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전봉석 2017. 3. 18. 07:55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언 18:11-12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시편 47:6-7

 

 

 

다 나름의 자랑이 있어 이를 그는 높은 성벽 같이 여겨 견고한 성으로 구축하며 산다. 곧 부자의 재물 같이 누군 학식을 누군 열심을 누구는 사회적 위치를 소신을 기지를 저마다의 견고한 성으로 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성경은 멸망의 선봉인 교만으로 다스리고 있다. 결국 존귀함이란 겸손한 것으로서 겸손으로만이 존귀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었다. 나의 어제 하루는 내 안의 교만을 반추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아이의 전화를 받고 좀 어떤지, 부모는 안녕하신지 물었다. 병원 약을 줄이면서 불면증이 심해져서 이틀을 새고 하루를 자는 꼴이었다. 이달 말까지 대학생들이 공모하기에 좋을 주제와 나름 상금도 커서 얼마 전부터 격려를 해보지만 어처구니없는 대답으로 일관하였다. 일부러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좀 하라는 것, 그저 마음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지 말라는 것, 어찌됐든 마음고생이 심한 어미를 생각하고 부친과의 단절을 회복해보라는 것, 나야말로 꼰대처럼 말이 길어졌고 녀석은 괜히 전화해서 잔소리만 들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커피숍에 있다는 게 답답하였다. 어슬렁거리듯 동네를 배회하고, 누굴 좀 만날까 하고 어깨너머로 기웃거리고 다니고, 하는 것도 없으면서 써둔 글이 없어 출품할 수 없다는 말에 ‘네 스스로가 병을 키운다’고 말하였다. 하긴 신경증이란 게 숙주인 정신이거나 마음이나 은근히 즐기는 나태함과 연관이 있다. 다들 어떤 절박함을 호소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얘길 하면 영적인 게으름이 원인이다. 늘 느끼지만 나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여서 안다. 누구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안다.

 

성경공부를 하자, 주일날에 오너라. 하는 나의 말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말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먹는 약 이름과 그 효능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나 또한 오후께 동창들 자리에 나갈 생각으로 머리가 지끈지끈하였다. 같은 층을 쓰는 곁의 교회에서 젊은 목사내외가 인사를 왔다. 몇 번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었지만 변변한 게 아니었다. 일찌감치 부르심에 응하고 여러모로 동부서주 한 저의 목회가 훌륭하였다. 스스로 진량(津梁)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어서, 사모의 얼굴에 왠지 수심이 가득하였다.

 

그러다 가까운 성도에게 뒤통수를 맞고 소속된 교단에서 공연한 오해를 사고 그것으로 마음이 가라앉아 한동안 힘들어하고 있을 때 우리가 곁으로 왔고 망설이다 인사를 오게 된 것이라 하였다. 다 저마다의 달란트가 있겠으나 주의 이름으로 한다는 일들이 혹여 공명심에 의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였다. 무엇보다 말이 너무 장황하여서 한 가지 일을 말하는데 주변 이야기가 너무 길어 피곤하였다. 어떤 이야기에는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로였다. 왜 그걸 당신이 합니까? 그럼 말씀은요? 하고 묻고 싶은 부분이 여럿 있었다. 왜냐하면 자기의 소신에 더 확신을 갖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래저래 잘 됐다. 자녀가 셋으로 중3, 초4, 유치원을 다닌다고 하였다. 언제든 글방에 보내시라 하였다. 곁에 계시게 돼서 좋다고 하니 나 또한 반갑기는 하였다. 나야말로 저의 수고와 노력에 비하면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는 사람이라 뭐라 할 게 없었다. 시의원으로 출마하면 제격이겠다, 하는 생각을 하였었을 정도니까.

