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을
-고백
가끔씩 그림을 그린다. 흰 도화지 가득, 언덕을 그리고
예배당을 그리고 즐비하게 서 있는 양계장 사이 골 깊은
배 밭을 그리고 동네 어귀 약국 너머, 비로소 당신의 마
을 그리고….
오판화의 그 선연한 흰빛, 배꽃이 필 무렵…
더는 색을 입힐 수 없다. 서툰 선들로 얼룩진 마을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슴 벅찬 일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명암도 없이 그저 단조로운 선으로만 잇곤
하였는데, 약국 너머 당신 집 주변은 언제나처럼 자꾸만
까맣게 그늘진다.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데도, 손끝은 아는가 보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어머니의 긴 한숨에 못 이겨 수술을 하기로 하였을 때,
그처럼 조용한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차마 못하
였다. 병상 너머, 너무 멀어 까맣게 눈 시리도록 가느다
랗던 수평선이 아득하던 곳.
아름 아름으로나 알고 찾아온다는 여수시 율촌면 신풍
리, 애양병원. 본래는 그 마을 나환자들을 위한 병원이었
다고 하던데. 어머닌 어디서 들은 거였을까, 고작 내 나
이 열 넷으로 저들의 생김생김에 낯설어하지 않기에는 너
무도 어렸다.
그래서 지금도 남해를 떠올릴 때면 까맣도록 가느다란
수평선이 먼저다. 오로지 격리된 바다, 이편의 작은 마을
에는 어린애의 간을 빼먹고 사는 괴물이 있었다지? 엉뚱
한 상상력은 여전한 두려움이다.
그렇게 달(月) 수로 막 4개월을 넘기고서야 집으로 돌
아왔다. 아, 무섭도록 낯설던 곳. 긴 수평선을 따라가다
가도 이편 솔밭에 닿을 때면 슬그머니 눈 꼬리를 접곤 하
여야 했던 시간들…. 그래서 그랬을까? 당신의 마을은 강
한 운명과 같다. 내가 집을 떠나 있던 사이 아버지는 이
사를 하였고, 그때는 마침 오판화의 배꽃이 눈부시게 피
었던, 5월로 기억된다.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몇 개월
새 익숙해진 냄새로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각은 먼저 눈치
챘는지, 심상찮은 기운은 어김없이 나를 옥죄었다. 아버
지가 이사한 곳은 바로 정착촌이었다….
고작 내 나이는 열 넷이었다.
한동안 나는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석연치 않았다. 왜 아버지는
나에게 단 한 번도 힌트를 주지 않은 것일까. 마음의 준
비는커녕 잇따라 찾아오는 재차 두려움에 적응하기란, 나
는 너무 어렸다.
그런 나에게 있어 당신은 상징 그 이상이다. 지금도 여
전히.
곱게 딴 두 갈래의 머리를 하고,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어느 날 불쑥 당신은 언덕 위의 옹색한 사택으로 들어왔
지. 가지런히 모은 두 손끝에 들려 있던 청색 가방을 기
억한다. 유난히 불룩한 가방을 보는 순간, 학교가 그리웠
어. 친구들. 내 또래의 아이들. 단지 일 년을 논다는 생
각에 선뜻 병원에 입원했고 수술을 했던 것인데, 나의 어
리석음을 그때서야 절실히 후회하고 있었으니까.
"저, 목사님 안에 계시니?"
