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 곧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들은
느 10:28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시 96:7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엄혹했던 현실 속에서 성경의 여러 믿음의 영웅들이 같은 동시대를 살았다. 느헤미야를 위시하여 시드기야는 2-8절의 인물들과 구별된 자들이었음을 암시한다. 즉 2-8절의 인물들이 제사장 곧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데 반해 두 사람은 정치적 권세를 가진 지도자들이다.
시드기야는 총독 느헤미야의 서기관이던 사독(13:13)과 동일 인물로 간주된다. 두 이름이 모두 ‘의롭다’라는 뜻을 어근으로 한다. 어느 시대나 이름의 뜻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내포한다. 8절까지에 나열된 21명의 제사장 명단 중에 열다섯 명은 개인 이름이 아닌 가계명(家系名)이다. 12장에 기록된 1차 귀환자의 명단에 또 다시 여기 이름이 나온다. 스라야, 예레미야, 아나랴 등이 그러하다(12:1-7).
곧 여기 인물들은 종교계의 지도자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8:1, 13)”
그런 가운데 에스라의 이름이 본 명단에서 누락된 사실은 이해될 수 없다. 에스라는 그가 속했던 가문의 우두머리가 인침으로 개인적으로 인을 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스라야는 당시의 제사장 개인 이름이 아니라 한 가문의 이름이다. 에스라는 바로 이 가문에 속했다.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7:1)” 아사랴도 제사장 개인 이름이 아닌 가문명(家門名)으로 봐야 한다. 그 뜻은 ‘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이다.
예레미야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제사장 가문의 이름이다.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일어나실 것이다’이다. 바스홀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제사장 가문이고(2:38), 아마랴도 그러하다(12:2). 그 뜻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이다. 말기야는 ‘여호와는 왕’이란 뜻이다.
여기서 ‘오바댜’는 ‘여호와를 섬김’으로, 다니엘은 제사장 직분의 가문명을 나열하고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에스라와 함께 귀환했던 이다말 자손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재판관’이다. 바룩은 ‘복된’이란 뜻이다. 스바냐와 그리다는 에스라를 도와 백성들에게 율법을 해석하여 깨닫게 해준 사람이다.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8:7).” 하난도 에스라를 도왔고 그 이름의 뜻은 은총이다. 미가의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의 뜻이다.
스바냐는 ‘여호와께서 숨기셨다’의 뜻이다. 호세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이다. 하삽나는 ‘여호와께서 나를 생각하셨다’의 뜻이고, 아히야는 ‘여호와의 형제’, 하난은 ‘은총’ 등등. 언약 문서에 인친 백성들은 맹세 의식을 거행함으로 그 언약에 대한 철저한 준수를 다짐하고 있다.
본문에서 인을 친 것은 각 가문의 대표였다는 점에 근거하여(1-17), 여기의 ‘그 남은’이라는 말은 다음의 제사장 등을 모두 수식한다. 곧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은 레위 지파 사람들로 성전 제사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역을 수행했던 레위 사람과 구별됐다. 레위 사람이 이들을 대표하였고(9-13), 언약서에 서명을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느디님 사람들’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니었으나 개종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다.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스 2:43)”
곧 ‘레위 사람’을 도와 성전 봉사의 직무를 수행했던 자들이다. 따라서 레위 사람들이 이들을 대표하여 언약서에 인을 쳤다. 그런 가운데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할 때,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구성하던 것으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도 포함한다. 이들은 원래 이방인이었으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공동체에 가입한 사람들이다.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다 먹고(6:21)” 곧 이들은 자신들의 본처(本處)를 떠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주지로 이주(移住)한 후, 할례를 받음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창 17:12-13)”
저들을 가리켜 ‘무릇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들이라 한다. 곧 ‘알아들을 만한 회중’이란 뜻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귀 있는 자들’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 11:15).” 이는 참 무거운 말씀으로 그만큼 들을 귀 없는 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기회 있으실 때마다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 4:9).” 그러니 어쩌겠나?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서로 듣는 게 다르니 이를 억지로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난겨울 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감사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직도 저가 대통령을 수행하며 오늘에 드러나는 그 일들을 점점 더 과감하게, 모든 것을 숨기고 억누르며 행하고 있지 않겠나? 요즘은 또 감사한 게 극우니 계엄세력이니 하는 자들과 그들 정당의 수고이다. 12월 3일, 교회에서 막 자려고 하는데 계엄이 선포됐다며 아내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전화했을 때, 나의 첫 마디는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구나'였다. 이처럼 오늘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그나마 개혁의 명분을 더하면서 스스로들 명을 재촉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지옥(地獄)이란, 한자어와 같이 이 땅의 들판을 으르렁거리며 몰려다니는 개들의 세상이다.
