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전봉석 2024. 12. 11. 21:5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민 27:12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시 119:147-148

 

 

모세의 마지막 판결과 마지막 시선을 게 된다. 저의 마지막 판결은 비록 딸들이라 해도 그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옳다함을 받아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사실이다. 즉 므낫세 자손 중에 아들 없이 죽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와 엘르아살과 족장들에게 자신들의 기업을 요구한다. 이것은 앞서 기업을 나눌 때 20세 이상 된 남자들로 계수한 원칙에 따라 이들이 분배를 받지 못한 까닭이었다. 하여,

 

“요셉의 아들 므낫세 종족들에게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찾아왔으니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1, 3).”

 

이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6-7).”

 

하고 판결하여 기업을 재분배하였다. 이는,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 3:20).” 하는 말씀을 주목하게 하며,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딤전 5:4).” 하는 말씀으로 연결된다.

 

또한 땅, 곧 기업은 마음의 고향과 같아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신 첫 번째 사람 아담에게 명하신 내용과도 연관이 된다. 이는,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 90:3-4).

 

우리 육신의 존재가 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게 한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115:16).

 

이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 우리의 생이 기한이 있고 그 돌아갈 곳이 흙이라는 사실에서도 땅은 마음을 담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하심으로 그 의미가 직접적이면서도 함축적이다. 이에 저들의 간구는 주께 상달되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3-24).”

 

곧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주께 구하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하시는 주의 말씀에 따라 우리가 믿음으로 주께 아뢸 때 주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여기서 믿음에 따라서 하는 것은 주어진 생의 기한을 다 채우고 주를 의뢰하는 것으로, 죄의 결과이나 또한 생의 결말로 죽음은 어김이 없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그러므로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

 

하여 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 때,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신 하루를 성실히 채워간다. 더러는 힘들 때 기도하고 더러는 활기찰 때는 찬송하며,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전 7:15, 18).”

 

우리 생의 이런 날과 저런 날은 주의 섭리 가운데서 주어지는 것이어서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1-12).” 하여 우리로 주 안에서 평안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 따른 것이 아니라, 주를 신뢰하고 믿음으로 주가 함께 하심이었다.

 

그러할 때 결국 세상의 것들은 사라지고, 나의 육신마저도 육으로 돌아갈 것이나 ‘하나님의 것’은 영원하였다. 이에 그 증거는 말씀이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하여 나는 오늘도 말씀 앞에 나를 앉힌다. 친구와 성경공부를 하다, ‘그만하면 수고했다’ 하고 덧붙이며 혼자 있는 시간을 연습할 것을 권하였다. 늘 보면 성경 읽을 시간이 없다, 성경공부를 편히 할 시간이 없다 하면서도 정작 저가 힘들어하는 것은 ‘할 일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연습으로 올해 연차 남은 시간, 한 일주일 정도를 가만히 혼자 있는 시간을 따로 떼어 연습해보라고 권하였다. 하다못해 우리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도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고는 어렵다. 누가 있어 말을 하거나 저와 어떤 것을 같이 할 때도 불가능하다. 또는 혼자 있는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거나 글쓰기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워서, 평소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나 정작 주어진 시간에서 책을 편히 읽지 못하고 안달을 부리기만 한다. 핸드폰을 멀찍이 두지 못하고 딴 짓을 하는 것도 멈추기가 어렵다. 누가 같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다 너무 바삐 생을 보낸다.

 

할 때,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5).”

 

하실 때 이를 얼마나 깊이 또는 가만히 묵상할 수 있는지, 시간을 확보하고 살고 있는지…? 나의 하루 중 나는 이 시간, 곧 성경을 앞에 놓고 묵상글쓰기를 하는 짧으면 두어 시간의 이때를 나의 일과 가운데 가장 우선적으로 두고 있다. 요즘은 ‘아이’ 때문에도 오후께 두서너 시간씩을 도서관에 같이 가는데, 덕분에 설교원고를 다듬거나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서 덕분에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주님과의 내밀한 시간으로, 나는 나의 속엣 이야기나 생각을 아뢸 수 있어 단출하고 고요한 시간이다.

 

이때에,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119:89-91).

 

하는 오늘 시편의 말씀으로도 이어져서,

 

주의 인자하심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내게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소서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

(124-125).

 

곧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살고자 할 때 그 말씀을 음미하고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은 반복되는 수련으로 가능하다. 이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하실 때, 오늘 날 우리 사회의 어지러운 시국이 또한 우리에게는 산 교훈을 더한다.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고 간사한가를, 저마다의 주장과 대립이 또한 자기 판단과 갈등이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불신하고 반목하게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런 가운데 주의 공의가 살아있음을 본다. 하여 묻힐 것 같던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이를 관전하는 것이 유익이다.

 

또 하나는 이달 말 혹은 다음 달부터 두 아이가 오기로 하여 그리 될 텐데, 우선은 글쓰기를 하면서 또한 아이들과 같이 주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가 겪고 있는 강박과 완벽주의에 시달리는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나 역시 이를 어찌해야 해결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세상적인 지식이나 어떤 이론을 알고 접근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확신하는 것은 주가 내게 보내실 때는, 주께서 또한 서로의 만남 가운데 함께하시며 역사하실 것을 믿고 임할 뿐이다. 우선은 한 달, 겨울방학 동안을 기점으로 하는데 하다가 아이가 더하길 원하고, 주가 연장하심으로 계속 맡아야 한다면 그건 또 그때 가서, 나는 다만 ‘주의 이름으로’ 감당할 따름이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34:17).

 

나는 기도하고 주는 들이시고, 우리는 환난을 통해 주의 인자하심과 그에 따른 선하신 뜻을 마주하게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도 모든 상황과 여건은 우리로 주를 더욱 알게 한다. 성경 곧 말씀으로의 접근하게 하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이는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하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19:7-8).

 

그러므로,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119:142).

 

하는 오늘 이 말씀으로,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129-130).

 

이에 모세는 말씀에 따라 이제 주가 정하신 곳으로 간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민 27:12-13).” 실은 앞서 주께 아뢰어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신 3:24-25).” 이르시길,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26).”

 

곧 그 정하신 뜻은 돌이킬 수 없다.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겔 34:15-16).” 하여 주가 행하실 때,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히 13:20-21).”

 

그리하여 오늘도 주 앞에 앉아 나는 말씀을 묵상하다, 주가 행하시는 일에 주목한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19:133-140).

 

하여,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147-14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