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길에 빛이니이다

전봉석 2024. 12. 10. 21:56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민 26:64-6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국하기 전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발람 사건이 긴 지면에 서술된 것도 그 때문이다(22-25장). 그러나 이제 가나안 입국 이후에 내용들을 다룬다. 그에 앞서 군사 조직을 재정비한다. 이어서 여자들의 상속 문제와 모세의 후계자 선정이 이어진다(27장).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모압 앞 싯딤 광야에서 앞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도해 갈 새로운 세대들을 정비한다. 광야 40년의 긴 여정을 끝나고 이제 가나안에서 새로운 질서와 역사를 맞이할 것이다. 이에 앞서 하나님은 죄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한다.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64-65).”

 

이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14:30).”

 

하신 말씀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들여보내시기 전에 모든 죄를 제거하신다. 여기서 우린 그리스도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상상하며 우리의 영적 순결을 돌아보게 된다. 앞서 저들은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가나안 입국이 불허되었다(14:30). 그리고 오늘 바알브올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인 염병 사건(25장)을 끝으로 모든 광야기간은 끝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40년의 광야 생활을 수습하신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두 번째 인구조사를 명받았다.

 

“염병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하시니(1-2).”

 

출애굽 후 40년의 광야 기간이 지나고, 이제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가 모압 평지에서 음행사건으로 징계하신 후 하나님께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두번째 인구 조사를 실시할 것을 명령하셨다. 특별히 20세 이상으로 능히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로 선정하게 하셨다. 이번 조사는 가나안 정복을 위한 군대조직으로 인구 개편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출애굽 제 2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와 비교할 때, 일곱 지파는 그 수가 증가하였고(유다, 잇사갈, 스불론, 므낫세, 베냐민, 단, 아셀 지파) 다섯 지파는 감소하였다(르우벤, 시므온, 갓, 에브라임. 납달리 지파). 그런 가운데 총 수는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으로 38년전의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보다 천팔백이십 명만 감소한 셈이다.

 

대부분 광야 기간에 죽고, 자라고, 새로 태어나서 이번 모압 땅 싯딤 광야의 음행 사건으로 다시 또 이만사천 명이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은 분명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긍휼하심으로 저들이 주의 은혜 가운데 머물고 있음을 알게 한다. 곧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그 생명과 안녕을 책임지신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시 121:5-7).

 

결국 우리 하나님은 그 약속하신 바를 조금도 변개치 않으시고 이행하시는 신실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이를 기도하시며,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1-12).”

 

이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순결하기를, 그리하여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곧 우리의 청결은 육으로나 영으로나 주를 경외함으로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기를,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24:3-4).

 

일련의 계엄령사태와 내란죄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사람의 거짓’에 대해 경이로울 지경이다. 곧 증거가 나오고 생각지 못한 누군가의 양심선언으로 드러나 금세 저들의 거짓말이 들통 나기까지 어쩌면 그렇게도 아무렇지 않게 시치미를 떼고 일체 얼굴 하나 안 변하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새삼 우리의 본성이 악하고 무의식적으로도 불의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하여,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 22:14).”

 

그래서 우리로서는 날마다 회개와 자신을 돌아보아 주께 고하는 일이 중요하다. 점심께 누가 갑자기 불안을 호소하며, 자신의 증상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말했다. 전에 비해 짜증 많아졌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불안이 일어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라고 하였다. 머리로는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겠는데, 몸의 이상 증상으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며 호소하였다. 나는 우선 적당한 약물처방을 받아서 안정제를 먹어야 한다고 권했다. 그리고 덧붙이길 주께 토로하며 회개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도 말해주었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증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누구는 느닷없는 난독으로, 무슨 글을 읽거나 쓸 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고, 그런 상태로 다음 문장을 이해할 수 없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답답해 했다. 저의 학력과 그동안의 실력으로 미뤄볼 때 모를 리가 없다. 자신도 그리 알겠는데, 그럼에도  막상 그러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한다. 이는 강박적으로 무엇에 눌려 힘들어하고, 뜻하지 않은 완벽주의로 딱 맞아 떨어지기 전까지 이해가 안 되면 죽을 것처럼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답보상태인 것이다.

 

어째서 그런지, 스스로도 희한하다. 그 이유나 원인을 찾으려고 자신을 다그치지 말고 우선은 안정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하다면 약물도 복용해야 한다. 이는 마치 열이 나고 오한이 들어 감기에 걸렸으면, 그 이유를 찾기보다 해열제를 복용하고 몸살을 진정시킬 진통제를 먹는 것과 같다. 그 다음 주 앞에 토설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성도들이 서로 긴밀하게 교제하며, 서로에게 속에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죄를 고백하는 것이 중요한데 점점 그런 사이가 부담스러운 시절이다.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 14:12).”

 

그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보존하신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사 49:8).” 이는,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97:10).

 

실은 이 모든 데 우리 안의 죄의 문제 때문이다. 누가 내게 묻기를, 왜 자신의 ‘그런 문제’를 말하며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물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할 때, 나는 이를 '회개와 죄'의 문제로 설명한다. 가령 가까운 누가 그럼 ‘넌 왜 그렇게 오래 안 나아?’ 하고 나의 범불안증에 대해 물으면 나는 기꺼이 대답하기를, 내가 악하고 죄가 여전하여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로 이와 같이 붙드심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곧 내가 다 나아서 예전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아무나 만나고 어디, 누구 앞에 서는 것을 거리낌 없이 하고 다닌다면 아마도 가관도 아닐 것이다. 내가 아는 나는 거들먹거리며 예전의 나로 교만할 게 뻔하다. 이처럼 나는 나의 죄를 인정함으로 나의 약함을 은혜로 받는다.

 

이는 괜한 말이 아니라, 내가 나의 악함을 인정함으로 나의 약함이 은혜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도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하는 바울의 고백이 이제는 나의 고백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약한 데서 주의 능력이 나온다!

 

누가 내게 자신의 연약함을 말하는 것도 실은 나의 약함이 저로 자신의 약함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것을 안다. 또한 나는 내가 의사도 아니고 대단히 심리학적으로 이해가 깊은 것도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같이 하게 하시면 같이 하는 이유는,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살후 1:11-12).”

 

곧 주의 은혜가 우리로 기도하게 하시고, 부르심에 합당하게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5:7-8).” 곧 우리의 인내가 주가 주시는 권능이 된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11).”

 

오늘 내가 겪는 어떤 어려움, 그것이 정신적으로든지 육체적으로든지 이를 있는 그대로 받음은, 주가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내는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5-16).”

 

그러니 내가 누굴 고치거나 구원할 수는 없으나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심을 믿는다. 이에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 17:10-11).” 이와 같은 마음은 우리로 주를 신뢰하게 하고, 이 마음은 좋은 땅으로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 13:23).”

 

비록 한 알의 밀에 불과하고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 해도,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이는 다시 덧붙이면,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그것이 비록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심지어 죽이실 것이라 해도,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이에 나는 내 곁의 ‘아픈 영혼들’과 함께 다짐하기를,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119:92).

 

곧 말씀으로 살아서,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93, 97).

 

그러므로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1-102).

 

할 때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3, 105).

 

그리하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11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