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3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시 135:14
말씀으로 산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신앙을 지켜야 한다. 우리의 소망을 증거 하는 말씀으로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1).” 하시는 오늘 첫 구절의 음성이 또렷하다. 이를 두고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3-24).”
곧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 하는 것은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곧 우리로 깨끗하게 하시려고 오늘 말씀은 우리를 낮추시고 이를 위하여 험지로 우리를 몰아넣으시기도 하였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2).” 이는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으로 더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 힘들거나 쓰러져 넘어질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넘어지는 것은 일어서게 하려 하심이고, 힘들어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를 더욱 바라게 하려 하심이다.
늘 나는 어디가 아프거나 힘들 때 이와 같은 주의 선하심을 의지한다. 아프니까 아파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힘드니까 힘들어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가 내 안에 계심을 알고 나도 주 안에 있기를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사 42:16).” 그리하여,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하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과도 이어져,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곧 우리로 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다. 이는,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렘 31:3).” 하심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주 앞에 겸손하기를, 나의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인정하도록…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그런 가운데 나는 자주 주 앞에 엎드려 내가 나를 속이는 데 따른 이실(以實)을 곧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고(直告)하게 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살만하면 해이해진다. 마음도 그렇고 생활도 그러하다. 그러다 이번처럼 호되게 아프면 비로소 납작 엎드린다. 주의 도우심과 인자하심만을 구한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용서하시기를 구한다. 그때마다 내가 교만하였고, 나태하였고, 잠시라도 주를 바라는 마음보다 당장의 현실 문제로 마음을 흔들어댔던 것을 아뢴다.
주 앞에서 겸손한 삶이란 범사에 주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프거나 안 아프고 아무 문제없거나 혹은 더욱 더 일이 잘 되거나 늘 그 마음은 하나여서 일심으로 주를 바라야 한다. 그런데 늘 나의 속성에서는 적당하거나 살만하거나 행여 일이 잘 되면 바로 그 잘 되는 일들로 주를 멀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처음에는 분주하여서 피치 못할 사정이라고 합리화하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는 그러려니 하고 뒷전으로 미루게 되는 것들을 말이다. 나는 이를 주 앞에 고할 때가 있는데, 어제그제와 같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몸이 아플 때이다. 아프면 악, 소리 내는 게 당연하듯이 나는 순간 주의 이름을 연신 되뇌며 주의 도우심을 구하게 된다.
고통이 축복이라는 말, 사실 참 하기 힘든 소리고 듣기도 거북한 말이다. 그런데도 주 앞에서 우리는 이를 깨달아 안다. 오늘 말씀의 핵심과 같이 왜 하나님이 광야로 몰아내셨는지, 불뱀과 전갈과 기갈과 광야의 험한 시련을 감당하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밝히시면서 분명히 하시는 것은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추상적이다. 그것도 사랑이 그러한데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그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막연한 느낌으로나 감상적인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엄연히 주를 사랑하는 데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가 필요하다. 모든 사랑은 그러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좋아한다는 감정은 감정의 문제로 그치는 것으로 그 감정이 발전하여 사랑한다고 할 때 이는 당연히 의지의 문제로 나아간다. 좋아하는 것이 저절로 생겨나는 감정이라면 사랑은 의지를 갖고 더러는 저를 사랑할 수 없는 처지에서도 그리 되는 마음이어서, 사랑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할 때 우리가 주 앞에 겸손할 수 있다. 아는 바와 같이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렘 49:16).” 하심은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여길 때 흔히 이를 믿음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믿음보다 앞서 자기 스스로의 신념이 혹은 자긍함이 ‘할 수 있다’는 거짓 믿음을 만들어내기 일쑤다. 사랑도 겸손도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내가 누굴 사랑할 때 나의 감정으로 시작하여 나의 의지로 이어가다 어느 순간 실망과 좌절이 저를 향한 마음을 앗아간다. 소위 죽고 못 살 것 같던 사이도 어느 순간 보면 이혼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리니 충성이니 하는 것도 자신의 영달이 보장될 때나 가능하다. 더는 희망이 없거나 서로의 관심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외람되지만 나에게 친구란 늘 그러하여서 누가 말하길 간, 쓸개 다 빼줄 수 있을 것처럼 군다면 타박을 받을 정도로 나는 나의 우정을 그 어떤 가치보다 귀히 여기며 살았다. 그럴 때 주가 이를 증명하시듯 어떤 어려움이 몰아치고 서로의 관계가 예전처럼 교류하기 어려워지자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또는 한순간에 마치 서로 모르고 지내던 사이보다 못한 관계를 여럿 경험하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것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그런 가운데 사랑이라, 죽을 것처럼 좋아서 사랑을 했다가도 서로 갈라져 원수보다 못한 사이로 전락하는 경우도 여럿 보았다. 이는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겸손도 사랑도 그 이상의 어떤 소망도 우리 스스로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이, 나와 나 사이에는 하나님이 계심으로 더러는 인간적으로 환멸이 또 좌절이 서로를 갈라놓으려 할 때도 주가 저 한 영혼을 사랑하심을 알 때,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앎으로 우리의 관계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된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미 6:8-9).”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5-6).”
이것으로 나는 다시 나의 육신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주가 맡기신 것으로 나로 이 땅을 사는 동안 내게 더하신 달란트로 생각하였다. 그러니까 이것으로 힘에 겨워 늘 수동적이거나 자칫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주인을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남들보다 못한, 그 연약한 육신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주를 경외함으로 주의 사랑을 신뢰하고, 그리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충성을 다하는 게 전부다. 그것으로 실패를 하든지 성공을 하든지, 우리는 실패와 낙오를 두려워하나 성경은 일체 주를 의뢰할 때의 실패는 실패가 아닌 것을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자로 각각 증거하고 계신다.
곧 내가 나로 사는 일에서 나에게 두신 어떤 어려움, 그 속수무책인 고통과 좌절로 주가 이루시고 계신 놀라운 섭리가 있었으니…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 55:2).” 이를 내 이야기로 가져오면 나의 불안증이나 공황이나 장애나 잦은 병치레와 같은 것들이 결국은 나로 하여금 유혹과 어떤 교만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어막이 된다. 그러니까 나는 최소한 예전처럼 내가 뭘 해보겠다고 나서서 동분서주하지 않는다.
이 모든 상황을 주가 주신 것으로 인정하면서 더러는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나에게는 큰일이다. 엊그제 친구가 왔을 때 나는 저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훈련’ 즉 공백 같은 혼자만의 시간을 연습하라고 일러주었다. 지금도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늘 말씀과 기도에 시간이 없다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정작 그런 시간이 주어지는 것에 부담이 드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면 어찌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고, 하다못해 책을 읽기나 하겠나? 하물며 주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혼자서 가만히 시선을 말씀에 응시하고,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 8:11-13).”
오늘 날 일련의 사태에서 나로서는 무던히 침묵하며 주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할 뿐… 각자의 주장과 저마다의 셈법으로는 혼란과 반목과 증오만이 커질 것이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결국 이를 위해서라도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히 12:6).” 그러할 때 주를 더욱 의뢰하는 신앙이 절실하다. 혹여 우리가 계속 주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을 때,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신 8:20).”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시 135:1-3).
우리가 찬송할 수 있는 전제로 우리가 주 앞에 서 있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하고 제안적으로 오늘 이 말씀은 부여되고 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14).
우리가 주의 성전에서 서서 주를 찬양할 때, 이를 주께서 위로로 삼으시는 것이었으니…
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할렐루야
(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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