나는 단박에 눈치 챘지 뭐야. 약간 혀가 짧다는 것과
무엇보다 가지런한 하얀 이를 동그맣게 모으며 옹알대듯
말하는 당신의 말버릇을. 아마 그때 나는 막 오판화로 줄
기 짓는 채송화 앞에 앉아 있었지. 쭈뼛대고 있던 내 꼴
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고개 짓만 갸웃하고는 더는 묻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던 당신. 그렇게 당신이 사라진 마당
에는 오후의 긴 햇살만이 정지 해 있었어. 좀처럼 움직일
수 없던 그 숱한 그림자들을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얼
마쯤 지나 당신은 마당으로 나왔고, 그런 당신을 향해 아
버지는 뭐라 뭐라 말씀하시는 것 같았지만, 나는 단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지. 어찌나 크게 울리던지, 금방이라
도 나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통이 날 것만 같아 땀이 밴
손으로 가슴을 눌러야 했으니까. 그런 나는 아랑곳도 않
고 당신은 그저 휙 하고는 마당을 가로질렀어. 서운토록
가슴 시린 바람에 어린 새순의 채송화도 멈짓 할 정도였
지 뭐야. 그게 처음 당신에 대한 나의 기억이야. 알기나
하려는지. 그리곤 내가 얼마동안을 앓으며 당신의 그 말
투를 흉내내고 또 흉내내곤 하였는지. 그토록 나는 시름
시름 앓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나에게 단 한 마디도 거들
지 않았어. 내가 얼마나 야위어 가는지 조차 몰랐을 테니
까. 우습지만, 그때 나는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생각하였던 거 같아. 그건 그렇고, 내가 당신과 다시 말
을 나누었던 건, 그 해 여름 교회 수련회에서였던 거 같
아. 아마 당신은 그때 학생회 부회장이었었지. 한창 무더
위로 예배시간 내내 혼쭐이 난 뒤라 바깥의 까만 하늘은
유난히 시원스러웠어. 안성에 있던 무슨 분교를 빌려서
갔던 거 같은데, 기억은 분명하지 않지만 개구리 소리로
귀가 다 멍멍해 있었던 건 생생해.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
고 막 돌아서려는데, 당신이 등뒤에 서 있었어. 그리곤,
"야, 이거 써."
하고는 수건을 내밀었지. 기억나? 내가 그땐 당신에게 누
나라고 불렀었던 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채 중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는데, 당신은 그런 나보다 두 학년이나
높았으니까.
"됐어요, 누나 써요."
아마 내가 그랬던 거 같아. 후후. 그땐 참 어리숙하기
도 하지. 고 몇 마디 하면서도 행여 당신의 말투를 흉내
내곤 하였던 게 들통이나 날까봐서 얼마나 입을 앙다물고
말했던지. 그런 나의 꿍꿍이를 당신은 알기나 하였는지
그저 피식 웃으며,
"쓰고 줘. 누가 가지래?"
하고 되물었어. 그렇게 해서 그토록 긴 말을 나눌 수 있
었던 걸까? 어쩌면 그리도 좋았을까. 밤새 이야기하고도
어스름 날이 밝는 게 왜 그리 아쉬웠던지. 새벽 예배 시
간이 되어 어수선해지고서야 우리는 돌담에서 일어났어.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계면쩍게 웃던 당신의 미소. 이상
도 하지. 그때 우리는 무슨 말을 그리도 한참 동안 나눴
을까. 도무지 기억이 안나. 그저, 당신의 부모도 나병환
자라는 것, 때로는 아버지가 무섭다는 것 정도. 다만 당
신의 그 말 고르던 숨소리는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ㅅ'
과 'ㅎ'을 고를 때면 약간씩 번지곤 하던 콧소리까지도
여전히 생생한데. 그 뒤로도 우리는 뭐가 그리 할 말들이
많았는지. 마치 말고픈 들짐승들처럼, 볼 때마다 말하고
또 하고 또 했던 거 같아. 세상에 태어나 그 동안 참아왔
던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려는 것처럼. 그러기 위해 만
난 사이인 것처럼. 말하기에 지치면 가만히 쳐다보곤 하
였던 까만 하늘도 어지간히 수다스러웠어. 지금은 어딜
가도 그때 만한 '왕수다 하늘'을 볼 수는 없으니 말야.
그것도 아쉬워서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썼었지. 기껏 만
나 한껏 말 나누곤 돌아서며 전해 주었던 편지. 사택 뒤
노송 등걸에 놓아두곤 하였던 편지. 어느새 당신도 수줍
은 장난쯤으로 살그머니 놓아두곤 하였던 편지. 아,그 때
당신에게 보낼 편지를 채우느라 아버지 서재를 어지간히
도 들락거렸는데.
