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관계에 대해(무엇이든). 관계에 따른 자세에 대해(어떻든). 자세에
의한 행동반경에 대해(어떠하든). 그리고… 생각한다.
자꾸만 속상하다. 이게 아닌데 싶은 것만 늘고, 정작 마음에 드는 건
없다. 인생에 있어 반은 왔지 싶은 '오늘에서' 제대로 온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래서 속상하다. 결국, 이대로 가도 되는 건가 하는
물음이 엄살은 아니다.
그러니 그냥 가야 할지… 아니면, 되돌릴 수 있을 때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할지… 그렇다고 마냥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생각조차 부산하다.
(늦게까지 무얼 하는 걸까? 가만 보면 실없다. 그도 그렇고, 몸이
축난다. 몇 번 다짐을 해 봤지만 일찍 잔다는 거, 그거 참 힘든
일이다. 누워서도 한참을 뒤채다 보면 꼭 이래야 하나 하는 망설임에
괜히 짜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달콤한 유혹 때문이다.
늦게까지 '혼자' 놀 수 있다는 거.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채팅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새벽 거리를 배회하거나 뭘 하거나… 아주
오래된 습관은 달콤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며칠째 나를 슬프게 하는
건, 스스로를 일찍 재우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늦잠이다. 새벽 대여섯 시에나 잠들었다
정오가 다 되어서야 일어나는 생활이 얼추 살아온 날의 반이 넘고
있으니. 차라리 잠들지 않고 아침을 맞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것인지 원. 열시 열한시에서 아홉시까지, 제법
길들여지고는 있으나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조만간
여덟시부터 아침 운동을 다닐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대견하다.)
의식의 농탕질 또는 호작질.
무의식의 의식(자세)은 언어(행동)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나는 내 생각을 견뎌낼 만큼 강하지 못하다. 생각은 유희의 장소다.
슬픔도 기쁨도 마음의 몸인 생각에서 비롯된다. (몽상, 하물며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정지된 생각이라고 한다면. 즐기는 수밖에.)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대하고 맞는 관계에 있어서의 생각은 또한
얼마나 질탕하랴.
며칠은 그랬다. 글 쓰기도 책 읽기도 먹고 자고 일하는 데도, 달콤한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본다.
생각이 곧 생활일 수는 없지만 생활을 기초로 생각의 휴대공간이
형성되는 것이고 보면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결국은 생활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가운데 먼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시간관계라 여겼고, 그래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를 우선 연습중이라 해 두자.
하지만 의식의 무게는 여전하다. 생각은 몸보다 마음으로 앞선다.
번번이 실천이 뒤쳐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무언가(누군가)를 생각하는 건, 연애(戀愛)다. 그것이 남녀간의
사모하는 마음을 뜻한다 해도, 그렇다. 남성과 여성의 확연한 구분은
외모에 있는 것이지, 실제의 성(性)은 다분히 복합적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해서, 모든 사물도 성의 구분이 가능한
것이라면, 실제 쓰임에 있어서 그 대상의 역할은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가만 보면, 여느 사물에 두고 봐도 그렇다. 나와 잘 맞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기 마련이고,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두고 보면 나를
잠시 스치는 것이었을 뿐 종당에는 내 것이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지기까지만 잠시 내게 머무는 것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값을 물었다 해도, 아무리 비싼
값을 주고 산 것이라 해도, 결국은 내 것이 아닌 게 더러 있다는
것이다. 또는 반대로 전혀 뜻하지도 않았는데 내 것인 경우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와는 다른 의미지만, 잘 맞는다는 것, 그것을 나는
성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나의 여성스러움과 어울리는, 것. 혹은 나의 남성다움과 잘 맞는, 것.
그것이 한결같아야 한다는 건, 집착이며 오만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사랑을 불륜으로 덧씌우는 데는 무리가 있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불륜신드롬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으면서도 늘 충격적인 데가 있다. 식상한 터라, 보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까지 모 방송에서 방영됐던 수목드라마 「위기의 남자」역시
뭇 아줌마 아저씨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지 아마?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는 불륜(不倫)을 꿈꾼다.
삿대질하고 째려보면서도 그에 익숙한 만큼 정작 야릇한 꿈을 동시에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인륜(人倫)에 어긋나는 일, 떳떳하지 못한
일을 골라 야금야금 꿈꾸는 일. 아, 참 달콤하지 않은가?
물론, 궤변이다.
