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잠언 31:10, 30 / 현숙한 사람

전봉석 2017. 10. 6. 13:35

20171008 주일

 

잠언 31:10, 30

현숙한 사람

 

 

들어가는 말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1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30).”

    

 

 

무엇으로 복된 삶일 수 있을까? 무엇을 한들 꽉 찬 행복감으로 인생을 채울 수 있을까? 한 아이가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늘 불만이 많았다. 보다 못해 아이아버지가 물었다.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 아이가 여러 이유를 대다, 백만 원을 달라고 했다. 자신이 지금 백만 원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하였다. 아이아빠도 홧김에 그렇게 했다. 백만 원을 아이에게 던져주며 이제 좀 행복하라고 요구하였다. 다음 날 아이는 가출을 하였다. 누구의 실제 이야기라 더는 자세하게 글로 담을 수 없다.

 

우린 하나님 앞에 늘 이런 식이다. 무얼 자꾸 바란다. 불만이다. 요구가 많고 떼를 쓴다. ‘그것만있으면 행복할 것이라 장담한다. 그것은 주로 돈이거나, 어떤 일의 성공이거나, 추구하는 자기 가치의 만족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번번이 주실 수가 없다. 그러실 수가 없다. 그러느니 자신이 죽는 쪽을 택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우린 불행해질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우린 현숙한 사람이다. 저는 진주보다 귀하다. 저는 어떠한가?

 

1. 직분에 충실하라.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2).”

 

충실함이란 충직함이다. 충직하다는 것은 맡은 일에 대한 자세이고, 허실이 없는 알찬 삶이다. 이는 직분에 충실하다.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친구로서, 한 사회의 사회인으로서. 이는 모두 하나님이 내게 두신 오늘의 직분임을 아는 것이고 배우는 삶이다.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17:19).”

 

배움은 삶을 전제로 한다.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20).” 직분에 충실하면, 교만하지 않는다.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자손이 이를 따른다. 그러므로,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3-16).”

 

직분에 충실하기 위해 읽고, 권하고, 가르치기에 전념한다. 배움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성숙함으로 사람에게 본이 된다. 곧 자기 자신과 그 가르침을 살펴 꾸준함으로 먼저 행한다. 구원을 이루어가는 일이다.

 

2. 사람에게 너무 애쓰지 마라.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3).”

 

맥락은 같다. 사람에게 너무 애쓰지 마라. 너무 좋아하지도, 누구를 너무 탓하지도 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9:4).” 그러므로 주를 바라자.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5:8).”

 

3. 스스로 위로하려들지 마라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4).”

 

기호(嗜好)란 말 그대로 취향의 문제지 사는 데 따른 절명의 것은 아니다. 술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모든 명품이 즐거움을 더하는 데 쓰일 뿐이지 사는 데 절체절명의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누굴 탓하랴. 자신을 다스리라.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16:32).” 스스로 위로하려들면 한도 끝도 없다. 자신을 지도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2:21).”

 

자신을 즐기는 데 쓰자면 세상으로 모자란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4:7).”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만족함은,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5:8).” 빛이다.

 

4. 자신보다 못한 이에게 마음을 두라.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8).”

 

하나님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성도를 두신다. 예수님이 그리 사셨고, 나를 거기에 두셨다. 도움을 구하는 자 곁에 내가 있다. 나 좋으라고 너를 찾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19:34).” 나도 누구에게는 그런 자이다. 사랑에 빚진 자로 사는 일,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서로의 이웃이 되자(10:30-37).

 

그렇다면 현숙한 사람은 어디서 찾을까?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10).” 곧 현숙함이란 뛰어난’, ‘고귀한 품성을 지닌’, ‘덕이 있는이란 뜻을 갖는다. 주의 성도가 그런 사람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6-7).” 구체적으로 실제 어떠한 사람일까?

 

1. 변함이 없는 사람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11-12).”

