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지어다

하현. 2026. 2. 13. 04:35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겔 18:20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지어다

시 97:12

 

 

죄는 각자의 몫이다. 누구의 죄로 대신할 수 없다. 이에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그의 죽음을 기뻐하시지는 않는다. 곧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32).” 살아서 사는 동안에 죄에서 돌이켜 주의 뜻에 온전하여지기를.

 

본문은 유다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는 중에 주전 592년 6월 5일에 성전의 피폐함을 환상으로 보여주신 후 그 연속의 계시다. 앞서 두 독수리와 백향목과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한 유다의 멸망과 회복을 예언하셨다. 이어 ‘아버지와 아들’ 각자의 행위에 따른 심판을 반복하여 강조하며 심판의 개별성을 진술하고 있다. 곧 아비나 아들이나 서로의 책임을 연계하는 속담에 의문을 제기한다.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2).”

 

이를 예레미야도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렘 31:29-30).” 하고 유다에서 설교하였다. 이는 더 나아가 당시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그 조상들의 죄에 있다고 전가함으로 자신들의 무죄함을 주장하곤 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이러한 속담을 부정하시고 영혼의 독립성을 근거하여 심판의 개별성을 나타내신다(1-4).

 

이어지는 5-18절은 각 경우의 개인과 개인의 사례를 통한 심판의 개별적인 원칙을 한층 더 명확히 한다. 즉 의인은 그의 의로움으로 구원을 받는다(5-9). 의인의 아들이 악을 행하면 그 아비의 의로움과 상관없이 아들의 마음을 감찰하심을 분명히 한다. 우리 속담에도 ‘잘못 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 탓’이라 하듯 유다의 백성들도 그러한 생각이 팽배하였다. 이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만함을 보인다(10-13). 곧 악인의 아들이라도 의인으로 살면 아비의 죄와 상관없어 죽지 아니하며 아버지는 자신의 죄악으로 죽는다. 결국 각자 그 행함으로 심판의 구분을 명확히 한다(19-20).

 

누구나 죄에 대하여는 그 잘못을 인정하고 자백하며 통렬하게 회개함으로 비로소 용서하심을 받는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은혜를 알 수 없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은혜와 감사가 부족한 것은 회개와 비례한다. 자신의 죄로 애통해할 때 은혜도 감사도 그만큼 크게 다가온다. 서로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감사할 것이 많으면 주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오늘 말씀은 이처럼 ‘행위에 따른’ 구원과 심판의 개별성을 선포하고 있다. 오늘 그 어떤 고난의 원인도 조상 때문에 있지 않다.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렘 31:30).” 결국 자신의 죄악으로 당하는 것이라, 우리의 노여움은 대부분은 ‘탓’으로 인해 생겨난다. 하지만 성경의 입장은 분명하시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 24:16).”

 

고로,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증하시리라(잠 24:12).”

 

모든 일의 중심을 하나님은 감찰하신다. 일련의 사태를 보며 그 죄가 명백한데도 모른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누구 때문이라는 식으로, 죄는 전가되면서 가중된다. 우리의 죄악을 해결하는 방법은 정직과 책임이다. 주 앞에 정직할 때 우리의 책임을 주가 감당하신다. 회개가 가장 바르고 빠른 해결책인데도 우리의 본성은 순간을 모면하려 거짓을 덮는다. 그 작은 거짓말의 시작은 실 한 올 같이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여러 아이를 상대하면서 평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이들 또한 잘못에 있어서는 영악하다.

 

결정적으로 아이들 수업하는 게 무서워진 것은 거짓말 때문이다. 한 아이는 다시 한국을 떠나 필리핀으로 가기 싫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이나 피씨방을 규제하는 생활이 싫어서 작은 거짓말을 했다. 목사가 때렸다, 맞았다, 하는 말에 부모는 설마 하고 되묻자 아이는 거짓에 거짓을 더했고 부모의 추궁은 이에 동조했다. 그렇게 시작한 감정의 골은 그동안 고마워하던 마음보다 부풀었고 급기야 감정이 상한 부모는 그 위에 거짓을 덧대어서 급기야는 고소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때 우리의 촉법소년법이란 게 아이의 주장에 근거하는 것이라, 실상은 아이의 영악함이 어른의 사악함보다 끔찍하다. 동생은 그렇게 해서 선교지의 사역을 접게 되었다.

