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잠들면 나무는 거꾸로 서서 걷는다
집을 나서다 눈부신 햇살을 등지고 그는 가을하늘을 올려다본다. 티
하나 없이 푸르러 손을 뻗으면 금세 닿을 것 같이 속이 다 울렁인다.
아, 참 맑다. 아이 몇이 늦은 등굣길을 재촉하며 지나간다. 잇대어진
건물들도 오늘만은 정겹다.
글방 앞 놀이터를 경계로 하는 플라타너스에 기대 노인 내외는
어김없이 종이박스를 정리하고 있다. 주워온 종이박스를 손수레에서
내리려다 노인은 그를 보고 먼저 웃는다. 안녕하세요? 노인의 환한
웃음에 그는 인사를 건넨다. 날이 참 맑지유? 돌아앉았던 할머니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말을 한다. 네, 그러네요, 하고 그는 다시 고개를
까딱인다. 그리고 잠깐 서로는 소리 없이 웃는다.
글방을 열고 들어서면 밤새 고였던 눅눅한 공기가 일순간 몰려온다.
그는 서둘러 창문을 열고 허공을 향해 선풍기를 돌린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양강석의 '오카리나 연주'를 건다. 며칠 전부터 아침을
위해 걸어두는 연주다.
그에게 책상이 하나 따로 마련됐다. 제자이며 친구인 어느 녀석이
손수 컴퓨터 책상을 하나 가져다 준 까닭이다. 그 핑계로 다시 그의
글방을 묘사하자면 이렇다.
길가 쪽 놀이터를 향한 통 유리에는 들고나는 문이 있고, 초록색
천으로 된 소파가 그 옆에 길게 누웠다. 소파 옆으로 각각 소철과
동양란이 한 그루씩 있다. 동양란은 누가 뽑아간 빈 서양란 화분을
엎어 그 위에 올려놓았다. 글방 앞에는 이제 화분이 없다. 그리고
그가 등지고 있는 벽면 모서리 쪽으로 냉난방 겸용 온풍기가
자리한다. 7년이 넘은 중고여서 그런지 덩치만 크다. 그러니 그것을
바라보듯 창 쪽으로 컴퓨터 책상을 놓았다. 실은 흉물스런 그것을
가리기 위해 서랍장과 맞춰 책상을 놓았다고 해야 한다. 마주보는 통
유리는 불투명 썬팅지로 ⅔ 가량을 가렸는데, 의자에 앉으면 두
줄(각각 1cm 정도)로 떼 낸 띠를 통해 바깥 풍경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책상은 13년이 넘은 것으로 결혼할 때 아내가
사온 것이다. 네 다리만 있을 뿐, 서랍도 기타 여느 옵션도 없는 말
그대로 탁자를 연상하면 된다. 여기저기 홈이 패이고 생채기가
났지만 누렇게 색이 바랜 나무 결이 무던하니 정겹기도 하다. 그리고
2만원을 주고 다시 고친 낡은 노트북 한 대와 조그만 선인장이 함께
그 위에 놓였다. 다시, 그가 등지고 있는 벽면은 커다란 액자(목자가
시냇물 가에서 양을 안고 있는 그림)가 걸려 있고, 그 아래 골판지를
엇댄 메모판이 있다. 물론 메모판은 어지럽게 뭐가 많이 붙어 있다.
그리고 조그마한 책꽂이 하나. 당장 그가 읽고 있거나 늘 손이 가는
책들로 엄선된 것들이 꽂혀 있다. 책들 가운데서도 저들끼리 경쟁을
이루는 셈이다. 머리 위로는 놀이터에 굴러다니던 지구본이 걸려있다.
