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가 건네는 시선
-충주호 ‘오산리낚시터’를 다녀와서
억새가 건네는 시선
느림은 너른 시야를 확보한다. 초점이 한곳에 몰리는 빠름과는 대비를 이루는 시선이다. 천천히 맨 가장자리에 붙어 이천휴게소를 지나 다시 내륙간고속도로를 10여키로 거치면 감곡IC를 벗어나 비로소 한적한 국도를 만난다. 하지만 거기서도 또 한참은 산업도로다. 잘 뻗은 도로는 운전자를 꼬드긴다. 천천히 달리려는 데는 시선의 욕구가 강하고, 속력을 높이려는 데는 길의 특성이 반영된다. 길은 저마다 유혹의 정도를 달리한다. 고속도로는 빠름을 강요한다.
산천 방향으로 해서 ‘사과마을’로 들어서면 그제서 알피엠은 안정을 취한다. 편도 일차선의 지방도로는 휘어지는 만큼 수많은 풍경을 거느리고 있다. 가을볕에 노곤한 시골집은 인적이 드물다. 듬성듬성 도로 한겻에는 추수한 알곡이 볕에 널린 채 바람에 마르고 있다. 손마디 짙은 흔적이 알곡 위로 일정한 골을 내어두었다. 더러 그 골을 뒤집어 새로 골을 내는 농부의 꾸부정한 허리가 한적하다. 비껴가는 자동차에 눈길도 주지 않을 정도다. 저만치 물러선 산자락은 마당 안쪽까지 내려선 산그늘과 함께 온통 황토 빛 물결이다. 황갈색은 짙은 가을의 얼굴빛이다.
충주호리조트 앞마당에 차를 세우고 나는 잠시 허리를 펴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빼고, 담배를 입에 무는 동안 마당 한가득 요란한 축제 음악이 들썩인다. 어느 단체가 엠티라도 온 모양인지, 새삼 우리네 놀이문화가 달갑지 않다. 새소리 바람소리가 송두리째 사라졌다. 무대 위에서 흔들어대는 댄서의 현란한 몸놀림이 가소롭다. 줄지어 앉은 어느 단체의 요란한 함성소리가 귀 따갑다. 팔짱을 끼고 잠시 서 있을 마음조차 사라졌다. 나는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미처 쉬지 못한 자동차는 툴툴거리듯 마른짜증이다.
마당을 벗어나 다시 오르막을 거슬러 올라가면 솟대거리다. 거리 곳곳에는 남성의 성기를 본뜬 목조기둥이 여기저기 박혀있다. 휘어 감기듯 산등성을 오르다 보면 버려진 집들이 듬성듬성 눈에 띈다. 한쪽 흙벽이 휑하니 뚫린 채다. 황토로 빚은 갈라진 흙벽 위로 가을볕이 아지랑이 핀다. 자못 눈길을 주다보면 번번이 중앙선을 이탈한다. 하지만 길 위엔 나뿐이다. 포장도로는 끊겨 더 이상 산길을 메우지 못했다. 창을 모두 닫고 나는 다시 안전벨트를 맨다. 여기서부터 10리 길은 비포장산길이다. 정확한 수치는 알지 못하지만, 충주댐에서 낚시터까지 45키로라는 소릴 들은 적 있다. 아무튼 나는 이 길이 좋다.
난데없이 지난여름에 갔었던 오산리낚시터를 다시 가자고 한 것은 친구다.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선뜻 택한 이유는, 아무래도 댐 낚시에 대한 매력 때문이겠다. 비록 입질은 시원찮아도 흔히 말하는 ‘대물’과의 한판승부. 물론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서너 차례 다녀온 바로 나는 제대로 고기를 낚은 적이 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뜬금없는 친구의 제안이 싫지 않았는데, 바로 이 길이 첫 번째 매력이다.
꼬불꼬불 90도를 좌로 틀면 다시 그 곱절을 우로 틀어야 하는 이 험난한 돌길에서 나는 지난여름에 충분히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엔 천 길 낭떠러지 하나만으로도 겁이 덜컥 나더니만, 끝도 없이 한참을 들어가다 우연히 당도했던 ‘오산리낚시터’의 그 느낌이란, 마치 무릉도원과도 같은 신선함이었다. 오죽하니 친구와 처음 다녀간 그 주간에 아들애를 다시 꼬드겨 한 번 더 다녀왔을 정도다. 그러니 올해는 전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그와 같은 제안은 도무지 마다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글방에 있겠다. 손님이 없다고 가게 문을 닫을 수는 없지 않느냐. 어쩌고 하면서, 나름대론 원칙을 세우고 있던 셈인데, 아뿔싸! 조급한 마음은 점심도 거른 채 나를 볶아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퇴근을 하고 출발해야 하는 친구와 맞춰 나 역시 저녁나절에나 움직이려고 했던 것인데, 그게 그렇게 됐다. 의지박약아래도 상관없다!
