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불곰의 법칙
하현
“어쩔 거야?”
짜증 섞인 목소리로 태식이가 물었다. 양호선생님은 그저 못들은 척하며 아이들의 건강기록부만 정리하고 있었고, 경호는 팔짱을 끼고 휠체어에 앉은 상준이 옆에 서있었다.
어쩌다 마지막 결정이 민우의 손에 달리게 된 것인지….
이제라도 딱 부러지게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태식이와 경호는 반대, 양호선생님과 상준이는 찬성을 하였으니 어느 쪽이든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네 명 가운데 둘둘 의견이 갈리면 안 된다고, 양호선생님은 자청해서 제일 먼저 한 표를 던졌다. 교실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를 놓고 양호선생님이 낀다는 게 경호와 태식이에게는 처음부터 마땅치가 않았다. 하지만 벌써 일주일이 다되도록 양호실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달리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민우는 양지바른 창가에 서서 물끄러미 창밖에 쌓인 장작더미만 내다보고 있었다.
“응? 어쩔 거냐고!”
이번에는 경호까지 나서서 우악스런 표정을 지으며 다그쳤다. 얼른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한 대 치겠다는 기세였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참고서만 뒤적이고 있던 상준이도 왠지 불안한 얼굴로 민우를 돌아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어느 쪽이든 먼저 선택을 하는 거였는데…. 민우는 더욱 마음이 답답하였다.
며칠 동안 양호실에 나타나지도 않던 불곰은 불쑥, 오늘까지만 시간을 주겠다고 아예 못을 박았다. 내일부턴 무조건 교실에 들어가던가, 넷 다 퇴학을 당하던가! 그렇게 으름장을 놓고 갔다.
“야…!”
태식이가 민우의 어깨를 툭 치며 싸늘한 눈빛으로 불러 세웠다. 민우는 저도 모르게 움찔, 주눅이 들었지만 더욱 고집스럽게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얘! 그런 게 어디 있니? 윽박지르듯 선택을 강요하면 무효야.”
단발머리에 약간 통통한 얼굴로 늘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양호선생님은 언제 봬도 참 단정하고 고왔다. 그러니 전교생 누구든 그런 양호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없었고, 심지어 꾀병을 부려서라도 양호실을 찾는 아이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선생님의 마음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확실하게 증명이 되었다. 일체 어쩌라고 참견하는 일이 없었고, 이러니저러니 그 흔한 훈계도 하지 않았으며, 여느 선생님들처럼 설득을 위장한 강요도 없었다. 오히려 속 좋은 큰누나처럼 곧잘 장난을 거는가 하면, 슬그머니 교문 밖을 나가 군것질거리를 사오기도 하였다.
“우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경호가 풀어놓은 과자봉지를 보고 좋아하면, “어머, 떡 아닌데 어쩌니?” 하며 제풀에 호호 웃고, “싱겁기는….” 하고 태식이가 버릇없이 면박을 주어도, “이런, 매운맛으로 사왔는데….” 하는 식으로, 선생님은 언제나 구김 없이 마음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렇게 며칠씩이나 양호실에 있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하루 정도, 아니면 다음 날에는 각자 자기 반으로 들어가 수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간 아이는 끝내 뇌출혈로 숨졌고, 학교는 그 부모로부터 고소를 당한 상태였으며, 그 일로 교육청에서까지 따로 훈령이 내려지고, 감사가 나오고, 하는 통에 그 사건은 종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고… 양호선생님은 짬짬이 교무실에 갔다 올 때마다 귀띔을 해주었다.
