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대하 34:33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시 74:16-17
주를 인정하는 데서 모든 문제는 사소해진다. 설령 그것으로 죽음이 오고 생의 고통이 가중되었다 해도 우리는 이 사사로움으로 오히려 더 주의 이름을 부른다. 오늘은 앞서 히스기야에 이은 선왕을 보게 된다. 앞서 두 왕 므낫세와 아몬의 악정(惡政)에 관하여 더는 회고 하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그나마 므낫세는 늘그막에 회개하여 주 앞에 선을 행하였으나 아몬은 그러지 못하였다.
이제 오늘은 그 뒤를 이어 요시야의 통치에 관한 기록이다. 두 장에 나누어져 기록되었다. 왕하 22, 23장의 내용보다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요시야는 요아스에 이어 여호야긴과 더불어 두 번째로 어린아이 적의 왕이다. 여덟 살에 왕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며’,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그러므로 열여섯 살 곧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가 행한 일은 뚜렷하였다. 먼저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다. 그리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였다. 곧 그는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였다(1-3).
특히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이고 ‘떠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즉 순종을 강조하는 말이다. 얼핏 생각하면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듯한데 앞서 그의 부친과 조부도 그러했고 여러 선왕들의 길은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그렇게 요시야는 재위 12년부터 18년까지 6년 동안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다.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 우상들을 제거하였다. 영적인 적폐를 청산하였다.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데 서기관 사반과 마아세야, 서기관 요아 등 세 사람을 보내어 부서진 성전을 수리하도록 하였다. 그러다 전혀 뜻밖의 율법책을 발견하였다.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헌금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매 사반이 책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가서 복명하여 이르되 왕께서 종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종들이 다 준행하였나이다(14-16).”
이는 참으로 뜻밖의 발견이었다.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헌금한 돈을 꺼낼 때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한 것이다. 힐기야가 이를 서기관 사반에게 말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매 사반이 책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가서 복명하였다. 서기관 사반이 그 책을 요시야 앞에서 읽었는데, 왕이 보인 반응은 더욱 뜻밖이다.
“서기관 사반이 또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 앞에서 그것을 읽으매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18-19).”
옷을 찢었다는 것은 심히 애곡하여 울부짖으며 회개하는 것이다. 모세의 율법 중 어느 부분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만큼 너무 오랫동안 말씀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을 암시한다. 그 말씀이 폐부를 찔렀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어느 부분에서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실상을 발견할 때 솟구치는 울분과 회개의 순간과 같다. 그 때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이 송구하여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율법책을 발견한 제사장 힐기야와 요시야 왕이 보낸 사람들은 여선지자 훌다를 찾아갔다. “이에 힐기야와 왕이 보낸 사람들이 여선지자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하스라의 손자 독핫의 아들로서 예복을 관리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살았더라 그들이 그에게 이 뜻을 전하매 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라 하시니라(22-23).”
여선지자 홀다는 이곳에 언급된 게 전부다. 다른 성경에는 언급이 없다. 성경에 명시된 여선지자로는 미리암,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출 15:20)” 드보라,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삿 4:4-5).” 그리고 노아댜,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느 6:14).”가 있다.
선지자로서 행한 훌다의 활동에 대해서는 자료가 빈약한 듯하다. 다만 그녀는 이에 하스라의 손자 독핫의 아들로서 예복을 관리하는 살룸의 아내였다는 게 전부다.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살았다. 이를 왕하 22:14에서 보니,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서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하였더라 그들이 그와 더불어 말하매” 이 정도의 소개가 전부이다.
