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하필, 이삿날을 골라 비가 온다. 며칠째 봄 가뭄으로
푸석푸석 먼지만 날리더니, 이상하다. 늘 그렇다. 운동회 날이나 소풍날이면
어김없이 그렇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소원을 비는 날이면 번번이 어긋난다.
밤늦도록 짐을 꾸렸는데도 아버지는 분주하다. 짐이라고 해 봐야 아버지의 책
보따리가 전부지만, 참 많다. 책꽂이에 꽂혀 있을 때와는 다르다. 일일이 방안
가득 펼쳐놓고 보니, 가뜩이나 좁은 방을 절반도 넘게 차지한다. 동생과 내가
누워 있는 아랫목까지, 감옥 같다.
벌써부터 잠은 깼지만 나는 딴청이다. 남은 책과 설교 자료집을 끈으로 묶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낯설다. 아버지는 그런 나와 몇 번 눈이 마주친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다. 가끔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허리를 펴는,
아버지는 이제 눈에 띄게 대머리다.
"깼으면, 어서 일어나라. 동생도 깨우고…."
막내를 들쳐업은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서며 말한다. 손에는 주방에서 쓰던
잡동사니가 들렸다. 못들은 척, 잠들어 있는 동생 쪽으로 돌아눕는다. 오늘과
내일은 학교에 가지 않아서 좋다. 어쩌면 지난번처럼 전학이 몇 주를 더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 은근히 그랬으면 하지만, 그것만은 소원으로 빌지
않는다. 빗나가는 소원은 슬프다.
"차가 몇 시에 온대요?"
"아직 시간은 넉넉해. 그나저나 당신 허리는 좀 괜찮아?"
"네, 괜찮아요."
"……."
아버지는 두 달 전 계단에서 구른 엄마의 허리를 걱정한다.
엄마는 똥통을 뒤집어쓰고 계단에서 굴렀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이사를
가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 싶다.
그 일 후 건물주인 할머니께 몇 번이나 핀잔을 듣는 엄마의 모습을 본 적
있다. 교회 어른들이 예배가 끝나면 자주 티격태격 언성을 높이듯.
이유가 무엇이든, 이사를 간다.
이것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의 것은 뺀다 쳐도, 벌써 다섯 번째다. 꼭 일 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하는 셈이다.
처음은 보광동에 있는 학교. 채 한 학기도 다니지 못해 전혀 기억이 없다.
그리고….
웅교리는 작은 마을이다. 그림 같은 시골마을. 사방으로 산이 둘러쳐져 있고,
동구 밖 저 멀리에는 기찻길이 있다. 그곳까지는 사탕 수수밭이다. 거기서 사
학년을 마쳤다.
예배당은 언덕 위에 있다. 마을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 교회와
나란히 붙은 우리 집에는 마당이랄 건 없지만, 싸리나무 가지로 엮은 담을
경계로 앙증맞은 텃밭도 있다. 채송화와 봉숭아가 가득 피어있는. 트럭 뒤
포장을 들추고 내가 처음 보았던 것은 내 동생 손등보다 고운 꽃송이가
함초롬하니 피어있던 마당이다.
"어서 오세요, 목사님!"
아버지가 트럭에서 내리자 아주머니들이 먼저 아는 체 한다.
"아, 예. 나오셨어요, 집사님! 아, 안녕하세요, 장로님?"
이미 아버지는 저들과 아는 모양이다. 분주하게 서로 인사를 한다. 웅성대는
소리로 보아 사람들이 모였다.
"아휴, 사모님. 안녕하세요? 어머, 얘는 몇 살이에요?"
조바심에 못 이겨 트럭 포장을 들추며 내다보자 누가 나를 안아 트럭에서
내린다. 누나는 괜히 핀잔이다. 얼른 안기며 내리는 내가 버릇없어 보였나 보다.
"어이쿠, 녀석. 힘들었겠다."
머리가 하얗게 샌 아저씨가 아는 체다.
"안녕하세요, 해야지!"
아버지가 누나를 안아 내리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그래, 그래. 어서들 오너라."
서로 장로님 집사님 하는 호칭으로 부르며, 동생도 안아 내린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트럭에서 짐을 내리고 옮기느라 부산하다. 나는 예배당
앞 종 탑 계단에 앉았다. 아버지의 주의도 있었지만, 내려다보이는 동네가 정말
한 주먹이다.