4학년 여자아이가 계단에서 구른 사건은 중간고사를 며칠 앞두고 있던 지지난 주 금요일의 일이었다. 목발을 짚고도 계단난간을 지탱하며 걸어야했던 그 아이는 점심시간에 어찌어찌하다 그만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흔히 점심시간이면 그렇듯이 복도며 계단에는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아이들로 북적였고, 장난꾸러기 사내 녀석들은 계단손잡이에 걸터앉아 미끄럼을 타는 게 예사였다. 그런 상황에서 누구의 발에 채였는지, 혹은 제풀에 넘어진 것인지, 주변에 같이 있던 아이들은 그 일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했다. 평소에도 흐느적거리듯 발을 떼는 그 아이의 걸음걸이는 넘어지는 동작과 걸음을 떼는 동작을 따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비로소 같이 있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른 것은 흥건하게 바닥을 적시고 있는 핏자국을 보고난 다음이었고, 그만큼 어쩔 수 없던 상황이었다. 현장을 목격한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는 찰나적이면서도 지루하리만치 긴 시간이 교차한 다음이었다. 헐레벌떡 선생님들이 뛰어오고 뒤미처 앰뷸런스가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학교를 빠져나갈 때까지, 학교전체는 말 그대로 멍하니 입만 쩍 벌린 채 어안이 벙벙한 꼴이었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다. 하루도 안 돼 그 사건은 눈덩이처럼 부풀려져 전교생의 입으로 옮겨 다녔고, 각 반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아이들은 자신들의 목격담을 떠들어대느라 야단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현장에 있던 아이가 한 명도 없는 반에서는 원정을 가듯이 다른 반으로 몰려다니며 그 상황을 엿듣느라 성화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처음 치러진 중간고사는 그렇게 흐지부지 누구의 안중에도 없었고, 학교는 온통 그 사건에 휘말려 일주일이 넘도록 들썩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으로 실려 간 아이는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그 아이의 일가친척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를 뒤집어 놓았다. 그러다 끝내 아이가 숨을 거두었다고 했을 때, 조용하다 못해 침울하기까지 한 수업시간에 난데없이 통곡소리가 들려 아이들을 우르르, 복도로 내몰았고 술에 취한 누군가가 고개고래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을 맴돌아 아이들은 또 창틀에 매달려 한참씩이나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이처럼 아이들에게는 누구의 죽음이 낯설고 허황한 것이었다. 마치 자신은 그 아이와 각별한 관계이기나 한 것처럼, 막연한 두려움 앞에서 그간의 무관심과 따돌림에 대한 변명이나 하듯이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떠들어댔다.
그러다 불쑥, “전 학년, 각 반의 장애아동들은 지금 즉시 양호실로 모이세요.”라는 방송이 흘러나온 것은 지난 월요일 아침이었다.
“흠, 너희들도 알다시피 지난주에는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는 짐작이 가지만, 흐흠, 그럴수록 마음 똑바로 먹고 경고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직접 교감선생님이 침울한 목소리로 그렇게 운을 띄울 때까지도 양호실에 모였던 아이들은 뭣 때문에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교감선생님 뒤에는 4학년 학년주임선생님과 6학년 학년주임인 불곰이 나란히 서있었고, 그 앞으로는 여남은 명의 아이들이 잔뜩 긴장을 한 얼굴로 교감선생님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따로 부모님들께는 통보가 가겠지만, 너희들이 우선 알아야 할 것은… 흠, 흠.” 어렵게 말을 잇는 듯 교감선생님은 연신 헛기침을 하며 말을 끊었다. “교육청에서도 그리 결정이 난 바이지만, 흠, 너희들은 다시 반 편성을 하게 되었다. 흠… 왜냐하면, 몸이 불편한 너희들을 모두 저층에 있는 학급에서 수업을 하게끔 조치를 한 것인데, 흠… 그런데 문제는… 흠, 6학년 학급이, 6학년15반만 일층에 있기 때문에… 흠, 여자 반이지만, 흠….” 교감선생님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참, 몇 명이라고 하셨지요?” 하고는 뒤에 서있는 불곰을 향해 물었다.
“네…? 아, 네 명입니다.”
“아, 그래요. 흠….” 교감선생님은 코끝까지 쓸려 내려온 안경을 다시 밀어 올리면서 어렵게 말을 이었다. “6학년 남자들 네 명은, 아무래도, 흠… 어쩔 수 없이, 6학년15반에서 수업을 같이 해야겠다! 그렇게들 알고, 흠… 각자 준비를 하도록!”