곧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 기록되어 ‘살룸의 아내’라는 것 외에 다른 정보가 없다. 살룸은 예복을 주관하는 자였다. 이 예복은 왕이나 귀족들이 절기에 왕궁에서 입던 옷인 듯하다. 한편 왕하 10:22에서는 종교 행사를 위하여 ‘바알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이 특별한 예복을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살롬을 좀 더 살펴보니 예레미야의 숙부가 된다.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렘 32:7).” 이를 보면 훌다의 남편 살롬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숙부로,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살았다는 것은 이곳이 왕조 시대에 들어와 예루살렘 성이 확장될 때 포함되었던 장소이다. 이에 대해 왕하 22:14 주석과 습 1:10을 참조하면, 훌다가 예언적 은사를 소유했던 자로 당시 상당한 명성을 지녔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요시야의 당시 훌다 외에 예레미야와 스바냐 선지자가 동시대에 활동하고 있었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 출신이므로 예루살렘에 있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은 궁전 선지자가 아니어서 요시야의 개혁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반면에 훌다는 왕궁에서 예복을 주관하는 공직자 살룸의 아내로서 왕의 측근에 있는 선지자로 여겨졌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예레미야나 스바냐를 찾지 않고 훌다를 찾아갔다는 것은, ‘예루살렘 둘째 구역’이란 단서가 유일한데, 예루살렘 둘째 구역이란 훗날 ‘미쉬네’라 하는 지역명으로 고착된 곳이다. ‘미쉬네’는 ‘낮은 지역’이라 불리는데, 그 지역의 위치가 계곡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성경이 감추고 계신 뜻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추론하고, 이에 대해 훌다가 전한 설명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를 알리었다.
그 내용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그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의 노여움을 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노여움을 이 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24-25).” 그러니 이와 같은 뜻으로 풀이하자 요시야가 옷을 찢고 회개함이 마땅하다. 하고, 훌다가 이어서 전한다.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전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들은 말을 의논하건대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26-27).” 그런 뒤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내가 네게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에 사신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28).”
곧 훌다가 전한 말씀을 통해 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요시야 왕이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여선지자 훌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권고한 것이다.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왕하 1:6).”
이를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옷을 찢으며 통곡한 요시야 왕에게 재앙이 있을 것이지만, 요시야 왕 때에는 임하지 않을 것이어서 평안히 눈을 감게 될 것이라고 한다. 요시야 왕으로서는 좋은 소식으로 ‘평안히 눈을 감는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으로는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의 성취는 요시야 왕이 애굽 왕 느고와의 므깃도 지역에서의 전투에서 전사하므로 이루어지게 된다.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대하 35:22-23).”
그리하여 요시야 왕은 성전으로 올라갈 때 백성들을 불러, 자신이 읽었던 율법책의 내용을 백성들에게 들려주고 언약의 말씀을 지키자고 호소했다.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이 다 여기에 참여하게 하매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니라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34:32-33).”
곧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이 다 여기에 참여하였다는 것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것으로,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해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다.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다.
오늘은 이처럼 요시야 왕이 하나님을 바르고 신실하게 섬김으로 그가 사는 동안 백성들도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올바른 통치가 이와 같이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일 텐데, 앞서 므낫세 왕 한 사람 때문에 온 백성이 우상숭배의 길로 갔고, 요시아 왕 한 사람 때문에 온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길로 갔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떤 자리’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교회로 볼 때 그 교회의 담임 목사의 주관과 심지가 어떠한가에 따라 교인들의 행함도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요시야 왕의 이와 같은 삶과 신앙에 대해 들으며 무엇을 다짐해야 할까? 이는 자녀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올바른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릴 적에 설교 시간에 설교원고를 받아 적게 하는 훈련을 받았다. 나의 부친은 이를 검사하였고 그것으로 용돈을 주기도 했다. 또래 아이들도 같이 설교원고를 받아 적었는데 그때 우리가 세례를 받을 나이쯤으로 서로가 이를 돌려보며 같이 묵상했던 기억도 난다.
그땐 딱히 누가 그리 시켜서가 아니라 서로가 자발적으로 그리 했던 것 같은데, 그 이유 때문인지… 또래들과 같이 학습과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그렇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오늘 요시야의 울음의 의미와 같던 게 아니었을까? 우린 서로에게 왜 하필 우리 같은 걸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셨는지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그처럼 펑펑, 울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렸었다… 지금도 사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때 온 교회 성도들이 다 의아해하면서도 그 시간 같이 큰 은혜를 받았던 시간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둘이 목사가 되고 하나가 선교사가 되고 하나는 사모가 되었다. 뒤늦게 나 역시도 목사가 되었다.
요시야는 그렇게 여덟 살에 왕위에 올라 31년을 유다를 다스렸다. 즉 저는 39살까지 살았다. 요시야의 손자인 여호야긴도 여덟 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만 행하였다. 그러니 누군 이러하고 누군 저러하다. 그 기준과 원칙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 모든 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단지 신앙교육이나 어떤 특별한 노력으로가 아니라, 주를 경외하고 인정함으로 요시아는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온 나라를 새롭게 하셨다.
이에 오늘도 인정하기를,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시 74:16-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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