그림 같다.
시골학교의 조그만 운동장은 서울의 그것에 비해 한없이 아늑하고 포근하다.
어쩌면 한 달이 넘도록 학교를 가지 못할지 모른다. 소원대로라면 전학수속이
늦어질 터이니.
새로 친구를 사귀는 게 귀찮고 번거롭다.
다음 날, 엄마는 누나와 나를 데리고 학교에 간다. 아마 내가 나도 모르게
소원을 빌었던가 보다.
그리고 여기 미아리로 이사오기까지 일 년하고 오 개월을 살았다.
미아리. 반 지하 셋방.
식구가 많다는 이유로 세 달도 못 산다. 우리는 일곱 식구다. 아버지, 엄마,
할머니, 누나, 나, 동생, 그리고 막내까지. 막내는 젖먹이다.
그러나 엄마는 네 식구뿐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할머니는 포항에 계신 작은 아버지 댁으로, 나와 동생은 몇 정거장 떨어진
이모네 집으로 보내며, 엄마는 눈물을 훔친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그 집 앞으로 지난다. 가슴 안쪽에서
모래바람이 쓸려 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철봉 아래 느티나무
그늘에서 어두워지기까지 숙제를 한다.
그 집 담벼락에 기대 잠이 들던 날, 엄마는 나를 안고 운다.
그리고 결국 이사를 한다.
예배당은 초라하고 궁색하다. 이층 건물의 이십여 평 남짓한 이층은 장판만
깔려 있다. 예배당에서 며칠을 보낸다. 아버지 책꽂이로 손바닥만한 방을 만들어
우리 식구는 다시 모여 잔다.
얼마 후, 건물 옥상에 가건물을 지었다.
방 두 개. 화장실도 있다. 주워온 커다란 욕조가 변기다. 제법 그럴듯하다.
겨울나고 여름나기 힘든 것 빼면, 지긋지긋하게 고마운 우리 집.
어느 정도 차면 아버지는 길 건너 공터 어디 거름더미에라도 욕조를 비워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욕조를 뒤집어 쓴 엄마는 계단을 구르고도 며칠동안
계단을 닦았다.
그리고, 그래서 이사를 간다.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하필, 이삿날을 골라 비가 온다. 며칠째 봄 가뭄으로
푸석푸석 먼지만 날리더니, 이상하다. 늘 그렇다. 운동회 날이나 소풍날이면
어김없이 그렇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소원을 비는 날이면 번번이 어긋난다.
밤늦도록 짐을 꾸렸는데도 아버지는 분주하다. 짐이라고 해 봐야 아버지의 책
보따리가 전부지만, 참 많다. 책꽂이에 꽂혀 있을 때와는 다르다. 일일이 방안
가득 펼쳐놓고 보니, 가뜩이나 좁은 방을 절반도 넘게 차지한다. 동생과 내가
누워 있는 아랫목까지, 감옥 같다.
벌써부터 잠은 깼지만 나는 딴청이다. 남은 책과 설교 자료집을 끈으로 묶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낯설다. 아버지는 그런 나와 몇 번 눈이 마주친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다. 가끔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허리를 펴는,
아버지는 이제 눈에 띄게 대머리다.
"깼으면, 어서 일어나라. 동생도 깨우고…."
막내를 들쳐업은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서며 말한다. 손에는 주방에서 쓰던
잡동사니가 들렸다. 못들은 척, 잠들어 있는 동생 쪽으로 돌아눕는다. 오늘과
내일은 학교에 가지 않아서 좋다. 어쩌면 지난번처럼 전학이 몇 주를 더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 은근히 그랬으면 하지만, 그것만은 소원으로 빌지
않는다. 빗나가는 소원은 슬프다.
"차가 몇 시에 온대요?"
"아직 시간은 넉넉해. 그나저나 당신 허리는 좀 괜찮아?"
"네, 괜찮아요."
"……."
아버지는 두 달 전 계단에서 구른 엄마의 허리를 걱정한다.
엄마는 똥통을 뒤집어쓰고 계단에서 굴렀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이사를
가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 싶다.
그 일 후 건물주인 할머니께 몇 번이나 핀잔을 듣는 엄마의 모습을 본 적
있다. 교회 어른들이 예배가 끝나면 자주 티격태격 언성을 높이듯.
이유가 무엇이든, 이사를 간다.