받침대가 없어서 그렇지 모양도 색깔도 선명한 것을 동네
꼬마녀석들이 공 대신 차고 놀던 것을 주워온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사는 별이고 해서. 그것을 꼭 머리 위에 걸어둘 거야 없는데,
전에 쓰던 사람이 박아둔 대못이 마침 거기 있었다. 등지고 앉은
왼쪽 어깨 뒤로는 창문이다. 창문을 살짝 가리듯 칠판으로 쓰는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세워뒀다. 건너편 건물 어디 누가 그의
뒤통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창을 열어놓고 있으면 여간 근질거리는
게 아닌 터라. 덕분에 한 칸 짜리 싱크대와 쓰레기통도 감춰진다. 통
유리를 마주하고 있는 맞은 편 벽면은 나란히 일곱 개의 커다란
책꽂이가 줄지어 서 있다. 그 가운데 두 개 반은 아이들 책(전에
신문사에 있던 선생이 출판 부에 잠깐 계실 때 연신 날라다 준 것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틈만 나면 아이들 책을 사는 나의 노고도
가상하다. 더러 헌책방을 전전긍긍 한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
책에는 욕심이 간다.)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그가 버리지 못하고 안고
사는 책들이 꽂혔다. 소설은 어느 정도 추려 권당 500원씩에 팔기도
했는데, 무작위로 잡식성 동물처럼 읽어댄 그의 온전치 못한
독서습관을 그대로 엿볼 수 있겠다. 아, 그리고 풍경화. 사실 그가
이곳을 자신의 작업실 겸 글방으로 무작정 선택한 것은 바로 저 그림
때문이라 해도 무관하다. 들리는 말로는 전에 이곳이 화방이었는데,
그때 제자들과 함께 그린 지리산 풍경이라고 한다. 재료비만
50만원이 넘게 들었다나? 어쨌든 일품이다. 때로는 창 밖의 풍경보다
글방 안의 풍경에 더 시선을 놓곤 하는 이유도 다 그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매일 지리산을 마주보고 앉는 셈이다. 이렇듯
직사각형의 네모난 면을 둘러보았다면, 글방 안의 것들은 더욱
검소하다. 각각 세 명씩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책상(마침 글방을
계약하고 얼마 후, 아버지가 교회에서 쓰려고 사 둔 것인데, 소용이
없어 애물단지로 굴리던 것들)이 둘씩 마주보고 기억 자를 뒤집은 듯
그의 앞에 놓였다. 그러니까 책꽂이를 등지고 본다면 정확하게 니은
자가 되는 셈이다. 각각 여섯 명씩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그것과
소파 앞의 앉은뱅이 나무책상이 옹색하니 하나 더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오는 토요일 오후에는 저것에도 여섯 명의 아이가
둘러앉으니 홀대할 수만은 없다. 평소에는 넉넉한 개다리소반 구실을
하면서.
이렇듯 어눌하지만 기껏 다시 글방을 묘사하는 데는 요즘 들어 그의
한날이 새삼스레 이곳에서 애지중지 하기 때문이다.
두어 주 전,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며칠은 걱정과
짜증으로 며칠은 낙담과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러면서 그는 미묘한
감상에 젖어들곤 하였다. 산다는 데에서 오는 우리네의 무력함과
내일을 위한다는 오늘의 수고가 얼마나 횟배 앓는 소린지.
뙤뙤거리다 말 인생이면서 뭐가 그리 염려스러운지. 그런들 오늘의
것이 아닌 다음에야 무엇을 바랄 수 있겠다고 시간을 다퉈 손
그러쥐고 사는 꼬락서니하고는.
그의 감상은 때로 터무니없다. 아무도 몰래 좀더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면서 혼자 슬퍼한다면, 입방정이 너무 심한가?
그리고는 쓴 담배를 뻑뻑 빨아댄다면? 푸하, 우습기도 하지. 그는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내가 어느 날 가출을 하는 상상.
아이가 저러다 죽는 상상. 혹은 자신이 적당히(여기서 '적당히'란,
입은 살아야 뭔 말을 할 수 있어서?) 몹쓸 중병에 걸리는 상상.
아니면 아예 가족이 떼죽음을 당하는(? 오, 주여. 이 미련한 영혼의
극악한 상상력을 부디 용서하소서.) 따위의 것으로 상황을 설정하면,
아주 그럴듯한 슬픔을 되씹을 수 있다.