나는 마른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산길을 아주 천천히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온몸으로 느껴지는 산길이 좋다. 차라리 어느 정도 속력을 내야 덜 피곤하다고 말해준 친구의 조언은 아랑곳도 없다. 깊이 박힌 돌부리 하나하나의 굴곡이 타이어를 밀어내며 차체를 갸웃거리게 하는 그와 같은 출렁임이 죽은 듯 산 것의 신호만 같아 나는 좋다.
그러다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든 것이 억새다. 길 양 옆으로 줄지어 고개를 드민 억새의 매혹적인 손짓은 스산한 세월의 눈짓을 닮았다. 순간 이동을 멈춘 자동차 앞으로 줄지어 따르던 흙먼지가 일제히 일면서, 억새의 그것과 닮은 색깔을 띠고 하늘로 풀어졌다. 아, 나면서 늙은 자연의 색채여! 모든 색을 버무리면 그와 같지 않을까…. 나는 그 빛을 사랑한다. 바람이 불어 향하는 그 쪽으로 고개를 한껏 빼고 끝까지 배웅하는 억새의 시선은 그래서 그리움처럼 아릿하다. 곧은 허리는 바람이 훑고 안겼다 지나간 흔적만 같다. 머리끝이 허옇게 샌 억새의 나이는 가늠할 길조차 없다. 나면서 늙은 자의 여유로움이 배어 있을 뿐이다. 지긋한 시선이 무조건 포근한 이유다.
얼마쯤 지체한 것일까? 맞은편에서 오던 차가 긴 꼬리의 흙먼지를 물고 섰을 때에야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 외길 낭떠러지에서의 비켜서기란 참으로 위태롭다. 길 안쪽에 있는 차가 한 뼘은 더 산허리를 밟아주어야 가능할 일이다. 주춤거리듯 뒤로 물러섰던 차가 다시 안쪽으로 바짝 들어섰는데도 나는 좀체 길을 낼 수 없었다. 억새가 딛고 서 있던 땅이 저만치 산 아래였다는 것을 그제서 나는 알았다. 어찌어찌 길을 내는 동안 서로는 창을 열고 억새 흉내를 내었다. 고개를 창밖으로 빼고 한 뼘씩 한 뼘씩 스쳐갈 때, 맞은 편 운전자의 시선 또한 억새와 닮아 있었다.
버드나무꼭대기에 앉아 낚시를 하다
오산리낚시터의 마당에 들어서자, 낯이 익은 주인내외가 반갑게 눈인사를 한다. 이곳이 좋은 두 번째 이유다. 낚시에 미쳐 3년 넘게 이곳으로 돌아치던 남자는 기어코 지난해에 이 낚시터를 인수했다. 주인여자는 고향이 제천이다. 서울 이태원에서 옷 장사를 하던 여자는 한사코 거부하다 올 봄에야 가게를 정리하고 이곳에 합류했다. 내외가 다소 나이 차가 나 보이는 이유는 그래서다. 볕에 그을린 남자는 서서히 벗겨지는 머리와 함께 5년은 더 늙어 보인다. 여자는 아직 도시 티가 남아있다. 한 달에 보름 이상을 낚시에 미쳐 떠돌던 남편을 따라 결국엔 낚시터 안주인이 된 것이다. 평소엔 말이 없는 남자도 낚시에 관해서만큼은 수다스럽다고, 여자는 그런 남편의 행복을 거두어 주었다. 비록 휴가철이랍시고 다녀가는 일가친척의 등살이 더 고단하다고 푸념하는 여자지만, 낚시 얘기를 늘어놓고 서 있는 남편을 지긋한 눈짓으로 바라보는 데는 자연의 시선과 다를 바가 없다.
마치 오랜만에 찾아온 살붙이처럼 저들 내외는 반갑게 나를 맞는다. 나 역시 스스럼없이 호들갑을 떤다. 점심도 못 먹었다는 둥, 오는 길이 유난히 멀다는 둥, 마치 객과 주인의 관계가 아닌 서로가 형제만 같다. 종종걸음으로 여자는 된장찌개를 내어온다. 유난히 맛이 잘 들었다는 된장의 구리한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나는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조금만 더 달라고 밥공기를 드민다. 여자는 살가운 누이처럼 맞은편에 앉아 있다 얼른 새 밥을 퍼낸다. 아, 좋다!
커피까지 한 잔 챙겨 들고 마당으로 나서자 주인남자는 못 다한 말을 잇는 것처럼 요즘 조항이 어떻고, 하며 수다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사람처럼, 자신이 하고 있던 좌대를 양보하겠다고 한다. 어제만 떡붕어를 몇 마리 걸었다는 둥, 향어가 어찌나 힘이 좋던지 한참을 애썼다는 둥, 더욱 나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면서.
