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전봉석 2024. 12. 13. 21:28

 

너희가 이 절기를 당하거든 여호와께 이같이 드릴지니 이는 너희의 서원제나 낙헌제로 드리는 번제, 소제, 전제, 화목제 외에 드릴 것이니라

민 29:39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시 120:2-4

 

 

“일곱째 달에 이르러는 그 달 초하루에 성회로 모이고” 하심으로 완전, 거룩, 신성을 의미한다. 일곱, 7이란 숫자와 연결된 시간(시기)은 특별한 의의가 있다. 7월은 종교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달이다. 하나님께서 이달을 다른 달과 구별하여 세 가지나 되는 큰 절기를 제정하셨다.

 

7월은 ‘에다님월’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왕상 8:2-3).” 하는 대목으로 민간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1월에 해당한다. 신년(新年)을 축하하는 기간으로 7월은 또한 추수와 파종의 중간기에 위치하였다. 이로써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일과 농사 일이 겹치지 않으므로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는 절호의 기간이었다.

 

이때에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하심으로, ‘노동’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신성한 의무로,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이를 바울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교하였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 3:10-12).”

 

이에 노동을 금지하는 조항은 노동 자체를 부정하거나 정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의무(노동)보다 ‘더 마음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 있음을 이러한 규례를 통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신 날’로 인간 본연의 생활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뜻을 기리는 데 더욱 마음과 정성과 시간을 할애해야 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날을 <엄숙하게 쉬는 날>로 해석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레 23:24).”

 

이에 “나팔을 불 날이니라.” 한다. 곧 매년 7월 1일은 나팔을 불어 ‘여호와의 은총과 권능’을 기념하게 하였다. 이 날에는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길고 불었는데, 하루 종일 일정한 간격으로 불었다.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민 10:10).”

 

나팔은 어떤 기쁜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 이를 알리는 것이고, “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과 느다넬과 아미새와 스가랴와 브나야와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이더라(대상 15:24).” 이에 주를 찬영하며,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스 3:10).” 하나님의 위엄과 섭리를 찬양할 때도 그러했다.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 98:6, 150:3).

 

그런 가운데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릴 때도 나팔을 불었다.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 19:19).” 하여 훗날에 주의 심판의 날에도,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계 8:6-9).”

 

무엇을 경고할 경우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의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 하여 전쟁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대하 13:12).” 이와 같이 적들의 공격을 알리었고,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겔 33:3-4).”

 

그리고 후일에 예수의 재림 때에도,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0-31).”

 

이에 주님은 말세를 알리시며 오늘의 사태와 같은 현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4-8).”

 

결국 일련의 사태는 서로의 거짓과 가짜가 난무하고 이를 또 극렬하게 맹신하여 믿는 세력이 천지분간을 못하면서 오늘의 이 사태까지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어느 쪽이 아니라 진실과 그 공의를 분별하며 ‘어느 쪽’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역사를 바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이에 오늘 시편의 기도를 읊조리게 된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120:2-4).

 

이 무례하고 비정상적이고 답답한 현실을 통해 사회를 뒤집어엎고 오히려 우리의 썩은 부위를 드러내고 치유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으로 본다. 다들 사회를 걱정하고 우리의 미래를 염려하는데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 서로의 반목과 삐뚤어진 갈등이 더한층 성숙한 사회로의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나는 어떤 이, 극우 유튜버로 활동하는 전 총리 아무개 장로의 정치화에 우려한다. 또는 정치선동가로 전락한 듯한 아무개 목사의 활동에 깊은 탄식을 토한다.

 

나로서는 내 주변에 있는, 같이 성경공부를 하거나 일련의 사태에 대해 묻거나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나는 ‘어느 쪽’이 아니라,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바라며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누가 또 이번 주말에 광화문에 가네, 여의도에 가네, 할 때에 그것까지야 내가 뭐라 할 수 없지만 우려하는 마음으로 부디 부화뇌동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우리 곁에 너무 많은 거짓과 가짜가 ‘난리와 난리’로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하신 주의 말씀 앞에서 자중하기를 권한다.

 

하여, 오늘 본문에서 ‘번제’는 충성과 헌신의 표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다. 이는 하나님께 헌신과 봉사를 믿는 자로서 하는 ‘아름다운 신앙 고백’이다. 또한 ‘속죄제’는 하나님께 불성실했던 순간을 참회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로이 하는 것이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14:2-3).

 

이것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너는 어느 쪽이냐?’ 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오히려 죄악인가를 알게 한다. 그러므로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그런데도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그에 따른 자기주장에 함몰되어 오늘의 이 결과를 초래한 것이어서, 우리는 누구나 항상 죄에 대한 책무가 따른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이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3-6).”

 

우리가 이처럼 우리 죄의 속죄를 바로 깨닫는다면 감히 이런 시국에 누가 누구를 정죄하며 ‘어느 쪽’을 운운하여 파당을 짓는 일에 혈안이 될 수 있겠나? 오직 이 모든 상황을 통해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소망하며,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히 7:19).”

 

따라서 예수를 찾고 그분의 죄를 사유하심에서 은총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덧입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1-3).”

 

이와 같은 주의 은총으로 우리가 산다. 그러므로 속죄제는 그 자체로 용서와 은총으로 나의 죄를 사함 받는 일이다. 하여 이때에 나팔절(7월 1일)에 상번제의 희생 제물과 월삭의 희생 제물과 나팔절의 희생 제물로 “칠월 십일에 성회로” 모인다. 7월 10일은 대속죄일로 대제사장이 1년에 1차, 자신과 온 백성 및 성소의 죄를 속하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제를 드리는 날이다. 이때에 백성들은 금식하고 회개한다.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레 16:29).”

 

오늘의 이와 같은 파국에서 나라가 온통 어지러울 따름이나 그것으로 이처럼 주 앞에 올라와 기도하는 것으로, 서원제로 하나님 앞에 거룩한 맹세를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신앙 고백이 우리 믿는 자에게는 필요하다. 또한 낙헌제로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그 어떠하든지 구애됨 없이 ‘하나님께 자원하는 심정으로 드리는 기쁨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는 감사제와 더불어 화목제를 드리는 방식과 같다.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속한다(신 12:6-7).”

 

나는 미력하나 오늘의 우리나라를 주께서 돌보시고 사랑하심을 믿으며 기도할 때에,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120:1).

 

가만히 어수선한 뉴스와 사회현상을 보면서,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2).

 

이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으나,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5).

 

그리하여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6-7).

 

그러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145:8-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