겨우 할 말을 다 끝냈다는 듯이 교감선생님은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민우는 휠체어를 탄 상준이 뒤에서 허둥대듯 말을 맺고 있는 교감선생님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교실에 올라가서 각자 자기 소지품들 챙기고 기다려라. 곧 있다 담임선생님이 올라가셔서 너희들을 각자 새 반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다들 알아들었나?”
6학년 학년주임인 불곰은 교감선생님을 대신해서 남은 이야기를 마저 하였다. 그 자리에 모였던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뭐라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불곰의 무서운 인상에 다들 고개만 끄덕거렸다.
“대답을 해야지. 왜들 기운이 없어? 씩씩하게 네, 하고 다시 대답해 봐.”
“네….”
“네에.”
여기저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이들은 따로 또 같이 대답을 하였다.
“됐어 그럼. 공연히 소란들 피우지 말고, 조용히 반으로 돌아가서 준비하고 있어라!”
불곰은 어차피 어쩔 수 없는 거, 질질 끓게 뭐 있냐는 듯이 서둘러 아이들을 해산시켰다. 교감선생님은 그래도 뭔가 더 할 말이 남은 것처럼 안쓰러운 눈으로 아이들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차례차례 양호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팔을 휘저으며 걸음을 뗄 때마다 균형을 잡는 아이도 있었고, 목발에 의지한 몸을 겅중겅중 허공에 날리며 발을 옮기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민우를 비롯한 6학년 아이들은 엉거주춤하니 양호실 구석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였다.
“저기요…?”
그때 태식이가 입을 열었다. 교감선생님은 앞서 아이들과 함께 양호실을 먼저 나가셨고, 4학년 학년주임과 불곰이 머리를 맞대고 무슨 말인가를 나누고 있다가 동시에 태식이를 쳐다보았다.
“저, 저희는 그냥 5층에 있으면 안 될까요? 저희 6학년은…….”
태식이는 인상을 쓰듯 노려보고 서있는 불곰 앞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창피하게, 어떻게 여자 반에서 수업을 해요? 저흰 그냥 저희 반에서 수업을 했으면 하는데요!….”
그나마 용기를 내어 한 말이지만, 그 생각에는 남은 세 명의 아이들도 같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태 그래왔고, 벌써 새 학기가 시작돼서 중간고사까지 치른 마당에, 그것도 남녀합반도 아니고 여자 반엘…. 모르면 모를까, 민우 역시도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6학년은 중학교를 대비한다고 해서 남자 반과 여자 반을 따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아랫입술을 꽉 문 채 불곰은 인상을 풀지 않고 태식이를 노려보았다. 태식이는 어쨌든 할 말을 다했다는 표정으로 다른 아이들의 응원을 바라는 듯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다른 학년의 아이들은 모두 양호실을 빠져나간 뒤였고, 6학년 여자애 두 명도 지금 막 양호실 문을 나서고 있는 중이었다.
“쟤들은 여자애들이니까 그냥 들어가도 되겠지만, 우린… 창피하게 어떻게…?”
태식이는 말없이 노려보기만 하는 불곰이 더욱 무서웠던지, 할 말을 다 하면서도 기가 죽은 얼굴로 끝까지 궁싯거렸다.
“맞아요. 쪽팔리게 여자 반에서 어떻게 공부해요? 그것도 우리 넷만!”
개켜져있는 매트리스를 발로 툭툭 차면서 경호가 심통난 목소리로 거들었다.
“그래서?”
난데없이 불곰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태식이가 화들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쩌겠다고? 너희들이 지금… 그럼 못 들어가겠다 이 말이야?”
불곰은 두어 걸음 바짝 태식이 앞으로 다가서면서 위협적으로 물었다.
“네…. 그, 그게 그러니까요, 저희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잖아요… 또, 그 애가 죽은 게 사실 저희 때문도 아니고… 재수 없게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걸 왜 우리까지 이래야 하냐고요.”
