키고 싶고 잃지 않으려는 축복의 시간이다. 그때마다 나로 평안을 더하심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시 145:8-9).
이를 알고 믿음으로 놓치기 싫은 것이어서 나로서는 항상 ‘오늘까지’ 혹은 ‘여기까지’ 하는 심정으로, 오늘은 이만하면 좋은 하루였다. 전날에 비해 속도 편하고 어디 쑤시고 저린 것도 견딜만하여 그럴 때 설교원고를 써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그렇게 먼저 하는 게 있다. 때론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서도 마음이 어두워져 염려와 근심이 앞서지만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8).”
이 놀라운 확신은 은혜이다. 내가 가진 게 아니라 내게 주신 것이다. 이에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 그러므로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23).” 이를 나는 묵상글을 쓰면서 더욱 확신에 찬다. 설교원고를 작성할 때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결국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문제인데,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신 31:6).” 훗날에 모세는 여호와께 이른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7).”
하여,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7-8).”
하여 나는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이와 같은 마음으로 여기까지, 비록 별 거 아니라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뿐이라면 이것으로나마 주 앞에 온전하여서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느 13:14).”
하고 아뢴다. 비록 열둘 가운데 열이 반대하고 부정적이라 해도, 다수가 아니라 하며 세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하여 오늘도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잠 10:7).”
모두가 어떠하든지, 심지어는 나를 공격한다 해도,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시 109:1-3).
그러나,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4).
내가 오늘도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라. 누구의 어떤 사연을 기억하고 또는 나의 연약한 육신을 두고 혹은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5-6).”
이와 같이,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21).
그러하실 때에,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6-2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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