 

몇 해 전에 나 역시도 한 아이의 거짓말에 놀아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글을 쓰고 싶어 했고, 제법 글쓰기 재능도 있어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어서 온 아이였다. 서로가 글을 쓰며 가까워지자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수필을 쓰는데, 청소년들을 상대로 하는 문학상은 대체로 그 소재에 의한 비중이 크다. 아이의 부모는 모두 재혼을 한 것이고 언니와 둘이었던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고 부모가 이혼을 준비하면서 그 사실을 알았다. 즉 어려서는 둘 다 친자매로 알았고 그리 가까웠던 사이가 그러한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아이의 고백을 조심스럽게 들었고 이를 글로 쓰는 아이의 용기에 응원을 했다. 글을 정리하여 출품하였고 생각보다 큰 상을 받고 입선하였다. 아이엄마의 고맙다는 인사는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에 서로가 충격을 받았다.

 

가벼운 거짓말이 두 줄 세 줄 겹쳐서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사 5:18-19).” 아주 사소한, 누구라도 그럴 수 있는 정도의 거짓에 거짓을 더해 엮이면서 수레를 끌 수 있는 정도의 사실 아닌 사실 같은 가짜가 진짜가 된다. 오늘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도 거짓 뉴스나 변명 때문이다. 이처럼 거짓 교훈을 진리인 양 믿고 따르는 것이 영적 어두움의 세계다.

 

이사야는 전하길,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사 8:20-22).” 곧 이를 가지고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엡 5:6-7).”

 

결국은 속이는 것도 잘못이나 속는 것도 문제이다. 하루는 제자들이 묻자 예수께서 답하셨다.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2-3).” 곧 무엇도 누구 때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는 데 있다. 이를 바로 알려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3-15).”

 

우리가 살면서 가까이 할 것과 멀리 할 것이 혼재되어 어렵다. 이는 그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영혼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히 12:9).” 하심과 같이 우리가 살면서 영혼의 문제로 오늘의 현실을 파악하지 않으면 모든 게 그저 사사로운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 늘 주와 함께 동행한다는 삶이 죄에 대하여 ‘그럴 수 있는 일’로 치부하면 더는 가망이 없다. 죄는 엄연히 절연해야 한다.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것으로 정작 그 가담 정도는 다를 수 있다 해도 영혼이 상하는 것은 똑같다.

 

이를 위하여는 기도해야 한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상 1:27-28).” 더욱이 아이들은 보고 듣는 대로 성장하거나 퇴보할 수 있는 존재들이어서 시편은 이를 주목하였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 127:3).

 

하여 부모가 되는 일은 막중한 사명이다. 돌아보면 우린 너무 알지 못하고 부모가 된다. 서로가 처음이면 넘치거나 모자람으로 아이를 바로 교육하기 어렵다. 하여 성경은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딛 3:8).” 하여 오늘도 말씀으로다. 우리의 기도도, 교제도, 충성된 삶도 필요하지만 이보다 먼저 바탕으로 하는 것은 묵상이다. 말씀을 속으로 되뇌어 삶에 적용하며 나를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

 

오늘 본문 4절,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곧 우리는 주께 속한 것으로 주의 것이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신 말씀을 토대로 산다. 이에 다니엘은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단 4:35).” 주께서 주관하시는 삶으로 복되다 하였다.

 

결국,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는 데서 우리 삶의 목적이 있다. 이를 바울은 신학적으로 정립하여서,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오늘의 삶이 복이다. 우리를 이미 창세전부터 예정하시고 택정하심으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우리를 지으셨다. 이 놀라운 정의로 삶의 바른 목표가 설정된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0).” 한 목적이 분명하다. 이는 곧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2).” 곧 ‘찬송하게 하려’ 지으신 것이 ‘찬송이 되게 하심으로’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14).”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

 

곧 오늘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한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 43:7).”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사명이다.

 

하여,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이 놀랍고 명징한 진리 앞에서 우린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게 다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사 45:19).” 그리하여 각자 저마다의 하나님을 마주하고, 각자 저마다의 사명을 맡기신 삶을 사는 일이다. 예수께서도 숨김이 없이 드러내놓은 삶을 사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요 18:20-21).”

 

우리가 살면서 꺼려질 때, 거짓인 줄 알면서도 사실로 믿으려 할 때, 그것으로 답답하여 옥죈 삶일 것 같아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그러면서 바뀐 것은 하나님 앞에서 숨길 게 없는 삶이 값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눅 3:8).” 오늘도 이처럼 말씀을 붙들고 이른 새벽 주 앞에 앉아, 살아서 사는 동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32).”

 

주 앞에 매순간 돌이켜 나를 온전하게 하시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시 97:1-2).

 

하는 시편을 살기를, 그리하여

 

하늘이 그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 영광을 보았도다

 

여호와여 주의 판단을 시온이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인하여 즐거워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 위에 초월하시니이다

(6, 8-9).

 

그러므로 오늘도 악을 미워하고 의인으로, 정직한 자로,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지어다

(10-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