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전봉석 2024. 12. 24. 22:02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신 4:24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 131:1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정치적 갈등이나 그 진영논리에 따른 반목과 대립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이 들추시고자 하시는 바, 오늘 말씀으로 이를 정의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4).” 그런 가운데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 곧 저들은 본래 천사였고 천사들이 타락하여 악한 영이 되어 사탄 마귀로 이 땅에 두루 권세 잡은 것이다. 하여 우리나라에 뿌리 깊은 미신과 사술, 그에 따른 온갖 잡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이면서 은혜의 시기이다. 나는 그리 보는 것은 그리하여 우리가 설마, 했던 온갖 무속과 우상숭배의 실체를 드러내고 계신다.

 

이에 오늘 본문은 가나안 곧 새로운 세계에 앞서,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17-18).” 하고 이것들을 신격화함으로 생겨나는 온갖 경배와 섬김에 대한 경고이다.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19).”

 

요즘은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보며 ‘에이, 설마’ 하고 여겼던 주술, 역술, 점술가들 등 각양각색의 사탄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것들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사탄은 본래 천사였다. 수많은 천사들이 하나님을 반역하면서 하나님의 천상에서 쫓겨나 공중의 권세 잡은 ‘신들’로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어지럽히고 있다. 저들의 목적은 단 하나,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방해하고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가리는 것이다.

 

그렇듯 오늘 날 여러 ‘신들’이 각국의 주술과 신접한 자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활동한다. 이는 아주 오래 전, 에덴 이후 인간들의 집단 가운데서 본래 처음 사람이 맛보았고 추구하였던 하나님의 참된 형상과 모양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이에 사탄 곧 악령들이 각각의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오늘 날 과학시대니 문명시대니 하는 이때에도 그와 같은 극성은 한층 더해졌다. 어느 AI 연구소 소장이란 자의 사무실 한편에 고사를 지낸 흔적을 어느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최첨단을 이용하여 영화를 찍네, 무슨 신기술을 개발하네 하면서도 그때마다 고사를 지내거나 무슨 기원을 비는 신전을 세우는 게 으레 그러려니 하는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하여 때가 가까울수록 곧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면 할수록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이 더욱 더 활활 타오를 것이다. 이에 주님은,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여기서 ‘외편에 있는 자들’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수천 년 전 과거의 사람들이나 오늘 날의 사람들이나 결국은 자신들의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면서 귀신들을 섬긴다. 이에 요한은 계시록에서,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하고 저들의 최후를 경고하고 있다.

 

나는 요즘 일련의 사태로 사람들의 속내와 그 낯짝의 거짓 주장들에 치를 떤다. 그와 동시에 주술이나 역술, 신접한 자들이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분명 저들은 세상을 미혹하고 교회를 공격한다. 교회를 공격한다함은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이런 일에 익숙해져 다들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식자층들 곧 고위공직들이나 위정자들 사이에 더 팽배한 것이 이번 내란을 통해 더욱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저들은 악마에게 자신들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지킬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성경은 저들이 반드시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질 것이라 하신다. 이에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롬 16:20).” 하고 우리 믿는 자들을 축복한다. 자고로 인류는 항상 사탄과 악령들의 지배 아래서 살아왔다. 하여 성경은 경고하길,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하여 오늘은 돌아오는 주일 설교원고를 준비하다(이사야 27장) 저것들을 ‘죽이시리라’ 하는 단호하고 엄중한 말씀에 주목하였다. 악한 영들, 사탄과 마귀의 결과를 밝힌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사 27:1).” 이를 분명히 알 때 하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 즉 교회를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시나 죄와 불의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흩어진 백성들을 불러 모으실 것이고, 구원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한다. 예수님은 이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9-40).” 하심으로 예수님의 사명이 곧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임을 알게 하신다. 이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이방나라들 가운데서도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사 27:13).”

 

이는,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이 놀라운 역사가 오늘 우리 사회의 사건과 이 혼란스런 비상계엄선포나 내란죄 등의 소요 가운데서 하나님이 들추어내심으로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지역주의나 정파적 당리당략은 물론 평소 우리 생활 깊숙이 물들어있는 샤머니즘과 여러 우상 숭배를 들추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로 나는 이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가정예배를 드리며 이에 따른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특별히 우리나라를 긍휼히 여기시는 은총에 대하여 찬양하였다. 비록 혼란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위험수위를 나타내지만 이 또한 주께서 빠른 시일이 회복시켜주실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말씀으로 굳건하게 우리의 신앙을 지켜야 한다. 오늘 본문 1절 처음부분에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하심도 그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하나님의 의지대로 정하신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1-12).” 이는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리 행하심으로 선하시다. 말씀은 우리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우리를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 말씀은 곧 선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5).” 다른 대안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 물론 ‘여러 신들’은 이에 따른 인간의 추악한 불순종과 거역함이 여기에 더해져 자신들 좋을 대로 신을 선택하거나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다른 길은 모두 거짓되고 헛되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128:1-2).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강제하듯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이 시점에서도 우리는 굳건하여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6).” 곧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는 좌고우면하지 않을 수 있다. 오늘 말씀은 이에 분명히 밝히는 바,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신 4:4).”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할 때,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자로 남아야 한다.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7).” 이를 아는 자들이 기도에 힘쓰고,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8).” 이를 아는 자들이 말씀으로 자신을 굳건하게 한다. 그야말로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 이에 오늘 말씀은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을 밝히 알게 하신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9).”

 

앞으로 점점 더 세상은 어지러울 것이고 이는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인간 윤리적으로나 모든 게 다 혼재되어 각기 좋을 대로 사는 것에 의미를 두고 저마다의 삶의 목표를 세워갈 텐데,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 30:6).” 곧 말씀을 더하거나 축소하거나 희석시켜 자기 좋을 대로 재해석하며 교회를 어지럽히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엄히 다루실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이해득실을 따져 교회가 편향된 쪽으로 기울고, 이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성경을 주먹구구식으로 짜깁기하듯 근거로 내세우는데, 우리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좌도 우도 아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대한민국도 미국도 아니다. 우리는 다만 천국의 시민들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여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이에,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신 4:14-18).”

 

그런데 우린 얼마나 아무렇지 않게 이를 예술로 승화시켜 작품으로 고이 모시거나 각자의 종교화하여 신성시하면서 어떤 형상과 모양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경배와 찬송, 경이로운 마음으로 감탄해하곤 하는지?! 나는 감히 말하지만 집구석에 십자가나 성경을 모셔놓듯 거실 한 가운데 벽면에 혹은 장식장 위 성경을 펼쳐놓고 위선적인 경건을 도모하는 모든 것을 우상숭배라고 여긴다. 교회도 다를 게 없어서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여 강단을 꾸미거나 엄청난 값을 들여 형상이나 모형, 조명이나 음향으로 의도적인 연출을 하는 것을 우상숭배라 간주한다. 운전석 앞에 십자가를 매달고, 사업장 안에 십자가를 붙여 마치 무슨 액운을 막고자 하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하여 자신을 돌아보며,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34:18).

 

우리의 겉치레나 구호나 호들갑스런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그 중심으로 주를 바랄 때,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 22:4).” 이에 오늘 시편도 간구하기를,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131:1).

 

곧 내가 내 의지로 하려는 모든 선은 악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주께 모두 맡김으로,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2).

 

세상이 두 쪽이 나든지, 이 나라가 더는 소망이 없어 ‘헬조선’으로 그 나락으로 떨어지든지, 다만 우리의 평안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하는 시인의 고백과 함께,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