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평강이 있을지어다

전봉석 2024. 12. 18. 21:50

 

이 두 지파와 그 반 지파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받으리라

민 34:1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시 125:5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이르러 자신들의 뜻으로 그리 정한 것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모두가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나눌 때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 반 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기업을 받을 것이며 므낫세의 반쪽도 기업을 받았음이니라(민 34:13-14).” 이것으로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어서 마음 아프다.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40년에 걸쳐 요단 동편에 도착하여 교두보를 삼았는데, 이렇듯 내분이 일어 르우벤과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갈리게 된 것이어서 착잡하다. 그런 가운데 이 문제 또한 봉합하여 이제 가나안 정복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을 최종적 점검하고 있다.

 

오늘은 가나안의 사방 경계를 구체적으로 살피게 한다. 이는 남북으로 250킬로미터, 동서로는 100킬로미터 정도의 면적이다. 이는 처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의 규모보다 적어진 것이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 15:18-21).” 그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에 맞게 땅을 분배하셨기 때문이고, 후에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회복되었다.

 

또한 오늘 말씀은 아직 정복이 이루어진 것도 아닌데 이미 확정된 사건으로 보여주어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로 그 안에 살게 하신다. 결국 온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신 것을 알리신다. 나아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로 그 삶의 경계가 어떠한지를 은유적으로 알리시고 있다. 이를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는 우리의 생(生)과 사(死)의 구분이 무너졌음을 알게 한다. 하여,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9).”

 

오늘을 살고 죽음의 경계가 우리 육신의 생사가 아닌 것을 알린다. 하여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의 승자는 우리들이다. 가나안 정복에 앞서 그 땅의 경계와 분배로 승리 이상의 것을 앞서 확신하게 하심으로,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곧 우리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평안을 얻는 것은 예수의 승리가 곧 오늘 우리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시 44:5).

 

곧 오늘을 사는 동안 우리가 더러는 패배자 같고 실패한 것 같으나,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이에 대한 증거는,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7-10).”

 

겉으로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우린 이미 승리한 자들로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결국 우리의 이김은 여호와의 것이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

 

하여 오늘을 사는 동안 주어진 분깃으로 감사하여 오늘의 축복으로 족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을 무려 470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성취하게 하셨다. 하여 오늘에 미진한 땅까지도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 다 차지하게 하셨으니,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솔로몬이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블레셋 땅과 애굽 지경까지의 모든 왕을 다스렸으며(삼하 8:3, 대하 9:26).”

 

결국 하나님은 그 약속의 말씀을 이루셨고 더 넓은 땅으로 지배하고 관리하게 하셨다. 그렇다면 오늘의 이런저런 부족함은 나로 하여금 이를 통치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시기 위함으로, 먼저는 있는 것으로 자족하여 감사하게 하시고,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그와 같은 자족함으로 경건에 이를 때에,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비로소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알게 하신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이는 모든 참된 복이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우리들로 하여금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다.

 

곧,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65:4).

 

할 때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73:28).

 

이를 살게 하시려고,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

 

관건은 믿음으로였고, 믿음으로는 주를 신뢰함으로 인내하는 것이다. 아브라함 때부터 470년의 긴 시간이 흐른 뒤의 오늘 이 본문에서 우리는 새삼 약속의 땅, 우리의 저 본향을 바라게 된다. 그러할 수 있을 때,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이에 오늘을 살면서 무엇을 위해 힘써야 하는지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

 

하여,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2-14).”

 

사는 동안 약속을 받지 못하고 외국인과 나그네로 죽어간다 해도 우리에게는 반드시 약속의 땅, 저 본향이 있음으로 이를 믿음으로 인내하고 승리한다. 그러할 때 오늘의 나의 모든 상황과 여건은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주가 맡기신 것으로 여기며, 청지기로 살 때,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4:1).

 

그러므로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눅 12:42).” 곧 오늘 내게 두신 나의 육신과 시간과 물질과 내 곁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는 이를 맡은 자로 오롯이 주의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가령 늘 어디가 아프고 힘든 몸을 이끌고 하루하루 이를 다독이며 살아가는 일이나, 내 곁의 한 영혼 저 ‘아픈 아이’를 두고… 하루에 한 장씩 성경을 필사하게 하는데 내가 그것을 자주 검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여남은 줄을 쓰고 성경 한 장씩을 쓴 것처럼 올려서 뭐라 야단을 쳤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보니 이제는 어디서 복사하여 갖다 붙이기를 하는 것 같다. 이를 또 뭐라 해야 하는지, 그냥 모르는 척 해야 하는지, 이 애도 곧 나이가 서른인데 일일이 간섭하는 게 맞는지를 놓고 어제그제 마음이 너무 어렵다.

 

같이 전화로 성경공부를 하는 친구에게는 무얼 권하고 성경으로 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 친구여서 그 한계를 종종 느낀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말로 듣는 듯 할 때에는 이런 소릴 계속 해야 하는지, 한두 번 말했으면 그만인 것인지, 마음만 어려워한다. 또는 손위 사람이라 저의 성경에 대한 열심은 알겠으나 누구의 권유에 귀 기울이기보다 스스로 유튜브를 의존하는 듯 하여 이를 또 어찌 말하거나 다루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일들 가운데 누가 친정오빠의 죽음을 슬퍼할 때 말씀으로 위로하고 저에게는 이제라도 예배를 권하는데 늘 돌아오는 느낌은 공허한 메아리 같고, 누구에게 뭐라 일러 여러 문제가 주는 교훈과 그 의미를 전달하는 데 있어 성경적인 위로보다 세상적인 위로(?)를 바랄 때 나는 무얼 어찌 해야 하는지….

 

이러한 상황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밖에. 누가 또 현실 정치나 사회적 혼란을 두고 이념논리나 진영논리로 의견을 묻거나 말할 때 이에 답을 어찌 해야 하는지… 성경적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인생의 태곳적부터 여전한 것이어서 이내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에서는 야곱과 반목하였으며,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기를 쓰며 살았고, 솔로몬 이후 끝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는 역사를 보았으면서도 오늘의 우리 현실은 지극히 자연스러워서 각자의 입장으로 진영논리를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오늘 우린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에서 거리를 둬야 한다. 결국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그러므로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2-14).”

 

하여 나는 오늘 무엇보다 마음이 아픈 것은 이내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자신의 분깃을 받은 르우벤과 갓과 베냐민 반 지파의 뼈아픈 실책이다. 하여 “이 두 지파와 그 반 지파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받으리라(민 34:15).” 하시는 말씀에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125:5).

 

이것이 그저 이 땅의 일로 끝나는 일이 아니어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1).

 

오늘 시편을 마음에 두고두고 되새긴다. 부디,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4-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