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
대하 29:30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시 69:13
가끔은 우울과 불안이 엄습한다. 산책을 하면서 나는 아내의 말에 아무 말도 대꾸하고 싶지 않았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땀을 흠뻑 흘리고 걸었다가 들어가 씻고 교회로 나왔다. 이런저런 마음의 소리를 하고 싶은데, 그런들…. 마음이 어려울 때는 가만히 이처럼 말씀으로 집중하는 게 좋다. 누구와 통화라도 할까 하다가 또 이런저런 소리가 이어지거나 설명돼야 할 게 귀찮기만 하였다. 어제도 슬쩍 마음을 드러낸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자꾸 이런저런 설명이나 이해를 구해야 하는 게 특히 가족일 때는 더 힘들어진다. 남들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가족이란 뭐라 말한들… 그 자체가 더욱 더 구차해져서 슬퍼질 뿐이다.
굳이 말을 해야 하고 설명이 길어져야 하는 저마다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해 침묵할 권리와 잊힐 권리를 주장하고 싶다. 이런 마음에서 나는 언제부턴가 새삼 연락을 하거나 가까워지는 일에 소극적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가 같이 걸어온 동행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잊힐 권리도 있는 것이다. 소심하긴 하지만 나는 가끔 2, 3년 이상 연락 한 번 안 하고 지낸 사람에 대한 연락처를 지운다. 어떤 이에 대해서는 차단까지 하는데 새삼 연락이 닿았을 때 다시 이어갈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그렇다.
이처럼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어느 시점에서 그와 같은 유통기한에 따라 폐기처분해야 하는 관계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그러하다는 데서 다소 삭막하고 슬픈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감정이란 변덕스러운 날씨 같아서 예측한대로 비가 오거나 화창하지 않을 때는 난감해진다. 문득 나는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를 그런 시점에서 만나게 되는 청량한 인물로 받아낸다.
이사야서에서 보면 36장에서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산헤립이 랍사게를 내세워 예루살렘을 농락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할 때 저를 상대하는 장수들에게 잠잠히, 대답하지 말 것을 명령하였다.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21).” 곧 우리가 어떤 일이나 사람 혹은 사건이나 상황을 맞을 때 말씨름을 피하고 상대하지 않는 게 덕이 될 때도 있다. 어제 오늘 나의 감정은 그렇듯 나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거나 구차하게 이해를 구해야 하는 데서 그냥 대꾸하지 않고 침묵하고 이처럼 말씀으로 묵상하는 게 나았다. 그러다 히스기야를 읽는다.
우린 흔히 어려운 문제를 두고 씨름하다 그 문제에 함몰되기 일쑤다. 그러느니 이사야서에 소개되는 히스기야와 같이,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37:1). 결국은 사람을 상대하느니 하나님께 엎드리는 게 능사다. 이에 히스기야는 신하들에게도 이를 따라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 옷을 입으니라.” 이는 주 앞에 슬픔을 토로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2)” 하는 데서 누구, 같이 기도를 부탁할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감사한 일이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4).”
이상의 이사야서 내용이 떠올라 오늘 묵상에 덧붙여, 선지자 이사야가 중보기도를 하였던 것과 그에 따른 기도 응답으로 화답하였던 것을 찾아보았다.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6).” 그리고 이 일의 결국을 예언한다.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7).” 결국은 하나님께 아뢸 때 하나님이 해결하신다.
이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 50:15).
하심은 심히 큰 위로가 된다. 그리하여 바울 사도도 설교하기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고 우리의 신앙의 기틀이 주께로 향해 있을 것을 강조하였다.
오늘은 이렇듯 이스라엘이 갈라지고, 남유다의 3대 성군(聖君)으로 꼽히는 여호사밧과 히스기야와 요시야 중 한 사람인 히스기야의 치적이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다. 앞서 그의 부친 아하스는 온통 악정(惡政)을 행하였음을 어제 같이 나누었다. 아하스는 나이 이십 세에 왕위에 올라 16년을 다스리는 동안 그야말로 하나님이 싫어하실 일만 골라서 한 것 같다. 바알을 부어 만들어 우상을 섬기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에 던지는 인신 제사도 드렸다. 그뿐 아니라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1-4).
