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하현. 2025. 8. 24. 20:20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대하 33:12-13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6-17

 

 

앞서 히스기야의 치세를 살폈다. 저는 보기 드물게 하나님을 경외하여 성군으로 손색이 없게 성정(聖政)을 행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그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았으면 어땠을까? 본래 고난은 겹쳐서 오는 법이라, 설상가상(雪上加霜) 앗수르의 침략이 있었고, 이를 주께 맡기고 기도함으로 해결되었다 싶었다. 물론 이때 선지자 이사야의 중보에 따라 하나님이 응답하셨고,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 37:36).” 하여 앗수르의 산헤립은 돌아가 아들들의 칼에 찔려 죽었다.

 

이때 히스기야가 보여준 신앙은 분명하였다. 먼저는 잠잠히 주를 바라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사 36:21).” 그리고 하나님께 아뢰고 서로서로가 기도하였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37:1-4).”

 

오늘도 본문에서 악정(惡政)을 행한 므낫세이나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신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니스록의 신전에서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사 37:36-38).”

 

그렇게 앗수르를 몰아내고 간신히 숨 좀 돌리는가 했더니,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이사야가 나아가 …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사 38:1).” 역대기서에서는 이를 간략하게 언급하고 지나갔는데 이사야서에서는 이를 상세히 기술하였다. ‘그 때에’ 우리들로 하여금 죽을병에 걸린 히스기야를 주목하게 하는 것이다. 히스기야 왕은 돌아누워 기도하며 통곡하였다(2-3). 이와 같은 고난이 오면 우리도 당연히 기도하고 병 낫기를 간구할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특권이다. 이때 히스기야의 기도에도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저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주셨다. “…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5).” 결국 하나님께 우리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 달려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게 인생이고 보면 매일 이 하루를 거룩하게 사는 게 지혜이겠다. 히스기야는 주를 경외하였고 그렇게 살았다. 이를 주께 아뢰며,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3).” 하고 저는 스스로가 산당을 철폐하고 우상숭배를 타파하였던 것을 상기시킨다.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게 우리에게 고난이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주의 뜻대로 살았는가? 하는 것을 되새겨보게 한다. 이처럼 히스기야도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 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15-16).” 하고 주께 진솔하고 간곡하게 구하였다. 그리고 다짐하기를 저의 남은 생을 찬송으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20).”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을 살면서, 이와 같은 말씀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즉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그러므로 더욱 주를 갈망하게 된다.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산 자의 땅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의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사 38:11).” 그리하여 하나님은 저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병고침을 얻는 데 있어 그 증표로 기적을 보이기도 하셨다.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38:7-8).”

 

그렇게까지 하여 병나음을 받은 뒤 저는 어떠했나?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사 39:1).” 하여 저는 교만이 들어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2).” 하고 그 기간이 연장된 15년 사이에 낳은 아들이 유다의 악명 높은 므낫세이다.

 

히스가야는 29년을 통치하였고(왕하 18:2), 그중 15년은 질병이 나은 후에 생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덤으로 살았던 인생이다. 재위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공격과 조롱이 있었고, 이를 기도로 승리하였으며, ‘그때에’ 죽을병에 걸렸다가 나음을 입고, 저의 15년 인생은 그야말로 교만하여졌다. 차라리 억울한 상황에서 병나음보다 그 사랑을 신뢰함으로 ‘잠잠히 기도하는 것’으로 죽음을 맞이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참회로 뜻을 바꾸신다.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 대하 33장에서 소개되는 두 왕 므낫세와 아몬의 악정(惡政)에 관하여, 므낫세와 그의 아들 제 15대 왕인 아몬의 치적에 대해 차마 뭐라 언급하기조차 민망하다. 므낫세의 치세와(1-20) 아몬의 치적으로(21-25) 오늘 이 한 장이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왠지 자꾸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므낫세는 선왕 히스기야와 달리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와 악을 행하는 일에 몰두하였다(1-9).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로 바벨론으로 끌려가 환난을 당하자 저는 겸비하여 회개하였다(10-13). 회개는 곧바로 우상을 파괴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는 종교 개혁으로 이어졌다(14-17). 그래도 므낫세의 노년은 신앙을 회복하는 것으로 맺음한다(18-20).

