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스크랩] [수필] 소녀와 참새

전봉석 2006. 8. 6. 18:18
 

소녀와 참새




하현


  마을 중앙에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있었다. 한나절 정오에는 한 뼘의 그늘조차 내어주지 않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나무였다. 나무 곁으로 볼품없는 우물은 입을 삐쭉 내민 채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진 데 따른 남루한 모습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래도 오후 들면 그림자를 벗고 있는 주변의 풍경이 고단한 하루의 수고에서 풀려나는 자연의 휴식과도 같았다.


  뉘엿뉘엿 해거름이 질 때면 한 소녀가 우물곁에 있었다. 물을 긷기 위해서가 아니라, 속을 들여다보며 혼자서 흥얼대기 위해서였다. 먼발치에서 종종 소녀를 훔쳐보다 유년의 나는 알 수 없는 시샘으로 달뜨고는 하였다. 마치 우물 속 누군가와 도란도란 정답게 말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소녀는 한참씩이나 혼자서 재잘거렸다. 그 모습이 참으로 재미난 놀이처럼 여겨져 유년의 나 또한 남모르게 따라하곤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소녀에 대한 기억은 우물을 메운 날로부터 끊겨있다. 소녀가 우물에 빠진 사건은 대수롭지 않은 해프닝 정도로 지나갔다. 조금 모자란 탓이었을까? 누구도 소녀의 죽음을 애석해하지는 않았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이면 마을 공터 후미진 수곡창고 담벼락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소녀를 둘러싸곤 하였는데, 짧달만한 나뭇가지를 쥐고 소녀의 치맛자락을 들춰보기 위해서였다. 짓궂은 녀석들의 수작에도 소녀는 말끔한 웃음으로 입을 헤벌리고 있을 뿐, 그런 날이면 무리 지어 나는 참새들만 소란스럽게도 마을 하늘을 어지럽히고는 하였다. 소녀에 대한 기억이 느닷없이 참새로 이어지는 데는 그 때문인 것 같다.


  참새의 '참'은 접두사로, '새, 깨, 외, 나무' 등의 단어 앞에 붙어서 '참새, 참깨, 참외, 참나무' 등 또 다른 단어로 쓰인다. 하필이면 왜 새 중의 새인 '참새'라는 뜻으로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인지, 흥미롭기도 하다. 참새는 비교적 지능이 높다고 한다. 알을 낳기 위해 민가에 집을 짓고, 추울 때는 처마 끝 구멍으로 들어가서 잔다. 이처럼 사람과 유난히 가깝기 때문에 '참새'라고 불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참새는 길들지 않는다. 여느 새처럼 새장에 가둬둘 수도 없는 것이 잠시도 그 안에서 쉬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날기 위해 자신의 머리가 깨어지고 터지는 것도 아랑곳없이 새장을 들이받으며 연거푸 날다 결국은 머리가 깨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참새는 결코 구속되지 않는다.


  삼막 아래 개울가 근처에 있는 무당 집이 소녀의 집이었다. 하루종일 마을을 배회하고 다니느라 몰골은 형편없어도, 소녀의 눈빛은 참으로 해맑기도 하였다. 어느 날, 먼발치에 서서 우물을 보듬듯 안고 말을 나누는 소녀의 수작을 엿보았을 때, 나는 처음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까만 눈동자의 알 수 없는 깊이는 마치 우물 속 뜻 모를 세계와도 닮아 있었다. 야-, 하고 소리치면 금세 따라서 야아-, 하고 대답하는 우물. 모래를 한줌 흩뿌려도 차르르차르르-, 가지렴 타며 보채기만 하던 우물. 소녀는 어쩌자고 우물 속에 들어간 것일까?


  무당이었던 어미가 소녀를 그리 밀어 넣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막장의 인부 하나가 소녀를 겁탈하고 그리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유년의 나는 그 어떤 흉흉한 소문도 믿어지지 않았다. 나만이 소녀의 은밀한 비밀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깽깽이풀이라도 한 줌 뜯어다 메워진 우물곁에 놓아둔 이유도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어느 곳에도 매인 바 없이 자유로웠던 영혼, 지금도 소녀를 떠올릴 때면 참새를 먼저 연상케 되는 것도 그래서인 모양이다.


  변변한 언어조차 구사할 줄 모르던 소녀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당황하여 뒷걸음질 치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던 이유를 모르겠다. 무엇에도 굴함이 없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참새처럼, 한 곳에 누워 입 벌리고 끊임없이 말을 하는 우물처럼, 소녀는 그렇게 세상을 누리다 간 것인지 모르겠다.


  열린 문으로 참새가 들어오면, 예로부터 잡지 않는 습속이 있다. 또한 걷는 참새를 보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옛말도 있다. 이처럼, 참새는 기쁨을 상징하는 새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 민첩하고 꾀 많은 사람을 일러, '참새 얼려 잡겠다.'고 하고, 말이 많고 재잘거리는 사람을 보면, '참새 볶아 먹었다.'고도 한다. 또는 '아무리 참새가 떠들어도 구렁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실력 없고 변변찮은 무리가 말만 많음을 비유로 한 듯 하다.


  새벽 창가에 듣는 / 참새 소리는, 조금도 / 시끄럽지 않아 좋다. / 들으면서 잊을 수 있고 / 잊으면서 문득 다시 들리는 / 그 즐거운 노래 소리 < 김윤성, 「효조(曉鳥)」에서 >


출처 : 하현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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