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
자살 사이트에 대한 기사를 종종 보게 된다. 다분히 엽기적인,
그래서 별 관심도 없이 봐 넘겼던 사건들. 누가 다치고, 죽고 하는
일이 어느 엉뚱한 MC 말마따나, 떼로 죽지 않으면 기사화 될 수도
없는 사회에서, 더더욱 엽기적인.
죽음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고. 죽기까지의 과정이나 방법을
제시하고. 심지어 돕기까지 하는.
얼마 전 어느 아파트에서 연고도 없는 십대 소녀 두 명과 사십대
남자 한 명이 함께 투신했다지. 그 중 한 소녀의 수첩에는 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몫까지 살아달라는 유서가 발견되기도 했다는데….
돌아오는 길에 또, 그런 뉴스를 듣다 채널을 돌린다. 답답해서, 더는
듣기 싫어서, 차라리 시답잖은 젊은 MC들의 농지거리나 들으면서.
외면한다.
마음은 아픔으로 울리는 북이다. 아픔을 느낄 때 비로소 소리를
내는 울림통이다. 그래서 서로를 분간할 수 있는 도구이며, 수단이다.
살며 상처를 받는 일은 그래서 고귀하다. 삶을 가늠하는 잣대이며,
처신(處身)의 범위가 되어준다.
살다보면 때로는 막다른 골목을 만난다. 원치 않는 것은 그만큼
절박함을 호소하기 마련이다. 마음의 울림통이 요란할수록,
감추려드는 것처럼. 아픔에 대한, 스스로의 보호본능이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동경은 살고자 하는 신호로 해석돼야 한다.
상처는 고통이 없다. 고통에 대한, 아픔을 재현할 뿐이다. 그러므로
상처는 마음의 저울이다.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앞선
상처의 몫이다. 싫든 좋든, 세상은 상처투성이다. 주기도, 받기도
하면서.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마음을 연다.
마음이 닫힌 사람은 상처를 받지 못한다.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저들은 그래서 무모하다. 더 이상
상처받지 못한다는 것, 죽음은 이미 정해진 길이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한번은.
그 길을 저들은 먼저 선택하는 것이다, 스스로.
산 자만이 상처를 받는다. 마음의 울림통은 살아있다는 소리다.
서로에게 향한 신호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날카로운 외침이다. 상처를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산 자가 나눠져야 할 권리다.
그러므로 나는 자살 사이트에 대해, 긍정적이다. 절박한, 막다른
길에서의 공유(共有). 이 얼마나 거룩한 권리인가. 너나없이 외면하는
상처에 대한 수긍(首肯). 아, 아름다운 관심.
하물며 살아있을 때의 의무가 아닌지. 그러나 그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태어나는 것과 같이 죽음으로의 길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동경은 삶에 대한 극한 돌파구여야 한다. 죽음에
따른 소망은 삶에 대한 완벽한 반전으로의 수단이어야 한다. 그것을
도구로 자신의 삶을 방관하고, 남의 죽음을 돕는다는 것은 가장
비열한 짓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그래서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만큼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상처에 따른 가장 솔직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죽음마저 상품화되어버린 현실은 상처 노이로제에 걸린 게 틀림없다.
마음의 울림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어쩌면 오늘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 세대가 받아왔던 교육의 결과인지, 심약한 인성의
최후인지…, 나는 저들에게 일말의 동정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저들은 이미 막다른 골목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나의 동정도 가치가
없어진다.
아, 이 화려한 비디오 세상.
오디오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불길한 울림이여. 소리여. 상처여.
상처는 안으로 곪을 때 종양이 된다.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 아픔을
외면하고 감추려고만 하다, 고통 없는 상처는 치명적인 종양으로
부풀어오른다.
저들은 우리의 종양이다. 상처 없는 오늘을 꿈꾸고, 고통 없는
내일을 잉태하면서부터, 우리의 마음의 울림통은 바람이 샌다.
이제라도 여기저기 자살 사이트를 기웃거려 봐야겠다. 아니면, 내가
하나 만들든지. 죽음에 대한 강한 소망을 산 자의 몫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그런들. 나는 지금 소주 한 잔에 취해, 취기 어린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둥둥대는 울림통의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나는 건강하다.
곪아터진 상처를 드러내고, 연신 짜내면서, 여전히 건강하다.
누군가 때문에 불편하고, 누군가 때문에 안타까울 수 있다는 것. 아,
이것이 종합검진이 아니겠는가!
이웃을 돌아봐야 하는 것도 결국은 막다른 골목에서의 비상구를
봐두는 것일 테고. 그리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결국은 오늘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길일 테고.
정작 무서운 적은 시답잖은 농지거리가 아닌가 싶다.
출처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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