그 날도 어쩌면 아이 혼자 병실에 두고 6층 휴게실에 나가 그 짓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상상 속에서는 이미 아이의 장례를
마친 것으로부터, 그는 보기 좋게 망가져 가고 있던 중이다.
'만약'이라는 상상력의 야비한 비상구를 마련해 놓긴 하였지만, 정말
그럴듯하게 슬퍼져서 당장이라도 뭔 일을 내야 할 것처럼 달콤한
슬픔이 그를 엄습해 오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칙살맞은 상상으로 저
혼자 한껏 슬퍼하고 있는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는
좀 어떠냐고 묻는 어머니의 질문에 그는 여태 저 혼자 떠돌던
꼴같잖은 슬픔의 연속으로 된 기침 뱉어내듯 힘들어 죽겠다고
푸념부터 하였던 것 같다. 그러니 오냐 잘 걸렸다는 투로 그의
어머니는 일장 연설이시다. 너희가 무얼 할 수 있겠느냐고,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라고, 더욱이 아이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을 보이라고, 그리고 함께 성경을
읽으라고, 성경을 읽음으로 하나님께 의탁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어머니의 당부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한참을 듣다 조금은
지겨워지기도 해서 알았다는 말로 퉁명스레 전화를 끊었다.
퇴원을 하고, 다른 병원으로 가 보기도 하고, 한방에서 한약을 지어
먹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애를 써보았지만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정말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 그 날 어머니의 말이 새삼
떠오르는 것이다.
것도 처음엔 낯간지러워 애들 앞에 앉아 같이 성경을 읽자거니 같이
기도를 하자거니 하는 게 여간 면구스러운 게 아니었다. 게 저 혼자
할 때야 그런갑다 하지만, 또는 예배당이나 아버지 앞에서 저들이
하자는 대로 할 때야 몰랐지만, 거참 쑥스럽더라. 그래도 어쩌겠는가.
장난질하듯 상상질 할 때야 모르지만, 애가 기침을 하다 당장 숨이
넘어갈 것처럼 뒤집어지곤 하니, 덜컥 겁이 났던 게다. 하여 매일
저녁 9시 반 식탁에 앉아 같이 성경을 읽기로 하고, 찬송도 하고
기도를 하니 것도 첫날만 그렇지 다음 날부턴 그런 대로 쑥스러울 게
없더라 이 말씀. 또 하나는 책임을 전가할 수 있더라는 건데, 그가 뭘
하려고 아등바등 할 때와는 달리 하나님더러, 자 이제 알아서 하라는
데야. 그때부터 그는 편하게 잤다나? 어찌나 예민한 척 하는지, 그는
아이 기침소리에 놀라 잠을 깨면 도무지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어
밤새 꼴딱 침대 끝을 오락가락 하다 훤히 날이 밝았다나 어쨌다나.
아이가 병원에 입원한 덕분에 그는 한 편의 소설을 망쳤고,
잃어버린 기억 속의 옛사랑을 얻었다. 한두 꼭지만 더 쓰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될 것도 같은데, 도무지 처음부터 다시 읽고 흥을
돋우려 해도 이거야 원, 모시적삼에 물 먹인 꼴이니 답답하기만 하다.
며칠째 다음 내용의 것을 이어보려 안달을 떨어보지만, 당장은
어려울 것도 같다. 자꾸 홑바지 바람드는 꼴로 엉뚱한 이야기로 샌다.
그래도 오전에 일찍 밤새 병원에 있던 아내와 교대하느라 호들갑을
떨었던 게 어느 정도 몸에 받는지, 아침에 자꾸 눈이 떠진다. 또한
예약 진료를 할라치면 저들 병원 사람들은 잠도 없는지 꼭두새벽부터
말쑥하다. 도대체 그 시간에 정상적으로 일을 하려고 하면 몇 시부터
설쳐대는 것일까? 몽몽한 상태로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가면 어쩜
그리도 말끔하게 일들을 하고 있는지. 각종 환자들이 즐비한
대합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보면 그는 연신 하품이 난다.