 

그리고 이어져 초등부 아이들 수업을 하고 동창들 모임에 나갔다. 안정제를 먹고 전철로 갔다. 학교를 가로질러 후문 쪽이 약속장소라 꽤 긴 길을 걸어야 했다. 젊은 아이들이 쌀쌀한 날씨에도 어둑한 마당에서 공을 찼다. 친구가 차를 가지고 나오겠다는 걸 극구 사양하였다. 모두 중늙은이들이 되어 낯설었다. 선생은 친밀함을 강조하느라 내 이름을 크게 불렀고 두 팔을 뻗어 안아주었다. 앞에 앉은 고3 때 담임선생은 곱게 늙었다. 여전하시네요, 정말이지 그 선생만 그대로인 것 같았다. 둘러앉은, 친구들이라고 하기에는 다들 너무 아저씨가 됐다.

 

넌 왜 이렇게 늙었니? 내 말이 어린애 같았다. 날 기억하니? 나는 자꾸 그런 게 궁금하였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런 게 궁금하였다. 영어 선생은 나를 구석자리로 앉히고 곁에 앉아서 독차지하려는 듯 자꾸 말을 걸었다. 맞은편에 앉은 담임선생이 나의 근황을 물었다. 실내가 너무 시끄러워서 속이 울렁거렸다. 넌 참, 선생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다들 들으라는 듯 뜸을 들였다. 넌 참 편지만 써놓고 학교를 자주 나가곤 했어. 얜 도대체 어딜 그렇게 가나 궁금했는데, 그때마다 어디 있었니? 선생의 뜬금없는 물음에 좌중이 하하 웃었다.

 

그랬었구나. 기억이 난다. 결석일수가 너무 많아서 큰일이라며 걱정하던 선생이 기억났다. 너 때문에 내가 교감한테 몇 번을 불려갔는지 모른다. 나는 희미한 기억으로 피식, 웃었다. 30여 년 전 일이었다. 옆에 앉은 영어 선생은 그런저런 근황을 물었고 나는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그간의 일을 어찌 설명할 수 없어 ‘다 좋습니다’ 하였다. 내 생에 지금처럼 좋은 적이 없다는 말에 선생은 눈이 둥그레졌다. 괜한 소리가 아닌 걸 저도 눈치 챘다. 난 네가 곧 포기할 줄 알았다. 술 취한 선생의 말이 구슬프게 들렸다. 내가 했다면 그랬을 거예요. 전 한 게 없어요.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어떤 느낌이랄까? 전혀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그러나 이물감은 없었다. 친구들은 지날 일을 소환하여 감회가 새로운 듯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가도 새삼 기억났다는 듯 넌 정말 목사님 같구나, 하였다. 무슨 의도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같은 건물의 교회 사모가 목사님이시죠? 할 때의 느낌이었다. 그런 걸 거기다 대고 어떻게 아셨어요? 하고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2차로 막걸리 집으로 가는데 나는 그만 빠지려고 하다 선생이 서운해 하여 어쩔 수 없었다. 협소한 지하공간에 왁자하게 모인 무리 무리가 지껄여대는 말소리에 나는 슬그머니 다시 약을 먹어야했다. 한때는 나 역시 좋아하던 그런 분위기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서로는 과장하고 축소하고 은폐하며 자신들이 어찌 살아왔는가 주절거렸다. 조금 뒤 담임선생이 먼저 일어나겠다고 하여 그 참에 같이 나왔다. 다들 저마다의 성벽을 두르고 견고한 성에 살고 있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 나는 다만 말씀 앞에 앉는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모처럼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다녀온 것 같았다. 기억을 소환해서 그리움을 안주 삼아 너스레를 떨 만큼 나는 어쩌면 나의 지나간 생에 대하여 미련이 없다. 할 말이 없어서 멀뚱한 것인데 그게 목사다운(?) 모습과 무슨 상관이었는지 저마다 넌 목사다, 넌 목사다 하는 게 이상하기는 하였다. 신학을 하려한다는 친구가 곁에 있어서 말을 하고 싶었는데 저의 처세가 마뜩치 않아 그만두었다.

