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전봉석 2017. 6. 28. 07:41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이사야 8:1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시편 147:3-4

 

 

 

후텁지근하여 더 덥고 더운 날씨였다. 아이들 쓰는 노트북에 이상이 생겨 가까운 수리점에 갔다. 잘 생긴 이가 약간 다리를 절면서 한 쪽 팔을 부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조용하니 어색해서 나는 두리번거렸다.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설명을 들어도 알지 못했다. 저는 그러는 동안 차가운 설록차 한 잔을 내어주었다. 피차가 말이 적은 편이어서 어색하였다. 공부가 끝이 없어요. 알면 알수록 더 알아야 하니까요. 뜬금없었지만 저의 말이 귀했다.

 

그렇겠구나. 하물며 주를 바라고 구하는 일에 있어 나의 게으름이 어떠한가 생각하였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는 데 있어, 저의 집중보다 못하다면 말이다. 꼼짝 않고 30여 분을 모니터만 바라보고 무얼 지웠다가 새로 깔았다가 열심을 다했다. 일곱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족히 수십 대의 컴퓨터와 모니터가 수리를 기다리는지 한편에 쌓여 있었다. 다소 위태로운 저의 몸짓이 평온함에 묻혀 자연스러웠다.

 

전념한다는 거,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 4:13).” 이것이 나의 일일 텐데 나는 과연 어떠한지 돌아보았다. 점심을 먹고 수영을 다녀왔더니,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려 전화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안정제 좀 있으세요? 아이는 얼굴이 노랗게 질려있었다. 전날에 서울 친척네 갔다가 차를 잘못타서 인천으로 오게 됐다나? 안정제 한 알을 먹고 책상에 엎드렸다. 11시에 와서 두어 시간을 쩔쩔매고 있던 거였다. 안 됐고 안쓰러웠다.

 

이런저런 얘길 하다 돌아갔다. 늘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 같아 싱거웠다. 참 신기할 정도로 말을 가벼이 들었다. 자기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뭘 좀 하자고 하면 그것마다 토를 달았다. 약에 의존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몸은 비대해져 거구가 되었다. 살만하면 다른 소리다. 뭐라 한들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런데도 나는 주일에 와라, 같이 성경공부하자, 글 써라, 책 읽어라, 부모에게 잘 해라, 하는 소리를 잔소리처럼 늘어놓았다. 아이가 보기엔 그러는 나도 별 거 없는 것 같아서 싱거웠다.

 

그럼에도 전념이란 오로지 마음을 쓰는 일이다. 내가 포기하는 게 아니다. 마음을 모아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 그 일심전념이 바울사도가 디모데에게 강조하였던 것이겠다. ‘읽는 것과 가르치는 것과 권하는 일에 전념하라’는 것. 이는 본래 예수님이 말씀하신 삶의 우선권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 우선이 바로 설 때 다음이 올곧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39-40).” 이를 두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한다.

 

알면 알수록 알게 더 많아지는 원리겠다. 모르면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는 아이의 모름이 우리 몸에 밴 악의 뿌리가 아닐까? 죄란 역설적이게도 앎으로 더 알아가는 게 아니라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앎으로’ 하나님을 피해 숨는 것이다. 나무 그늘에서 스스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한다. 이제 스물셋. 한창 왕성하니 뭘 해도 부족함이 없을 나이에 아이는 불안에 쫓겨 약을 찾고, 약에 의존하여 더더욱 무력감에 젖어드는 것이다. 정신 상태가 썩어빠져서 그래! 나는 아이에게 싫은 소릴 했다.

 

그러니 그 부모가 형제가 오죽하겠나? 정작 두려워해야 할 건 두려워할 줄 모르고 엉뚱한 데서 겁이 없다. 돈 귀한 걸 모르고, 건강 소중한 걸 모르고, 자신을 향한 사랑과 애정의 절절함을 모른다. 듣기 싫어하는 걸 알지만 퍼붓듯 뭐라 했다. 그런들 노여워하지도 않으니까 문제다.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뭐라 바른 소릴 하면 다 떨어져나간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오냐오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생각은 또 어찌나 분명한지, 거리에 사자가 있다고 한다. 사리에 맞게 말하는 일곱 사람보다 자신이 옳다고 여긴다.

 

전형적인 죄의 모습이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잠 26:13).” 뭔 핑계가 그리 많은지. 그래서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16).” 나원. 아이는 그냥 풉, 하고 웃으며 책상에 엎드렸다. 아, 이를 어떤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내가 더욱 힘써 지켜야 할 일이겠다. 알면 알수록 알아야 하는 게 분명한 것 같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 성경은 언제나 진리다. 뭐지? 싶을 때 확실한 처방을 더하신다. 말 그대로 그냥, 휙 왔다 간 것처럼 아이가 돌아갔다. 읽던 부분을 마저 읽는데 이 말씀이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소금이 상처 난 데서는 환영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쓰라리고 짜고, 당장 불편과 고통으로 욕을 먹는 건 당연하겠다. 그렇구나, 그렇구나만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아버지에 대한 오랜 불신과 반목은 아이를 더 완강하게 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 상담을 한다고 해서 그런가 했더니, 입원해서 호감을 가졌던 젊은 여의사라고 했다. 아이에게 괜한 소릴 했나 싶었는데 결국 싫은 소릴 하는 사람이기도 해야 한다. 이어지는 말씀도 같았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14).”

 

소금, 빛, 산 위의 동네 모두 감출 수 없는 무엇이 돼야 하는 것이다. 소금은 부패를 막지만 고통을 더할 수밖에 없고, 빛은 어둠을 밝히는 데 나방과 벌레가 들끓게 돼 있다. 산 위 동네는 사람의 왕래로 뜨내기나 얼치기들도 드나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빛은 더럽혀질 수 없다. 소금은 맛을 잃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동네는 아무리 뜨내기가 있다 해도 그 구실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1-12).” 그런 것이구나. 환영 받고 내가 존대 받는 일에서 두려워야 할 일이다. 오늘 이사야는 그리 들려주신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사 8:13).”

 

어찌 산 자를 죽은 자에게 맡길까. 주님은 아신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시 147:3-4).” 아이가 그냥 왔다 간 것 같으나 그 안에 움직이시는 성령이 계심을 믿는다. 그리하여서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10-11).”

 

내가 주를 바라고 있다면, 그 일에 전념하는 이상 주가 고치신다. 상심한 자를 그의 상처를 싸매신다. 그때 나는 주가 뿌리시는 소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때 거기에 두신 빛이 되어야 한다. 저가 언제든 올 수 있는 산 위의 동네이어야 한다. 소금 때문에 짜고 고통이 더하는 것 같지만 더는 부패를 막는다. 온갖 날벌레들이 꼬인다 해도, 뜨내기처럼 오락가락하는 게 는다 해도,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18).” 그러는 동안 주께서 말씀으로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여 물이 흐르게 하시는 거였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사 8:13).” 그래 그거였다. 그러할 때,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3).” 또한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4).”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사 8:19).” 아!

 

그리하여서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 147:10-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