시간은 아홉시를 조금 넘긴 시각인데도. 그런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아침을 같잖게 여기며 살아 왔는지 알 수 있겠다. 하니, 요즘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등교하는 아이들에 묻어 집을 나서
글방에 온다고 하면,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입을
씰룩거리며, 철들었냐고 한 마디씩 거들 터다.
아, 그리고 옛사랑!
어쩌면 이 글을 읽을 게 뻔한데, 혹시 그 친구가 쌜쭉하니 서운해
하면 어쩐다? (잠시 주저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담배를 한 모금
베어 문다. 쓸까, 말까? / 그 친구도 어느 누구보다 문학을 사랑하며,
한때 문학소녀 그 이상의 열정을 갖고 있었으니, 그런 넉넉한
마음으로 피식 웃어줄 것이라 믿는다. 누구보다 나의 글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을 거라는, 대단한 착각으로 애교까지 떨면서.) 사실 그
친구에겐 미안한 마음이 한 뼘 두께로 얼굴을 붉히게 하는 게
사실이다. 어떻게 그리 깡그리 잊는담?
그는 요즘 처음으로 느끼는 신비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게
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부분 기억상실증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지나 온 시간 가운데, 그 친구와 보낸 고3
시절의 어느 한 부분이 완전 소멸됐다는 데 신기해하고 있다.
작년인가? 처음 그 친구의 메일을 받았을 때, 누군지 기억하지 못한
것에서부터 지금도 그렇지만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도무지 그때의
기억이 없다. 그러니, 너 누구 맞니? 하고 물었을 때, 그런데 넌
누구지? 하고 묻는 그의 반응이 얼마나 야속했으랴. 그래서 그랬는지
그 친구와는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시들하니 그나마
연락이 끊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왜 서운하지 않았으랴. 나중에 더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그래도 제법 연애 같은 걸 한 것 같고,
순수하던 그 나이에 다소 파격적일 수 있는 가슴앓이가 있었을
터인데.
개학을 며칠 앞두고 있을 때 아이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응급실에
뛰어갔을 때만 해도 그는 그 친구를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이기도 하였지만, 기침을 하다 숨이 까르르 넘어가는
아이 때문에 겁이 덜컥 났고, 아이를 응급실에 누여놓고는 급하게
전화를 했던 것도 사실은 그 친구가 아니라 그의 제자한테였다.
제자라고 하니 다소 낯간지럽긴 하지만, 초등학교 때 그리고 그 애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교회에서 담임이었다는 인연으로 그 애는 그를
선생으로 대접한다. 어쨌든, 그 애에게 전화를 넣어 자초지종을
말하고 도움을 청할 정도로 그는 몹시 다급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추스르고 아이를 입원시켜, 엑스레이를 찍으러 방사선과에
가서야, 아참 이 병원에 그녀가 있다고 했지? 하는 생각이 미친
것이다. 하지만 그도 어지간한 것이 무슨 염치로 그 친구를 찾는지.
너무 바빠서 당장 만날 수 없는 그녀 앞으로 명함을 한 장 디밀고는
809호에 아이가 입원해 있다고 전해달라는 뻔뻔스런 말까지
남겼을까.
걸음걸이며, 눈가에 번지는 웃음. 그리고 조각난 이미지 몇 개. 마치
퍼즐 맞추기를 하듯 그녀를 마주 대하고 있는데도 으슴푸레하게
흐릿하기만 한 기억 때문에 머리통은 울렁출렁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혹시 우리가 동인천에서부터 주안까지 걸었던가요?
하고 물었던가! 들쑤시며 생각지 않아도 참 따뜻한 기억 하나로, 꽤
먼 길을 누군가와 밤새 걸었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긴 하다. 노란
불빛이 가득한 어느 지하도를 지나 모두 잠들면 일렬로 선 채 거꾸로
걸을 것 같은 가로수를 비껴가며, 서로 깍지 낀 손에 땀이 배도록
그렇게 한참을 걸었던 기억. 주섬주섬 뭔 말은 그리도 많았는지.
