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스크랩] 때로는 그리울 때가 있다

전봉석 2006. 8. 6. 18:32
때로는 그리울 때가 있다


"사랑의 대상은 주체의 은유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바람이 찬 날은 오후 햇살이 투명하게 눈부시다.
오후에나 집을 나선다는 건, 언제나 미안한 일이다. 벌써 오
래된 일과인데도 늘 민망하니 부끄럽다. 이미 학교를 다녀와서
피아노 학원까지 마치고 돌아온 딸애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럴 때면 마치 부끄러움 많은 낮달처럼 흐리멍텅한 시선으
로 서둘러 집을 빠져나오기 일쑤다.
인천에서 판교 일산간 고속도로에 올라서면, 그제서야 담배
를 한 대 빼어 물며 한껏 게으름을 떤다. 고작 이십여 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구간이지만, 나는 그 고속도로가 좋다. '산본'으
로 내려서기까지의 그 나른한 게으름이 좋다. 고속도로 위를
분주하게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한껏 게으름을 부린다는 건 매
우 표현하기 힘든 즐거움이다.
그것도 일 차선에서 느림보 거북이로 달린다는 것은 참 짓궂
은 짓이다. 상향등을 쏴대면서, 요란하게 크락션까지 퍼부으며
곁을 지나쳐 가다 삿대질을 해대는 차라도 만나는 날이면 나는
그저 씨익-, 웃는다.
도대체 나는 바쁠 게 없다.
그런 나도 가끔은 무서운 속도로 달릴 때가 있다. 시속 150
키로 이상의 속도로, 요리조리 지그제그 운전을 하며, 등꼴이
오싹할 정도로 저들을 비껴갈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료
하기 때문인 경우이다. 게으름을 떠는 게 재미없을 때 오냐 그
래 어디 한 번 달려보자,는 심사로 속도를 내는 거다. 그러면
나의 '에스페로'는 길 위에 납짝 엎드린다.
대신 허공을 떠서 느릿느릿 달리는 것은, 난데없는 그리움이
다.

때로는 그리울 때가 있다,고 한다면 너무 허툰 감정일까.
그것도 '그 사람'으로 국한지어 따로 떼 놓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나의 느낌뿐.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는
데는 오로지 나의 은유뿐이다.
어느 날 문득, 나의 글을 잘 읽고 있다,는 메모로 시작되어
말을 나누게 되었고, 서로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탐색하며 지
내야 했던 시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느끼게 된 깊은 사랑을 지
금에와서야 어처구니없는 것쯤으로 치부하곤 하지만, 어림없다.
그 또한 사랑인 것을, 익명의 깨끗한 한판승이었던 것을. 그저
서로가 전달하는 언어로만 서로를 어림짐작 확인 하고, 확신하
였던 것이라 해도, 이제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그 또한
사랑의 또 다른 유형이었다는 것을. 언어로 전달되어지는 서로
의 은유는 자신 안에 드리울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지나고 난 뒤, 더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며 울면서 고백
하던 그 사람의 그 때 그 마음을 이제와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허투로 살고 있는 까닭일까.
고작 이름이 우습다는 것 때문에 시작된 그 사람의 거짓말은
날이 갈수록 정교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자신의 현실과는 너
무도 동떨어진 새로운 익명으로의 자신을 만들어야 했고, 그것
이 때로는 못견디게 슬픈 일이어서 차마 말은 못하고 울먹이곤
하였던 '두 자기'의 끊임없는 암투를 왜 나는 진작에 눈치채지
못하였던 것일까. 그 사람의 말처럼, 그러는 내내 얼마나 힘들
고 가슴 아팠는지 아느냐,는 물음에 왜 나는 좀더 너그럽지 못
하였을까. 그저 내가 빠져 있던 칠 개월의 늪이 억울하여서였
을까. 그러는 동안, 당신도 내내 행복해 하지 않았느냐,는 당
돌한 질문 앞에서도 나는 끝내 그 사람을 위로하지 못했다. 결
국 그러한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며, 익명의 세계에서 현실의
모든 것을 드러내면서까지 용서를 빌던 그 사람에게 나의 침묵
은 참으로 비겁한 것이었다.

현실은 껍데기다. 육화된 언어는 나열된 기호일 뿐이다. 그
것을 풀고 사유할 수 있는 것은 비현실의 현실이어야 하며, 손
에 닿을 수 없는 살갗의 언어이어야 한다.

사랑의 대상은 그 주체의 은유인 것처럼.

어쩌면 익명의 세계의 것을 현실의 그것으로 끄집어내려 했
던 것이 나의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눈으로 보고서야
믿으려 했던 '도마'처럼, 나의 사랑은 믿음을 전제로 하지 못
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나의 모든 것을 진실되게 털어놓고 대하였다 해도
당신은 지금처럼 나를 사랑할 수 있었겠느냐,는 그 사람의 질
문 앞에, 그래도 진실은 통한다,고 말하였던가. 아, 이처럼 바
보같은 명제가 또 있을까. 진실이란 결국 해석되어지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도대체 나는 무슨 확신에 차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는 지금도 임재범의 노래를 들으면,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달려갔던 '가평역'과 '양수리' 카페 촌을 배회하며 흩날
리던 눈발을 떠올리고 있지 않던가. 돌아오는 길 내내 눈길에
막혀 10시간이 넘도록 운전을 하여야 했던 일과 그러는 동안
연신 미안해,를 되풀이하며 울먹이던 그 사람의 전화 저편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지 않던가. 지랄같이 불러대던 임재범의
노래를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어쩌면 내가 아침이면 낯설어하는 이국적인 느낌도, 오후에
집을 나서며 느껴야 하는 낯부끄러운 미안함도, 버릴 것을 버
리지 못하고 사는 그리움 때문이지도 모른다. 한참을 지나고나
서야 비로소 그리움으로나마 대신하게 되는 너무도 허툰 나의
사랑 때문인지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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