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킨십이 좋다
"기억은 꿈을 꾸며, 몽상은 추억한다"
-바슐라르
그리고 지금, 겨울비가 내린다. 타닥타닥 창을 건드리
는 장난스런 빗방울 소리에 이끌려 나는 자판을 끌어안
고 있다. 내 안의 그 무엇이 연신 장난을 건다.
"꿈꾸는 것은 펜이다. 꿈꿀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흰
페이지이다.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쓸 수 있다면! … 생각
을 이어나갈려면 잘라내고 다시 꿰매야 한다"
나는, 유년을 지우려고만 한다.
그러나 지나온 시간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언제
나 빛을 내는 쪽은 내일이 아닌 어제이기 마련이다.
지나고 온 길은 이미 아름답다.
그것은 매우 자발적인 오늘이다. 나를 위해서만 글을
쓸 수 있는, 연속적인 오늘이다.
낙타로, 사자로 그리고 어린 아이로.
사막같은 인생 위에서 낙타가 되어 고된 걸음을 떼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 사자가 되어 자신만을 신뢰하고, 그
러한 아집에서 빠져 나왔을 때에야 어린 아이로서 (니체
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놀이의 단계를 경
험한다.
몽상은 즐거운 놀이이며, 숨죽이는 스킨쉽이다. 몸이
원하는, 자발적인 단계의 것. 몸의 언어이다.
하루 종일 입가에 맴도는 음이 한 소절 있다. 운전을
하면서도 흥얼대고, 길게 늘어선 퇴근길 정체 속에서도
아랑곳 않고, 창에 턱을 괸 채 흥얼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무리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대상없는 그리움 속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나는 있는
데 대상은 없는, 조금 비좁은 몽상이다.
학교에 들어서자 벌써 주차장이 꽉 찼다. 강의실에 들
어가자 이미 수업은 시작되었고, 노트를 펼치는데 시험
지를 나눠준다. 늘 한 발 늦거나, 한 발 빠르다.
"아저씨, 오늘 시험인 거 모르셨구나?"
"네? 아, …."
"그럴 줄 알았어요. 내가 전화드릴까 했는데…."
" …."
왕따는 편하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래서
나 또한 편하기 그지 없는, 마치 스킨쉽 같다. 몸의 언
어이면서 때로는 염치없는. 분비는 지하철 안에서의 수
다스런 언어처럼. 누구이든 상관없는.
"아저씬 왜 늘 혼자 계세요?"
" …."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으세요?"
"원래 혼자 잘 놀아요."
"까르르까르르"
국문학과 2학년이라고 했던가? 그리 고울 거 같지 않
은 피부에 비해 눈망울은 참 크다. 스스럼 없는 성격이
밉지도 않다. 일 주일에 한 번, 논리학 시간이면 마주치
곤 하는데, 이제 제법 쉬는 시간이면 말을 나눈다.
"혹시 이 노래 아나?"
"뭐요?"
"음-- 흠-- 으-- 흠--"
"까르르까르르"
여전히 맴도는 입가의 음을 들려 주려는데, 웃기는!
그런 것이다. 설마, 돌뿌리가 내게 다가와 나의 발을
걸었기야 하겠는가. 우연처럼 찾아와 한참을 내 안에 맴
돌다 가곤 하는 것이 몽상의 특기라면 이제는 좀더 과감
한 스킨쉽을 노려볼까 보다.
끝.
출처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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