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민 28:1-2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시 119:150-151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삶은 우리로 중심을 잃지 않게 한다. 시간이나 물질은 물론 건강이나 나의 의지까지도 내 것이라 여기는 한 감사의 제목은 소극적이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그들이 그곳에서 지켜야 할 제사와 절기에 관해 반복하하여 정리하신다. 앞서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하시며,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출 23:14, 17).” 하고 말씀하신 바 있다.
이는 여러 차례 강조하셔서, 29:38-42, 31:12-17, 그리고 레위기 23장과 민수기 25:1-12에서도 강조하셨다. 이와 같이 동일한 규례가 반복적이고 다각도로 계속 주어진 것은 그 규례들이 지니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오늘은 매일 드리는 제사(상번제)와 그 제물, 안식일에 드릴 제물과 월삭에 드릴 제물, 무교절 및 맥추절에 드릴 제물이 언급된다. 이어 29장에서는 7월에 지키는 절기인 나팔절과 속죄일, 초막절 등의 절기에 드릴 제물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제사와 절기에 대해 이처럼 반복적으로 확대하여, 하나님은 “내 헌물, 내 음식”이라 하셨다. 곧 이는 “내 향기로운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민 28:1-2).
헌물이란 ‘바치다’, ‘가까이 가져오다’의 뜻으로 곧 하나님께 가까이 가져가서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레 1:2).” 이는 제사장들의 몫으로 돌려질 것이 아니고, 오직 화제로 태워 연기를 통해 하나님께 바쳐질 것이다.
이에 ‘내 것’으로 규정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헌물과 음식’을 기대하고 기쁘게 받으실 것을 알리신다. 내 것으로 표현하며 세 번이나 반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의 주체가 자신임을 거듭 밝히신다. 이에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라 하여, 모두 태워 그 연기와 냄새로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이다.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의 번제물 위에서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3:5).” 하시는 말씀을 토대로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음식이니라(11).” 곧 이 냄새는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이다.
또한 이를 드리는 자가 거룩하다. “그들의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들의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그는 네 하나님의 음식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나 여호와는 거룩함이니라(6, 8).” 하여 바울은 우리를 가리켜,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5-17).”
이를 일련의 사태로 연관지어 오늘 우리 현실에서 비춰볼 때, 문득 우리가 심판의 때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이와 같은 소동이 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안 믿는 자들이야 일찌감치 자신들이 안 믿은 것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나, 나름 믿는다고 믿었던 자들이 주 앞에 서서 항변하기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 7:22).” 저마다의 자기 변호를 할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우리를 변호하시는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으로,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이에 오늘 말씀에서와 같이 ‘정한 시기’가 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민 28:2).” 여기서 ‘정한 시기’는 ‘만나다’, ‘고정하다’의 뜻으로 지정된 장소와 시기가 일정하여 서로 모이는 날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날을 정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성경에서는 이를 ‘여호와의 절기’ 혹은 ‘성회’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스라엘의 2차 인구 조사를 통하여 군대 소집을 끝내고 여호수아를 새로운 지도자로 하여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데 있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킬 제사(1-15), 여러 절기(16-31)를 더불어 통일되고 조직적인 법전으로 완성하고 정리해 주신 것이다. 정기적으로 제사를 시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매일 드리는 제사와 그 제물(3-8), 안식일에 드릴 제물(9-10), 월삭으로 드릴 제물(11-15), 유월절 무교절에 드릴 제물(16-25), 그리고 칠칠절에 드릴 제물(26-31) 들이 길게 열거되어 있다.
여기서 정한 시기는 하나님의 명령이면서 약속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하신 것과 같이 이를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사 56:2).” 하신 데 따른 축복의 근거가 된다. 할 때,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오늘 이처럼 주 앞에 드리는 시간과 물질과 마음과 정성으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말 3:8).” 곧 오늘 내게 맡기신 이 모든 것, 건강에서부터 시간에 이르기까지 주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데 있어 이를 거룩하다 하심이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시 44:17).
이는,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63:6-7).
곧 오늘 나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인정함으로 나의 모든 게 주의 것이었음을…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하여 우리가 전심으로 주를 사랑한다는 것으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혹은 정한 시기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질 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이에 대하여 성경이 일관되게 말씀하시길,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하실 때에,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9-11).”
오늘의 시국을 바라보며 시편의 호흡으로 기도하게 된다.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119:150-151).
이럴 때일수록 말씀으로 더욱 굳건하여 어느 쪽으로도 부화뇌동하지 않기를. 바르게 분별하되 이 땅의 선택으로, 나는 아볼로도 바울도 아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전하기를. 그러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이 되어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51:2).
일련의 사태를 보며 나의 죄를 돌아보아 주 앞에 고하고, 주 앞에 나의 하루가 또 모든 것에서 온전하게 쓰임 받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그러할 때에 자신을 깨끗이 하여,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누구를 비난하거나 덩달아 비판하여 욕하고 헐뜯는 어느 쪽에 서는 게 아니라 묵묵히 주신 상황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아 주 앞에서 온전하기를 구하게 된다. 할 때에,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153-154).
이는 언제든지 나 또한 다르지 않음을 인정함으로,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158).
참으로 슬퍼할 수 있는, 애통하는 심정으로 주를 바라게 된다.
어제는 혹시나 아이가 글을 써서 올리는 공간을 열어보았더니, 성경을 몇 구절 쓰다말고 다음 날 다음 장을 쓰고, 몇 구절 쓰다말고 다음 날 다음 장을 쓰면서 하루에 한 장씩 쓴 것처럼 성경을 올리고 있었다. 순간 속상하였고, 한편으로는 답답하였다. 뭐라 야단친다고 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픈 것이려니… 하고 모르는 척 덮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긴, 이런 일이 어디 아이만의 문제이겠나? 누구에게 또한 아무리 권하고 뭐라 이른들, 각자 저마다의 생각이나 자기 결정이 있는 것이어서… 나는 이럴 때 항상 난감하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해야 하는 것인지,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 것인지.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166).
할 때에,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169).
그리하여,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173, 17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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