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잠언 4:6, 8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시편 122:7-9
유한한 세상에서의 지나감은 필연적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게 눈 깜짝할 새였다. 아들이 공항으로 떠나기에 아침에 묵상하였던 시편 121편, ‘성전으로 올라가는 두 번째 노래’를 같이 읽고 당부하였다. 살면서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더 나은, 이미 성공을 이룬, ‘산 같은’ 존재 앞에 도움을 찾는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1).” 하지만 우리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란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2).”
그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신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3).” 이를 누누이 강조하며 당부하였다. 그 도움이 더딘 것 같으나 확실하고, 모든 가운데 주관자가 되심을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5-6).” 주만 의뢰하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7).” 위하여 기도하였다. 이에 우리의 모든 출입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셨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8).” 아이 손을 잡고 주께 기도하였다. 나는 어떤 이별도 어렵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눈물을 글썽거리자 아들이 안아주었다. 빙충맞기는, 기껏 말씀으로 당부하고 기도로 되새겼으면서 돌아서기 무섭게 어눌하기만 하였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잠 4:6).” 오늘 아침도 말씀을 되뇌며 아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내 안에 고한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8).”
바로 뒤미처 방학 동안에 새로 글짓기를 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마음을 다잡았다. 모처럼 초등학교 애들을 맡게 된 것이라 이래저래 마음이 쓰였다. 주신 바 있는 자리에서 내게 두시는 일을 성심껏 준행하는 것이 충성이다. 다른 더 좋은 수를 나는 알지 못한다. 별 볼일 없어도, 미구하여 나의 됨됨이는 한심하기 짝이 없어도,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근성이 너무나 뚜렷하여서, 그래서 더욱 주의 보혈밖에는 해결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시 122:7).” 하는 말씀을 확신하는 것이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의 길이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1).” 나는 아이에게 당부하기를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악착같이 공부하는 것도, 성공을 목표로 기를 쓰는 것도,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자기 의를 구하는 것도 모두 부질없음을 말해주었다. 그 모든 게 하나님을 바라고 구하는 데 유용할 때,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 기뻐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바라였다.
그러므로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8).” 어떤 조바심에 혹은 조급함에 시달리지 않기를. 너무 애쓰느라 주의 은혜를 상실할까봐, 그 마음이 황폐하고 처량한 것을. 그러느니 나는 이제 우리 안에 평안이 있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성공하여 하나님 없이 사느니 실패하여 하나님만 바라고 사는 게 복이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9).” 우리에겐 그 영원한 집, 주의 성전이 있음을 말해주었다.
글쎄. 저녁이 되자 온 몸이 아팠다. 왜 아프지? 싶은 부위에 파스를 붙이고 돌아누우며 끙,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긴장했었어? 파스를 붙여주며 아내가 실없는 소릴 하였다. 그랬나? 마음은 아니라고 하지만 몸은 풀어진 듯 여기저기 아팠다.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잠 4:13).” 이 모든 게 훈계라. 그러므로 성경은 일러,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23).”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저 혼자 휘두르는 마음의 일에 대하여 나는 속수무책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7).” 다른 것 다 보태도 지혜가 제일이다. 주를 경외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그러므로 바른 것을 구하고 온전한 것을 바라는 일, 믿음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나의 지각도 혹은 뜨거운 신념도 아니다. 나의 죄성이 지독하다는 걸 깨달을수록 주밖에 없음을, 예수의 보혈이 아니고는 해결이 안 된다는 걸 여실히 느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다른 게 아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식을 더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구속의 은혜를 앎으로 열심히 공부할 이유도 분명해지는 것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25).” 오늘 나로 하여금 죄 없다 하시는 주의 은혜에 말미암음이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 그렇구나! 우리 안에 두시는 믿음이 이처럼 견고하고 확실한 것이었구나. 그래서 오는 고난도 달게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그 가운데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주의 은혜 때문이었다. 결국은 내가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어떤 수고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로 인함이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아, 그러니 뭘 더 염려하랴. 염려도 은혜라. 그것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잠 4:9).” 이에 따른 소망으로 오늘을 산다.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10).”
이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곧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26).” 그는 전능자라 모사라 구원자시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곧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시 91:1-3).” 세상이 어떠하든, 그곳이 얼마나 죄악되든, 주는 잠잠히 나를 사랑하신다. 나로 인하여 기뻐하신다. 그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는 자로서의 평안이 있다.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나의 의뢰는 자 하나님이시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다른 어떤 보증이 필요할까? 나는 나를 이기지 못하고 주 앞에 엎드린다. 마음은 저 혼자 씰룩거려 몸을 아프게도 한다.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나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어찌 이루어가실까? 소망 중에 바라며,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잠 4:24).” 말이 곧 무기가 되어 서로를 겨누는 일이 없기를. 그러므로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25-26).” 그럴 수 있는 단 하나의 비결은,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살후 1:10).” 믿어졌음으로 주를 기다림이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11-12).” 그러므로 오늘 시편의 노래처럼,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 122:1).”
주가 나를 이루시며 오늘에 두신 것 같이 가장 선한 길로 아이를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 그것은 주의 기쁨이시기 때문이다. 잠잠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위하여서’ 의의 길로 인도하심이었다. 내게 두시는 이 평안을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리게 하실 것을 믿는다. 이는 말씀을 되뇜으로, 아멘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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