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잠언 13:12, 14 / 지혜의 소망: 생명의 샘

전봉석 2017. 4. 28. 11:06

20170430 주일

 

잠언 13:12, 14

    지혜의 소망: 생명의 샘

 

 

 

 

13: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13: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들어가는 말

 

 

믿음으로 나아갈 때, 소망이 없다면 어찌 견딜 수 있을까?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소원은 미래의 것이지 당장의 일이 아니다. 이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4:1).” 소망을 붙드는 게 믿음이고, 믿음으로 굳건히 서게 하는 것이 소망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소원이 없는 자는 죽은 나무와 같다.

     

오늘 본문을 삼단논법으로 정리해보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생명나무라면, 그 나무가 자라는 것은 지혜 있는 자의 교훈으로 생명의 샘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1:3).” 그러니까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길은 생명의 샘에 심겨진 생명나무로써 그 지혜의 교훈을 따라 자라가는 소망인 것이다.

    

고로 지혜의 교훈을 듣자. 듣는다는 건 순종함으로 내 삶에 스민다는 것이고, 스밈은 어느새 생명의 샘이 줄기를 타고 가지를 뻗어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삶이다. 이는 내가 애쓰고 수고하여 얻어낸 결과가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워 나도 모르게 주의 향기가 되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이는 우리가 살면서 어떤 부분, 공들여 애쓴 노력이 향기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일이다.

    

곧 우리의 삶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그리스도의 편지인 것이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3:3).” 인위적이거나 억지로 인색함에서 하는 게 아니라, 그것까지도, 그리하여 우리의 면면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주의 말씀이 된다. 이는 지혜의 소망이면서 우리의 사명이고, 생명의 샘이면서 복 있는 자의 증거였다.

    

1. 교만하지 말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1).”

     

정작 우리의 문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안다고 여기는 게 문제다. 자신의 추측과 추론과 유추를 들어, 정의하고 판단하고 비난한다. 비난은 항상 상처를 입은 자의 전유물이다. ‘때문이고, ‘무엇때문이어서 한사코 말씀 앞에서는 딴청을 부린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6:10).”

     

2. 정직하자.  

공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하느니라(6).”

     

말씀은 항상 실생활에서 우리의 양심을 건드린다. 곧 우리의 정직하지 못함에 대해 찌르신다. 한 번 두 번, 우리의 양심은 찔림에 무뎌져서 더는 반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를 봐도, 정직이 이득이다. 화인 맞은 양심은 대책이 없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2).” 저들은 누군가? 믿음에서 떠난 자이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1).” 이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4:25).”

     

3. 물질은 섬김의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8).”

      

돈을 좇는 삶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왜 사는 게 늘 근심덩어리일까? 돈돈거리다 돈다. 그럼 이를 어찌 해야 할까?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5).” 돈의 지향하는 바는 탐심이다.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

      

기도하자.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너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30:8-10).”

      

4. 소득의 기준은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에 달렸다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11).”

      

세상의 기준과는 사뭇 다르다. 언제나 이 땅은 얼마나에 초점을 맞추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를 물으신다.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23:18).” 창기의 돈은 자신을 팔아서 번 돈이다. 간 쓸개 다 빼주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과 맞바꿔서 얻은 돈이다.

      

남을 짓밟고, 속이고, 저를 지옥에 빠뜨리면서 번 돈이다. 한 마디로 개 같은 자의 소득이다. 세상의 모토는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자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다.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17:11).”

      

5.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자.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14-15).”

      

우리는 모두 사역자다.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은 누군가에게 지혜로운 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우리를 두셨다.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한다. 그러자니 때로는 못 견디겠다. 우리의 호의를 저들은 자신의 권리로 여긴다. 부당하게 요구하고 함부로 굴기 일쑤다. 배알이 꼬이고 심기가 불편하다. 그럼에도 선하신 하나님만 바라고 간다. 그러는 우리는 누군가에게 지혜로운 자이어야 한다.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27:9, 17).”

      

6. 우리는 천국의 사신이다.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17).”

      

우린 결코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14:8).”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겠냐고? 주님은 날 위해 그렇게 살다 그렇게 죽으셨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4-15).” 우리의 사명은 천국의 사신으로 사는 것이다.

      

7. ‘누구와 어울리느냐는 영생의 문제를 좌우한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20).”

      

단순히 그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를 사귀느냐는 우리의 인성을 지배하고, ‘누구와 사랑하느냐는 우리의 인생을 바꾸고, ‘누구와 동행하느냐는 우리의 영생을 다스린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 15:33-34).” 에이, 설마! 하는 순간에 롯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살고 있었다.

 

8. 악인의 수고는 헛되다.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22).”

    

저를 부러워하지 말자.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73:2-3).” 시편 73편을 읽다보면 안 부러워할 수가 없다. 저들은 뭘 해도 잘 되는 것 같다. 돈 있는 자가 돈을 번다. 개처럼 벌면 어떤가? 정승처럼 쓰면 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 죽음이 코앞에 왔는데도 저들은 두려워할 줄 모른다. 악으로 똘똘 뭉친 자는 죽으면서도 하나님을 저주한다. 이에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9. 사랑의 매는 근실함에서 온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24).”

      

인권을 운운하면서 훈계와 매를 경멸하는 경향이 짙은데, 참 회초리를 들 줄 모르는 사람은 근실하지 못한 것이다. 친구란 남 앞에서 칭찬하고 둘이 있을 땐 꾸짖을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랑한다는 건 무조건 다 받아주는 게 아니라 아낌없이 부지런한 것이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6:4).”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방식이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12:6-8).”

      

나오는 말

 

헛된 망상을 버리고 지혜의 소망을 품자. 이는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샘에 심겨진 생명나무와 같아서, 저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으나 우리는 모든 일에 형통하다. 비루한 것 같으나 넉넉하다.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그러므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이와 같이 지혜의 소망은 생명의 나무로 영원히 그 소출을 거둘 것이다.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126:5).” 이에 우리는 자원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13:24).” 그럴 수 있는 걸음걸음이 지혜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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