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
민 16:32-33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시 112:10
레위의 증손인 ‘고라’는 모세와 아론의 사촌으로 성막 봉사와 백성의 종교 교육을 책임지는 레위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만이 저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된 것일까? 고라는 사촌들처럼 정치, 종교 지도자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기심에 따라 백성들의 지도자로 자신들을 스스로 세우고 모세와 아론을 거슬렀다.
교만은 그렇게 해서 파멸을 부른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고라가 레위의 4대손(孫)으로 레위 계열의 사람임을 밝힌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 이 세 사람은 이스라엘의 장자인 르우벤 지파 출신이다. 르우벤는 아버지의 후처를 취하여 죄를 지었던 인물이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창 35:22).”
이들이 ‘당’을 짓는 고라의 반역에 동조했다. 이스라엘의 장자 집안으로 정권을 탈취할 명분과 제사장 지파인 레위의 증손 고라가 분파를 일으킨 것이다. 당시의 불안정한 상황과 저들의 정치적 활동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게 된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위계질서가 흩어지는 데서 시작한다.
이에 바울 사도는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그런 가운데 누가 어느 사람을 따라 파를 형성하면 공동체의 위협이 된다. 이에,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12).” 이에 바울은 일갈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13).” 하고 꾸짖는다.
오늘 본문에서 고라를 위시하여 이스라엘의 반역 사건은 교만으로 주가 세우신 뜻이 흔들리면서이다. 그 주모자 가운데 하나로는 온이 있다. 온이란 이름은 이후 더 이상 언급이 되지 않는다. 아마 그 이유는 그가 고라 및 다단과 아비람에 비해 그 반역 사건에서 매우 소극적이었거나 아니면 미미한 역할을 맡았거나 아니면 거사 직전 빠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늘 날에도 교회에서 또는 교단에서 어떤 의제를 의결할 때 서로가 뜻을 달리하여 분파가 되고 서로의 반목의 골이 깊어지는 것을 자주 본다. 친구네 교회도 오는 주일 자신들이 속한 본교회에서 분리하는 전교인 찬반투표를 하는 모양이다. 본교회가 있어 각종 지원과 여러 혜택이 있어 유리하기는 하나 그 지역 교회로서의 독자적인 활동과 교회 목사님의 독립된 역할에 제한이 있다. 그러다보니 언제까지나 담임목사가 아닌 부교역자로 본교회에 속한 제약이 따르는 것이다.
그런저런 것에 대해 묻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그렇듯 교회들이 여느 프랜차이즈처럼 지교회를 두고 일괄 모든 결정과 활동을 일괄되게 하는 것에 조심스런 의견을 둔다. 물론 사회적인 이유나 자본주의적인 특성상 그런 점에서 유리한 혹은 효율적인 활동도 있겠지만, 얼마 전까지는 주일 11시 예배도 본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영상을 그대로 받아 틀어놓는 형식이었다. 그런 대형교회의 구조적인 어려움이나 장단점을 잘 모르면서 이런 소릴 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나는 어느 교회의 예를 모범답안처럼 마음에 새겼다.
그 교회는 본교회에 수용할 수 있는 성도의 숫자가 한정되어 새로 건축을 하자는 쪽의 의견도 있었지만 그러기보다 부교역자들이 일정기간 협력하여 교회 성도들의 숫자가 포화상태가 되면 그 목사님을 중심으로 함께 하는 성도들이 따로 분리해서 독자적인 지역교회로 개척하게 한다. 물론 교회가 일정기간 자리를 잡을 때까지 본교회에서 후원하지만 일체 목회 전반의 상황은 독자적으로 새로 개척한 교회 담임 목사의 결정으로 이뤄지게 한다. 그렇게 하여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여 명 이상 성도들이 그 부교역자를 따라 나가 개척멤버가 되어 헌신한다.