이듬해에 중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있다 나는 자살을 생
각하였지. 그런 나 때문에 당신은 또 얼마나 안절부절이
었던지. 하루에도 두 통 세 통씩 편지를 보내오고, 학교
앞 짓궂은 남학생들의 농짓거리에도 몇 번씩이나 나를 기
다리곤 하였던. 하지만 내가 주저앉았던 건, 당신이 새벽
마다 새벽 기도를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가 퉁명
스럽게 하실 때였어. 찬 마룻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날
위해 그토록 기도하였을 당신. 그런 소식을 전하시면서도
그저 퉁명스럽기만 하시던 아버지의 말투. 어느 것이 나
를 살게 했을까.
이제와 고마운 마음이야 말한들 무엇해. 인천으로 이사
하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는 단 한 마디 힌트도 주지 않
으셨어. 그저 어두운 표정으로 책상 정리하라고만 하셨지.
억울한 건 그것 때문이 아냐. 언제부터 아셨는지, 아무렇
지도 않게, 당신과는 더 이상 연락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실 땐, 무섭도록 강한 살의를 느꼈던 거 같아.
전학 후, 얼른 친구를 만들고 그 애 집 주소로 당신의
편지를 받던 날들. 참 어린 나이였는데. 어쩜 그리도 아
프고 애절했을까.
당신 삼촌이 인천으로 찾아오신 건 그리고 얼마 안돼서
야. 대뜸 한다는 소리가, 당신과 나중에 결혼할 거냐는
거였지. 그럴 거 아니라면, 나더러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셨고, 나 때문에 누가 약을 먹고 고대 병원에
누워 있다는 얘기를 하였어, 잔인하도록 반듯하게. 나는
처음에 겁주려는 건 줄로만 알았어. 그저 겁주려고 꾸며
낸 얘긴 줄로만 알았어. 얼마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선뜻 나에게 와닿지 않았던 건, 그런 얘기가 가당키나 해
야 말이지. 우리는 고작 열 일곱인데. 그런데 그 애가 바
로 최 장로님의 아들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온 몸
이 얼어붙는 거 같았어. 그 앤 어려서부터 나중에 당신과
결혼할 거란 말을 공공연히 떠버리고 다녔고, 그 곳 마을
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다는 이야기를 벌써부터 알고 있었
으니까. 당신 삼촌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다녀간
얘기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과 자신은 할 수 있는
한, 나를 위해 최선을 다 한 거라는 말까지 했지. 이런
젠장. 난 정말 무서웠다구. 다행히 그 친구가 살았으니
망정이지 정말 죽기라도 했어 봐. 거기다 아버지가 알기
라도 하는 날엔….
이유도 모르는 당신은 여전히 편지를 보내고, 나의 답
장이 하루 이틀 미뤄지자 가슴앓이가 영역한 글자들로 하
소연하듯 문장을 잇곤 하였지. 차마 나는 더 이상 당신의
편지를 뜯어 볼 수조차 없었어. 아, 그때의 내 저린 가슴
을 무엇으로 다 쓸까. 고작 나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는
데.
어떻게 그 긴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지? 우연히 어느 선
생이 찢어 준 기형도의 시, <안개>를 읽고, 또 읽으며 시
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던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더는 참을 수 없어 가출을 하였을
때, 정말이지 절실하게 당신이 보고 싶었어. 무슨 염치로
당신을 찾을까 걱정하면서도 수소문하여 당신을 만났던
건 내 힘에 의한 게 아닌 것도 같아. 어쩔 수 없는, 더는
어쩌지 못할 주체할 수 없는 힘 같은 걸 느꼈으니까 말야.
당신은 이미 사회인이 되어 어느 의상실에 다니고 있었
지. 늦게나마 공부를 해야겠다고, 야간엔 학원을 다닌다
고도 했고, 집에서 동대문까진 너무 멀어서 곧 자취를 해
야 할까보라고도 했어. 아주 덤덤히 마치 국어 책을 읽고
있는 것처럼 술술 이어가던 당신의 어색한 말투. 그런 당
신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교무실에 끌려온 아이처럼
고개 숙이고 있던 나에게,
"그러지 마. 안 그래도 돼."
