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 눈으로 본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신 10:20-2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 137:1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 바로 그 친근함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삶이 귀하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 부모 곁에 붙어 가장 친밀함을 느끼듯이 하나님께 ‘착 달라붙어서’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하다. 보면 나는 늘 그러하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가령 어떤 걸 가지고 싶은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거나 아쉬워할 뿐 마음을 접고 있을 때 마치 보란듯 주가 주신다. 그럴 때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 6:13).”
이와 같아서 하나님의 권능과 놀라운 역사가 다른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는 기쁨이 된다. 곧 우리 삶에서 찬송의 동기가 되는 것은 그것이 기쁜 일이든지 슬픈 일이든지 주를 바라는 것으로 내가 본 것이다.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2:25).”
나는 한 게 없는데 나로 모든 일에서 순탄하게 하실 때, 곧 주께로 돌아서고 난 뒤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내가 내 눈으로 보면서 기이하게 여겼던 일들을 일일이 다 기록할 수조차 없다. 그저 우연이려니 하기에는 너무 이상할 정도로 늘 무난하였고 순탄하였던 길이었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네가 목도한 바” 곧 “…크고 두려운 일”을 나도 보았다.
‘이 일은’ 구체적으로 애굽에서 베풀어진 여호와의 10대 재앙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내가 내 삶에서 내 멋대로 살 때도 나를 보호하시며 내 곁에 이런저런 좋은 사람들을 붙여 돕는 손길로 늘 함께 하셨던 일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 일은’ 홍해를 건널 때 말도 안 되는 기적으로 이스라엘을 홍해 한 가운데로 걸어서 건너게 하셨던 일이나, 광야를 거쳐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 무사히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베푸셨던 여러 사역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듯 나로 신학을 하게 하시는 데 있어 그 기인한 손길과 불가항력적인 이끄심으로 오늘에까지 이르게 하신 역사와 같다.
그런 가운데서는 나는 얼마나 수시로 불안해하고 안달복달 내가 뭐라도 해야 할 것처럼 조바심을 내곤 했는지, ‘그 때에’ 즉 금송아지를 나의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싶은 심정으로 어디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던 적도 있다. 그러다 오늘을 보니 내 곁의 적잖은 이들이 마치 ‘신을 찾는 늑대’와 같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그 영혼의 주린 배를 달래려는 듯 자신들의 허기를 채우려 안간힘을 쓴다. 누구는 몸에 이상이 오는데도 폭식을 이어가고, 어떤 친구는 교회에서 더 나은 노년을 위해 유대감을 쌓는다는 소리로 사람 멱살을 잡는다.
다들 저마다의 사연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내게 전할 때에 나는 모세와 같이 저들을 두고 기도한다. 그 안에 자신들도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믿음은 있다지만 저들이 보는 것과 내가 보는 것이 다르고, 저들이 바라는 것과 내가 바라는 게 다를 때 나는 안타까움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의 언약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처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나의 간헐적인 중보 기도에 주가 응답하실 때 나는 또 한 번 놀라워하며 주께 감사한다. 이에 확신하는 것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보여주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2-14).”
요즘은 하나 더 감사가 늘어난 것은 아들이 재경사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 중3 때,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나를 부르실 때 내가 맡아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형편에서 필리핀에서 사역하는 동생에게 맡겼던 것이 1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다. 나의 기질을 잘 아심으로 공황으로까지 나로 덮치게 하심으로 나는 한 번도 필리핀에 가지 못했다. 나의 고질적인 우울은 주 앞에서 늘 눈물을 뿌리는 것뿐 한 게 없다. 아들은 나로 인해 군 입대 면제대상자인데도 해병대를 지원하여 군대를 갔고, 필리핀에서 좋다는 학교 라살대학교 본교를 다녔다. 나는 아이의 입학과 졸업에 참석하지 못했다. 졸업 후 몇 년 필리핀한국대사관에서 사건사고전담반에서 근무하더니 그 돈을 모아가지고 들어와 3년 넘게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다.
예전의 나의 모습과 이제의 나의 모습이 달라진 것을 알고 아들은 한동안 생뚱하였고 나는 멀뚱하였다. 나는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면 하나님께 아뢰었고 설교 중에 말씀으로 전달하였다. 너무 혼자 들어앉아 공부만 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우려의 마음을 아뢰고 있었는데 머쓱하니 ‘이 시험을 됐어’ 하면서 엊그제 재경사합격증을 보내주었다. 전에 회계사를 또, 떨어졌을 때 생전 처음으로 아들과 둘이 커피숍에 앉아 차를 마시며 얘기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어색한 공기라니… 나는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나는 어떠할까 하여 그것이 걱정이라는 말을 했다.
