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14 주일
이사야 55장
은혜로의 초대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사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 55: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사 55: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사 55: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들어가는 말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늘 져준다. 사랑의 관계를 ‘갑을관계’로 생각하는 덴 다소 무리가 있지만, 더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약자처럼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사람으로까지 낮아지셨다. 늘 맞추시고, 또 기다리시며, 또 참고, 또 인내하셨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긍휼’하심 곧 ‘자비’, 곧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헤세드의 은혜’로 말씀을 나누었다.
앞서 49장부터 57장까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구속과 회복’을 약속하고 있다. 오늘 55장은 성경의 중심이랄 수 있는 <은혜로의 초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값없이 구원의 은혜에로 초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하여 우리는 오늘, 결정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항상 오늘뿐이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오늘만 산다!’는 따위의 세상적인 표현이 아니다. 오늘 너머의 우리의 생은 언제나 영원의 세계다. 저마다 이 땅에서 내일을 꿈꾸며 살지만 내일은 내일의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오늘의 초청에 답해야 한다. 애매한 구애가 아니다.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눅 14:16, 18).”
더러는 신앙을 마치 나중으로 미뤄도 되는 일로 여긴다. 그러나 ‘은혜의 초청’은 언제나 오늘뿐이다. 이를 두고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본문이해
오늘 서론 부분으로 1-5절 말씀에서 분명 하나님은 우리를 초청하셨다. 이를 모두에게 전하지만 아무나의 것은 아니다. 첫째, ‘영혼의 목마름을 느끼는 자’들에게 들린다. 둘째, ‘영혼의 생수를 찾는 자’를 향한다. 셋째, 저는 구원의 갈급함을 느끼는 자이다. 그러한 실제의 동인은 삶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자이다. 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시는 바, ‘돈 없는 자’로 분류된다. 생의 궁핍은 단지 돈의 영역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인생에서의 탈선과 자살’의 구체적인 원인은 돈이다.
오늘 우리를 향한 초청은 사랑의 확답이다. 이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그래서 성경은 늘 하나님이 ‘을’의 입장에서 ‘갑’에게 구애하는 듯 먼저 찾아오시고,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5-6).” 이렇게까지 사랑하심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러한 은혜의 초청에 응할 것인지, 다른 일로 미루거나 거절할 것인지? 오늘 본문은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제시한다.
1. 값없이 사라
① 목마른 자들에게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1).”
사는 데 있어 생의 목마름을 느끼는가? 무엇을 바라는데 목마름을 느끼는가? ‘너희 목마른 자들아’ 할 때, 우리는 목마름으로 돌아보는가? 즉 영적 구원을 사모하는 자들인가? 보다 구체적으로 세상을 더 사랑하는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하여 시편의 고백처럼,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 42:2).” 하는 목마름으로 살고 있는지?
② 무익한 것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2).”
다들 사느라 고생이 많다. 그러나 ‘양식 아닌’ 것을 위해 수고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크다.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시 65:11-12).” 하는 시편의 고백처럼, 우리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그러므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시 63:7).” 하는 찬송으로 오늘이 가능하다.
2. 나아와 들으라.
① 귀를 기울여 들으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3).”
말씀 외에 다른 것으로 귀를 막으면 허망함은 망상을 추구하게 된다. 스스로도 잘 될 것 같다. 그러나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즉 스스로는 불가능하다. 다들 ‘사는 게 지옥’이다. 이를 아는 자는 ‘헤세드의 은혜’를 붙들고 인애와 긍휼을 바라며 산다. 이에 말씀은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하고 강하게 이끈다.
② 확실한 은혜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4-5).
그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과 모든 믿음의 영웅들이 붙들었던 바로 그, 복음이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3-14).” 즉 이 땅의 것으로 전부가 아니라, 구원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게 하신 구주시다.
3. 돌아오라
①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6).”
저마다의 때가 있다. 누구에게는 실패와 좌절로, 누구에게는 환희로, 누구에게는 얼굴을 들 수 없는 송구함으로… “만날 만한 때”가 오는데, 그때에 “찾으라”는 것이다. 솔로몬은 늙어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 3:1).” 하는 원리를 깨닫고, 오늘 우리의 회피에 쐐기를 받았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2-3).” 그러니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 32:6).”
②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7).”
우린 모든 게 악하다. 불의하다.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다. 한데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하신 이가 증거하신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이 은혜의 자리로 돌아오라! 그렇다면 우리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우리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
1. ‘생각과 길’이 다르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8).
여호와의 ‘생각과 길’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 이 사실은 용서의 근거가 되어준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생각의 길을 몰랐을 때는 참고 또 기다리신다. 그러나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더 이상 용서가 안 된다. 즉 은혜를 받았으면서 이를 버리고 떠난 경우,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하신 데 따른 은혜를 알고도 세상을 사랑함으로,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2. ‘하나님의 길과 생각’이 높으시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9).”
하나님과 인간의 계획은 다르다.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 103:11).” 하는 시인의 인정이 우리 삶에 있을 때,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57:10).” 이를 우리가 어찌 알 수 있을까? 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하기까지도 억만 개의 우연과 상황이 우주처럼 뒤섞여 각각의 운행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하물며 우리가 어찌 이 모든 천지만물과 모든 시공간의 질서를 다 알 수 있을까?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89:2).”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것보다 확실히 높으시다.
3. 결국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이루어진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10-11).”
척박한 토지에 비와 눈이 내려 옥토를 만든다. 옥토에서 열매를 내고 사람들은 양식을 얻는다. 오늘 우리의 건강도, 시간도, 일도, 그 모든 사명도 ‘성령을 받아’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 말씀하신 데 따른 목적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4. 여호와의 기념, 영영한 표징을 위하여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12-13).”
선택 받은 백성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오늘 우리들, 택함 받은 모든 백성들의 표징인 것을 우리는 이제 확신한다. 그리하여 “마롯 주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라기스 주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이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미 2:12-13).” 저들 마롯 주민, 라기스 주민, 라기스의 딸은 ‘남은 자’, ‘저는 자’, ‘쫓겨났던 자’, ‘환난을 당한 자’들이었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눅 14:13-14).”
나오는 말
영혼의 타는 목마름으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하필 ‘명절 끝날’ 같이들 풍족한 줄 알았던 때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하고 오늘 말씀은 부르신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부르신다(마 5:6). 그리하심은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하여,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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