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하현. 2025. 8. 5. 17:34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대하 14:6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시 54:4

 

 

인생 참 뜻대로 안 된다. 밖에서 안을 못 보게 하려고 했더니 나 역시 밖을 볼 수 없어서 답답하였다. 숨긴다고 숨겨질 거였으면 거짓말이 거짓말이지 않겠지…. 삶은 늘 고단한 법이어서 우리가 주를 바랄 때가 어렵고 힘들어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답답증으로 주를 바라는 게 아닐까? 그러면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주가 우릴 돕는 이시라! 우리의 평안은 믿음으로 지속되는 것이었다. 어떠하든지 죽고 새로 난다. 아비야가 죽고 아사가 왕이 되었다.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1).”

 

유다의 초대 왕 르호보암의 통치와 아비야의 치세를 다루었다(10-13). 이어 유다의 3대 왕 아사에 대한 내용으로 16장까지 계속된다. 상대적으로 열왕기서에 기록된 내용은 간단하다(왕상 15:9-24). 그에 비해 역대기서에는 큰 비중으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사의 통치에 나타난 특별한 성격 때문이다.

 

아사가 왕이 되고 처음 평화로운 10년을 보냈다. 이 시기에 아사의 1차 종교 개혁이 이루어졌다(1-8). 그리고 구스 사람 세라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왔으나 믿음으로 무찔렀다(9-15). 이어서 아사의 2차 종교 개혁이 이루어진다(15장). 또한 북이스라엘 바아사 왕과 대적하기 위해 벌이는 아사의 일련의 종교적 탈선이 그려지기도 한다(16장). 이같이 아사의 통치는 크게 둘로 나누어질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의뢰하며 경건하였는 것(14-15장).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16장).

 

곧 우리는 누구도 완전할 수 없는가보다. 역대기 저자는 아사를 통해 이와 같은 양면성을 우리의 실체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현실 정치나 사회에서도 저마다 그 앞뒤가 다른 대목에서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아무리 그런 게 정치라 하고, 그런 게 사람의 본성이라지만, 밖에서 안을 못 보게 하면 안에서도 밖을 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이러한 아사의 역사적 사건을 선별하고 대조시킴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과 그렇지 않은 자에게 주어지는 징계를 극명하게 알려준다. 아사의 치세와 업적은 상대적으로 아사의 교만함으로 대조된다. 어쨌든 오늘 언급되는 장면에서는 아사가 선히 정치하여(1-5), 경제적으로나(6-7), 군사적으로나(8, 12-15)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심을 기록하고 있다. 아사가 누렸던 경제적, 군사적 축복에 대해, 그 원인을 설명하듯이 오늘 본문은 의도한다.

 

도식적으로 정리하면 원인(1-5)-> 결과(6-8), 원인(9-11)-> 결과(12-15)라는 형태를 띤다. 이렇듯 아사의 치적을 기록함으로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사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아직도 왕위에 있을 때였다. 유다는 벌써 3대째 왕으로 아사가 등극하였다(주전 910년).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왕상 15:9).” 아사의 생애는 여러 면에서 앞서 두 왕(즉 르호보암과 아비야)의 생애와는 대조적이다.

 

앞서 두 왕은 잠시 하나님을 경외하기도 하였던 것 같은데, 먼저 르호보암의 경우,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던 길에서 되돌아왔더라(11:4).” 이어 아비야의 경우,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이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들이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저희를 조금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12:6,7).”

 

그러나 대체로 저들은 우상 숭배를 용인하였다.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12:14).” 그 이유는 자연스럽게 그의 어머니가 이방여인으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 왕이 되었으니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왕상 14:21).”

 

이는 아비야도 같았다.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15:2).” 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 르호보암의 악함을 본받았다.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3).”

 

이에 반해 아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전한 마음을 가진 자였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대하 14:2).”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아사의 차별성은,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3-5).”

 

결국,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시 29:11).

 