라며, 그제서야 당신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지. 그 뒤
우린 얼마나 마셨을까? 그저 말없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빨리 취하기만을 바랬는지도 몰라. 그렇게 자정을 넘기고,
연신 나는 '미안해'라는 말만을 연거푸 하곤 했던가? 동
대문, 그 왜 창신동 골목길로 한참을 들어서다 마주했던
여인숙 앞에서 또 얼마를 망설이며 떨었을까. 너무 추워
서,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인숙
안으로 들어섰지. 둘 다 빈털털이였으면서도 말야. 늙수
그레한 주인 남자를 간신히 설득해서 내 시계를 풀고 그
것도 모자라 당신과 내 신발을 맡기고는 간신히 방을 하
나 얻을 수 있었지. 아주 작은 방에는 앉은뱅이 책상과
그 위에 개켜진 이불 한 채 그리고 물주전자와 싸구려 물
잔 하나가 전부였어. 그래도 아담한 방. 들어서자 당신은
이불을 펴주고 얼른 자라고 말했어. 그리고 당신은 근처
에 있는 회사 언니네서 잔다고 하며 막 방을 나서려고 했
어. 그때 내가 얼떨결에 당신을 안았던가? 가지 말라고,
같이 있자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던가? 그러다 잠이 들었
던 거 같아. 아주 깊고 단 잠. 곤한 잠에서 깬 건 묵직한
두통 때문이었어. 깨질 것처럼 아픈 머리하며, 심한 갈증
때문이었어. 지저분한 주전자를 입에 대고 한참을 마신
다음에야 비로소 당신이 벽에 기댄 채 잠들어 있던 걸 보
았어. 알아? 그 때의 그 놀람! 어? 이게 누구야? 왜 얘가
여기 있지, 싶은. 전혀 생숭하기만 한 느낌. 그때 당신은
빨간색 체크무늬의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어. 하얀 브라우
스를 가지런히 두 무릎으로 포개어 감추고는 반듯이 얹은
머리를 모로 하고 잠들어 있었어. 아….
이유 없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당신을 흔들
어 깨웠지. 언뜻 당신도 놀란 걸까. 눈이 마주쳤을 때의
그 무안해 하던 표정은 지금도 기억할 수 있어. 당신을
눕히고 내가 그 자리에 가 앉았으려니까,
"허리 아파, 이리 누워."
하며 당신은 한 쪽 자리를 내주었지? 엉뚱한 심장 소리에
또 한 번 얼굴만 붉히다 간신히 당신 곁에 누웠어. 그리
고, 그렇게 우린 밤새 말을 했지. 까르르 까르르 웃기도
했던가? 주섬주섬 이 말 저 말을 하다, 어느 순간 불쑥
나의 미안하다는 말에 당신은 또 울기 시작했어. 그러는
당신을 어떻게든 달래려다, 아… 호흡이 멎을 것만 같던
긴 입맞춤. 그리고는 살며시 당신의 흰 브라우스를 풀었
던가? 멈짓, 당신은 내 손을 잡았어. 그리곤 물었지?
"나…, 아직…, 사랑해?"
그 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아니, 너무 많은
말이 한꺼번에 목구멍에 걸렸던 거야. 그러면서도 이미
나의 엉뚱한 심장소리를 주체할 수 없었지. 나는 당신에
게 쥐인 손을 빼고 화장실로 갔어. 그리고 한참을 느릿느
릿 수음을 했어. 두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꺼이꺼이
참아내며 한참을 그렇게, 부끄러워 미칠 것 같으면서도.
다시 자리로 돌아와 어색한 몸짓으로 당신 옆에 누워서는
뒤치락대며 잠을 이루지 못했어. 눈을 떴을 땐, 자지러지
는 햇살이 방안 가득 고인 다음이었고, 당신은 벌써 사무
실에 다녀와 방 값을 치루고 난 정오였었지. 국밥을 먹
었던가? 술 먹고 난 그 다음 날이 문제라며, 당신은 한껏
태연한 척 했고. 나는 또 말없이 수저를 떴어. 그리고,
그리고 당신이 내게 이만 원을 주었던가? 날이 차다며,
곧 바람 쐬고 들어가라며, 그렇게 태연한 말만 남기고 헤
어졌던가? 대뜸 돌아서서 멀어져가는 당신에게 나는 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 골목을 다 빠져나가고, 당신의
모습이 이제 더는 보이지 않은지 한참이 되어서도 나는
망설이고 있었지?
나는 그림을 그린다.
비겁하게도, 잊을 수 없어
부끄러운 마음으로
당신의 마을을 그린다.
