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전봉석 2024. 12. 4. 21:3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민 20:13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시 116:5

 

 

출애굽 40년째 되는 1월(아빕월)에 이스라엘은 곧장 호르산으로 진행했다. 거기서 아론이 죽었다. 출애굽 40년 5월 1일로 기록된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33:38).” 아빕월은 오늘날 태양력으로 3-4월쯤이다.

 

신 광야 가데스는 ‘크고 두려운 광야’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신 1:19).” 그곳에서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8:15).”

 

곧 이 신 광야는 불모의 땅이다. 가나안의 남방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너희 남쪽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34:3).” 이 지역의 한 귀퉁이에 회한의 땅 가데스 바네아가 위치한다.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민 13:26).” 곧 가나안을 목적에 두고 40년을 광야로 나아가 돌아야 했던 그 지점이다.

 

이스라엘은 이곳에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기나긴 광야생활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38년간의 시간이 흘러서 다시금 그 땅에 이르렀다. 한편 호르산에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아론이 죽었다. 그때가 5월 1일이었는데(33:38), 이곳 가데스에서 서너 달 가량 머문 것은 앞서 미리암의 죽음에 대한 애도 기간 때문이었다.

 

모세와 아론의 누이 미리암은 어릴 적 갈대 상자에 버려져 강물에 떠내려가는 모세를 보호한 적이 있다.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출 2:4).” 후에 이스라엘의 여선지자로 세움 받아 백성들을 이끌던 여성 지도자였다.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출 15:20, 미 6:4).”

 

한때는 교만한 생각으로 아론을 충동질하여 모세를 비방하다 문둥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민 12:1, 10).” 나름 파란만장했던 미리암의 마지막 생이 너무 간략히 서술된 것도 그 일에 대한 견책의 의미 같다.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민 20:1).”

 

여기서 백성들은 또한 물이 없어 원망한다. 가데스는 일종의 사막의 오아시스 지역으로 본래는 좋은 샘(시내)들이 여러 군데 있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주로 이곳에서 활동하며 생활했을 것이다. 그들이 긴 방랑 생활 끝에 다시금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도 당연히 물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하자 원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장소는 불평의 장소로 기억되었다.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시 106:32-33).

 

출애굽 직후 르비딤에서도 식수가 없어 불평하였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 17:1, 3).” 그런 거 보면 원망은 습관 같다.

 

전에도 원망하였다가 징계를 받았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원망이 나온다. 그렇게 불신앙은 은혜를 더디게 하고 원망이 가득하게 한다. 예수께서 향하실 때에,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마 13:57-58).”

 

우린 모두 저마다의 판단과 기준으로 산다. 어제 저녁 묵상글을 쓰고 있는데 아이들이 문자를 해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면서 관련 링크를 보냈다. 순간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의 임기를 재촉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같은 사안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누가 더 옳고 그름은 의미가 없어진다. 문제는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다 시쳇말로 화를 재촉하는 꼴이 된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눅 1:20).”

 

그리하여 우리의 믿음이 우선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결국은 원망이 문제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 때가 복이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07:4-8).

 

원망은 하나님께 부르짖음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원망은 서로에게 겨누어 탓하는 것이고 부르짖음은 주께 아뢰며 애통해하는 것이다. 부르짖음으로 감사를 알게 되지만 원망함으로 주의 뜻을 돌아가게 된다.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6).

 

우리의 므리바에는 원망도 회개도 공존한다.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출 17:7).” 그러하였던 곳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민 20:13).” 그러므로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81:7).

 

우리의 므리바에서 우리로 주의 거룩하신 응답을 듣게 하시기 위하여,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95:8).

 

곧 므리바는 ‘다투다’, ‘싸우다’는 뜻이다. 곧 ‘다툼’. ‘투쟁’을 의미한다. 오늘 우리 사회의 현상도 같다. 서로의 싸움과 다툼이 끝이 없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고 용인하거나 저항한다. 여기서 ‘므리바 물’이라 한 것은 ‘반석에서 물이 솟은 장소’를 가리킨다. 즉 그런 가운데 있을 수 없는 ‘기적의 샘’이 솟아나는 곳이기도 하다.

 

일련의 사태로 어지러운 오늘 날 사회 현상을 보면서 그리하여 주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새삼 놀라워하며 밤을 샜다. 그런 가운데서 6시간 미완의 계엄으로 끝이 난 것은 은혜이다. 이를 두고 한동안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겠으나 그런 가운데 우리로서는 또한 주의 거룩하심, 곧 주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여기 ‘여호와를 원망한 곳’에서 ‘여호와께서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신다.’ 이 은혜는 <므리바의 물>이다.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민 27:14).”

 

원망의 자리를 감사의 자리로 바꾸셨다.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신 32:51).” 이것은 르비딤의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함으로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한다.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출 17:7).”

 

그러한 원망과 불신의 자리에서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키시는 기적을 주가 보이셨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 55:1-2).”

 

그러므로 우리의 허물과 실수에도,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하여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이 은혜를 알 때 오늘의 이 어지러운 사회에서도 주의 은혜를 맛볼 수 있다.

 

이에,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116:1-2).

 

오늘 이 끔찍한, 타는 목마름으로 원망이 아니라 주의 은혜를 구하며 부르짖을 때,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3-4).

 

곧 오늘의 이 어지러움으로 우리는 기도한다. 이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주의 말씀으로 마음을 다잡고,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5, 7).

 

이것으로 주의 은혜를 더욱 누리며,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8-9).

 

그리하여,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