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소설] 땅아리

전봉석 2006. 8. 1. 18:29


땅아리





  잠이 덜 깬 땅아리는 팬티차림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풀이 연신 머리를 쥐어 박히며 추적추적 비에 젖고 있다. 아무래도 축구는 글렀고 그럼 탁구를 치자 그럴까? 땅아리는 신경질적으로 말총머리를 쓱쓱 쓸어 넘긴다. 탁구대를 차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탁구대는 백만이 형이 맡았고, 농구공은 상식이, 배드민턴은 철규… 누가 주었든 맡은 사람이 임자다. 아무리 같이 쓰라고 줬어도 맡은 사람이 허락을 해야 소용이 있다.


  운동장 한편의 화단은 땅아리가 맡은 거다. 나무와 꽃을 가져다 심을 때 싫든 좋든 땅아리가 그 일을 맡아서다. “이제 이 화단은 경진이가 맡아!” 아버지가 직접 그랬지만 땅아리는 결코 흥이 나지 않았다. 일일이 물을 주고, 풀을 뽑고, 새로운 묘목이 실려 오면 그 일을 도맡아야 하는 게 결국 자신이기 때문이다.


  “왜 식전부터 청승이야, 빤스바람에. 민철이가 밥 달라는 소리 안 들려? 엉?”

  거구짝퉁이 땅아리의 뒤통수를 치며 큰소리다. 이불 위에서 늦장을 부리던 아이들도 움찔 거구짝퉁의 목소리에 몸을 꼰다. 거구짝퉁은 땅아리네 방 보모선생이다. 덩치가 거구에다 짝 궁둥이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목청은 또 어찌나 큰지, 마흔이 넘도록 시집을 못가는 게 다 이유가 있다고 놀려도 거구짝퉁은 별로 화를 내지 않는다. 


  땅아리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민철이를 돌아다본다. 바압 으… 바아 압… 민철이는 부러 더 바동거리며 실실 웃는다.

  “얼른, 안 일어나?”

  거구짝퉁은 창문을 활짝 열고 방바닥에 들어붙듯 누워 있는 아이들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자 아이들은 까르르, 까르르… 간지럼을 못 이기며 싫지 않은 비명을 지른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소동이다. 


  땅아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옷장 문을 연다.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서 걷는 땅강아지를 닮았다고 해서, 경진이는 땅아리다. 선천적소인증으로 땅아리의 키는 일 미터를 조금 넘는다. 하지만 중학교 과정만 마치면 땅아리도 여길 뜰 생각이다. 득용이 형이나 남식이 형도 중학교 과정만 마치고 독립을 했다. 누가 나가라는 사람은 없지만, 백만이 형도 곧 있으면 나간단다. 그럼 그 전에 탁구대를 어떻게 대신 맡았으면 좋겠는데…….


  토요일에는 밀알선교단에서 형들이 온다. 같이 볼을 차거나 농구를 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탁구는 제일 인기가 좋다. 그래서 아이들은 같이 예배를 보는 동안에도 좀이 쑤신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탁구를 한 번 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렵다.


  “땅알! 얼른 가서 밥 안 가져와? 뭔 옷을 한나절이나 입어?” 

  거구짝퉁이 또 소리를 지른다. 어느새 다른 아이들도 옷을 입느라 정신이 없다. 한쪽팔로 윗옷을 끼워 넣느라 바동대는 재남이, 이빨로 바지를 치켜 올리느라 안간힘을 쓰는 태욱이. 다들 짝퉁의 고함소리에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히죽거리며 장난이다. 제 손으로 옷을 챙겨 입는 아이는 그래도 낫다. 누워만 있는 아이는 누군가 직접 옷을 입혀줘야 한다. 하지만 거구짝퉁이 보모를 맡고 난 다음부터는 어림도 없다. 자기가 알아서 제 일을 해야 한다. 보모선생이 도와줘야 할 일인데도 짝퉁은 절대 거들지 않는다. 요령껏, 알아서,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 이게 거구짝퉁의 법칙이다. 밥값을 하라는 소리다.


  “야, 근데… 혹시 상철이 못 봤냐?”

  “……?”

