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하현. 2026. 2. 7. 05:04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반역하는 족속이여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겔 12:25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9-11

 

 

에스겔은 소명을 받은 후 배역한 자들의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의 필연성을 예언하고 경고한다. 임박한 멸망에 대해 상징과 설교와 환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유다는 여전히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으리라고 ‘거짓된 낙관주의’에 함몰되었다. 이런 상황에 선지자는 일련의 징조를 통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강조한다. 저들의 그릇된 희망으로 포기하고 현실을 인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는 표현을 여러 번 반복하지만 저들의 왜곡된 낙관주의는 그럼 그럴수록 더욱 도를 넘어서는 듯하다. 당시 예루살렘의 함락이 하나님의 뜻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유다에게 주어진 두 가지 비유와 심판의 확실성은 에스겔이 자신의 행구를 옮김으로써 이스라엘 족속의 멸망을 예언하는 것이다. 직접 포로로 잡혀가며 먹고 마시고 떠는 삶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할 기근과 궁핍을 알리고 있다.

 

“인자야 너는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내가 그 명령대로 행하여 낮에 나의 행장을 끌려가는 포로의 행장 같이 내놓고 저물 때에 내 손으로 성벽을 뚫고 캄캄할 때에 행장을 내다가 그들의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니라(3, 7).”

 

이러한 상황과 명령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끝까지, 어떻게든 돌이켜 자신들을 돌아보고 회개하여 주를 부르게 하려 하심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속담’을 인용하여 심판의 메시지를 조롱한다. 선지자의 경고를 가벼이 듣고 만다. 선지자는 이처럼 패역하고 완고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분명히 선포하고 있다. 곧 닥쳐온 현실에서 사로잡힘을 알려주는 선지자의 두 가지 상징적 행동을 보면서도 저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데 대해 말씀을 읽으면서도 난감한 생각이 든다.

 

“인자야 너는 떨면서 네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네 물을 마시며 이 땅 백성에게 말하되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주민과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그들이 근심하면서 그 음식을 먹으며 놀라면서 그 물을 마실 것은 이 땅 모든 주민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땅에 가득한 것이 황폐하게 됨이라(18-19).”

 

듣지 않고 외면하는 데는 장사 없다. 저들의 특징은 자기주장만 옳다고 여긴다. 또한 자신들이 아는 속담으로 견주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다. 즉 원래 그래! 하면서 늘 그래왔던 상황과 이에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서 답을 찾는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심판의 확실성을 강조하시고자 에스겔로 하여금 직접 행장을 꾸려 거취를 옮기게 하시고, “인자야 너는 떨면서 네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네 물을 마시며 이 땅 백성에게 말하되” 하고 주의 뜻을 전하게 하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선지자의 ‘비유적인 행동’과 예언의 말씀을 통해 계시하시고자 하는 뜻을 이스라엘이 너무 강퍅하고 완고하여 듣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리로 탄식하게 하신다. 곧 성경의 내용이 이스라엘의 이야기로 국한하여 전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실상도 같다는 데서 나 자신을 쳐서 주 앞에 굴복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를 위하여 좀 더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완악한 마음에 충격과 도전을 전달하기 원하셨다.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2).”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 시편은 우리들이 주를 찾고 부르고 알고 있다는 것으로도 얼마나 크게 은혜를 더하시는지를 알려준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9-11).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축복인지를, 거저 주시고 선물로 받았을 뿐인데… 우리가 주를 부르고 주를 아는 것으로도 이처럼 영광을 받으시니….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14-16).

 

이 놀라운 축복의 은혜 앞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상대적으로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런 가운데 있을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저들이 귀를 닫고 눈을 감은 것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우리에게 들리는 것이 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을 저들은 들으려하지 않는다. 하긴 우리가 듣는 것을 들을 수 없고, 보는 것을 볼 수 없는 지경이라 이를 말하고 또 보인다 해도 오늘의 반응이나 본문의 반응이 다르지 않은 듯하다. 당시 바벨론 포로들의 영적 상황은 열악했다.