태식이는 불곰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하였다. 민우는 덜컥 겁이 났다. 그냥 빨리 이 자리만 벗어나고 싶었다. 불곰은 민우의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고, 저러다 언제 솥뚜껑 같은 손이 날아가 태식이의 뺨을 후려칠지 모를 일이었다.
“치…, 예외는 없다면서요?”
경호가 멀찍이 서서 혼잣말처럼 깐죽거렸다.
지난여름 민우는 이 학교로 전학을 왔다. 전학수속을 밟느라 엄마는 교무실에 들어가 있었고 민우는 복도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교감선생님… 저희 반은 좀 곤란하겠는데요. 지금도 애들이 꽉 차서 콩나물시루 같은데….”
“저희 반도 힘들 거 같아요. 가뜩이나 저희 반엔 또 한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제가 둘씩이나 맡아요? 아무래도 그렇잖아요. 네?”
선생님들이 창가 쪽으로 모여서서 쉬쉬하듯 나누는 이야기를 공교롭게도 민우는 다 듣고 있었다. 바로 문 앞에 민우가 서있다는 것을 선생님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이상하지? 이 학년은 유난히 더 많은 거 같지?”
“그러게. 그 해에 더 심했나?”
“자자, 그러지 말고 누가 좀 맡아요.”
“저, 차라리 교육청에 다시 말해보면 어떨까요? 저 사거리 건너에 있는 학교로…….”
“에이, 어떻게 그래요…. 이미 결정 난 걸. 이 애 집이 또 바로 학교 뒤라잖아!”
“그러지 말고 김 선생이 맡지? 책상이야 좀 붙여 앉히면 되고… 응?”
“이게 왜 이러십니까? 지금도 청소도구를 둘 데가 없어서 애들 발밑에 밀어두는 실정인데요? 그러시는 조 선생님 반에 데려가시죠.”
“이, 사람 참…. 괜히 이사장한테 눈총 받고 싶어서 그래?”
“네?”
“에에, 그 왜… 이사장님 손녀딸이 그 반 애잖아!”
“아! 아, 그게 또 그렇게 되나?”
“거참, 그러니 이 일을 어째?”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곤거리는 선생님들의 말소리를 엿들으며 민우는 그게 무슨 소린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열러진 문틈으로, 엄마는 저만치 혼자 서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데….
“됐어요. 저희 반에 보내세요. 거 듣자듣자 하니까 너무들 하시는구먼!”
굵고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자 선생님들은 헛기침을 하며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괜찮겠어? 자네 반엔 제일 심한 애도 한 명 있는데….”
“아, 됐다니까요! 지금 무슨 흥정합니까, 쯧.”
듣기에도 무안하리만큼 면박을 주는 것으로 옥신각신하던 선생님들의 설전도 끝났다. 민우는 그때까지도 그게 저를 두고 하는 소리라는 걸 알지 못했다. 더 한참을 기다리다 엄마가 충혈 된 눈으로 교무실을 나오고, 그런 엄마를 향해 연신 뭐가 그리 죄송하다는 건지 사과를 하던 불곰이 뜬금없이 민우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그러게 임마, 공부라도 좀 잘하지? 성적이 좋았으면 서로 데려간다고 그랬을 거 아냐? 자식!”
다른 선생님들은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때로는 예외를 두고, 더러는 눈감아주기도 하였지만 불곰에게는 결코 예외가 없다는 것을 민우도 알게 되었다.
마땅히 청소도 같이 해야 하고, 단체 기합도 같이 받아야 하며, 소풍을 가서 산행을 할 때도 쓰러질 때 쓰러지더라도 끝까지 같이 가야 했다. 상준이의 휠체어는 여럿이 번갈아가며 밀면 됐고, 심지어 산에 오를 때는 불곰이 업고 아이들이 휠체어를 들고 따라갔다.
