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하현. 2026. 2. 10. 04:46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겔 15:2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시 94:17

 

 

두 가지 징조(12:1-20)와 다섯 개의 메시지(12:21-14:23)를 전하였던 에스겔은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의 가능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일련의 비유를 진술하고 있다(15-17장). 본문은 쓸모없는 포도나무를 비유하여 이스라엘의 우월의식을 불식시킨다. 곧 우리 자신이 포도나무 같아서 열매가 없으면 그 나무 자체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나로 말씀을 전하게 하셨고 주 안에서 성령의 열매가 열리게 하심으로 가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적으로 무익한 존재일 뿐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선민의식에 도취되어 배도와 반역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마치 우리의 신앙이나 믿음이 자아도취에 빠져 구원 받았다는 사실에 매몰되는 경우와 같다.

 

여느 사람은 구원 받기 위해 죽어라 하고 기를 쓰듯 ‘선을 찾는 늑대’와 같이 열심을 다한다. 또 한편은 이미 구원 받았다는 자기 확신으로 무얼 해도 ‘천국 갈 자’임을 착각하고 산다. 이에 상반되는 성경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 7:21-22).” 하는 것과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3).” 하고 긍휼하심을 바란다.

 

이에 지혜는 말하길,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전 7:16-17).” 어느 쪽으로도 지나친 것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려하는 것이거나 피하려 하는 것이어서,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18).” 우리로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올바른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지자는 포도나무의 쓸모없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을 돌보지 않으신다면 이스라엘은 타민족에 비해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이사야도 전하기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사 5:1-2).” 예레미야도 전하여,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렘 2:21).”

 

또한 아삽의 시에서도,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시 80:8).

 

하고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그 의미를 전하였다. 그러므로 쓸모없는 포도나무가 버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예루살렘이 포도나무처럼 버려질 것을 예언한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죄악을 일삼는 이스라엘은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을 생생하게 지시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이처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우회적으로 충고하고 권면하는 이유는 일상적인 평범한 말과 다르게 그 의미를 깊이 되새길 것을 함의한다. 곧 긴장과 주의를 주려는 것이다. 선지자들도 청중에게 강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우화를 사용하곤 했다. 이사야는 물론이고 아모스도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암 5:19).” 하는 식으로 당면한 현실을 직면하고 각성하게 한다.

 

포도나무의 가치는 열매에 있다. 나무의 재질로는 하등에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였다. 열매를 맺지 못했다거나 모든 사람의 기대와 달리 썩고 비틀어져 익지 않은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호세아도 전하길,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호 10:1).” 그런데 이사야의 지적과 같이,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사 5:4, 7).”

 

이와 같이 포도나무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의인화하여 그 가치와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한다. 오늘 에스겔은 포도나무의 질을 통해 포도나무의 무용성을 드러낸다. 더욱이 불에 타버린 포도나무의 무가치함은 더할 나위없다.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겔 15:4).” 이 비유를 통해 선민이라는 특권 의식을 가지고는 있으나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는 이스라엘의 교만함을 지적하고 겸손하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17:6-7).” 이와 같은 위용이 있는데, 이스라엘은 어떠한가? “이는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독이 든 포도이니 그 송이는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맹독이라(신 32:32-33).”

 

하여 시인은 그 역사를 진술하여 간구한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시 80:8-15).

 

예레미야 선지자도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렘 2:21).” 하고 주의 마음으로 탄식하고, 호세아 선지자도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호 10:1).” 하고 의미를 전하였다. 곧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른 민족들과 달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사명이 있음을 분명히 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내 아들, 내 장자’라 하셨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하셨으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하고 언급하셨다. 그럼에도 예루살렘 거민들은 하나님의 기대와 달리 온갖 압제와 살육을 자행했다.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포악이 그 성읍에 찼음이라… 너희가 이 성읍에서 많이 죽여 그 거리를 시체로 채웠도다(겔 7:23, 11:6).” 온갖 우상 숭배의 가증한 범죄를 행하였다.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8:3).”