 

그들은 앞서 주전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후 팔레스타인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잡혀오고 난 뒤이다(왕하 17:1-6, 18:9-12). 주전 605년에 여호야김 왕 3년(왕하 24:1-4, 단 1:1,2)과 597년 여호야긴 왕(1:2, 왕하 24:8-16) 때 포로로 잡혀온 자들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바벨론으로 잡혀 왔으나, 자신들의 죄악에 대해 회개하거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3:4-11).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을 반역하는 강퍅한 상태(2:3-7)에서, 잠시 잘못되어 바벨론 땅으로 잡혀 왔으나, 조만간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에 미혹되어 있었다. 이러한 왜곡된 낙관주의가 영혼을 마비시켰다.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렘 28:10-11).”

 

사실 오늘에도 우리를 더 악화시키는 것은 괜찮다, 다 잘 될 거다, 우리 잘못이 아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오늘 이 땅에서 천국처럼 살아야 한다는 낙관주의와 희락주의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한 자들로 회개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한다.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교회가 막아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 교단은 회개를 부정한다. 단번의 회개로 더는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어느 교회는 희망찬 메시지로 이 땅에서의 성공과 출세를 기원하며 부(富)를 축적하는 데 과감하다. 사람들이 몰리고 건물은 비대해져 사회나 국가에 한 축을 가진다. 교회 권력이 막강하다. 그렇게 요즘 화두가 되는 게 정치권에 줄을 대고 이권을 노리며 로비를 하여 정치자금과 당원가입과 후원으로 그나마 정교분리로 지켜야 할 종교의 신념과 정치의 가치를 혼용하고 있다.

 

곧 오늘 본문도 그런 내용이다. 포로로 끌려온 상황에도,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족속들은 죄를 자각하지 못했다. 여전히 자신들의 강퍅한 마음으로 스스로의 위안을 삼고 그런 가운데 처하면서 진리와는 반대되는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회복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가졌다. 에스겔은 이 터무니없는 소망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여 회개하도록 스스로의 삶이 표징이 되어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나 ‘거짓 선동’이 난무하다.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선동하였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렘 28:1-3).” 그런 가운데 멸망을 외치며 회개를 촉구하는 예레미야나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의 부르짖음이 들릴 리 없다. 그저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자 하니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4).”

 

곧 조기 귀환이라는 말이 얼마나 솔깃한가? 희망적이고 낙관적이다. 사람이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며 요즘도 더러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에 반기를 든다. 그런 아둔함에 대하여 지혜는 선언하고 설득한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 7:1-2).” 선뜻 꺼려지는 말씀으로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3).” 누가 과연 이 소비의 시대를 살면서, 쾌락과 안녕의 시대를 희구하는 가운데 슬픔을 웃음보다 낫게 여기겠나? 그러나 지혜의 말씀은 때를 알리고 분명한 행동지침을 가르친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4-5).”

 

더러 누구의 사연을 듣다 저의 슬픔을 응원한다. 저마다 당장의 슬픔이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친다. 가령 요즘 아내는 무릎 인대 수술 후 걷기 연습을 하며 예전 같지 않은 걸음과 그때마다 오는 통증을 호소한다. 근육이 손실되었고 끊어졌던 무릎인대를 다시 연결한 것이라 곧 나아질 거라 의사는 말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한 모양이다. 혹시 몰라 휠체어를 끌고 시장으로 산책을 갔다가 힘들면 다시 앉고 내가 뒤에서 밀고 하였다. 나야 늘 파스를 바르거나 붙이고 참다못해 진통제를 먹거나 결국은 병원에 가서 주사치료를 하고 오기도 한다. 뜬금없이 어제는 걷고 들어와 힘들어하다 나더러 어떻게 그렇게 사냐? 하고 통증의 위력을 실감한 듯 한탄조로 물었다.

