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민 14:30, 38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3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던 사람들이 비극적인 보고를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10명의 정탐꾼들이 그러하자 백성들이 동요하고 원망한다(1-3). 분노한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 한다(4-10). 이에 진노하신 여호와의 진노를 돌이키기 위한 모세가 기도한다(11-19).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자와 광야에서 죽을 자들을 가리신다(20-35). 그리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던 10명의 정탐꾼을 재앙으로 죽이신다(36-38). 하나님의 명령 없이 아말렉과 가나안 족속을 치러 나섰던 이스라엘이 패한다.
부정적인 말은 파급효과가 크다. 애굽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절망적인 소식은 공포만을 안겨주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힘으로는 가나안 정복을 정복할 수 없다고 여긴 백성들이 밤새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다, 불신앙적인 사고로 저들을 죽이려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붙들었던 모세는 자신들을 죽이려 한 백성들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일은 스스로의 끝없는 절망과 허무한 판단을 꺾는 길이다. 하나님의 나라로도 상징되는 가나안의 입성은 그에 따른 파괴적인 거짓과 유혹과 회유가 전염성처럼 우리 영혼을 미혹한다. 이에 예수님의 예언을 어제 설교원고에서 정리해보았다.
※ 예수님의 예언 <마태복음 24장>
첫째, 영적으로 미혹의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4-5).”
둘째, 많은 사람이 거짓말에 휘둘려 유혹당할 것이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6).”
셋째, 서로가 강퍅하여지고 자연재해가 우리 삶을 위협할 것이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7-8).”
넷째, 예수를 믿는 자들이 점점 더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9).”
다섯째, 실족하는 영혼들이 늘어나며, 서로는 반목과 갈등이 심화될 것이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10-11).”
여섯째, 사랑이 점점 식어갈 것이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12).”
불신앙과 원망을 일소하는 데 있어 게으른 영혼으로는 불가능하다. 말씀을 앞세우고 주의 약속을 붙들지 않으면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에 침몰한다. 그렇듯 불신앙적 보고에 백성들이 원망한 것도 당연하다. 10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한 정탐꾼들도 현실적으로는 타당한 보고였다. 자신들은 가나안 땅의 거민들을 상대할 능력이 안 된다.
그러나 저들은 잊고 있었다. 출애굽부터 가데스 바네아까지 오는데 있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다 이루셨던 것을 말이다. 당연히 가나안의 강성함을 본인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 하지만 앞서 애굽에서도, 홍해 앞에서도,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 생수를 얻는 일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아버지가 자식을 품에 안으신 것과 같았다. 자신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차지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자체가 교만이었다.
이처럼 불신앙적인 보고는 듣는 이들 전체를 원망과 불안으로 몰아간다. 그러자 한다는 짓이 자신들을 인도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여 죽이려 하는 것이다. 나아가 하나님께 원망을 서슴지 않는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3-4).”
결국은 또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방안이다. 불신앙의 특징은 과거로의 회귀다. 지도자들의 노력을 부정한다.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10).”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우리 스스로 자주 경험하는 단면이기도 하다.
기껏 잘 믿는 것 같다가도 순간 뜻하지 않은 일에, 어떤 불안이나 원망에서 순간 이처럼 돌변하여 괴이하게 돌변한다. 불신앙적인 보고는 실망과 두려움을 안겨주었고, 그 두려움은 하나님의 종들을 원망하다 죽이려고 하였고, 끝내 애굽으로 돌아가고자까지 하였다. 우리의 용기와 감사는 이처럼 허무하다. 우리의 회개와 뉘우침도 이처럼 얄팍하다.
이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하는 신앙적인 말로 절규한다.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6-8).” 아무리 외치고 또 애원하여도 한 번 불신앙의 유혹에 떨어지면 일어날 수가 없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3-14).”
또한 오늘 본문에서 막말의 극단적인 죄성을 볼 수 있다. 곧 저들이 불안과 두려움으로 외치길, ‘죽었더라면 좋았겠다’는 망언을 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민 14:2).” 어쩌다 이런 소리까지 거침없이 하게 되는 것일까?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자들이 광야 여정동안 조그마한 고통을 만날 때마다 ‘차라리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출 14:11).” 하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16:3).”
흔히 우리가 지나가는 말처럼 죽고 싶다, 죽는 게 낫지, 하는 소릴 서슴지 않고 하는 것처럼 불신앙은 죽음의 단면이란 사실을 입증한다. 반대로 신앙적인 자세는 죽더라도 신앙을 지키며,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고 한다. 끝까지 살아서 이 악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기어이 하나님을 신뢰하고자 한다. 이는 고난의 대표자 욥의 전언으로도 듣는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사는 게 힘에 부칠 때, 당면한 현실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우린 무심히도 이와 같이 죽음을 동경하듯 죽지 못해 사는 것처럼 군다. 비록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처럼 비관에 빠지고 말았는지를 살피면 답은 의외로 쉽다. 불신앙적인 사고는 그 결과가 죄의 삯을 향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나 우린 다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21).”
이 놀라운 신앙으로 주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결국 하나님께 예외의 약속을 더하신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민 14:30, 38).”
결국 말씀으로 되어 모세도 제외된 후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걸어서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약속의 땅을 딛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외 나머지는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35).” 하여,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32-34).”
불신앙적인 보고에 동조한 대가가 너무 비참하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면서 모든 고통과 역경으로 더욱 아름답고 성숙한 존재로 자라간다. 하여 비록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연단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7-8).” 곧 오늘 우리의 징계나 역경의 의미를 알고,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10).” 이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11).”
이 놀라운 역경의 역설을 깨달으며,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하실 때에 죽어도 살겠고, 살아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의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마지막으로 하나 더 깨달은 게 있다면 기도의 힘이다. 하나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도다. 이는 특권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2-14).”
오늘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기도였다.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민 14:15-16절).”
즉 모세의 기도는 이타적이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이 침해당하지 않기를 바하는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였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4-16).”
이에 나는 오늘도 시편을 산다. 시편은 기도의 세계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 110:1).
하고 주의 약속, 말씀을 붙들고 하는 기도의 세상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2).
하면,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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