내가 그 나이 때 나의 아버지는 또 얼마나 나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면서도 말 한 마디 시원하게 하지 못하고 참으셨을까? 가끔은 교회 청년들에게 말하는 게 아버지한테 잘 해! 하고 툭, 던지는 말도 나의 애타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해병대스러운 모습인지, 너무 지나치게 각지고 질서 있어서 지난주일 교회에서 같이 송년 식사를 하는데도 은근히 돈을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예약한 식당의 메뉴와 함께 식사할 사람의 성향을 놓고 두 테이블에 각각 한우 무슨 부위 몇 그램, 서비스는 몇 명에 무엇이 있고… 하며 그 모든 동선을 계획한 것이 아들이다.
나는 보면 아이들도 거저 키운다. 정말이지 하는 게 너무 없는 사람이라 뭐라 할 말도 없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한 가지, 자신들의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주신 상황과 그 모든 여건 속에서 ‘주 안에서’ 잘 자라주어 감사할 뿐이다. 돌아보면 나의 삶이 험난하였다 아니할 수 없으나 모세의 표현을 빌려 ‘그때마다 아버지가 아들을 품에 안은 것과 같이’ 나를 오늘에까지 인도하셨다.
모세는 이제 저 두 돌판을 들고 백성들에게 알린다. 곧 죄가 지나가면 회개한 후에도 흉터 같은 사실은 남는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출 34:1).” 그러므로 “처음 판에 쓴 말을 쓰리니”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계명이나 언약은 언제나 동일하심을 시사한다. 이 모든 것은 근본에는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 있고, 완성되는 복음의 진리를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롬 3:19).”
이와 같은 대명제를 놓고,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20).” 하고 그 율법은 정의된다. 우린 누구도 말씀과 같이 살 수 없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는커녕 원수까지 사랑하심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한 율법 곧 말씀으로 나는 깨닫게 되는 진리는 단 하나, 하나님의 은총으로밖에는 나는 구제불능이란 사실이다. 그러므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22).”
하여 나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면 믿기를 바라나이다, 하고 대답한다. 나는 죄를 고하고 하나님은 사하신다. 나는 주를 바라고 주는 나의 도움이 되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3-24).” 하시는 말씀 같이 내가 그 증인이 된다. 나는 누가 물으면 나의 약함을 자랑한다. 겸양을 떠는 게 아니라 진짜 나는 보잘것없는 자로 날마다 주 앞에 선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26).”
이제 아는 한 가지 비밀, 내가 나를 낮추면 주가 높이신다. 나는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 주가 두 손 가득 채우신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27).” 하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당장의 현실에서 더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동안 내게 행하셨던 나의 기이한 삶의 족적을 주가 다 이루어주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도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기도가 덜 간절하다.
나의 기질과 아들의 기질과 아버지의 기질을 다 아시고, 나를 강제적으로 끌어다가 주의 길로 돌아서게 하실 때도 아버지는 LA 한인교회 목회지로 훌쩍 데려가시고, 아들은 필리핀으로 보내 나를 홀로 두셨다. 은연중에 내가 가장 의지하고 그에 따른 핑계로 저들이 이유를 들어 도망치거나 포기할 게 빤한 사실이다. 알면서도 나는 나로 홀로 두시는 데 따른 불안과 공포로 정신과를 들락거리면서도 신학을 했고, 설상가상으로 파산이 겹쳐 그야말로 꼼짝 마라, 하시는 경고처럼 나를 정지시키셨을 때도 그런 가운데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셨다.
훗날에 이르러 이를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의 삶을 이끄시고 주도하셨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28).”
오늘 말씀은 “진행하라” 하신다. 안주하여 여기 머물려 할 때, 장막을 거두어 짐을 꾸리고 다시 출발하게 하심인데, 오랫동안 시내 산 앞에 진을 치고 장막을 걷고, 다시 가나안-천성을 향해 진군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말씀에 따른 것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백성보다 먼저 길을 떠나라 내가 그들에게 주리라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에 그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하셨느니라(신 10:11).”
이에 중요한 사실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라 하신다.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또한 그 말씀을 지킬 것이라.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12, 13).” 곧 오늘을 사는 데 있어 주의 바라심은,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전 12:1).” 그리하라 하심인데,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결국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 나의 순종이 주의 영광이 될 때,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후 12:5).”
약한 데서 나의 능력 곧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온다.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신 10:20).” 곧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 눈으로 본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21).” 이를 알고 기억하며 살 때에 오늘의 이런저런 일들이 더러는 우리로 눈물짓게 한다 해서,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1).
그때에,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2-3).
이 서러운 상황에서 우리로서는,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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