끝.
-고백
가끔씩 그림을 그린다. 흰 도화지 가득, 언덕을 그리고
예배당을 그리고 즐비하게 서 있는 양계장 사이 골 깊은
배 밭을 그리고 동네 어귀 약국 너머, 비로소 당신의 마
을 그리고….
오판화의 그 선연한 흰빛, 배꽃이 필 무렵…
더는 색을 입힐 수 없다. 서툰 선들로 얼룩진 마을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슴 벅찬 일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명암도 없이 그저 단조로운 선으로만 잇곤
하였는데, 약국 너머 당신 집 주변은 언제나처럼 자꾸만
까맣게 그늘진다.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데도, 손끝은 아는가 보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어머니의 긴 한숨에 못 이겨 수술을 하기로 하였을 때,
그처럼 조용한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차마 못하
였다. 병상 너머, 너무 멀어 까맣게 눈 시리도록 가느다
랗던 수평선이 아득하던 곳.
아름 아름으로나 알고 찾아온다는 여수시 율촌면 신풍
리, 애양병원. 본래는 그 마을 나환자들을 위한 병원이었
다고 하던데. 어머닌 어디서 들은 거였을까, 고작 내 나
이 열 넷으로 저들의 생김생김에 낯설어하지 않기에는 너
무도 어렸다.
그래서 지금도 남해를 떠올릴 때면 까맣도록 가느다란
수평선이 먼저다. 오로지 격리된 바다, 이편의 작은 마을
에는 어린애의 간을 빼먹고 사는 괴물이 있었다지? 엉뚱
한 상상력은 여전한 두려움이다.
그렇게 달(月) 수로 막 4개월을 넘기고서야 집으로 돌
아왔다. 아, 무섭도록 낯설던 곳. 긴 수평선을 따라가다
가도 이편 솔밭에 닿을 때면 슬그머니 눈 꼬리를 접곤 하
여야 했던 시간들…. 그래서 그랬을까? 당신의 마을은 강
한 운명과 같다. 내가 집을 떠나 있던 사이 아버지는 이
사를 하였고, 그때는 마침 오판화의 배꽃이 눈부시게 피
었던, 5월로 기억된다.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몇 개월
새 익숙해진 냄새로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각은 먼저 눈치
챘는지, 심상찮은 기운은 어김없이 나를 옥죄었다. 아버
지가 이사한 곳은 바로 정착촌이었다….
고작 내 나이는 열 넷이었다.
한동안 나는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석연치 않았다. 왜 아버지는
나에게 단 한 번도 힌트를 주지 않은 것일까. 마음의 준
비는커녕 잇따라 찾아오는 재차 두려움에 적응하기란, 나
는 너무 어렸다.
그런 나에게 있어 당신은 상징 그 이상이다. 지금도 여
전히.
곱게 딴 두 갈래의 머리를 하고,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어느 날 불쑥 당신은 언덕 위의 옹색한 사택으로 들어왔
지. 가지런히 모은 두 손끝에 들려 있던 청색 가방을 기
억한다. 유난히 불룩한 가방을 보는 순간, 학교가 그리웠
어. 친구들. 내 또래의 아이들. 단지 일 년을 논다는 생
각에 선뜻 병원에 입원했고 수술을 했던 것인데, 나의 어
리석음을 그때서야 절실히 후회하고 있었으니까.
"저, 목사님 안에 계시니?"