이것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의 것은 뺀다 쳐도, 벌써 다섯 번째다. 꼭 일 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하는 셈이다.
처음은 보광동에 있는 학교. 채 한 학기도 다니지 못해 전혀 기억이 없다.
그리고….
웅교리는 작은 마을이다. 그림 같은 시골마을. 사방으로 산이 둘러쳐져 있고,
동구 밖 저 멀리에는 기찻길이 있다. 그곳까지는 사탕 수수밭이다. 거기서 사
학년을 마쳤다.
예배당은 언덕 위에 있다. 마을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 교회와
나란히 붙은 우리 집에는 마당이랄 건 없지만, 싸리나무 가지로 엮은 담을
경계로 앙증맞은 텃밭도 있다. 채송화와 봉숭아가 가득 피어있는. 트럭 뒤
포장을 들추고 내가 처음 보았던 것은 내 동생 손등보다 고운 꽃송이가
함초롬하니 피어있던 마당이다.
"어서 오세요, 목사님!"
아버지가 트럭에서 내리자 아주머니들이 먼저 아는 체 한다.
"아, 예. 나오셨어요, 집사님! 아, 안녕하세요, 장로님?"
이미 아버지는 저들과 아는 모양이다. 분주하게 서로 인사를 한다. 웅성대는
소리로 보아 사람들이 모였다.
"아휴, 사모님. 안녕하세요? 어머, 얘는 몇 살이에요?"
조바심에 못 이겨 트럭 포장을 들추며 내다보자 누가 나를 안아 트럭에서
내린다. 누나는 괜히 핀잔이다. 얼른 안기며 내리는 내가 버릇없어 보였나 보다.
"어이쿠, 녀석. 힘들었겠다."
머리가 하얗게 샌 아저씨가 아는 체다.
"안녕하세요, 해야지!"
아버지가 누나를 안아 내리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그래, 그래. 어서들 오너라."
서로 장로님 집사님 하는 호칭으로 부르며, 동생도 안아 내린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트럭에서 짐을 내리고 옮기느라 부산하다. 나는 예배당
앞 종 탑 계단에 앉았다. 아버지의 주의도 있었지만, 내려다보이는 동네가 정말
한 주먹이다.
그림 같다.
시골학교의 조그만 운동장은 서울의 그것에 비해 한없이 아늑하고 포근하다.
어쩌면 한 달이 넘도록 학교를 가지 못할지 모른다. 소원대로라면 전학수속이
늦어질 터이니.
새로 친구를 사귀는 게 귀찮고 번거롭다.
다음 날, 엄마는 누나와 나를 데리고 학교에 간다. 아마 내가 나도 모르게
소원을 빌었던가 보다.
그리고 여기 미아리로 이사오기까지 일 년하고 오 개월을 살았다.
미아리. 반 지하 셋방.
식구가 많다는 이유로 세 달도 못 산다. 우리는 일곱 식구다. 아버지, 엄마,
할머니, 누나, 나, 동생, 그리고 막내까지. 막내는 젖먹이다.
그러나 엄마는 네 식구뿐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할머니는 포항에 계신 작은 아버지 댁으로, 나와 동생은 몇 정거장 떨어진
이모네 집으로 보내며, 엄마는 눈물을 훔친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그 집 앞으로 지난다. 가슴 안쪽에서
모래바람이 쓸려 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철봉 아래 느티나무
그늘에서 어두워지기까지 숙제를 한다.
그 집 담벼락에 기대 잠이 들던 날, 엄마는 나를 안고 운다.
그리고 결국 이사를 한다.
예배당은 초라하고 궁색하다. 이층 건물의 이십여 평 남짓한 이층은 장판만
깔려 있다. 예배당에서 며칠을 보낸다. 아버지 책꽂이로 손바닥만한 방을 만들어
우리 식구는 다시 모여 잔다.
얼마 후, 건물 옥상에 가건물을 지었다.
방 두 개. 화장실도 있다. 주워온 커다란 욕조가 변기다. 제법 그럴듯하다.
겨울나고 여름나기 힘든 것 빼면, 지긋지긋하게 고마운 우리 집.
어느 정도 차면 아버지는 길 건너 공터 어디 거름더미에라도 욕조를 비워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욕조를 뒤집어 쓴 엄마는 계단을 구르고도 며칠동안
계단을 닦았다.
그리고, 그래서 이사를 간다.
출처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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