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스크랩] [수필] 울림은 주객이 없다

전봉석 2006. 8. 6. 18:17
 




  울림은 주객主客이 없다

-김훈의 ‘현의 노래’를 읽고


하현


  사람의 몸이 소리를 빌리고

  사람의 마음이 소리를 이끌어,

  그 새로움은 언제나 새롭다.

  새로운 소리에 사람이 실려서

  사람도 새로운 것이다.

  (김훈의 『현絃의 노래』중에서)




  김훈은 대단한 문장가다. 호흡은 절제되고 쓰임엔 낭비가 없다. 모자라는 듯 넘치고, 넘친들 버려짐이 없다. 그의 오랜 취재경험(27년간 기자생활을 했다)이 그토록 문장을 절제하게 하는가! 달리 헤아리기 어려운 물(物)의 세계를 특유의 호흡으로 꿰뚫고, 그러나 과장하지 않음으로 단아하다. 철저하리만치 사실적인 이유다. 『칼의 노래』에 이어 『현의 노래』를 읽는 동안, 『자전거 여행』과 함께 『밥벌이의 지겨움』을 읽는 동안, 작가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다, 라는 장인의 수고를 느끼게 된다. 앞의 두 작품을 쓰는 동안 여덟 개의 이가 빠졌다고 하니, 더 두고 무슨 말을 하랴!


  세계를 바꾸려는 열망은 쇠나 소리가 같다. 침노하여 다스리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데 그러하다. 이는 전쟁과 예술이 무기와 악기로 닮은 데 있다. 철기사용이 자유로워지면서 쇠는 급속도로 세계를 평정했다. 세계의 질서는 쇠의 흥함에 있었다. 베고 베이는 살육의 평정이었다. 『칼의 노래』는 그러므로 '쇠의 노래'다. 이순신은 쇠를 연주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순신의 칼은 인문주의로 치장되기를 원치 않는 칼이었고, 정치적 대안을 설정하지 않는 칼이었다. 그의 칼은 다만 조국의 남쪽바다를 적의 피로 물들이기 위한 칼이었다. 그의 칼은 칼로서 순결하고, 이 한없는 단순성이야말로 그의 칼의 무서움이고 그의 생애의 비극이었다."(『자전거 여행』,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중에서)


  '삶을 수식하지 않는 그 삼엄함'이 이순신의 무기였고, 악기였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현의 노래』에서 우륵도 그러하다. 신라의 진흥왕이 가야를 쇠로 평정할 때, 우륵은 가야금을 완성했다. 끝내 가야는 사라졌으나, 신라 천년의 음악은 그의 악기에 바탕을 둔다. 그래서 작가는 "진흥왕의 무기와 우륵의 악기는 (서로) 비"겼다(『자전거 여행』p154)고 말하는지 모른다.


  우륵은 악사다.

  樂而不流哀而不悲可請定也

  즐기면서  휩쓸리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바르다고 이를만하다.


  우륵은 제자 니문에게 말한다.

  "울림에는 주객(主客)이 없다."

  "소리는 제가끔의 길이 있다.

  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 덧없음으로 늘 새롭다."

  (『현의 노래』pp21, 285.)


  김훈은 우륵의 입을 빌어 내게 말했다.

  "소리가 울려서 퍼지지 못하고 안으로 스민다."

  그것은 제 몸이 바짝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소리를 울려서 밖으로 내보낼 수"없는 것이라고!(『현의 노래』p21) 속이 아직도 습하기 때문에 자기 안으로만 스미는 것이라고, 나무가 소리를 먹는 것처럼, "아직도 멀었구나."하고 말이다.

  더불어 그는 대나무를 빗대어 또 꾸짖었다.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대숲은 늘 스스로 서늘하고, 잘 말라서 질퍽거리지 않는다.


  대숲은 늘 꿈속처럼 어둑어둑하다. 이것이 몽밀(蒙密)이다." (『자전거 여행』p47, '지옥 속의 낙원'중에서.) "물기는 얼고 녹기를 거듭하면서 흙 속의 작은 구멍들을 조금씩 넓혀간다.  넓어진 구멍들을 통해 햇볕은 조금 더 깊이 흙 속으로 스민다. 그렇게 해서, 봄의 흙은 헐거워지고, 헐거워진 흙은 부풀어 오른다."(p31, '흙의 노래를 들어라' 중에서)

  그러므로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은 올라온다."는.


  아! 내가 나의 질퍽거림을 인정하는 순간, '아직도 멀었다'는 좌절은 동시에 희망이었다. "좋은 소금은 바닥에 달라붙지 않고, 모래처럼 서걱거린다." (p65, '만경강에서' 중에서.)고, "갈대는 빈약한 풀이다. 바람 속으로 씨앗을 퍼뜨리는 풀은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늙음을 간직한다. 그것들은 바람인 것처럼 바람에 포개진다. 그러나 그 뿌리는 완강하게도 땅에 들러붙어 있다."(p71, '도요새에 바친다' 중에서.)면서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것 같았다.

출처 : 하현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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