나는 단박에 눈치 챘지 뭐야. 약간 혀가 짧다는 것과
무엇보다 가지런한 하얀 이를 동그맣게 모으며 옹알대듯
말하는 당신의 말버릇을. 아마 그때 나는 막 오판화로 줄
기 짓는 채송화 앞에 앉아 있었지. 쭈뼛대고 있던 내 꼴
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고개 짓만 갸웃하고는 더는 묻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던 당신. 그렇게 당신이 사라진 마당
에는 오후의 긴 햇살만이 정지 해 있었어. 좀처럼 움직일
수 없던 그 숱한 그림자들을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얼
마쯤 지나 당신은 마당으로 나왔고, 그런 당신을 향해 아
버지는 뭐라 뭐라 말씀하시는 것 같았지만, 나는 단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지. 어찌나 크게 울리던지, 금방이라
도 나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통이 날 것만 같아 땀이 밴
손으로 가슴을 눌러야 했으니까. 그런 나는 아랑곳도 않
고 당신은 그저 휙 하고는 마당을 가로질렀어. 서운토록
가슴 시린 바람에 어린 새순의 채송화도 멈짓 할 정도였
지 뭐야. 그게 처음 당신에 대한 나의 기억이야. 알기나
하려는지. 그리곤 내가 얼마동안을 앓으며 당신의 그 말
투를 흉내내고 또 흉내내곤 하였는지. 그토록 나는 시름
시름 앓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나에게 단 한 마디도 거들
지 않았어. 내가 얼마나 야위어 가는지 조차 몰랐을 테니
까. 우습지만, 그때 나는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생각하였던 거 같아. 그건 그렇고, 내가 당신과 다시 말
을 나누었던 건, 그 해 여름 교회 수련회에서였던 거 같
아. 아마 당신은 그때 학생회 부회장이었었지. 한창 무더
위로 예배시간 내내 혼쭐이 난 뒤라 바깥의 까만 하늘은
유난히 시원스러웠어. 안성에 있던 무슨 분교를 빌려서
갔던 거 같은데, 기억은 분명하지 않지만 개구리 소리로
귀가 다 멍멍해 있었던 건 생생해.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
고 막 돌아서려는데, 당신이 등뒤에 서 있었어. 그리곤,
"야, 이거 써."
하고는 수건을 내밀었지. 기억나? 내가 그땐 당신에게 누
나라고 불렀었던 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채 중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는데, 당신은 그런 나보다 두 학년이나
높았으니까.
"됐어요, 누나 써요."
아마 내가 그랬던 거 같아. 후후. 그땐 참 어리숙하기
도 하지. 고 몇 마디 하면서도 행여 당신의 말투를 흉내
내곤 하였던 게 들통이나 날까봐서 얼마나 입을 앙다물고
말했던지. 그런 나의 꿍꿍이를 당신은 알기나 하였는지
그저 피식 웃으며,
"쓰고 줘. 누가 가지래?"
하고 되물었어. 그렇게 해서 그토록 긴 말을 나눌 수 있
었던 걸까? 어쩌면 그리도 좋았을까. 밤새 이야기하고도
어스름 날이 밝는 게 왜 그리 아쉬웠던지. 새벽 예배 시
간이 되어 어수선해지고서야 우리는 돌담에서 일어났어.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계면쩍게 웃던 당신의 미소. 이상
도 하지. 그때 우리는 무슨 말을 그리도 한참 동안 나눴
을까. 도무지 기억이 안나. 그저, 당신의 부모도 나병환
자라는 것, 때로는 아버지가 무섭다는 것 정도. 다만 당
신의 그 말 고르던 숨소리는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ㅅ'
과 'ㅎ'을 고를 때면 약간씩 번지곤 하던 콧소리까지도
여전히 생생한데. 그 뒤로도 우리는 뭐가 그리 할 말들이
많았는지. 마치 말고픈 들짐승들처럼, 볼 때마다 말하고
또 하고 또 했던 거 같아. 세상에 태어나 그 동안 참아왔
던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려는 것처럼. 그러기 위해 만
난 사이인 것처럼. 말하기에 지치면 가만히 쳐다보곤 하
였던 까만 하늘도 어지간히 수다스러웠어. 지금은 어딜
가도 그때 만한 '왕수다 하늘'을 볼 수는 없으니 말야.
그것도 아쉬워서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썼었지. 기껏 만
나 한껏 말 나누곤 돌아서며 전해 주었던 편지. 사택 뒤
노송 등걸에 놓아두곤 하였던 편지. 어느새 당신도 수줍
은 장난쯤으로 살그머니 놓아두곤 하였던 편지. 아,그 때
당신에게 보낼 편지를 채우느라 아버지 서재를 어지간히
도 들락거렸는데.