  “얘가 벌써 식당엘 갔나?” 순간 땅아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땅알! 얼른 식당에 가봐. 만약에 거기 없으면 강당에 올라가 보고, 응?”


  철퍼덕철퍼덕 슬리퍼를 끌며 땅아리는 복도를 뛰기 시작한다. 일렬로 남자 방, 여자가 방이 각각 두 개씩 붙어있다. 복도 끝은 이층으로 오르는 통로다. 특수학교체제로 운영되는 이층은 나라가 반, 원장아버지가 반을 투자해서 운영한다. 그래도 초등학교 6학급, 중학교 3학급으로 명색이 특수사립학교다. 그리고 한 층을 더 오르면 졸업반을 위한 실습장과 강당이 있다. 실습장에서는 목장갑과 휴지를 만든다. 옆에 딸린 좁은 방은 여자애들이 가발을 만들거나 미용기술을 배우는 곳이다. 널따란 강당은 외부에서 누가 오는 날에만 사용한다.


  대체로 한나네 방(두 번째 여자 방)이 제일 큰 편이라, 웬만하면 3층을 이용하지 않는다. 3층 강당으로 아이들을 다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제 발로 걷는 아이가 반도 안 되기 때문이다. 안거나, 업거나, 휠체어에 태워 옮겨야 하는데, 그러니 늘 손이 모자란다. 땅아리가 서너 차례 이상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간신히 아이들이 강당에 찬다. 물론 땅아리뿐 아니라 걸을 수 있는 아이는 혼자 가는 법이 없다.


  엊그제 란희가 죽은 일만 해도, 외부에서 손님들이 오는 바람에 원장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3층을 개방했다. 아버지는 본래 번잡스러운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오늘 이른 새벽에 란희를 화장火葬하는 것으로, 강당 문은 굳게 닫혔을 거다. 더 내색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엄명도 있었으니, 3층에 상철이가 있을 리는 없다.


  땅아리는 호들갑스럽게 식당으로 뛰어 들어간다. 식당은 뒤뜰에 딸린 컨테이너를 개조한 것이다. 식당 문을 요란하게 열어젖히자, 아버지가 식당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 땅아리는 지레 기가 죽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묻는다.

  “저… 혹시 상철이 여기 안 왔어요?”


  건성으로 신문을 넘기던 아버지는 아니나 다를까 버럭 소리를 지른다.

  “상철일 왜 찾아? 넌 그리고 뭐가 신났다고 그 난리야 난리가? 이 자식아!”

  아버지는 말아 쥔 신문을 당장이라도 집어던질 기세다. 땅아리는 잔뜩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제 몫의 양동이를 챙겨든다.  

  “도대체 애놈의 새끼들이 고마운 걸 몰라, 응? 이만큼 먹이고 입히고 키워주면 좀 고마운 걸 알아야지! 쯧. 그럴 거면 다 나가라 그래. 고얀 놈!”

  아버지는 누가 좀 들어주길 바라는 사람 같다. 탁자를 탕탕 쳐가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니 말이다. 식사당번인지 요셉 방과 마리아 방의 보모선생들이 눈치만 살핀다.


  땅아리는 신경질적으로 슬리퍼를 짝짝 끌며 복도를 뛴다. 터벅터벅 마리아 방 앞을 지나치려는데, “오…오, 빠아!” 하며 혜연이가 아는 체를 한다. 혜연이의 손에도 양동이가 하나 들려있다. 다들 점심을 먹어야 할 판에 늦게까지 잠을 잔 모양이다. 땅아리는 반갑게 자신을 부르는 혜연이를 두고 모르는 척 지나친다. 마음은 늘 그게 아닌데도 혜연이만 보면 퉁퉁거리게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다 불쑥 돌아서서 땅아리는 혜연이를 부른다.


  “야! 너 혹시, 상철이 못 봤냐?”

  “사, 앙철이 오, 오…빠? 아…, 아니. 모, 옷… 봤는데? 왜, 에에?”

  혜연이는 언어장애다. 한 마디를 소리내기 위해 온몸을 비틀어야 한다. 말을 하기 위해 입이 먼저 씰룩거리고, 호흡을 끌어올렸다가 팔을 휘젓고, 상체를 까딱거려야 간신히 소리가 난다. 그리고 또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혜연이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는 건, 대단한 인내가 필요하다.