 

이러한 망측한 유다의 몰골을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하고 물으심으로 그 의미를 분명히 한다.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15:2).” 또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시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이라도 만들 수 있겠느냐?’ 하시며 열매 없는 포도나무의 쓸모없을 비유하고 있다.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3-4).”

 

포도나무의 좋은 특징은 그 꽃이나 나무의 우아함이 아니다. 또한 목재로도 유용성이 없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나도 그러하다. 포도나무와 같이 열매를 맺는 것 외에 다른 쓸모가 없다. 열매를 맺지 못할 때 결국은 불에 던져지는 땔감으로나 전락되는데 그 뒤에는 버려질 뿐이다. 그럼 오늘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주의 존귀하심을 나타내는 영적 열매로는 무엇이 있을까? 나의 열매는 무엇인가? 하는 데서 고개 숙여 주 앞에 보잘것없고 쓸모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곧 오늘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망각하면 나로서는 그야말로 하등에 쓸모가 없다.

 

엊그제 서로 상견례를 하면서 같이 믿음으로 사는 가운데 저이가 들려주는 교회에서의 역할이나 그렇듯 일구어온 일들을 듣다 나는 더욱 면목이 없었다. 안수집사로 중고등부를 맡아 일할 때 열심을 다해 수십 명의 학생부로 부흥시킨 일이나, 교회 중역들이나 여러 성도들을 대하는 데 있어 교역자 이상의 충성된 마음을 사역을 감당했다는 말에 기가 죽었다. 그때도 그런 말을 했지만 오히려 목사로 세우셨으면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을 것이고 하고 있을 것인데, 그에 비하면 나는 참 송구하여 이름값도 못하는 위인이라 부끄러웠다. 이와 같이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할 때,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6:19-20).”

 

오늘 이 포도나무 비유의 말씀에서도 전적으로 나는 열매 없는 자 같이 송구하고 부끄러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처럼 에스겔 선지자와 같은 시기에 유다 국내에서 활동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외쳤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렘 2:21).” 이와 같은 말씀이 나를 향한 질타 같다. 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의 일이란 게 아흔둘이 되는 장모를 건사하고, 특히 요즘 무릎 수술로 통증을 호소하고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돌보는 일이다. 사실 이런 말할 염치도 없지만 어제는 새삼 고백한 게, 집안일이란 게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장모의 변기를 치우고 물을 떠다놓고 약을 챙기고, 그러는 동안 아들이 그래도 밥을 차린다. 그럼 내가 설거지를 하고 어제는 둘이 쓰레기를 분리하여 내다버리는 데 이걸 모두 아내 혼자 해왔다는 게 놀라웠다.

 

병원에를 데려가서 접수를 하고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일도 한나절이었다. 말 한 마디, 마음 씀씀이 하나까지 진작 신경 쓰지 않으면 무심하거나 상처가 되는 말이 나갈 뿐이었다. 이를 예레미야의 목소리로 들으면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하는 주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교회 아이가 몸살이 나서 연차를 쓰고 쉰다고 해서 이런저런 말로나마 위로하고, 집으로 오는 아픈 아이가 공부하고 있을 때 가만히 다가가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는 일 외에…. 오늘의 나로 날마다 그 속사람은 새로워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본래 우리는,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하여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1-22).” 과연 오늘은 무엇이 달라지고 새로워지고 있는 것인지? 곧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을,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그러면서도 조금만 좀 나아졌다 싶으면 교만해져 ‘선 줄로 생각하기 일쑤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하여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말씀과 성령을 따름으로써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이를 바로 알려고 하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 하여 오늘도,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10).” 하는 심정으로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앉았다.

 

그러므로 오늘도 기도하기를,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시 94:8-10).

 

오늘 시편의 질문에 새삼 숙연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다 아신다고 할 때 과연 나의 하루는 어떠한가, 하고.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14-15).

 

이처럼 말씀에 귀 기울이며 주를 따를 때,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17-19).

 

그러므로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

(22-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