이러한 기억이 늘 그를 따뜻하게 하였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묻자, 그녀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맞아 그게
나야! 한다. 같은 독서실에 있었고. 독서실 근처 예배당으로
새벽예배를 함께 다니기도 하였고(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내가 먼저
말을 걸고 꼬셨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 그랬을 거 같다, 기억은
없지만.). 가까운 아파트 단지를 매일 저녁 시간을 정해놓고 같이
산책도 하면서. 독서실 실장으로 있던 친구와 어느 정도 친하게
지냈을 때, 둘이서 그 친구네를 찾아가 저녁도 같이 해 먹었다고.
그리고 그녀가 그의 집에도 왔었고. 또한 그의 누이와 매부(그때야
둘은 연애시절이겠지만)랑 만나 같이 식사도 했다는데. 또 그녀의
여동생을 교회에 데려가기도 하고. 졸업을 하고도 대학로에서 서로
만났기도 했다는데. 아, 어쩜 이리도 기억이 없을까.
오죽하니 그녀는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이 사람 아닌 거 아냐? 하고
웃는다. 아, 저 웃음. 맞긴 맞는 거 같다. 독서실, 독서실 옆 아파트
단지의 그 어스름한 산책로, 까물거리긴 하지만 그녀가 다녔다는
교회의 정겨운 풍경 하나는 또렷하다(지금이야 문학경기장이
세워지고, 뉴코아 백화점이니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게 들어섰지만,
양옆으로 논밭이었던 그곳에 그녀의 교회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심증은 그의 허다한 말이다. 누가 있긴 있었어, 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는 자신이 참 많은 말을 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 말을 누가 다 들은 것일까, 할 정도로 내심
민망스러워 하며 살고 있긴 하였다.
그는 고3이 되면서 가출을 했고, 대학을 포기했었다. 그것은 지금도
끔찍이 따라다니는 그 '소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시기이기도 하다.
기껏 가출을 해서 그는 왜 하필이면 그 소녀를 찾아간 것일까?
인생을 살면서 딱 두 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 한번은
그 소녀를 만나기 전이었고, 나머지 한번은 그 소녀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난 뒤였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돌연 산다는 것이 지겨워
수면제를 모으던 그때(그는 그때 그 일이 아버지에게 발각돼 오히려
매맞아 죽을 뻔했다.), 소녀를 만났다. 소녀의 부모는 나환자였고,
그래서 소녀는 누구보다 깊은 눈을 갖고 있었다(? 몇 편의 글을 통해
이미 밝힌 바 있지만, 조금 지루하더라도 새삼 기억을 떠올려
보자.-신기한 건, 더욱 오래된 기억인데도 이토록 선명하지 않은가?).