이는 유다의 씨를 멸하려 작정하고 손자들까지 무참히 살해했던 아합의 딸 아달랴의 악행을 능가한다(22:10-23:15). 아하스에 대해 그가 범한 악행만을 서술하고 있는 28장에서 온갖 우상 숭배를 일삼았고(1-4),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을 끌어들이고(5-7), 앗수르 왕을 의지하고(16-21), 아람 신을 섬기는 아하스의 불신앙을 상대하다(22-25) 결국 종말이 허무하였던 것과 달리(26-27), 오늘의 히스기야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이 히스기야의 행적은 오늘 29장부터 32장 33까지를 이어진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치세에 대해 왕하 18-20장의 대목과 평행을 이룬다. 물론 열왕기서에서는 히스기야의 영성에 대한 평가를 간략하게 언급하고(왕하 18:1-8), 대부분의 지면에서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이어지던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8:9-20장). 그래서 열왕기서에서는 당시의 일반적인 사건에도 관심을 서술하였지만 역대기서에서는 히스기야가 행한 ‘종교 개혁’에 주안점을 두고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29-31장). 그래서 본문은 히스기야의 통치 사역에서 열왕기서보다 비교적 간략하게 당시의 상황과 주변 이야기는 요약하고 있다.
곧 히스기야의 신앙적인 사역에 초점을 맞추면서 당시 일반적인 통치 역사에 대해서는 압축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입한 사건에 대해서도 역대기서에서는 32:9-19를 통해 짧게 언급할 뿐이다. 반면 열왕기에서는 비교적 그 전쟁의 시작과 진행 과정 등을 자세히 기록하였다(왕하 18:13-19:7). 그만큼 역대기서의 의도는 당시의 역사적 사건과 상황이 아니라, 히스기야의 신앙과 하나님을 행한 종교 개혁의 강한 의지를 다루고 있다.
외적으로는 종교 개혁이었고 내적으로는 하나님께 향한 저의 절대적인 의지와 그 신앙이겠다. 그렇게 히스기야는 레위인들로 성전을 성결케 하여 선왕(先王)들의 우상 숭배로 더럽혀지고 파괴된 하나님의 전을 복구하는데 주력하였다(1-19). 그리고 성전을 정화한 후 성전에서 하나님께 봉헌하고 행해야 할 번제와 화목제와 감사제 등 제사를 드리면서 선민으로서의 백성들의 신앙을 다시금 확립하는 것에 주력하였다(20-36).
히스기야의 통치는 이처럼 성전을 정화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주력함으로 오늘 본문은 이에 주목하게 한다. 이러한 사실은 영적으로 침체된 개인이나 국가의 개혁을 어떻게 다시금 바로 세울 수 있는가, 하는 데 따른 그 방향성을 보여준다. 먼저는 예배 의식을 바로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5).” 찬양을 다시 온전하게 한다. “왕이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전에 두어서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게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령하셨음이라 레위 사람은 다윗의 악기를 잡고 제사장은 나팔을 잡고 서매(25-26).”
뿐만 아니라 일꾼이 모자라자 이를 더하여 도울 수 있는 인원을 보강하고,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34).”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져야 하는 제사를 올바로 갖추었다. “번제와 화목제의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들이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35).”
이처럼 신앙적으로 ‘제사장적 관심’을 이해하고, 기도를 온전하게 하게 하였다. 이는 앞서 여호사밧이 모압 연합군의 침입을 기도로 물리친 사실을 기록할 때도 레위인의 역할과 예배 의식 중 찬양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하였듯이, 오늘도 “온 회중이 경배하며 노래하는 자들은 노래하고 나팔 부는 자들은 나팔을 불어 번제를 마치기까지 이르니라(28).” 이에 따른 히스기야의 결행은 과감하였고 신속하였다.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36).”