세부적인 사정은 잘 모르지만 그 취지나 형태로 봐서 나는 저와 같은 교회 독립과 지역교회 활성화가 모범적이란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해서 본교회는 거의 대부분 그 정도의 교인들 숫자와 규모로 그 지역에서의 목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구약 교회랄 수 있는, 총회가 열렸다. 그런 가운데 지도자급 되는 각 자손의 대표들 가운데 적잖은 숫자가 모세의 뜻을 거스른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민 16:2).”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모인 집단이나 회중도 저마다의 주장이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것들이 모여 민족적 정치, 종교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구약 교회에서도 백성들의 모임에서 어떤 사안을 정하고나 결정한다. 곧 약속에 의해 모인 집단에서 오늘 이처럼 불평과 원망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이때 집단에서 악한 자들이 결성하여 원망과 불평의 세력을 ‘경건하지 못한 무리’로 표현하거나(욥 15:34), ‘개들, 교만하고 포악한 자의 무리’라 표현하기도 했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시 22:16, 86:14).
교회는 주로 성회(聖會)로 모이는 것인데, 여호와의 성소에 나아갈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이것이 너희가 그 정한 때에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레 23:2, 4,).”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의 ‘총회’는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구성되어진 거룩한 공동체이다. 흔히 ‘광야 교회’를 ‘총회’라 한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 7:38).” 이 광야 교회는 신약에 와서 베드로의 고백으로 다시금 교회로 세워진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하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7-18).”
하나님은 이 거룩한 공동체 안에 임재 계신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곧 숫자가 아니라 두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일 때 주께서 그 가운데 계심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0).”
이때에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눌려 지내던 자들 가운데 불만이 있던, 고라를 주축으로 하는 사람들이 일명 ‘고라의 반란 음모’에 가담하였다. 저들이 동조하여 세를 불릴 때, 세속적인 명예욕에 불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질서보다 자신들의 지위와 명예에 더 집착한 것을 보게 된다.
신약 성경에서도 ‘이 사건’을 고라의 패역이라 하였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유 1:11).” 곧 이 사건은 단지 모세를 대적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세로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 것이다. 앞서 미리암과 아론이 이에 반기를 들어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기도 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여기서 ‘땅이 그 입을 열어’ 할 때 곧 지진이 일어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게 된다. 이는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땅에 삼킨 바 되었다.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민 16:32-33).” 이런 가운데서도 고라의 아들들은 멸망을 면하였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이백오십 명을 삼켜 징표가 되게 하였으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26:10-11).”
이와 같은 주의 은혜로 저들은 훗날 성전에서 예배 때면 찬송하는 거룩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언약궤가 평안을 얻었을 때에 다윗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찬송하는 직분을 맡긴 자들은 아래와 같았더라(대상 6:31).” 이어 시편을 여러 편 지어 악장들로 활약하였다. 즉 [고라 자손의 마스길-교훈]이라 하여,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2:1).
하는 찬송을 비롯하여,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45:1).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넘치는 지혜가 저들로 찬송의 세계에서 살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46:1).
비록 그 조상 고라는 교만하여 교회 질서를 어지럽혀서 땅이 삼킨바 되어 급살을 면치 못했지만 이 사건이 큰 교훈이 되어,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48:1).
하는 찬송의 시편으로 예배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들은 고라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나 하나님은 그 죄의 책임을 저들에게만 돌리시고 아들들과 그 후손들은 오히려 이 일을 전화위복으로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로 살았다. 고라의 반역에 동조한 족장 250인들과 그 외 죽은 자가 일만 사천 칠백 명에 이를 정도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징벌은 가혹하였고 또한 압도적이다. 이로써 성경은 우리에게 이르시되,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1-2).”
행여 자신은 그럴 리 없다는 자만이 자칫 교회를 어지럽히고 하나님의 공동체 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이에 말씀의 메시지는 확고하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4-5).” 이러한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 온전히 주를 경외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즐거워한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12:1).
그러할 때,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6).
우리가 거룩할 수 있는 길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를 경외하는 것으로,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7-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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