불륜의 뜻을 내 식대로 풀어본다면,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바라기.' 또는 '내 것일 수 없는데, 내 것인 양 소유하기.'
아닐까? 물론, 말장난이다.
물건을 놓고 봐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할까.
"너는 왜 그렇게 펜을 많이 갖고 다니니?" 어느 날 한 녀석의
필통을 보고 내가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다른 애는 더해요."
하더니, "없을 땐 모르겠는데, 다른 애 쓰는 걸 보면 있어야 할 거
같아요."란다.
거, 말 된다. 조금 억지스런 연관이긴 하지만, 본디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거다.
누구(혹은 무엇)에게 마음이 쏠린다는 건, 다분히 결핍의 문제이지
불륜은 아니다. 홀림 또는 끌림의 감정이 늘 한결같을 수 없다는 걸
누군들 모를까? (이 펜을 사면 저 펜을 써야 할 것 같고, 저 펜을
사면 다른 펜이 있어야 할 것 같고. 정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다
쓰기도 전에 잃어버리기 일쑤면서.)
아, 사랑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불륜도 사랑이라면(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관계맺음의 정당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씹'이
목적이라면 할 말 없지만, 그건 아니지 않은가? 다소 표현이
거슬리지만, 그것 때문에 울고 웃고 욕하고 떼쓰고 하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정신이냐 육체냐 하는 따위의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정신이면 어떻고, 육체면 어떤가?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이든(아무래도 정신이 앞서지 않겠나 싶지만), 그 안에 '생각하는
마음'-연애(戀愛)-이 깃들인 것이라면… 마음이 닿는 데야 뭐라 할
바 아니지.
정작 우리가 잃는 건 마음이다.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 그럼으로
생겨나는 욕심. 내 것이어야 한다는, 강한 욕구가 결국 스스로를
멍들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사랑은 상처처럼, 지나고 나서야 선명하다.
얼마를 지나야 비로소, 남는다.), 머문 자리에 다른 무언가 놓인
다음에야 안다. 아, 이걸 위해 앞서 왔구나, 하는. 아, 이것
때문이었어, 하는…!
때론 그렇다(물건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우연히 어떤 계기로
알게 된 사람이든, 어떤 식으로 마음을 주었던, 그 사람이 머물 때는
몰랐다가도, 언제 그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대할 때면 문득, '아… 그래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야기가 다소 엉뚱한 곳으로 흐른 것 같지만, 친구에서부터 돈에
이르기까지 나와의 관계맺음에 대해 생각하다(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심지어 나를 포함해서) 그 모든 게 '스침'에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머무는 것은 죽음뿐이다. 살아있는 건 스치기 마련이다. 서랍 속에
고이 처박혀 먼지만 쌓이는 두 권의 다이어리처럼, 관계에서
어긋남은 죽음이다. 소용없음은 고로 멈춤이다(언제 다시 쓰이거나,
누군가에게 소용이 있는 것이 된다면, 부활?).
늘 나는 친구에 익숙하지 않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렇다. 흔히
친구가 많은, 친구를 보면 그저 부럽기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몇 안 되는 관계마저 그저 소원하기
일쑤다. 때로는 그것으로 쓸쓸하고 외롭다. 하지만, 그게 나다.
말없이도 말이 통하는 관계. 내가 꿈꾸는 친구 관계가 아니던가.
라고 한다면. 이 또한 무엇을 위한 비워둠이 아닐까?!
뭐랄까…. 가끔 이런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언젠가 처음 지나본
길이었고, 마을이었고, 그래서 낯설던 곳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그 안에 살고 있다는(표현이 적당한가?). 그러니까, 우연히 지나다
들른 곳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거기 머물고 있더라는(처음 간
곳인데, 언제 또 왔던 곳 같다는 그런 착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렵다.
아무튼. 어제를 스친 것이 결국은 오늘을 위한 것이었다는, 다소
추상적인 설명으로밖에 대신하지 못하겠지만. 나를 스치는 그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 흔히, 있을 때 잘하라는 말처럼. 그래서
요즘 나는 무의식의 의식이 요구하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는. 그것이 엉뚱하게도 나른한 날들로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관계에 대해. 관계에 있어 나의 자세에 대해. 그리고, 적당한 실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더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늙어가고
있다는….
결핍은 소망을 낳고, 소망은 나를 낳고, 나는 결핍을 낳고, 결핍은….
출처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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