 

므낫세를 이어 아몬이 왕이 되었다. 므낫세의 초기와 같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다 저는 끝내 회개할 기회도 없이 반역을 당해 죽음을 맞는다(21-25). 본문은 왕하 21장과 병행하는 내용이다. 므낫세의 통치는 유다의 멸망을 암시하면서 종국적인 원인으로 나타난다. 므낫세가 회개하여 스스로 자신을 겸비케 한 것으로 보고(12-13), 이 또한 귀한 일이기는 하나 열왕기에서는 므낫세의 행악이 너무 극심하여 유다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급속히 빠져들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다 왕 므낫세의 이 가증한 일과 악은 아모리 사람들보다 더욱 심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 여호와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시기로 하셨다. ‘이를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곧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이 얼마나 두렵고 강력한 경고인가?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결국은 유다를 버리실 계획을 세우셨다.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 하심이 그대로 실려 있다(왕하 21:11-15).

 

또한 아몬의 통치에 관하여 기록하면서도 역대서 오늘 본문은 아몬이 그 부친 므낫세의 스스로 겸비한 것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비치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였다. “이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대하 33:23).” 이것은 므낫세의 회개를 그만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증거다.

 

즉 오늘 본문은 유다 왕국을 멸망으로 치닫게 한 주범이 므낫세일지라도 저는 자신의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무한히 주어졌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킨다.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12-13).”

 

특히 36장에서 유다 멸망의 원인을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돌리지 않고, 단지 마지막까지 그 백성들을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는 하나님의 모습만을 역대기는 주목하였다.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36:15).” 이것은 역대기 서의 관심이 어떤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고 이스라엘과 함께한 하나님의 은혜와 백성들 전체의 운명에 대하여 깊게 뿌리박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므낫세와 아몬의 통치를 묘사하는 데 있어, 므낫세가 행한 우상 숭배와 모든 악행은 너무 극심하여 이전 선왕 히스기야가 이루어 놓은 종교 개혁의 업적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3).” 또한 모든 열방보다 더 악하게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갔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9).”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므낫세를 징벌하셨다.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11).” 그것은 궁극적으로 므낫세로 하여금 회개에 이르게 하는 복된 채찍이 되었다. 그 결과 일방적인 하나님의 주도하에 므낫세와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13).”

 

결국 여호와를 체험적으로 알게 된 므낫세는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종교 개혁을 수행하였다. “그 후에 다윗 성 밖 기혼 서쪽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되 어문 어귀까지 이르러 오벨을 둘러 매우 높이 쌓고 또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 지휘관을 두며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거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제단들을 다 성 밖에 던지고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 드리고 유다를 명령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14-16절).”

 

그러나 므낫세가 경험한 하나님을 알지 못한 백성들의 완고한 마음을 여호와께로 돌아서게 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백성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더라(17).” 이어 아몬의 통치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극진한 은혜에도 사악함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다. 아몬이 행한 범죄와 겸비치 아니한 모습의 완고한 고집은, “이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23).”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이었다. 이러한 아몬 왕을 국민이 처단하고 이어서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을 삼았다. “백성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라(25).”

 

결국 열왕기서의 관점과 역대기서의 관점이 다른데, 나는 우리의 악함과 약함이 비례한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아는 비결을 생각한다. 오늘 시편은 우리가 악인의 형통함을 볼 때에 얼마나 우리로 시험에 들게 하는지를,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1-3).

 

솔직히 아니 그러한가? 악인들은 오죽하니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4-5).

 

때론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오늘날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도 거짓과 위선과 악함으로 더 잘 살고, 그리하여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8-9).

 

그럴 때 우린 기가 죽는다. 주눅이 든다. 상대적으로,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13-14).

 

그러니 온전히 신앙을 지키는 게 복일까? 하여,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6-17).

 

결국은 이처럼 주의 전에 엎드려서 깨닫는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0).

 

결국은 끝나는 일이어서,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2-23).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