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거리
한 아이가 인사를 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초등학교 4, 5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의 인사는 의외였다. 누군지 모르는 아이였고, 그래서 나는 유쾌해졌다. “그래, 안녕!” 해서 나 또한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하는 따위의 말로 아이는 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지 마라, 혹시 누가 오라 그러면 절대로 따라가지 마라, 하는 식의 당부는 이 시대 모든 부모 된 자들의 당연한 참견일 터였다. “아저씨! 돈 좀 주세요.” 한데 아이의 이 말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움직이는 것은 관성慣性이 있다. 그 움직이는 것에 외력이 가해지는 순간 실제 여기서 저기까지, 움직임을 멈추기 전까지의 거리가 공주거리다. 여기서 저기, 공주거리는 움직이는 것들의 마지막 동작범위를 일컫는 말로 이해된다. 외부의 힘에 의해 시작과 끝이 이루어지거나 마무리 되는 어느 지점쯤의 공백을 두고 하는 말 같다.
머쓱해진 나는 아이의 능청에 입이 벌어졌다. 입성도 반듯하니 구걸을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아이의 시선은 집요했다. 네? 아저씨 얼른 돈 좀 주세요, 하는 눈짓으로 아이는 내 앞에 버티고 서있었다. 어디가 좀 모자란 아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다음 말은 나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였다. “아침도 못 먹었어요. 동생하고 밥 먹게 돈 좀 주세요.”
얼마 전 장애인 무슨 복지단체에서 남자 둘이 다녀갔다. 저들은 불안한 몸을 이끌고 작은 소쿠리를 내게 건넸다. 소쿠리 안에는 조악한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손톱깎이 천 원, 때수건 천 원, 빗 천 원, 바늘쌈지 천 원…… 삐쭉 세워진 마분지 위에는 물건들의 가격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수업 중이었다. 건성으로 훑어보던 나는 다음에 다시 오라며 저들을 돌려보냈다. 남자들이 나가자 한 아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냥 하나 사주지….”
“얘, 너는 집이 어디니?” 아이를 두고 물었다. 아이는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벌리고 있는 손을 거두지도 않았다. 아이의 시선은 나를 불안하게 하였다. 주위를 둘러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보고 있다면, 뭐라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네? 돈 좀 주세요. 아저씨.” 아이의 재촉은 당당했다. 마치 맡겨둔 것을 도로 달라는 사람 같았다. 나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짐짓 서툴게 굴었다.
“글쓰기는 생활이다. 글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먼저 감동시킬 때, 생활은 비로소 울림이 된다. 울림은 나눔이고 나눔은 돌봄이다. 돌봄은 같이 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공감이 있다. 글쓰기가 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글은 글답지 않다. 글다운 글이란 잘 쓰고 못 쓰는 데 있지 않다. 글이란 그냥 글이다. 글쓴이의 진실 됨이 울려나올 때 글은 글다운 글이 된다. 나눔이 없는 글은 공허하다. 돌봄이 없는 글은 눈을 어지럽힐 뿐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생활이고, 생활은 곧 글이다.” 나는 이렇게 아이들에게 지껄이고 있었다.
“그냥 하나 사주지”라던 아이의 그때 그 말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아이들 앞에서 잰 척, 난 척하다 졸지에 바닥을 드러낸 셈이다. 아이의 질타는 부채負債처럼 나를 짓눌렀다. 외부의 힘이 가해진 것이다. 그렇게 어쩌지 못하고 있던 공주거리에서, 아이는 직설적으로 나를 나무랬다. “아저씨. 동생하고 밥 먹게 돈 좀 주세요.” 머묾은 오래지 않아 스친다. 스침은 언제고 머문다. 스침과 머묾 사이, 그 아찔한 공주거리의 값으로 나는 아이에게 한 끼 값의 돈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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