그런 상준이를 두고 민우는 괜히 꾀를 부릴 수가 없었다. 상준이는 휠체어를 탄 채 걸레질을 했고, 교실 바닥에 왁스를 먹일 때는 아예 바닥에 드러눕듯이 내려앉아 마른걸레를 휘저었다. 운동회 때도 달리기를 못하면 박 터뜨리기를 같이해야 했고, 줄다리기를 못하면 오색기를 펄럭이며 응원을 해야 했다. 이것이 불곰의 법칙이었다. 피하지 않는 것,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고 희망이라고 불곰은 늘 말했다.
그런 불곰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예외란 없었다! 아이들은 그것이 ‘월남용사의 깡다구’라고 말했다. 까불다 죽는다, 이유는 필요 없다, 괜히 뜸들이다 두 대 맞을 거 굵게 한 대로 가자… 등등. 불곰에 대한 아이들의 구호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한 대 맞으면 즉사고, 두 대 맞으면 압사다! 하는 식으로.
불곰은 그렇게 태식이와 경호를 노려보며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민우는 오그라든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몰래몰래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민우를 향해 대뜸 불곰이 물었었다.
“너도 같은 생각이냐?”
“…….”
민우는 퍼뜩 불곰의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다시 상준이를 내려다보며 불곰이 물었다.
“넌?”
“…….”
상준이 역시 별 말이 없자 불곰은 어정쩡하게 서서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오지도 못한 채 문을 막고 서있었다. 4학년 학년주임은 슬그머니 양호실을 먼저 나간 다음이었다.
민우는 그런 불곰이 무서우면서도 좋았다. 살가움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데 왠지 마음으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술을 한껏 빼문 채 불곰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고, 팔짱을 낀 채…. 이때다 싶었는지 태식이가 다시 말을 보탰다.
“아니면 따로 남자 반을 만들어 주던가요!”
“흠….”
불곰은 교감선생님 흉내를 내듯이 길게 한숨을 내차며 상준이 앞에 쭈그려 앉았다.
“너희가 좀 이해하면 안 될까?”
무슨 선문답이나 하듯 불곰은 상준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상준이는 여태 참고 있었는지, 훌쩍거리는가 싶더니 금세 어깨를 들썩거렸다.
“울지 마라. 남자는 어떤 경우에도 눈물을 함부로 흘리지 않는다!”
불곰은 상준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뭐가 더 서러운지 상준이는 부르르, 떨면서 불곰 앞으로 얼굴을 묻었다.
“민우야!”
그런 상준이의 어깨를 토닥여주다 불곰은 민우를 불렀다.
“네…?”
“네가 신경 좀 써줘라.”
“……?”
“네가… 원기소통을 챙겨 줘.”
“……! 네.”
민우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거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느라 간신히 대답을 하였었다.
상준이는 한 번 교실에 들어오면 여간해서 자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휠체어에 앉아 수업을 할 수는 없으니까, 힘겹게 걸상으로 옮겨 앉으면 좀체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누가 번쩍 안아 휠체어로 옮겨주지 않는 이상에는… 그렇다고 또 계단을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없으니까…. 수업이 끝날 때까지 상준이는 앉은뱅이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런 상준이에게 가장 큰 문제는 오줌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다녀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럴 때면 서너 명의 아이들이 상준이를 에워싸듯 벽을 만들어주었다. 그럼 자리에 앉은 채 상준이는 원기소통에 오줌을 누곤 하였다.
그렇게 흐느껴 우는 상준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불곰은 아무 말도 없이 양호실을 나갔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다되도록 한 번도 양호실에 오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들은 번갈아가며 양호실에 들렸고, 얼레고 달래며 설득을 하였지만…. 불곰의 침묵은 오늘 오전까지 이어졌었다.
민우는 가만히 상준이를 건너다보았다. 제일 답답할 건 상준이었다. 그런데도 의연하게 참고서만 들여다보는 상준이가 어른스러워 보였다. 어쩔 수 없는 건 끝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민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피하지 않는 것,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그것이 용기고 희망이라는 불곰의 법칙이 떠올랐다. 민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태식이와 경호를 돌아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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