오늘 이 때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 하시면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5).” 하고 먼저 진리를 바로 알게 하셨다. 보면 점심께 산책을 하느라 동네 한 바퀴 도는 동안 무슨 어머니 종교부터 신천지까지, 다들 참 으르렁거리며 삼킬 자를 두루 찾는 형국 그대로다. 이에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6).” 그러니 어떤가?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7-8).”
요즘은 이처럼 성경을 묵상하고 글을 쓰면서 일련의 사건사고들이 성경을 그대로 반영하여 보여주는 것을 알겠다. 미국을 대표하는 이를 지지하는 개신교가 70%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들 상당수가 극우라고 한다. 늘 정치와 결탁하거나 연줄을 대면서 표심과 돈을 결부시켜 교회를 어지럽히는 게 소위 대형교회들이다. 이런저런 부정부패에 연루되거나 정치화된 교회의 면면을 보면 각종 이권과 결탁이 돼 있다.
오늘 본문에서도 성벽 재건 후 고조된 신앙 운동은 백성들이 언약을 갱신하고 서약하는 내용을 기록함으로 통렬한 회개와 자신들의 과오를 직고하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여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느 9:38).” 할 때, 새로운 삶을 살기로 굳게 다짐하는 사실을 기록함으로 영적 각성과 하나님과의 언약 갱신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10:1-27). 지키기로 맹세한 세부 항목을 언급하고(28-39), 백성들의 새로운 다짐을 보여준다(28-31). 제사 곧 예배를 바로 유지하기로 결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32-39).
결국 교회 갱신은 지도자의 몫이 크다. 그러므로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3).” 그런데 저마다 이를 감투로 여겨 교회에서 스스로들 우두머리로 행세하며 횡령도 하고, 정치와 결탁하고, 세습을 하거나 이 모든 게 마치 자신의 독단으로 그래도 되는 권세인 줄 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롬 2:21-23).”
그러니 특히 지도자의 자리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7-8).” 결국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그런 가운데 다들 자신은 옳다고 하며 으르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꼴이라니! 그대로 지옥이지 않나?
그렇게 하여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 뿐,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고후 4:1-2).” 이를 알면 알수록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5).”
한참 신대원 공부 때 교계를 시끄럽게 했던 사건으로 모 교회 목사의 성추행사건이 있었다. 결국 그 목사는 교회에서 쫓겨나면서 전별금으로 수십억 원을 받았다. 누가 묻기를 징계를 받고 쫓겨나면서 너무 큰 금액이지 않나? 하고 묻자, 저는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길 자신의 전 재산과 젊음을 바친 것에 비하면 결코 많지 않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게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그 돈으로 다시 어디 근처로 옮겨 요란하게 개척교회를 세웠다. 신기하게도 그를 따라간 성도들이 꽤 많았다. 한참 그 일로 동기들 사이에서 설왕설래할 때 나는 그래서도 목사가 된다는 게 너무도 두려웠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신 28:1-2).”
말씀 앞에 근신하기란 제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 같다. 누구 하나 이 시대에도 보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서로의 비난과 공격만 있을 뿐 스스로를 돌아보아 경계하거나 그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으로 충분히 지옥이다. 회개할 수 없는 땅에서 으르렁거리며 개떼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6-7).”
그러니 이는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의 문제다.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겔 18:28).” 그러므로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약 5:20).” 곧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것은, 이전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거스르는 것이었음을 절감하고 인정하고 통회함으로 회개하는 데서 시작한다. 본문은 이를 밝힌다.
“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9:35-36).” 하여 저들이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2).” 그리하여 회개는 곧 행동이다.
그럼에도 오늘은 이방 문화와 타종교의 물결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13:15-18).” 하는 긴 말씀을 끌어다 읽으며 생각한다.
고로 오늘 나는 어떠한지? 우리의 신앙과 그 실천은 좀 나은 게 있는지? 이방인과의 통혼, 즉 아무렇지 않게 세상과 결탁하고 안식일을 범하고, 구별된 삶을 무시하거나 문화, 종교의 순수성을 내팽개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나는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있는지?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살전 1:7).” 하는 말씀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지? 가까운 훗날 주 앞에 서서 이와 같은 말씀을 들을 수 있을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아,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는 부디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시 96:1-2).
좀 뭔가 다르긴 달라야 할 텐데, 이를 위하여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6).
교회에 올라와 말씀 앞에 서서,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
(9-10).
곧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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