  “어휴, 아니다.”

  그래서 땅아리는 혜연이가 무안해하든 말든 얼른 고개를 돌린다. 혜연이가 싫어서가 아니다. 왜 자꾸 혜연이에게만 못되게 구는지 모르겠다. 막상 그러고 나면 마음만 안 좋은데. 혜연이는 아직도 땅아리 뒤에 서 있을 거다.

  “너, 식당에 아버지 있다!”

  마치 무슨 대단한 정보나 주듯이 땅아리는 뒤도 안 돌아다보고 말한다. 금세 혜연이의 걸음이 종종걸음을 친다.


  “상철인?”

  방문을 열기 무섭게 거구짝퉁이 묻는다. 땅아리는 고개를 흔들며 입을 삐쭉 내민다.

  “저기, 땅알아!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상철일 좀 찾아봐, 응?”

  거구짝퉁답지 않게 기가 죽은 목소리다. 그것도 혼자서 아이들 밥을 다 챙기겠단다. 밥을 먹는 일만큼 살벌한 풍경도 없다. 굳이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이 따로 없을 것 같은데, 누가 자기 걸 가로채기라도 하면 단박에 발작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아무리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아이라도 먹을 것 앞에서는 필사적이다. 


  그러니 식사 때면 짝퉁을 중심으로 땅아리와 상철이는 비상조인 셈이다. 엉덩이로 어기적거리며 한쪽 손을 쓸 수 있는 민규와 재남이는 땅아리와 상철이의 보조를 맡는다. 일일이 국에 말아 밥알을 으깨서 넘겨줘야 하는 아이가 있고, 반찬을 잘게 썰어 한입에 넣어줘야 하는 아이도 있다. 한 아이가 토하기라도 하면 삽시간에 그 날 식사는 난장판이 된다. 다른 아이도 덩달아 토하는 건 물론이고, 사래가 걸려 한 번 터지기 시작한 기침은 전염병처럼 아이들의 식사를 위협한다. 그런 십여 명이 넘는 아이들의 식사를 거구짝퉁이 혼자서 맡을 수는 없다. 그것도 상철이가 없는 식탁이라면. 땅아리는 조급하게 복도를 뛰어간다.


  두 해 전의 일이다. 화단을 정리하던 땅아리가 우연히 교문 쪽을 바라보았을 때, 상철이는 누군가를 등에 업고 있었다.

  “누구냐?” 땅아리가 물었다.

  “문 앞에 누워 있어서….” 상철이가 우물거리듯 말했다. 

  “교문? 근데 어쩌자고 네가 업고 왔냐?” 땅아리는 무심히 다시 물었다.

  “그럼? 그냥 둬? 아니, 도로 갖다 둬?”

  “……?”

  그 애가 란희였다.


  언제나 말이 없는 상철이는 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화상을 입어 눈코입이 한데 들러붙은 얼굴로, 상철이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방에만 처박혀 있는 상철이의 침묵은 그래서 모두를 어렵게 했다. 처음 거구짝퉁이 왔을 때, 그런 상철이와 늘 부딪친 이유도 당연하다. 언제 휴가를 다녀오면서 거구짝퉁은 상철이가 좋아하는 프로야구팀 모자를 선물했다. 그 뒤로 잠잘 때도 벗지 않는 모자를 쓰고 상철이는 소풍을 따라나서고, 토요일이면 함께 공놀이를 하였다. 누가 실수로라도 모자를 벗기는 날에는 난리도 아니었지만. 너 죽고 나 죽기로 붙을 생각이 아니면, 아무도 상철이의 모자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 상철이가 어쩌다가 교문 앞에 버려진 란희를 발견한 것인지… 결국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상철이는 원장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 그와 동시에 쓰고 있던 모자가 벗겨졌고, 그 순간 모두는 상철이의 다음 행동을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상철이는 발치께 떨어진 모자를 도로 주워 쓰는 것으로, 아버지의 실수를 묵인했다. 그것이 란희 때문이라는 걸 모두는 알고 있다. 덕분에 란희를 도로 내다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이, 상철이는 란희를 맡았다! 고작 너덧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란희를 목욕시키는 일 빼고는 거의 상철이가 도맡은 셈이다.


