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하현. 2025. 8. 23. 16:18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대하 32:20-21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시 72:6-7

 

 

앗수르의 산헤립이 랍사게를 앞세워 예루살렘을 농락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히스기야 왕의 명령을 가소로이 여기게 하였다. 그런 가운데 히스기야는 명령하였다.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사 36:21).” 우리는 더러 말씨름을 하다 그 이상의 감정으로 어긋나기 일쑤다. 히스기야는 랍사게의 이간질과 농락에 대꾸하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셨다.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런 뒤 그토록 자신의 주장으로 유다와 히스기야 왕과 여호와를 깔보던 자가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하는 대목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살피게 된다(대하 32:20-21).

 

이때 필요한 것은 기도이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사 37:1). 이에 신하들도 이를 따라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 옷을 입”었다. 이는 주 앞에 슬픔을 토로하고 기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하였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4).”

 

결국 선지자 이사야의 중보와 히스기야의 간구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들의 합심기도가 화답을 받게 되었다.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6).” 이 일의 결국을 예언하길,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7).” 하심과 같이 오늘 본문에서 이를 서술하였다.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대하 32:21).”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22-23).” 하여 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가?

 

그러므로 회개는 즉각적이고 참되어야 한다. 위선과 교만의 옷을 찢어야 한다. 애통함으로 주께 위로를 구하여야 한다. 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와 같은 반응은 즉각적이고 동시적이다. 저들은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사 37:1).” 즉 ‘옷을 찢었고, 굵은 베로 갈아입었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 히스기야의 행함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모든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보면서 어렵고 다급한 문제일수록 기도와 말씀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위기에 처하면 저마다의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당시 유다 족속 가운데도 ‘친애굽파’가 있었다. 즉 애굽에 도움을 청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 곧 우리는 다 그러해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 121:1).

 

하고 여기저기 도움을 구하여 기웃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바른 길을 가르치신다(말 2:7). 그리하여 우리를 어지럽히는 것들을 과감하게 물리치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요즘은 이런저런 소식에서 이혼한 가정이 흔하고 그로인해 파급된 여러 문제들을 듣게 된다.

 

이런저런 사연이 우리로 어지럽힌다. 저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사연이 그 영혼을 옭아맨다. 듣다보면 뭐라 덧붙일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안타깝다. 오늘 여기 히스기야의 경우도 그야말로 난감하다. 북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유다를 위협하는 당시의 강대국 앗수르에 의하여 여기저기에 도움을 구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다. 이때 앗수르의 회유와 히스기야의 기도는 상치된다. 이러한 대책에 반감을 표할 사람들도 여럿이다. 이를 랍사게의 조롱과 앗수르 산헤립의 협박으로 히스기야로 하여금 혼란하게 하였다.

 

이때 히스기야는 손으로 쓴 것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놓고 기도하였다.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사 37:14-15).” 곧 우린 우리의 문제로 우리가 씨름하고 대책을 강구하기에 앞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묵상하여야 한다.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16).”

 

이렇듯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서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17).” 하고 우리는 다급한 심정으로 있는 그대로 토로하며,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18-19).” 하고 이 모든 상황을 아뢰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20).”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서 신뢰함이 나온다.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7).” 하고, 현실적으로 믿기 어려운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진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36-38).” 이렇듯 주의 예언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잠잠히 주를 바라는 것이 신앙이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 62:1, 5).

 

보면 이게 참 어려운 것 같다. 신앙은 ‘잠잠히 주를 바랄 것’을 원하고 현실은 ‘당장에 뭐라고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그러다가 홀연히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여러 왕국의 여주인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리라(사 47:5).”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 하심을 되새긴다. 다들 그게 참 어려워서 어떤 방도를 찾는다는 게 이혼을 결심하고,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상처를 받고, 그렇게 상처 입은 어른으로 자라서 다시 또 불신의 자리로 떨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오늘 본문은 유다의 열왕들 가운데 3대 성군(聖君)의 한 사람으로 히스기야의 치적을 언급하는 데 있어(29장부터 오늘 본문까지), 주로 그가 행한 사역에 대해 언급한다. 이어지는 그의 승리와 영광이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입으로 위협에 빠지는 것을 본다. 그런 가운데 히스기야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여 현명하게 대처하였다. 여기서 보면 그의 종교, 군사, 정치 모든 상황에서 지혜로운 방책을 세웠다(대하 32:1-8). 산헤립과 그의 신복들이 펼치는 위협과 회유에 대해 히스기야는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였다(9-23).

 

그런 가운데 다소 아이러니한 것은 히스기야가 범한 교만과 회개이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24-26).”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침입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물의 근원을 막고, 성읍의 방비를 튼튼히 하였다. 백성들을 신앙으로 무장시켜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했다(1-8). 이는 놀라운 믿음의 통치였다. 우리의 외적인 환난과 내적인 유혹에 대해, 항상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하신 이유를 알겠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 돌연 인생이 어찌 꼬이고 흩어져 우리를 어지럽힐지 모른다. 이때 하나님을 모독하고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랬을 때 히스기야처럼 자신 뿐 아니라 백성들을 두려움에서 견고하게 하는 통치를 보였다(9-19).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왕하 18:36).” 나는 늘 이 대목에서 큰 교훈을 얻는다.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사 36:21).”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노엽게 하고 어려운 궁지로 몰아넣는다 해도,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 42:1-2).

 

하고 주를 바랄 수 있는 용기,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44:26).

 

주위에 있어 온전한 가정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점점 더 사람과 사람이의 인격적인 관계는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도 반려동물에 혈안이 되는 것일까? 가끔은 산책을 하다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엄청나다. 유모차가 있어서 아기가 있으려나하고 들여다보다 개가 있어서 몇 번을 놀라고는 하였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 1:25).”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허물어지면서 생긴 일이다.

 

그로 인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어그러지고,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26-27).” 그리하여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29-31).”

 

오늘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여호와께 기도함으로 치유함을 받았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대하 32:24).” 그런데 어쩌려고 저는 교만하여 범죄 했을지, 그럼에도 회개함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면하였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25-26).”

 

결론적으로 히스기야의 신앙 유산을 열거하는데 부와 영광, 많은 치적들과 병고침에서 나타나는 이적으로 하나님의 시험을 받았으나 그는 영예로운 죽음으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다음에 이어질 최악의 왕 므낫세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질병과 하나님의 시험에 대한 실패(31)와 그의 기도의 응답으로 연장된 생명 중에 낳은 아들의 파국을 어찌 감당해야 할까? 히스기야가 끝까지 정직하였고 선을 행했다. “히스기야의 남은 행적과 그의 모든 선한 일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묵시 책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32).”

 

히스기야는 장기간 종교 개혁과 앗수르의 침입을 기도로 물리쳤다. 국가적 환난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치명적인 병에서도 저는 고침을 받았다. 비록 이에 범죄하였을지라도 여호와 앞에서 정직함을 버리지 않았다. 히스기야는 엄연히 현명한 통치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의 허물은 사소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므낫세의 죄악을 생각하면 마음이 어려워진다. 하여 오늘도 시편으로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시 72:1).

 

우리 하나님은 긍휼하심으로,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6-7).

 

이는,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12-14).

 

오늘도 주 앞에 아뢰기를,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18-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