 

변함이 없다는 것은 충직함이다. 충직하다는 것은 무던함이다. 무던하다는 것은 까다롭지 않다는 것으로 매사에 감사를 아는 일이다. 그런데 그게 올곧은 심성으로만 될까? 강직한 마음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흔히 그런 사람을 들어 충신이라, 위인이라 칭하지만 어림없다. 한데 우리가 그럴 수 있는 건, 철저하게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의 도우심을 붙드는 사람이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119:44).”

 

2. 허투루 일삼지 않는 사람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13).”

 

한없는 가벼움의 시대다. 웃자고만 든다. 즐기자고만 한다. 그럼 됐다고 여긴다. 그런 거지 뭐, 한다. 한데 이는 그 어떤 사악함보다 악하다. 그리 두시는 이를 허투루 여기는 것이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20:34-35).”

 

3. 반듯한 사람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14).”

 

불로소득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복권사업이 망하지 않는 이유다. 자고로 사행심은 달콤하다. 우연한 이익을 뿌리치기 어렵다. 요행을 바라는 바,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15:5).” 주어진 일에 묵묵히 제 노동의 대가로 얻은 소득으로 감사할 줄 아는 게 덕목이다.

 

4. 성실한 사람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밭을 살펴 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15-19).”

 

그럴 수 있는 성실함은 어디에서 오나?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1:17).” 베드로 사도도 말하길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신다고 했다(10:34). 고로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대상 29:17).”

 

5.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사람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20-21).”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우리 곁의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 곁의 사람이 불행한 건 엄밀하게 내가 그 통로의 구실을 바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112:9).”

 

6. 자신을 돌보는 사람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22).”

 

우리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주의 것이다. 주를 나타내며 드러내는 데 쓰여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 이로써 우리는 다스리는 권세가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나를 돌봄은 이기(利己)가 아닌 이타(利他)의 행위여야 한다.

 

7.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자기의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23-29).”

 

나로 인해 내 곁에 두신 이가 높임을 받고, 쓰임을 받고, 귀히 여김을 받는 일. 이는 곧 그 자리에게 두신 직분을 잘 감당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다. 나로 인해 곁을 비추는 일도 같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5:16).”

 

그러므로 선한 양심으로 살아가는 일은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거룩한 소망 안에서, 항상 우리의 밝음을 묻는 이에게 말해줄 수 있는, 대답할 말이 있는 삶이다. 그와 같은 우리의 선행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5-16).”

 

8. 하나님께 칭찬 받는 사람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30).”

 

이는 곧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다. 원래 큰일에는 대범해도 작은 일엔 쟁쟁거리기 십상이다. 남이 볼 땐 근사하게 굴어도 혼자 있을 땐 비루하다. 자신을 알려면 혼자 있을 때를 보면 된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25:21).” 또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9. 서로의 동역자가 되는 사람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31).”

 

같이 동행함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같이 있어 유익이 되는 사람이다. 네가 있어 내가 고마운 사람이다. 참 다행인 사람이다. 그리하여 서로를 추천하는 사람이다. 기꺼이 내가 저의 보증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보증이 되셨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1:14).” 서로에게 동역자로 삼으심은 곧 주의 나라에 가는 그 날까지 우리로 서로 주의 영광이 되게 하시는 일이다.

 

 

나오는 말

 

주 앞에서 현숙한 사람으로 살자. 현숙함이란 고귀한 품성이다. 내 안에 거룩을 모신 삶이다. 현숙함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내주임재하심이다. 그것으로 나타나는 열매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열매를 맺는 사람으로 현숙한 사람은 진주 같다.

 

 

저는 현숙한 사람이라. 변함이 없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허투루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저의 소득은 반듯하여,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저는 어디에 있든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사람이다. 무던히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다. 이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다. 서로에게 그리 여겨지고 추천되는 사람이다. 곧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사람이다. 두신 곳에서 서로의 동역자가 되는 사람이다. 저는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