 

의도적으로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게 아니었지만 내 마음에 이는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은 감출 수 없었다. 조금은 황망한 생각 같아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가령 주점을 꽉 채우고 앉는 젊은이들이 저처럼 열심을 다해 주를 바라면 어떨까? 싶은. 본의 아니게 옆 테이블의 설왕설래를 듣게 됐는데 왜 그게 그처럼 중요한가 싶은 내용으로 서로는 맞다 틀리다 죽을 것처럼 언성을 높이고 술을 비웠다. 말인즉슨 넌 나한테 왜 그랬냐는 것이고 내가 언제 너한테 그랬냐는 것인데, 이방인들처럼 늙은 친구들이 더 늙으신 두 선생을 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참나. 하필 그럴 때 낮에 읽었던 내용의 것이 툭, 기억나는 것은 왜이었을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 한 마디로 나는 주의 것이라는 것, 병사란 자고로 명령에 복종하는 자로서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다. 주께 충성한다는 삶은 완전군장을 하고 어떤 혹독한 훈련을 받았느냐 하는 게 아니다. 이는 마치 군대이야기처럼 허망하여진다. 충성이란 애써 수고하는 게 아니라 주께 꾸준히 관심을 두는 것이다. 무슨 일을 도모하느라 주의 도우심을 바라는 게 아니라 주께 향한 마음을 위한 그런 일도 저런 일도 가상한 것뿐이다.

 

낮에 찾아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었던 젊은 사역자 내외의 부산하고 분주하기 이를 데 없는 사역의 열정(?)이 그러했을까? 긴 호흡을 끊고 내가 던진 말도 그거였다. 참 열심이시군요. 한데 그 말이 이제 중년이 되어 다들 늙은 아저씨가 되어 만난 친구들에게도, 여전히 여전하여서 서글프기까지 하던 선생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다. 참 열심이군요. 죽어라 하고 사는 게 살기 위한 것인지 죽기 위한 것인지, 나는 말과 말 사이에서 흔들리며 혼자 말했다. 참 열심이구나.

 

얽매임이 사역일 수 없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주의 의를 위하여서라고 하지만 지역사회를 위해,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의 사람을 위해, 아파트 동대표들의 부조리에 대해 항거하고 개선하고 물리치며 사는 걸 사명으로 여기는 데 갸우뚱하였다. 그러느라 차도 팔고 집도 팔고, 일 년에 여러 번 나눠 갚는 조건으로 먼저 물품을 가져다 봉사하고 이를 힘겨워하며 주의 뜻을 다하는 것으로 여기는….

 

우리가 일을 만들어서 하나님더러 도우시라 하는 게 사역은 아니었다. 도리어 하나님이 일을 만드시고 나는 그의 도구가 될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책임은 그 일이 잘 되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러는 우리 자신을 주께 맡기는 것뿐이다. 의무란 주를 의탁하는 것이다. 뭔가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데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편하게,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이지 가난한 아이들도 부조리한 지역행정도 나아가 봉사의 책무가 아니다. 한데 그것에 얽매이는 까닭은 하나님이 자꾸 보조를 맞추지 못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스텝이 꼬인다. 그러느니 내가 일을 저지르고 하나님이 수습하시게 하는 게 낫다. 그게 훌륭한 것 같다.

 

나에 대한 선생의 염려도 그런 의미였고 안 믿는 친구들의 구구절절 이어지는 말의 향연도 그런 거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으로 산다는 건 하나님이 책임지시게 하는 것이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3).” 내가 책임지는 게 아니다. 내 인생이라고 해서 하물며 나에게 맡기신 사명이라고 해서 왜 그걸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제 오전에 읽은 말씀이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행 13:43).” 그리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14:22).” 메모했던 것이 하루가 지나고 보고, 듣고, 느낀 것으로 어제 하루를 종합할 때,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거였다. 그 분명한 증거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나의 의무는 하나님께 모든 책임을 맡기는 것이고 말이다.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시 47:8).”

 

그러하다면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시 47: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