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스크랩] 일탈

전봉석 2006. 8. 6. 18:45

일탈


수업을 가다, 빗방울이 좀 잦아드나 싶더니 안개가 짙다. 저만치
산허리가 구름에 감긴다. 운전을 하면서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환상이다. 월곶을 지나다 갈매기를 본다. 낮게 드리운 키 작은 하늘을
갈매기는 사뭇 유혹적으로 난다. 아, 수업 가기 싫다. 이대로
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자, 금세 안달이 난다. 망설임은
소원보다 가볍다. 마침, 아이들은 시험기간이다. 유혹은 언제나
적당한 이유로 유효하다. 전화를 걸어, 오늘 수업은 쉬자고 한다.
아이들도 시험 때고, 하니… 모두들 바라던 눈치다. 잘 됐다. 내처
영동고속도로를 달린다.
용인휴게소에 들러 고속도로 카드를 한 장 산다. 그리고 현금을
조금 인출한다. 생각지도 않은 일탈은 빈틈을 조율해야 한다. 몇 군데
문자를 날리고, 우동을 한 그릇 먹는 것으로 조바심을 대신한다.
그리고 원주를 지나 소사휴게소에 이르기까지 운전만 한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한껏 천천히 앞으로 간다. 나의
속도에 비례해서 땅거미가 내린다.
휴게소는 언제나 들떠 있다. 여행이 갖는 매력(魅力), 도깨비
방망이다. 무엇이든 소원을 빌면, 뚝딱 이루어질 것만 같은
기대(企待)다. 기대는 때로 허무하다. 그래서 자주 휴게소에 들른다.
기대를 기대(期待)하기 위해, 길 위에 휴게소가 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먼발치의 어둠을 본다. 어느새 산의 띠가
검다. 짙은 어둠이 낯설다. 도시에 살면서 잃는 것과 얻는 것은
동일하다. 선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 색이 흐릿하니 같다는 것.
햇빛도 햇빛이 만든 그림자도 경계가 다르지 않다는 것. 너도
없으면서 동시에 나도 있지 않다는 것, 아니면 너도 있으면서 동시에
나도 없지 않다는 것… 말장난을 하듯 산의 띠를 본다. 일렬로 긋는
담배 연기가 흩어지며 묽다.
새로 뚫린 고속도로는 주문진과 속초로 갈라지며 끝난다. 꼬불꼬불
대관령을 넘던 맛이 없다. 한계령이니 미시령이니… 그것들이야
일부러 돌아가는 맛이라지만, 지루한 터널을 예닐곱 개 빠져나오고
보니 그만이다. 대관령휴게소에서 마무리 숨고르기라도 할
요량이었는데, 싱겁게 됐다.
잠깐 망설이다, 속초 쪽으로 좌회전한다. 아느니 설악이요, 만만하니
대포항이다. 딱히 어딜 꼭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창을 열자
비릿한 바닷바람에 순간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바다다! 어둠에
가려, 가끔씩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불빛에 뒤채는 시커먼 해면의
비늘이 다지만, 조바심으로 가슴이 벅차다.
십여 분 달려 낙산사 입구에 닿았다.
사람들이 많다. 철 이른 해수욕장도 어느새 부산하다. 을씨년스런
풍경을 기대했던가? 둘러앉아 술을 마시는 무리나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이 거슬린다. 저들과 조금 떨어져 앉는다.
가끔씩 폭죽이 터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도대체 사는
데 따른 예의가 없다. 몇 번씩 욕지기가 튀어나오는 것을 도로
삼킨다. 오죽하니 저럴까, 싶다. 찰싹거리며 호들갑을 떠는 파도소리
외에 달리 까만 바다는 무심하기도 하다. 가끔씩 한 줄로 도는
등대의 불빛이 애처롭다. 나는 그대로 정물처럼 앉아 있다. 늘 그
자리였던 것처럼, 가급적이면 일체의 움직임도 없이 까만 바다를
응시한다.
배고프다. 서너 시간 전에 우동을 먹은 것이 다다. 어기적어기적
식당을 찾는다. 마땅히 먹을 게 없다. 회를 먹을까 생각하다
그만둔다. 만만한 게 비빔밥이다. 주인남자의 표정이 반갑지 않다.
혼자냐고 묻는 남자의 그것은 더욱 뜨악하다. 고작 비빔밥이라니.
어서 오세요, 하며 고개를 돌리며 반기던 얼굴이 아니다. 아무렴.
건너 테이블은 돼지 갈비에 소주를 마신다. 바닷가에 어울리지 않는
건, 나나 너나 매일반이다.
대충 허기를 달래고, 다시 그 자리에 가 앉는다. 오늘은 이미 내가
할 일이 정해져 있다는 듯, 당연하게 그 자리를 지킨다. 한참을
그렇게 어두운 바다 저편을 응시하고 있다. 눈을 감은 것인지, 뜨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호기를 부린다. 아직 열 시가 안 됐으니까,
전화를 넣을만한 사람들에게 파도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누구는 팔자
좋다고 타박이고, 누구는 부럽다면서 야로다. 또 누구는 무슨 일
있냐며 앞서 걱정이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고, 파도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다 끊기 일쑤다. 그나마 들려줄 사람이 몇 안 된다.
우스운 일이다. 너 정말 낙산이야? 정말 설악산이세요? 하는 황당한
우연이 벌어진다. 그 분은, 괜찮으면 당장 설악동 설악파크 호텔로
오라고 한다. 이 무슨 변수인지. 내심 반가움으로 설악동에 가자 내
방을 따로 예약하고, BAR에서 은은한 칵테일을 대접받는다. 어찌
비빔밥과 비교가 되랴. 생각지도 못한 행운 두 번째다. 갑자기 떠날
수 있던 날씨와 기타 등등의 조건이 그 첫 번째라고 한다면….
바다는 사람을 흥분하게 한다. 산은 아니다. 자못 차분하다. 늦은
새벽까지 술을 마셨는데도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호텔 아래 저
먼 곳까지 산책을 하고 돌아와 커피숍에서 느긋하게 신문을 보다 몇
번씩 창 밖으로 시선을 잃는다. 물끄러미 산허리를 돌며 반짝이고
있는 아침 햇살은 언제까지든 시선을 주고도 아깝지 않다. 일탈이
주는 보상심리는 아까울 게 없다. 물 한 잔을 놓고, 한참 동안 주문을
받지 않던 아가씨가 혼자 오셨냐고 물을 때까지, 나는 그렇게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 턱을 괴고 놓쳤던 시선이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다.
함께 대포항으로 나가 이것저것 장을 좀 보고, 여기까지 왔으면
회를 좀 먹어줘야 한다며, 어제는 혼자 앉았던 그 자리에서 횟감을
한 보따리 펼쳐놓고 앉는 벅찬 대접이라니….