이듬해에 중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있다 나는 자살을 생
각하였지. 그런 나 때문에 당신은 또 얼마나 안절부절이
었던지. 하루에도 두 통 세 통씩 편지를 보내오고, 학교
앞 짓궂은 남학생들의 농짓거리에도 몇 번씩이나 나를 기
다리곤 하였던. 하지만 내가 주저앉았던 건, 당신이 새벽
마다 새벽 기도를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가 퉁명
스럽게 하실 때였어. 찬 마룻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날
위해 그토록 기도하였을 당신. 그런 소식을 전하시면서도
그저 퉁명스럽기만 하시던 아버지의 말투. 어느 것이 나
를 살게 했을까.
이제와 고마운 마음이야 말한들 무엇해. 인천으로 이사
하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는 단 한 마디 힌트도 주지 않
으셨어. 그저 어두운 표정으로 책상 정리하라고만 하셨지.
억울한 건 그것 때문이 아냐. 언제부터 아셨는지, 아무렇
지도 않게, 당신과는 더 이상 연락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실 땐, 무섭도록 강한 살의를 느꼈던 거 같아.
전학 후, 얼른 친구를 만들고 그 애 집 주소로 당신의
편지를 받던 날들. 참 어린 나이였는데. 어쩜 그리도 아
프고 애절했을까.
당신 삼촌이 인천으로 찾아오신 건 그리고 얼마 안돼서
야. 대뜸 한다는 소리가, 당신과 나중에 결혼할 거냐는
거였지. 그럴 거 아니라면, 나더러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셨고, 나 때문에 누가 약을 먹고 고대 병원에
누워 있다는 얘기를 하였어, 잔인하도록 반듯하게. 나는
처음에 겁주려는 건 줄로만 알았어. 그저 겁주려고 꾸며
낸 얘긴 줄로만 알았어. 얼마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선뜻 나에게 와닿지 않았던 건, 그런 얘기가 가당키나 해
야 말이지. 우리는 고작 열 일곱인데. 그런데 그 애가 바
로 최 장로님의 아들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온 몸
이 얼어붙는 거 같았어. 그 앤 어려서부터 나중에 당신과
결혼할 거란 말을 공공연히 떠버리고 다녔고, 그 곳 마을
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다는 이야기를 벌써부터 알고 있었
으니까. 당신 삼촌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다녀간
얘기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과 자신은 할 수 있는
한, 나를 위해 최선을 다 한 거라는 말까지 했지. 이런
젠장. 난 정말 무서웠다구. 다행히 그 친구가 살았으니
망정이지 정말 죽기라도 했어 봐. 거기다 아버지가 알기
라도 하는 날엔….
이유도 모르는 당신은 여전히 편지를 보내고, 나의 답
장이 하루 이틀 미뤄지자 가슴앓이가 영역한 글자들로 하
소연하듯 문장을 잇곤 하였지. 차마 나는 더 이상 당신의
편지를 뜯어 볼 수조차 없었어. 아, 그때의 내 저린 가슴
을 무엇으로 다 쓸까. 고작 나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는
데.
어떻게 그 긴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지? 우연히 어느 선
생이 찢어 준 기형도의 시, <안개>를 읽고, 또 읽으며 시
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던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더는 참을 수 없어 가출을 하였을
때, 정말이지 절실하게 당신이 보고 싶었어. 무슨 염치로
당신을 찾을까 걱정하면서도 수소문하여 당신을 만났던
건 내 힘에 의한 게 아닌 것도 같아. 어쩔 수 없는, 더는
어쩌지 못할 주체할 수 없는 힘 같은 걸 느꼈으니까 말야.
당신은 이미 사회인이 되어 어느 의상실에 다니고 있었
지. 늦게나마 공부를 해야겠다고, 야간엔 학원을 다닌다
고도 했고, 집에서 동대문까진 너무 멀어서 곧 자취를 해
야 할까보라고도 했어. 아주 덤덤히 마치 국어 책을 읽고
있는 것처럼 술술 이어가던 당신의 어색한 말투. 그런 당
신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교무실에 끌려온 아이처럼
고개 숙이고 있던 나에게,
"그러지 마. 안 그래도 돼."
