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 28:1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시 5:12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내 눈 앞에 있다. 이르시길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2).” 하시며 열거하는 내용으로도 풍성하다. 하지만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15).” 하며 열거되는 내용으로가 치가 떨린다.
성경은 오늘 내 앞에 현실적인 복을 놓으셨다. 이는 결코 기복신앙으로의 연관이 아니라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신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전 5:19-20).”
이는 마치 부모가 자식의 잘됨으로 더욱 기뻐하는 것과 같다. 이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곧 오늘 이 현실의 복을 누리고 은혜로 살며 맛보는 날들이 천국으로 이어져 어느 훗날 우리는 주 앞에서 이와 같은 복에 복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이에 시인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2).
하고 찬양하고,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롬 4:6-9).” 이는 오늘 나의 처지와 같아서 나야말로 일한 것이 없이도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얻어 허물에 사함을 받고 나의 죄가 가리어져 더는 죄책으로 시달리지 않는 것으로 즐거워한다.
이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여겨,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오늘의 나는 이미 창세전의 나로 주께서 예정하시고 택하심을 입은 자인 것을 안다.
늘 하는 소리지만 나는 정말 하는 게 없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누리는 게 더 많다. 가진 것으로 감사가 늘 넘치고 모자람이 없어서 이와 같은 경험은 일찍이 어려서의 시절을 떠올릴 때도 그러하다. 분명히 우리는 가난하여서 사남매가 둘씩 갈라져 친척 집에 맡겨지기도 하였고, 남의 물건을 받아쓰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교회만 있고 집은 없어서 그 건물 옥상에 가건물을 짓고 사계절을 몇 번 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웠을 그때를 가만히 떠올릴 때면 그런 가운데서도 언제나 부족한 게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늘 갖고 싶은 것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고 배를 곯을 적이 없어서 먹고 입고하던 것이 늘 부족함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런 날이 오늘도 같아서 실제로는 늘 마이너스로 흔히 말하는 적자이고 다음 달을 걱정하고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또 보면 늘 부족함이 없이 되레 너무 풍족하여 이상하다 싶을 정도이다. 죄에 대해서는 또 어떠한가? 지난날을 떠올리면 허물과 죄로 부끄러움이 나를 옥죄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식들에게도 미안하고 나 자신에게도 억울함이 우선 들어야 할 터인데, 한 것도 없는데 너무 잘 자라준 자식들의 장성함에서부터 죽어 마땅하였을 나의 죄와 허물에서도 이제는 자유로워 주 앞에 모든 게 깃털처럼 가볍기만 하다.
이는,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76:10).
하는 찬양이 내 것이다. 이어서 더욱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73:28).
하는 고백이 내 것이 되게 하심은,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133:3).
이에 따른 나의 확신을 더하심으로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6).” 하시는 오늘 날 이 현실의 말세의 때를 살면서도 나의 하루는 ‘복이 있고 거룩하다.’
점심을 먹고 아내와 한 시간 남짓 산책을 하는데 이와 비슷한 고백으로 서로가 놀라며 감사하게 된다. 엊그제는 한 아이가 길가에서 아내를 보고 달려와 아는 체를 하였다. 서로 인사를 하고 반가이 뭐라 말을 하고 나에게도 인사를 시켰다. 중학교에 올라간다는 아이로 이번에 새로 하기로 한 아이인데, 울고 갔다며 아내가 신경을 쓰더니 의외로 밝고 붙임성 있게 구는 게 참 예뻤다.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보다 작아서 속상하기는 하겠으나, 어제는 수업을 시작하고 ‘같이 있던 아저씨’를 물어서 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보면 나의 연약함이 누구에게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그 위로 고1 되는 여자아이가 있는데 심한 사춘기(?)로 방황을 한다는데 하필 그 애가 다니는 학교가 우리 교회 쪽인 모양이었다.
하나님이 무얼 어떻게 하시려는가? 나는 알 수 없으나 돌아보면 늘 그때마다 필요에 따라 채우셨고, 상한 영혼을 곁에 두어 일정한 길을 함께 동행하게 하심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주를 섬기게 하신다. 곧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쓰임과 연관이 있다. 주가 행하시는 일에서 우리는 가만히 승복하고 있을 때 주가 다 알아서 하시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지나고 보면 나는 한 게 없는데 내가 받은 복이 더 많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에의 나무를 꺾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겠고(겔 34:26-27).”
이는 나의 현실로 지난날 나의 유년에도 그러하였던 것을 돌아보니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 그 어렵다는 시절에 양계양돈을 하는 마을에 살면서 닭고기나 돼지고기, 계란 등을 거의 매번 끼니때마다 먹고 살았다. 어릴 때 뭘 알았겠나만 나의 기억 속에 서러웠고 원통하였던 시간들도 가만히 생각하면 모든 게 다 은혜 가운데 이루어진 신령하고 놀라운 각본에 의한 삶이 아니었나 싶다. 가령 내가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 수술하는 날이었고, 중학교를 일 년 꿇고 몇 개월 병원에 있어야 하였는데 거기가 바로 손양원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애양원교회 옆이었다. 그때 만난 그 교회 예닐곱 분 되던 소경 장로님들이나 그 가운데 늘 내게 남다른 관심과 사랑으로 대해주었던 양 장로님을 만난 것은 복 중의 복이다. 저들은 나를 사이에 두고 뭉툭해진 손으로 어르고 달래며 자신들의 간증을 하곤 했다.
