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편지
이른 아침 글방에 나왔습니다. 새벽녘에 창에 듣는 빗소리를 듣다
슬그머니 글방으로 나왔습니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는
아침이었습니다. 비에 젖는 놀이터를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플라타너스가 빗줄기에 요동치고 있습니다. 동그마니 놓인 모래밭
위의 시소 두 쌍은 멀뚱하니 생경합니다. 수직으로 긋는 허공 또한
눅눅하게 젖어 있습니다.
어쩌면 비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괜히 마음은 어눌하여 표현을
다하지 못하며 사는 것만 같습니다. 때로는 그리움이 찬밥덩이처럼
마음을 섧게 합니다.
모든 것은 다 그만큼의 때를 간직하고 있는가 봅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잡았으면 놓을 때가 있고, 만났으면 헤어질 때가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새 것이 있으면 헌 것이 있고….
사람의 마음은 가끔씩 그 때를 놓치곤 하는가 봅니다. 같이 했던
시간을 떠올리다 몸서리치게 그리워하는 걸 보면 말이지요. 어쩌면
그것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어 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스치다
머물기를 바라는 바람처럼, 지나고 난 후에야 깨닫기 일쑤입니다.
안구건조 때문에 저는 요즘 수시로 눈물(점안액)을 넣습니다. 참으로
고상한 병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영화 『접속』을 보며, 여주인공이
이와 같은 병에 걸린 것을 보았습니다. '참 고상한 병도 다 있다'며
은근히 부러워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일회용 점액(회사명이 Tears Naturale Free가 맞나
모르겠습니다)으로 사용하는 저의 눈물은 뚜껑을 열면 12시간을 넘길
수 없습니다. 양도 꼭 그만큼만 들어있습니다.
늘 아들 녀석은 냉장고를 열 때마다 '아빠의 눈물'이라고 그것을
부르곤 합니다. 녀석이 보기에도 특별한 모양입니다. 하긴. 눈물을
넣다니요. 눈물은 흘리는 것이지, 도로 넣는 것은 아닐 터이니
말입니다.
가슴이 뭉클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일 때가 있습니다.
물끄러미 놀이터를 바라보고 있다 왜 갑자기 그리움이 이는 것인지,
차라리 주르륵 흘러주었으면 좋으련만. 인색하게도 잠시 눈동자만
적시다 마는 정도입니다. 그만큼 저의 마음이 인색하여서 그런가
봅니다.
작은 것에도 감동하여, 얼른 눈물을 감추어야 할 때도 적잖았는데….
'나는, (당신에게)무엇이었을까?' 하는 서운함이 언제부턴가 나를
옥죄곤 합니다. 참으로 유치한 구석이 없지는 않지요? 사람을 알고
사귀는 데에 익숙하지 못한 저로서는, 처음 사람을 대하고 마음을
여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누구나 그럴 것이지만, 번번이
설명이 필요한 사람과는 자못 마음을 열기가 어렵습니다.
실은 이와 같은 증세가 요즘 들어 한층 더한 것 같습니다.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서도 쉽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지요. 누가
먼저 연락하나 두고보자, 하는 고약한 심사도 아니면서 일체의
연락을 끊은 채 생활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바라보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러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만나기를 약속하면 그만일 텐데…, 마치 어린아이처럼
투정입니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치대는 마음은 저에게 있어 고질적인가 봅니다.
아주 어릴 적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인천으로 전학을
와서 처음 마음을 열었던 친구이기도 하였고요. 몹시 가난하면서도
그 친구는 늘 구김이 없는 성격이었습니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다 그 친구의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커다란 짐 자전거에는 개가 몇 마리
실려있었지요. 저만치 늙수그레한 그 사내가 다가올 때 몇몇 친구는
"개장수다" 하면서 수군거렸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우리 아버지다,
이 놈아!" 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몇몇 친구 역시 까르르
웃으며, "그럼, 우리 할아버지다 이 놈아!" 하고 맞장구를 쳤지요.
그런데 그 사내의 자전거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자 정말 그 친구가
달려가 아는 체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뭐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장난이겠거니 했던 우리는, "인사드려,
우리 아빠야!" 하는 그 친구의 말에 너나없이 미안한 마음을
감추어야 했습니다.
그와 같이 그 친구는 구김이 없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할 때의 우리 사내녀석들이란 말끝마다 욕을 달고 사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감정이 격해 싸움을 할 때도 물론이지만, 가까운
친구끼리도 말끝마다 욕을 덧붙여 쓰곤 하는 것입니다. 그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접미사처럼 욕은 우리에게 있어 예사로운
것이었지요.
어느 날 저는 그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다른 아이들과는
몰라도 너와 나만큼은 그런 욕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내녀석들끼리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게 사뭇
어색한 것 같지만, 우리는 종종 수업 시간에도 쪽지나 속엣 내용의
편지를 가끔 쓰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저의 편지를 읽고
일체의 어떤 대꾸도 없이 평상시처럼 욕을 덧붙여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뭔가 그 친구하고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시 편지를 썼습니다. 며칠 간 서로 말을
하지 않기로, 그래서 욕 없이 말을 할 수 있을 때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친구도 그러자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여전히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말을 하고 평소처럼
지냈지만, 저는 왠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와 말을 하지
않기로 한 동안, 저는 누구와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그
친구를 통해 세상과 말을 나누었던 것처럼, 그 친구와의 소통이
두절되자 저는 일체의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언제쯤 돼서 다시 그 친구와 말을 할 수 있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어리석은 짓인 양 부끄럽게
느껴집니다만, 그때는 나름대로 절실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특별한
무엇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그 친구가 특별한 무엇이었듯이….
그렇게 며칠을 지내는 동안, 그 친구가 갑자기 학교엘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어딘지 대충은 그 친구의 집을 알고는 있었지만, 선뜻
찾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친구가 다시 학교에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친구가 다시 학교에 나온다면, 여전히
욕을 붙여 나에게 말을 해도 좋았습니다. 그 친구와 어떤 말이든
다시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며칠이 지나 다시 학교에 나왔는데도 저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뭔가 서늘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저를 외면했습니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제가 그 친구에게 뭐라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고, 그래서 하루 이틀 눈치만 살피다 때를 놓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러 번 편지를 썼습니다. 위로의 말과 화해의 말로 다시 그
친구와 말을 나누고 싶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편지를 친구에게 건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연습장에 접어두었던
편지를 끝내 건네지 못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바뀌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헤어졌지만, 과연
그 친구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만 안은 채 오늘까지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유년의 잔병치레쯤으로 여기기에는 저의 투정이 너무
고질적입니다. 일주일 내내 그리고 또 일주일 내내 저는 지금
누구하고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외롭고 쓸쓸한 일입니다만,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 누군가에게 과연 '나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놓으면 금세 우울해집니다.
그래 왔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연락을 하면 그뿐인데. 아니,
아무렇지도 않을 그 무엇이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이처럼 달팽이가
되어 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서먹서먹한 것은 저를 아는
친구들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나의 이런 속앓이 따위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꼬락서니인지도 모르지요.
나의 눈물을 냉장고에 보관하고부터 마음은 끝간 데 없이
서글퍼지기만 합니다.
출처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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