라며, 그제서야 당신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지. 그 뒤
우린 얼마나 마셨을까? 그저 말없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빨리 취하기만을 바랬는지도 몰라. 그렇게 자정을 넘기고,
연신 나는 '미안해'라는 말만을 연거푸 하곤 했던가? 동
대문, 그 왜 창신동 골목길로 한참을 들어서다 마주했던
여인숙 앞에서 또 얼마를 망설이며 떨었을까. 너무 추워
서,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인숙
안으로 들어섰지. 둘 다 빈털털이였으면서도 말야. 늙수
그레한 주인 남자를 간신히 설득해서 내 시계를 풀고 그
것도 모자라 당신과 내 신발을 맡기고는 간신히 방을 하
나 얻을 수 있었지. 아주 작은 방에는 앉은뱅이 책상과
그 위에 개켜진 이불 한 채 그리고 물주전자와 싸구려 물
잔 하나가 전부였어. 그래도 아담한 방. 들어서자 당신은
이불을 펴주고 얼른 자라고 말했어. 그리고 당신은 근처
에 있는 회사 언니네서 잔다고 하며 막 방을 나서려고 했
어. 그때 내가 얼떨결에 당신을 안았던가? 가지 말라고,
같이 있자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던가? 그러다 잠이 들었
던 거 같아. 아주 깊고 단 잠. 곤한 잠에서 깬 건 묵직한
두통 때문이었어. 깨질 것처럼 아픈 머리하며, 심한 갈증
때문이었어. 지저분한 주전자를 입에 대고 한참을 마신
다음에야 비로소 당신이 벽에 기댄 채 잠들어 있던 걸 보
았어. 알아? 그 때의 그 놀람! 어? 이게 누구야? 왜 얘가
여기 있지, 싶은. 전혀 생숭하기만 한 느낌. 그때 당신은
빨간색 체크무늬의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어. 하얀 브라우
스를 가지런히 두 무릎으로 포개어 감추고는 반듯이 얹은
머리를 모로 하고 잠들어 있었어. 아….
이유 없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당신을 흔들
어 깨웠지. 언뜻 당신도 놀란 걸까. 눈이 마주쳤을 때의
그 무안해 하던 표정은 지금도 기억할 수 있어. 당신을
눕히고 내가 그 자리에 가 앉았으려니까,
"허리 아파, 이리 누워."
하며 당신은 한 쪽 자리를 내주었지? 엉뚱한 심장 소리에
또 한 번 얼굴만 붉히다 간신히 당신 곁에 누웠어. 그리
고, 그렇게 우린 밤새 말을 했지. 까르르 까르르 웃기도
했던가? 주섬주섬 이 말 저 말을 하다, 어느 순간 불쑥
나의 미안하다는 말에 당신은 또 울기 시작했어. 그러는
당신을 어떻게든 달래려다, 아… 호흡이 멎을 것만 같던
긴 입맞춤. 그리고는 살며시 당신의 흰 브라우스를 풀었
던가? 멈짓, 당신은 내 손을 잡았어. 그리곤 물었지?
"나…, 아직…, 사랑해?"
그 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아니, 너무 많은
말이 한꺼번에 목구멍에 걸렸던 거야. 그러면서도 이미
나의 엉뚱한 심장소리를 주체할 수 없었지. 나는 당신에
게 쥐인 손을 빼고 화장실로 갔어. 그리고 한참을 느릿느
릿 수음을 했어. 두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꺼이꺼이
참아내며 한참을 그렇게, 부끄러워 미칠 것 같으면서도.
다시 자리로 돌아와 어색한 몸짓으로 당신 옆에 누워서는
뒤치락대며 잠을 이루지 못했어. 눈을 떴을 땐, 자지러지
는 햇살이 방안 가득 고인 다음이었고, 당신은 벌써 사무
실에 다녀와 방 값을 치루고 난 정오였었지. 국밥을 먹
었던가? 술 먹고 난 그 다음 날이 문제라며, 당신은 한껏
태연한 척 했고. 나는 또 말없이 수저를 떴어. 그리고,
그리고 당신이 내게 이만 원을 주었던가? 날이 차다며,
곧 바람 쐬고 들어가라며, 그렇게 태연한 말만 남기고 헤
어졌던가? 대뜸 돌아서서 멀어져가는 당신에게 나는 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 골목을 다 빠져나가고, 당신의
모습이 이제 더는 보이지 않은지 한참이 되어서도 나는
망설이고 있었지?
나는 그림을 그린다.
비겁하게도, 잊을 수 없어
부끄러운 마음으로
당신의 마을을 그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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