밤새 비가 듣더니, 어스름 날이 밝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하다. 늦은
저녁을 먹고 글방에 나오면서 글방 앞에 화분을 내놓았다. 넝쿨장미
한 그루(몇 주 전, 선생 가게 앞 화단에 심어드리고 남은 것을
화분에 옮겨 심은 것이다.)와 들국화 둘, 그리고 동양란 하나와
보랏빛 화려한 서양란 하나(이 역시 선생, 개업식 때 들어온 선물로
지하에서는 주체하기 힘들다며 내게 주신 것이다.), 그리고
방울토마토 세 그루… 건들건들 아침이 오기까지 비에 젖고 있다.

엊그제의 일이 사뭇 아련하다. 일탈은 일상이 갖는 소원이다.
조바심이다. 그만큼 찰나적이다. 일상에 비하면 그렇다는 거다. 어느
순간,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결코 이루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포함할 뿐, 누구든
이미 이루어진 것을 바라지는 않는 법이다. 오늘의 담을 넘는 또
다른 하루, 두 개의 오늘은 같은 하루일 수 없다. 그러므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마음만큼 간절한 일탈이 또 있을까?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바라는 데에 따른 그 힘겨운 과정이야말로 결코 놓지 못할
조바심이 아닌가.
어쩌면 나는 그래서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보다. 고작 서른
여섯의 나이에 바랄 것을 잃어버린 바람이야말로 서글픈 일이다.
언제부턴가 나의 일탈이 일상의 샘이 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며칠을 더 궁리를 해 봐야 정확한 답이 나오겠지만, 행여 일탈답지
못한 괜한 시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원을 바로 정할 필요는
있겠다. 하루 하루의 일탈이 괜한 오늘로 쌓여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 그만 화분들을 글방 안으로 들여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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