당시 역사적 상황은 반앗수르 정책을 펴서 독립을 구가하려는데, 이미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지배 하에 있게 되고, 급기야는 주전 722년, 히스기야 통치 6년째 되는 해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였다.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왕하 18:10).” 이러한 북왕국의 멸망은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와 맞물려 유다에서도 앞서 악왕(惡王)으로 꼽히는 아하스가 친앗수르 정책을 폈으나 오히려 앗수르에 의해 군박을 당하기만 하였었다.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대하 28:20).”
그래서도 백성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의지할 분은 오직 여호와뿐임을 인정하기 시작하였고, 그러한 역사적인 배경으로 히스기야는 선왕의 통치를 따르지 않고 반성하여 오늘에 이처럼 신앙을 개혁하는 데 박차를 가하였던 것이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에 의한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 최상의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 해결책은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길밖에 없다고 사실로 절실하였다. 이는 우리가 주변 어떤 사건과 사고를 보면서, 오늘 날 이 나라의 난국을 보면서도 더욱 더 신앙적인 통찰력이 필요함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섭리는 유다의 히스기야로 하여금 비록 북이스라엘은 버려졌으나 저들로 신앙을 개혁하여 과감하게 올바른 신앙의 면모를 갖추게 하셨다. 당시 서쪽 국경까지 침입한 앗수르를 퇴치하기 위해 애굽과 동맹을 맺자고 하여 일부가 주장하였고, 또 다른 무리 가운데서는 현실만 직시하고 그러느니 앗수르에 항복하여 더 이상의 피흘림을 면하여 고난을 피하고자 하였다.
바로 이때 누구보다 히스기야 곁에는 이사야와 미가와 같은 올바른 주의 선지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친애굽파나 앗수르에 항복하고자 하는 부류의 주장에 과감히 맞섰고, 모든 전쟁의 승리와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백성들을 인도하는데 전념을 다했다.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로 하여금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도록 권고하였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이와 같은 혼잡한 상황 속에서도 과감히 신앙의 길을 고수할 수 있었고, 이를 위해 더욱 더 성전을 정화하고 예배와 찬송을 복원하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의 모색을 차단하였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외적인 문제로는 그 어느 때보다 열악하고 불안하고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 놓여 있었다. 그럴수록 먼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데 주력하였고, 이를 위하여 히스기야는 난세에 더욱 국제 정세에 함몰되기보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앙과 믿음으로 주의 종들의 말씀에 주목하였고, 종교 개혁에 전념하면서 과거의 선왕의 죄악의 길을 청산하였다. 이를 위해 자신을 성결케 하였고 여호와 하나님으로 새로운 언약을 다짐하는 신앙을 지켰다.
히스기야가 보인 성전 정화의 역사(1-11)는 레위인들의 사역을 바로 정립하였고(12-19), 여호와의 명령과 같이 여겨 신속하게 행했다.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을 모아 성결하게 하고 들어가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령한 것을 따라 여호와의 전을 깨끗하게 할새(15).” 곧 저는 주춤거리거나 망설이거나 다른 어떤 이와 의논하지 않았다. 오직 기도로 침묵하였고, 주의 종들의 중보기도와 함께 자신의 참 회개와 각성으로 주의 전에 엎드렸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사 37:1).” 하여 저는 근면함과 인내로 견디었다.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그를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대하 29:11).”
하여 오늘 나는 나의 이런저런 마음을 뒤로 하고,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시 69:1-3).
하고 주 앞에 아뢴다. 그리하여,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9).
오늘의 우울과 어떤 슬픈 마음이 오히려 주 앞에 사무쳐서,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13).
주밖에 나의 마음을 뉘 알아주리요, 하는 찬송과 같이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20, 29).
할 때에,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31).
이를 강하게 붙들며,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에 살며 소유를 삼으리로다
그의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살리로다
(35-3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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