함께 물가로 내려섰을 때, 나는 또 한 번 입이 쩍 벌어졌다. 8월에 왔을 땐 물이 많이 빠져 절로 민망한 속살이 다 드러나 있던 곳까지 언제 물이 꽉 차 있는데, 그 맑기가 거울 속처럼 투명하고 아련하다.
배를 띄워 좌대까지 가는 동안 나는 연신 감탄을 해댄다. 우와, 우와, 그런 나를 두고 주인남자는 맏형처럼 인자한 웃음을 짓는다. 일명 ‘수초치기’를 해야 한다며, 자신이 여태 밑밥을 준 터라 바로 입질이 있을 거라면서. 나는 그의 말에 별로 반응이 없다. 늘 하는 말이지만, 잡은들 가져갈 것도 아닌 다음에야 나에게 있어 고기를 낚는 일은 맨 마지막의 소원이다. 이처럼 풍경이 뛰어난 데야 더 이상 아무래도 상관없다.
남자는 함께 좌대에 오른 뒤 자신의 낚싯대를 걷다 말고 그냥 쓰겠냐고 묻는다. 나에게 있는 최고 긴 낚싯대가 3.0칸 대이니, 한사코 자신의 3.2 대를 쓰라는 것이다. 하지만 모름지기 나는 빌리지 않고 빌려주지 못하는 것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마누라요, 둘째는 책이다. 그리고 다음이 낚싯대이다 보니, 정중히 거절할밖에. 그러다 문득 그 성의가 고마워서 밤늦게나 들어올 친구더러 쓰게 하자는 대안으로 맘 상하지 않게 해둔다.
또 한참을 서서 남자는 찌 길이를 맞춰주네, 포인트를 잡아주네, 하느라 부산하다. 그런 그의 마음이 싫지 않은 건 당연하다. 한데, 열에 아홉은 찌가 내려가질 않는다. 그때 주인 왈, 이 밑에 버드나무군락이 형성 돼 있다는 것. 고로 내가 지금 버드나무 위에 낚싯대를 드리운다는 사실…. 어머나, 이 또한 얼마나 시적인가! 여름내 푸른 기운을 자랑하며 뾰족한 이파리 사이로 새들의 놀이터가 되어주던 것이 이제는 물에 잠겨 물고기들의 놀이터가 되어주고 있다니…….
실은 버드나무가지 사이로 찌를 밀어 넣어야 하는 일은 꽤나 적잖게 피곤한 일이었다. 물 아래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봉돌이 내려가고, 그것이 바닥에 닿아야만 비로소 손가락 한 마디의 찌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찌맞춤이라니, 열 번을 던져야 한 번쯤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다 늦은 밤에 헐레벌떡 들어와 낚싯대를 던지는 친구의 불평도 이해가 된다. 대체 어떤 작자가 이런 자릴 내준 거야? 댐 낚시를 하는 이유가 뭔데? 하면서 투덜거리는 친구의 핀잔에 오히려 내가 주눅이 다 들 정도다. 그래도 난, 새벽에 추울 거라며 석유난로까지 챙겨다 주는 주인남자의 마음 씀이 눈물겹도록 고맙기만 하더라….
물론 이번에도 입질 한 번 못 받고 번번이 빈 낚싯대만 들추었다 새로 길을 찾느라 밤을 꼬박 샜다. 새벽녘에 잠시 오금이 저릴 정도로 잔잔한 수면 위에서 찌 놀림의 가는 입질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낚시꾼다운 긴장을 맛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자꾸 한눈을 파는 내게 친구는 연신 뭐라 나무라며 핀잔이었지만, 그 또한 좋았다. 내가 지금 버드나무꼭대기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더라는 말이지? 그 나뭇가지 사이로 난 가는 길을 따라 내가 던진 낚싯줄이 서 있더라는 말이지? 아…! 엎치락뒤치락 수면 위를 막음한 안개의 짙은 유혹은 또 어쩌고! 덩달아 고기 한 마리 못 잡은 친구의 불평을 고스란히 들으면서도 나는 연신 헤헤, 좋기만 하더라.
어제 그 시간, 다시 그 산길을 툴툴거리며 넘어오면서 나는 어쩌면 눈 덮인 이 길을 다시 연상하고 있었다. 더는 추워서 올해 낚시는 이제 어려울 거라는 주인남자의 아쉬운 인사에도, 여름엔 옥수수를 싸주더니 이번엔 어디서 났는지 찐빵을 몇 개 싸주며 인사를 건네는 주인여자의 시선에도, 나는 그리 서운하지만은 않았던 것이 어쩌면 따로 꿍꿍이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한겨울 눈으로 고립된 이곳의 풍경은 어떨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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