이는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 1:33).” 하는 말씀과 같이 여러 실체적진실로 나타난다. 하여 바울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하고 기도하였다. 곧 우리의 평안은 이 땅의 현상이나 어떤 결과로 가져오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가령 아들은 벌써 몇 년째 회계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중간에 재경관리사나 전산세무사 자격증은 따면서도 정작 자신의 원하는 시험에서는 번번이 떨어진다. 며칠 전 어렵게 한 번 더, 하면서 내년 4월에 있을 시험까지 해보겠다고 하였다. 나는 얼마든지, 대신 그 마음이 평안하기를 바랐다. 무엇을 하면서든지 살게 돼 있는 게 인생인데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나는 지금의 이 시간이 귀하다고 말해주었다. 미안하고 눈치도 보여 어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겠다는 것을 한 번 더 다짐한 만큼 내년 4월까지 그냥 공부만 하라고 일렀다. 어디 원하는 직장이 돼서 그곳을 다니게 되면 모를까… 내 안에 있는 생각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씀을 전하면서 굳이 아들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지난 주일에 나는 내가 목사고시를 두 번씩 떨어지는데 사실 그 이유가 인성검사에서 정신과적인 부적합 판정으로 인한 것이었다. 세 번째 다시 또 응시를 하고 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보러갔을 때, 안면이 있는 목사님이 난처한 표정으로 그러한 시험(?)의 취지와 어떤 기준이 있는데, 결과가 이미 뻔한데 어쩔 것인가? 하는 요지의 질문을 면접 직전에 개인적으로 물었다. 그때 나의 심정은 주가 주시는 마음이었음을 확신한다. 원칙과 기준대로 하세요, 저는 내년에 다시 또 응시하면 됩니다. 그런 나의 대답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어서 나는 그 원로 목사님께 덧붙여 말씀드렸다. 꼭 목사가 돼야 하는 건 아니고, 지금도 전도사로 작은 개척교회로 아이들과 함께 이뤄가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나는 억지로 끌려오듯 주의 강권하심에 붙들려서 뒤늦게 이 길을 가면서 한 가지 확신하는 게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굳이 뭐가 안 돼도 말이다. 교인이 몇 안 돼도, 큰 교회는 아니지만 번듯하니 교회 행색을 갖추지 못하였어도, (그때의 심정은) 목사가 못 되어도 그렇게 되려고 하는 전도사로나마 아이들과 예배를 드리고, 글방이 교회가 되어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라면… 고작 이 정도였다 해도 주님이 좋아하시면 그만인 것을.

 

나는 우리 아들이나 딸이 남들처럼 뭐가 어떻고, 뭘 이루고, 어떻게 남부럽지 않게 살고… 하는 것을 두고는 기도하지 않는다. 이쯤 나이가 들고, 뉴스가 이해가 되는 시점이 오니까 알겠다. 판검사면 뭘 하고, 난다 긴다 하며 부자로든지 권력자로든지 살았든지 어쩌든지, 모두는 결국 추레한 노인이 되고 병들어서 곧 죽음을 맞이하는 게 인생이고 보면… 어떻게 사는 게 중요한 거 보다 왜 사느냐 하는 게 문제고, 왜 살았나 하는 게 중요한 것보다 하나님은 이를 어찌 보시는가? 곧 우리가 얼마나 주의 뜻을 바라며 살았었는지…?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다 인생은 고달프거나 달콤하거나 흐르고 흘러 어느 지점에서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결국 우리의 삶은 아사로였든지, 여로보암으로였든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의 삶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주신대로, 가진 만큼 감사함으로 평안하고, 주의 일에 쓰임 받은 것으로, 윌리엄 쿠퍼는 평생을 우울증으로 시달리면서 자살시도도 몇 번 있었으면서도 찬송시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고, 브레이너드는 국교회 목사가 되지 못하고 선교사로 5년 사역하다 29살에 폐렴으로 죽었으나 그의 일기로 많은 젊은 목사 지망생들에게 도전이 되었다. 그러므로 다만,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보잘것없고 여전히 오늘도 하루에 힘에 겨워 사느라 사는 일에 쩔쩔매면서도 주를 바라는 이 마음으로라면,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 그리하여 말씀을 전하고 준비하고, 묵상글을 쓰고 이를 붙들고 살면서,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6-7).”

 

물론 본문의 아사 왕 역시 통치 말년에 불신앙에 기인하여 괴악한 죄를 범하였기는 하였으나(16장), 훗날 우리가 주 앞에서 만날까? 그럼 저는 그때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그럼에도 그의 초기 통치는 대체로 선정(善政)으로 일관했고, 전심으로 여호와께 충성하는 온전한 삶이었다.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15:17).” 중요한 건 오늘이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14:2).” 오늘 이 한 날의 말씀으로 족하다. 그리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3-5).”

 

이에 저는 “여호와께서 …주셨으므로” 평안하였고,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었다(6). 비록 그러할 때 교만이 들어갔는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건 내일모레 가서 묵상하면 될 일이고, 오늘은 여기까지…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11).”

 

나로 하여금 주께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 54:1-2).

 

이런저런 마음의 어려움이나 육신의 약함으로 당하는 고통으로도 주를 바랄 수 있는 것이어서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오늘의 모든 게 허튼 게 없음을 알고, 힘들고 지쳤을 때는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마 8:25).” 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시 27:14, 118:6).

 

이에 오늘도,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54: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