  란희는 전신마비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아이였다. 목을 가누는 것도 버거울 정도여서 누가 돌려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 곳만 응시하는 아이. 란희는 식물처럼 조용했다. 그런 란희를 두고 상철이는 남자 방에서 함께 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원장아버지조차 막대할 수 없는 상철이였고 보면, 다들 난감한 일이었다. 그런 상철이를 설득한 사람은 역시 거구짝퉁이다. 아무리 그래도 란희가 여자라는 거, 여자는 남자와 달리 비밀이 많다는 거, 그 비밀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거… 한참을 설명하는 짝퉁을 향해 상철이는 싸늘하게 물었다.


  “그런 선생님도 여자잖아?”

  순간 거구짝퉁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리고 뚫어져라 상철이만 쳐다보다 스르르 눈물을 흘렸다. 왜 그때 거구짝퉁이 울었는지, 그 눈물이 어째서 상철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는지, 땅아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 중학교만 졸업하면 란희하고 결혼할 거다.”

  란희가 온지 일 년이 다돼갈 무렵이다. 상철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땅아리에게 말했다.  상철이의 그런 낯간지러운 희망이 앳된 기대는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여느 또래의 학년보다 나이는 더 든 폭이지만, 땅아리 또한 은근히 혜연이를 마음에 두고 괴상한 꿈을 꾸곤 하였으니까. 다들 중학교 과정만 마치면 독립할 궁리를 하는데, 상철이는 죽을 때까지 이곳에 남아 란희랑 살겠단다. 그런 상철이는 란희가 온 다음부터 자청해서 상머슴이 되었다. 자진해서 실습장엘 나갔고 누구보다 열심히 목장갑 뜨는 기술을 익혔다. 학교의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척척 자청했었다. 


  “어, 오… 오, 빠아. 어, 어…디, 가?”

  설마 아버지에게 한소리를 들은 것인지, 혜연이는 힘없이 복도를 걸어오다 땅아리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 아앙철… 이, 오… 빠, 아, 아직, 모…옷, 차아잦, 어?”

  땅아리는 혜연이를 보자 불쑥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상철이에 대한 걱정과 함께 혜연이에 대한 미안함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뒤섞여버린다.

  “…….”


  “어…빠, 나아…도, 가아치, 사아… 앙, 처어리 오…오, 빠 차아즐까?”

  혜연이도 땅아리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온몸을 비틀며 다시 묻는다. 땅아리는 그런 혜연이를 가만히 쳐다보다 다정하게 고개를 끄떡인다. 하지만 우선 반찬과 국을 상철이 대신 방에 가져다줘야 한다. 그 생각이 미치자 땅아리는 서둘러 식당으로 걸어간다. 그 뒤를 좇아 혜연이도 한 뼘 아래 땅아리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걷는다.


  식당 안에는 여전히 노기어린 아버지가 신문을 들추고 있다. 땅아리는 조심스럽게 국이 담긴 양동이와 반찬그릇을 챙겨들고, 아버지 곁을 비껴 나오다 쭈뼛거리며 돌아선다.

  “저….”

  상철이에 대해 다시 묻고 싶은데,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아버지 앞에서 땅아리는 입을 열지 못한다. 3층 강단 열쇠도 받아야할 것 같고, 혹시 괜찮으면 교실마다 좀 찾아봐도 되겠냐고 물어야겠는데… 주방 안쪽에 있는 보모선생들이 헛기침을 하며 땅아리에게 눈짓이다.


  아버지는 신경질적으로 신문지만 펼쳐댄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컨테이너 지붕을 더욱 세차게 내리치기 시작한다. 타다닥거리며 지붕을 울려대는 불협화음이 서로의 시선을 엇갈리게 하는 것 같다. 떨어지는 곳을 달리하는 빗물처럼. 더는 어쩌지 못하고 땅아리는 아버지 앞을 지나친다. 문밖에서 혜연이가 비에 젖고 있다. 혜연이의 애처로운 시선과 마주치자, 등 뒤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찾지 마라. 아침에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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