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오히려 핸드폰이 작아지면서, 애물단지다. 무게가 나가고 두께가
있을 때는 가방에 처넣으면 되었고, 아니면 윗옷 주머니에 넣어두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콩알만한 핸드폰이 거추장스럽다.
너무 작아, 이걸 어디에 둬야 하는 것인지, 때론 난감하다.
그러니 목에 걸고 다니면서부터, 족쇄에 물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전화벨 소리를 못 들었다는 말도, 신호가 터지지 않았다는 말도
이젠 소용이 없다. 더욱이 발신자 번호가 찍히고 난 다음부터는,
어림도 없다.
그것도 저장된 사람들을 분류해서 벨소리를 달리 할 수도 있으니,
거참, 요지경이다. 친구면 친구, 가족이면 가족, 일이면 일…. 그러니
좋아진 것인지, 어쩐 건지. 가끔은 아리송하다.
그러나 나의 핸드폰은, '캔디'다. 여간해선 울 일이 없다. 운들,
특별한 경우도 거의 없다. 하긴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번호는 그대로 갖고 온 덕에 뜻하지 않은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몇 해 전에 함께 일했던 곳에서의
일감 청탁이라거나, 어느 자모의 수업 여부에 따른 문의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런들, 그 또한 몇 없다.
그런 거 보면 족쇄라고 할 것도 없다. 본인이 겨워 차고 있는 터라,
어딜 가든 제일 먼저 챙기는 걸 보면, 세상으로 통하는 그나마
통로가 아닌가 싶긴 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여자가 횡단보도 앞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다. 신호가 바뀌자
고개를 뒤로 젖히며 깔깔대고 걷는다. 여자를 스치듯 서넛 이상의
사람은, 핸드폰을 한다. 순간, 사람들이 참새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재잘거리는 사람들. 잠시도 혼자 있을 수 없는, 도시의 참새들.
참새의‘참’은 접두사로, ‘새, 깨, 외, 나무’등의 단어 앞에 붙어
'참새, 참깨, 참외, 참나무’등 하나의 다른 단어를 이룬다. 새를 새
중의 새인 참새라고 한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참새는 비교적
지능이 높고, 해충도 잡아먹어 유익한 새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참새는 알을 낳기 위해 집을 민가에 짓고, 추울 때에는 처마 끝의
구멍에 들어가서 잔다. 이처럼 사람과 가깝기 때문에 참새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참새는 길들일 수 없는 새라고도 한다. 여느 새처럼 새장에
가둬 둘 수 없다. 잠시도 그 안에서 쉬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자신의 머리가 깨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거푸 난다. 그러다
머리가 깨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름이 없다. 벨소리 또한 미지정 곡이다.
"여보세요?"
한쪽 귀를 막고, 수화기를 더 세게 누른다. 어느 방에선가, 윤도현
밴드의 '너를 보내고'가 들려온다. 12시를 넘긴 시각의 노래방은
빈방이 없다.
"저, 혹시…." 그리고, 묵음.
끊은 것인지, 끊긴 것인지…. 잠시 망설이다 나는 수화기를 덮는다.
번호가 남긴 했지만, 때때로 잘못 걸려오곤 하는 전화쯤으로
생각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참새가 열린 문으로 들어오면 예로부터 잡지 않는 습속이 있다.
또한 걷는 참새를 보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옛말도 있다. 이처럼,
참새는 기쁨을 상징하는 새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 부정적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민첩하고 꾀 많은 사람을 일러,‘참새 얼려
잡겠다.’고 하며, 말이 많고 재잘거리는 사람을, '참새 볶아
먹었다.'고 한다. '아무리 참새가 떠들어도 구렁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은 실력 없고 변변찮은 무리가 말만 많음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추수기의 농가에서는 곡식 낟알을 먹는 해로운 새로
취급하기도 한다.°
어딘가 문자를 보내는 사람, 고개를 주억대며 통화를 하는 사람….
거리로 나오자, 술 취한 사람들로 부산하다. 이미 새벽 한 시를 넘긴
시각인데도, 핸드폰 탓이다. 저마다 누구와 통화를 한다.
혼자서도 재잘거리는 참새. 이제는 낯설지 않은 그림이다.
