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 무늬
-연애하는 사람
연애란 우리 말의 어원으로 '생각한다'라는 뜻에 있다.
사모(思募)하며 사유(思惟)한다는 것은, 곧 사랑을 일
컫는 말로,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랑에는 아가페, 에로스, 필리아, 스톨케가 있다. 아
가페란 신적인 사랑으로 조건없는 사랑을 말하며 에로스
는 에로틱한 이성간의 사랑을, 필리아는 따뜻한 배려와
우정을, 스톨케는 혈연적인 사랑을 말한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연애한다. 그런 우리는 마치 비늘
무늬같다. 무수한 삼각형으로 포개져 있는, 비늘 무늬처
럼 서로는 서로를 연애한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절절하다.
서로의 만남은 예고없이 찾아온다. 우리는 그것을 우
연이라고도 한다.
만남은 연애다. 어떤 만남이든, 서로에 대해, 어떤 생
각이든 하게 한다. 연애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연애한다, 연애는 필연이다.
앳된 추억의 풋연애가 있는가 하면, 막연한 짝연애가
있고, 사모하면서도 맺어질 수 없는 연인애가 있는가 하
면, 결합함으로 아름다운 부부애도 있다.
넉넉한 품을 정점으로 하는 우정 또한 연애의 극치라
할 수 있겠으나, 이보다 더 절절한 것은 동성애일 것이
다.
하물며 앞 선 자에 대한 존경애야 말로 연애의 진정한
겸애(兼愛)이다. 존경하기를 잘 하는 자는 겸손한 자요,
겸애한 자다.
연애는 아름답다.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 진정 사랑함으로 생각한다는
것, 더불어 함께 느끼고 호흡한다는 것은 살아 생전 이
보다 값진 선물은 없다.
모름지기 사랑은 상대적인 것이라 하지만, 언제나 내
안에 절대적인 사유를 간직할 수 있다면, 아, 당장에 생
을 마감한들 어떠랴!
등에 아이를 업은 한 여인이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여인은 지쳤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낯선 사내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지친 여인을 지나
쳐 저만치 앞서 걷던 사내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여인에게 다가가 등에 업힌 아이를 받아 안았다. 여인은
한결 가붓하였다.
그런데 여인의 아이를 받아 안은 사내는 언덕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순간적인 일이었다. 너무나 급작스런
일이라, 여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만치 벌어지는 사내와의 거리만큼, 여인은 필사적으
로 언덕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울부짖으며, 아이의 이
름을 불러대도, 사내는 멈추지 않았다.
언덕에 이르자, 사내는 여인을 기다렸다. 여인은 미친
듯이 언덕으로 뛰어 올랐다.
언덕에 다다른 여인은 사내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았다.
그리고 악을 써대며 사내에게 욕을 했다.
여인에게 아이를 건낸 사내는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어처구니 없어 하던 여인은
뒤늦게서야 사내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우연처럼 비껴가는 수많은 만남 속에서 진정한 연애란
자신이 깨닫는 바에 따른 것이다.
서로를 생각한다는 것, 서로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사랑의 정점이다.
차면 기우는 것이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지만,
생각하는 마음이 싹 터 꽃을 피우기까지 그 아득한 마음
이 변하지만 않는다면, 아, 연애여! 벅찬 가슴이여!
자고로 미움도 연애요, 증오도 연애다. 어찌 좋은 것
으로만 채울 수 있는 게 연애일까. 때때로 연애에 겨워
자신을 들볶는 순간도 있는 터.
미움도 사랑보다 진한 연애다. 연애가 과해서 생겨난
사랑의 변종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증오 또한 바른
연애를 위한 필연이다.
우리가 서로 연애함에 있어 무엇을 주저하는가!
단지 자신이 깨닫는 바에 따른 충만함이 따를 뿐.
연애하자, 애써 연애하자.
서로가 서로를 연애함으로 기껏 하나될 수 있다.
사랑은 하늘에 속한 것이요, 연애는 땅에 충만한 것이
다. 이토록 충만한 연애야 말로 곧 천상의 낙원이 아니
겠는가!
잘 짜여진 비늘 무늬 속에서 때로는 찔리고 때로는 베
이지만, 결국 견딜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연애하
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끊임없이, 연애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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