아, 그때 또 이순임 권사님은 얼마나 친근하게 나의 끼니며 군것질거리를 주고 등을 쓸어주며 찬송을 흥얼거리고는 하였는지… 저들은 모두 일찍이 젊어서 나병에 걸려 소록도로 끌려갔다가 음성판정을 받는 뒤에나 애양원으로 온 것이다. 어린 나를 앉히고 삶은 계란이나 고구마를 앞에 놓고 자신들이 젊어서 병을 얻고 끌려가서 모진 시간을 견디다 비로소 애양원교회를 지키는 중추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었는데, 어린 내게는 저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긴 역사였고 재미있는 동화였다. 특히 소경된 양 장로님이 성경 66권을 다 암송하게 된 일화는 가히 벅찬 간증이 아닐 수 없었다.
몇 번을 죽기를 바라고 자살을 시도하였던 이들이 주 앞에 붙들려 자신들이 살아왔던 생을 돌아보며 주를 찬송함이 놀라웠다. 그때도 늘 여럿 누가 더 있었는데, 소위 다들 ‘미친 영자’라고 하여 어린 나도 ‘영자야’ 하고 불렀던 것 같은데 그때 저이 나이가 서른 남짓 했을까? 어쩌다 정신을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몇 차례 길에서 만나면 엄마가 불러다 같이 밥상을 놓고 앉아 식사를 했다. 그럴 때면 나더러 늘 미친 영자한테 장가가라고 누가 놀리고는 했는데, 영자는 아침 일찍 와서 내 휠체어를 밀고 다니며 하루종일 소경 장로님 집으로, 권사님 집으로, 또는 교회 앞마당에 모여 앉은 소경 장로님들 사이에 나를 갖다두곤 하였다. 그럼 또 저들은 한바탕 웃어제끼며 주께 받은 은혜를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미친 영자는 사방팔방 힘도 좋게 나를 끌고 다니며 혼자 뭐가 그리 좋은지 어딜 가나 뛰고 달리며 낄낄거렸다.
이렇듯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3-6).” 하심은 나의 지난날이 모두 그러하였듯이 오늘에도 이어져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8-9).” 나의 생은 풍성하고 감사한 것뿐이다.
곧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이를 나만큼 피부로 느끼고 마음으로 감격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쥐뿔도 없으면서도 부족함이 없이 그때마다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신 28:10).” 하심을 피부로 마음으로 실제로 느낀다. 아내는 종종 전에 있던 이야기를 하는데, 누가 우릴 시샘하듯 그런 말을 했던가보다. 즉 자신은 죽어라 하고 구하여도 주지 않으시는데, 우린 너무 쉽게 받고 사는 것 같아 부럽다고 말이다. 그게 언제였는지 나는 기억도 없는데 아내는 갑자기 불쑥 그때 그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하곤 한다.
은혜로 산다는 일은 지나고 난 사람의 고백 가운데서 드러난다. 누군 죽어라 하고 애써 수고하며 산다고 살았는데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는데, 나로서는 송구할 정도로 오히려 그 반대라 한 게 없는데 너무 많은 것으로 늘 부족함이 없이 살아왔다. 아니 어떤 기억, 흔히 트라우마라고 하는 기억들이 없지는 않지만 언제부턴가는 그런 게 대수롭지가 않다. 학창시절의 이런저런 사연이나 나름은 기구하였다고 말하였을 시간들조차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게 은혜로 채워져 있다. 앞서 잠시 언급하였던 미친 영자를 비롯하여 소경 장로님이나 홀로 살던 권사님부터 그 후에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때마다 내 곁에는 주의 천사들과 그들의 손길이 늘 함께 하는 것을 확신한다.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신 28:12-14).”
오늘 이 놀라운 축복의 언약이 나의 삶에 이루어지고 함께 하심을 증거하며,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전 2:24).” 이를 나는 아멘, 한다. 나의 일생에 모든 게 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들이어서 오늘도 우리 곁에 어떤 아이, 그 아픈 마음을 주의 이름으로 어루만지며… 또는 주신 상황에서 그저 묵묵히 주를 인정함으로 모든 게 다 부족함이 없으리니,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112:1, 115:13).
하심을 노래하며,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렘 17:7).” 하신 데 다시 한 번 굳게 서서 이어지는 재앙과 저주와는 상관없는 삶으로 주 앞에서,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5:1).
하고 주의 이름을 부른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2-3).
그리하여,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7).
곧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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