무심코 나도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어딘가 전화를 하고 싶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다.
몇몇의 대상이 순간적으로 스친다. 하지만 선뜻 전화를 넣기에는
망설여진다. 혹시 모르니 문자라도 보내볼까, 싶다. 그러다 만다.
이래저래 번거롭다, 괜히. 그러기엔 이미 술이 깬다. 술김에라도 슬쩍
전화를 넣어볼 사람이 마땅찮다.
옛날, 어느 농가에서 가을걷이를 끝내고 하늘에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장만했다. 이때, 파리가 먼저 음식에 앉았다.
화가 난 하느님이 곤장을 치려하자, 파리가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먼저 곡식이 채 익기도 전에 먹은 참새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참새가 곤장을 맞았다. 그 뒤로, 참새는 바르게 걷지 못하고
폴짝거리며 뛰어다니게 되었다.°
친구를 먼저 들여보낸 게 새삼 후회된다. 처음에는 대리운전을 할
생각으로 술을 마셨다. 그러다 불편한 속을 달래느라 억지로 토를
했더니, 노래방에서부터 괜찮다. 많이 마신 것도 아니어서, 친구를
먼저 보냈다. 어쨌든 그는 오전에 출근해야 한다.
'참새' 하면,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떠올린다. 가을, 허수아비, 들판,
전깃줄, 재잘거림…. °
조금 걷기로 한다.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자니, 것도 우습고 해서.
새벽 두 시가 다 된 시각 혼자 걷는다. 사람들은 많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아마 이 시간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조차
윤리적 도덕적으로 죄의식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죄의식이란, 시대에 따라 그 잣대를 달리하는 것이다. 어쨌든.
재잘거리고 싶다. 아무나 만나면, 아무 이야기나 하면서, 아무데나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피곤하다. 며칠째 속수무책이다.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마구 뒤섞인 생각들로 질식할 것 같다. 생각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라고 해 봐야 뻔한 이유지만, 그 뻔한 이유
때문에 고상한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데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엉킨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뒤엉킨 생각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멋대로 두고 싶다.
저만치 걸어가는 내내 나는 그런 상태의 그런 생각들을 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는, 생각. 참새가 되고 싶다는 생각. 그저
재잘거리며, 그 재잘거림을 위해 오락가락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
얌체처럼. 어디든 내려앉을 때면, 휘청 넘어질 뻔하면서도 시치미 뚝
떼고 얌전떠는, 참새.
어떤 시인은 이런 시를 남겼다.
새벽 창가에 듣는 / 참새 소리는, 조금도 / 시끄럽지 않아 좋다.
/ 들으면서 잊을 수 있고 / 잊으면서 문득 다시 들리는 / 그
즐거운 노래 소리
< 김윤성, 효조(曉鳥) >°
이만치 차를 주차해 둔 곳까지 다시 한참을 걸어오다, 노래방에서의
잘못 걸려온 전화를 떠올린다. 누구였을까? 새삼, 궁금증은
의미부여를 하며 가지를 친다. '누구'에 해당할만한 사람 몇을
떠올려보다 혼자 웃는다.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이기에, 지나고 나서야 늘 아쉬운 것일까!
문득. 오늘이 두렵다. 언제쯤 돼서, 오늘은 또 얼마나 커다란
아쉬움으로 나의 숨통을 옥죌는지. 늙지도 젊지도 않은 오늘 앞에서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더는 내일을 바라지 않는
꼬락서니를 하고!
그만하면 됐다, 는 생각이 든다.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게 없을뿐더러,
오히려 내일의 아쉬움만 느는 꼴인 건 분명하다.
참새는 어제를 생각하며 재잘대지 않는다. 참새는 내일을 근심하여
재잘대지 않는다. 참새는 오늘을 날기 위해 재잘댄다. 그러므로
참새는 길들지 않는다. 흘러간 어제에도 길들지 않았던 것처럼,
참새는 내일도 자유롭게 날기 위해 오늘을 재잘댄다.
운전을 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마치 주문을 외듯 참새를 생각한다.
(본문 내용 중 각 단락에서 "°"은 김경준 -두레 어린이 역사 교실
연구교사- 「한국사」를 참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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