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걷는 나무
강을 걷는 나무를 보았습니다
성큼성큼 앞서 걷는 빛을 따라
종종걸음치는 나무를 보았습니다
해가 지고 가을이 깊어간다는 것을
그 걸음걸이를 보고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했던 생각을 되풀이하는 것만큼
지루한 모습이었습니다
강을 걷는 나무처럼
걷는 데 익숙하지 못하고
무엇을 감추어야 하는지
어디서 주춤거려야 하는지
요즘은 자주 시선을 잃곤 합니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든
그것이 나와 눈 마주치는 곳에
서로의 境界가 되었습니다
시선은 곧잘 길을 잃고
허공을 헤매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허공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길을 피해
새가 나는 길이 있고 새가 나는 길을 피해
물이 흐르는 길이 있고(그 길로만
비가 내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바람이 지나는 길이 있고
빛이 머무는 길이 있었습니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길이었습니다
빛이 지나는 길에서
무엇도 그늘이 되어
흔적을 남기며 길이 되었습니다
빛이 지나는 길에
꼭 그 만큼씩
꼭 그 만큼씩
강을 걷는 나무를 따라
긴 그림자로 눕는
산의 길과
구름의 길과
흐르다 멈춘 시간의 길들이
모두 서로의 길을 내주느라
스스로 피하고 멈추면서
그렇게 하나의 길이 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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