하필 그의 아버지가 왜 그 마을의 교회를 담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꽉 채운 3년의 시간을 거기서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고스란히 3년 동안의 첫사랑을 틔운 것이기도 하다. 소녀와는
지겹도록 서로 편지를 주고받은 것 같다. 고작 50여 가구도 되지
않을 조그만 정착촌 동네였으니, 마을에 소문이 날까 염려하여
편지로 대신 한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닐 터이다. 더욱이 그는
목사의 아들이 아닌가. 어쨌든 그러다 갑작스레 인천으로 이사를
했고, 소녀와는 더욱 애끓는 마음으로 서신을 왕래했음에야 두 말할
것도 없다. 둘은 한 달에 몇 번 서울 종로 어디쯤에서 몰래 만나기도
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소녀의 삼촌이 인천으로 그를 찾아왔고,
느닷없이 둘이 결혼을 하라고 하였다. 그는 고작 중3을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나이였는데. 물론 소녀는 그보다 두 학년이
높았다. 동갑내기이지만, 하나는 일년을 일찍 시작하고 하나는 일년을
늦게 시작했으니. 소녀가 고등학교를 마치면 바로 식을 올리던가
어쩌던가. 어쨌든 당장 소녀가 인천에 온다면 같이 살라는 거다. 물론
그것은 엄포였다. 아무리 엇된놈이라 해도 어찌 그럴 수 있으랴. 그는
고작 고등학교 물도 먹기 전인데. 이유인즉,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남자와 그 소녀는 결혼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는데, 그 남자가
약을 먹었다나? 고대병원에 실려가 있는 상태라나? 그러니
궁여지책으로 삼촌이 그를 찾아왔고, 둘이 결혼을 하던가, 당장 그럴
수 없다면 무조건 연락을 끊으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소녀를
놔주라는 거였다. 따지지 말고, 소녀에게 양해도 구하지 말고(아, 이
글은 여러 번 쓴 것도 같아 겅중겅중 넘어가는데도, 그 사람 참
밉살맞다.), 자신이 다녀간 것도 모르게 하라고. 철저한 배신을
획책한 셈이다. 그러니 기껏 고3이 돼서 이런저런 이유로 가출을
했다고는 하나 무슨 염치로 다시 그 소녀를 찾아간 것이람!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던 소녀와 밤새 술을 마셨던 것 같고, 연신
'미안해'를 남발하다 코가 삐뚤어져, 둘은 여관에 들어갔나? 그러더니,
나 아직 사랑해? 라고 묻는 소녀의 물음에 기껏 풀어 내리던
블라우스를 도로 여며 준 건 또 무슨 오지랖인지. 아무튼 그게 다다.
그는 소녀에 대한 말만 나오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하지만 정말 그게
다다. 이날 이때껏 두 번 다시 그 소녀를 보지 못하고 있다(누구는
이제니까 한번쯤 만나야 할 것 같지 않느냐고 하지만, 천만에. 내가
먼저 그랬다간, '소녀'의 인생에 또 한번 난도질을 하는 거라
생각된다. 나중에 언제 혹시, 그 소녀가 찾아준다면 또 모를까,
부디.).
그렇게 가출에서 돌아온 그가 독서실까지 나가 포기했던 대학을
다시 희망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때 바로 그 친구, 그녀가 독서실에 있었다. 수치심으로(그렇다.
소녀에 대한 자신의 처신을 나는 살아가면서 내내 강한 수치심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이 고프던 시절, 그 말을 고스란히
들어주던 사람, 바로 그녀였는데. 여태 그는 그것조차 기억을
잃어버린 채 빙충이처럼 살았지만, 생의 한 조각 가운데 분명 가장
어둡고 답답하던 시절, 가장 말 고파하던 그때 바로 곁에 있어주었던
그 사람을 어떻게 까맣게 잃어버린 것일까? (부끄러워서?)
그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시선을 놓는다. (그녀가 이해한다면)참
재미있고 새로운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다. 심지어 그는 그 시절
자신이 어디에 살았는지, 누구를 만나며 무엇을 하곤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없다(솔직히, 그래서 답답하고, 그래서 언제 병원에라도
가봐야 하지 않나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여태 자신에게
잃어버린 시간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던 꼴이다. 그저 막연하게,
모두 잠들면 거꾸로 서서 걷는 나무가 있을 것이라 상상을 하면서.
한참을 걸어 더는 생각만 해도 다리가 먼저 쑤실 것 같은 거리를,
누가 자신의 손에 깍지 끼고 거꾸로 걷는 나무와 나란히, 나란히
걷는 동안 주저리주저리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래서 나무는 낮 동안에는 시치미떼고 한 곳에만 서 있는 거라고
단정하면서.
살면서 참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다. 언제 누가 깍지 낄
손을 좀 빌려달라고 하면, 누구처럼 선뜻 그 먼 길을 걷는 내내
거꾸로 걷는 나무처럼 무던히 무던히 동행할 수 있을까? 자고로,
인생에 있어 고마움만큼 탁월한 잣대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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