 

나야 늘 아픈 사람이라, 오늘은 어디가 덜 아픈 것으로 감사할 뿐이어서 이것으로 주를 찾는다. 포로로 잡혀간 것으로 주를 찾기를,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주를 바라기를…. 그런데도 아이엄마는 교회로 예배로 권하는 말은 귓등으로나 듣는다. 어제는 아이 병원을 데려가 무슨 검사를 해야 한다며 한참을 아내와 통화하는 것 같았다. 지능검사는 나왔고 문제는 아이의 감정조절의 문제인데, 그것 때문에 학교 측에서나 여느 학원에서들 아이를 회피한다. 다른 기관으로 넘기려한다. 아이엄마는 그게 속상한 것이다. 그나마 아이 때문에도 아이가 학교 친구를 따라 교회를 가니까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을 하더니 요즘은 그것도 안 하는 모양이다. 외람된 소리지만 모두는 엄마 때문이다.

 

두 형제의 아이엄마는 작은애가 심각한 정도로 약물의존도가 높아졌고 심지어 큰 애마저 치료와 상담을 요한다는 학교 당국의 권고가 있었는데도 그저 그 나이 때의 사소한 일로 치부한다. 자신들은 이혼을 했고 돈을 벌고자 노래방도우미로 뛰기도 하면서… 아이들도 초등학교 고학년이라 술과 담배에 찌들어 새벽에 들어오는 엄마의 일을 대충은 안다. 그러는 동안 두 아이만 남아 밤새 게임을 하고 자신들 하고 싶은 대로 하다 쓰러져 잠이 든다. 보면 다들 공통점이 ‘한때는 믿었던 사람들’이라, 글방에 그냥 보내시라 하고 같이 책 읽고 글도 쓰고 주일에 예배를 드리자고 하니까 단번에 외면하고 더는 답이 없다.

 

일련의 오늘 우리 사정이나 당시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한 반응이 닮았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거짓 선지자들의 ‘선동과 낙관주의’는 우리 영혼의 눈과 귀를 멀게 한다. ‘심판이 임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너는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잘 들으라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렘 28:7-8).” 여전히 설마, 하고 살아가는 현실에서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가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멀리 있는 때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하느니라(겔 12:27).” 하심도 우리의 안일함을 지적한다. 다들 말하길, ‘주님이 언제 오시느냐?’ 하고 조롱한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벧후 3:3-5).”

 

그러게, 세상을 보면 여전히 천년만년 갈 거 같다. 미국의 대통령은 강대국으로 고작 3년 남짓의 임기를 남겨놓고 세계를 호령하듯 관세를 퍼붓고 전쟁을 좌지우지하며 언제까지 강국임을 착각한다. 우리 사회의 정치권도 이쪽저쪽이 갈려 서로가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상대를 헐뜯지만 정작 자신들 꼴도 말이 아닌 것을, 자신들만 모른다. 공천헌금이 어떻고 정치자금이 어떻고 하며 서로를 공격하는데 실상은 서로 다를 게 없다. 마치 난지도 위의 호화로운 도시 같이 그 밑은 온통 쓰레기 천지다. 오늘로 전부인 줄 알면서 스스로 천국에 갈 것이라며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위인을 보면서도….세상은 결국 끝나야 끝이 나겠구나, 하는 것이다.

 

고의적으로 거절했으며, 불순종과 불신앙에 빠져 있는 영혼들을 어찌할 방법은 없다.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 29:3-4).” 이 또한 주의 섭리 가운데 저로 그리 악하게 하심인데,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사 6:9-12).”

 

그리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성읍들이 황폐하며 땅이 적막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12:20).” 다들 AI 시대로 환호하고 관련한 분야들은 희망의 메시지를 내고 있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 하는 너희의 이 속담이 어찌 됨이냐(21-22).” 이를 타파하기까지 하나님은 저들로 자신의 속담에 취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족속 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라(24).” 하여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반역하는 족속이여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25).”

 

이를 응하게 하시기까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 91:1-3).

 

오늘도 말씀을 통해 세상을 보고, 오늘 나의 여러 어려움으로 주를 바람인데,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4).

 

하여,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7-8).

 

하심으로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1-12).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14-1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