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로마서 8:26-39 / 삼위 하나님으로의 구원

전봉석 2018. 8. 3. 11:15

20180805 주일



로마서 8:26-39

삼위 하나님으로의 구원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우리 몸은 속량을 바란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28).” 몸을 입고 사는 동안 고달픔이 없을 수는 없으나, 우리는 상한 심령으로 주 앞에 엎드린다. 이제는 그럴 수 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우리는 맡았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감히 속되고 속되어 ‘그슬린 나무’만도 못한 우리가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 8:15).” 아빠는 아람어를 번역하여 ‘친밀하고 자상한’ 의미다. 아버지는 헬라어로 번역하여 ‘근엄하고 엄격하신’ 의미다.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이때 주가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상한 심령이라. 어떤 제사나 나름의 열심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골 2:2).”


율법의 의로운 요구


오늘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오늘의 더 나은 삶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또는 머나먼 미래의 막연한 약속이 아니다. 오늘 본문은 이를 엄연히 알게 한다. 구원은 영원하면서 동시에 오늘의 일이다. 이 구원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의로운 율법의 요구가 되셨기 때문이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첫째, 우리는 그의 새 생명을 가지고 산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6:4).”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산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7:4).” 그러므로 우리의 율법을 주께서 이루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


이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의 존귀하심이 나타난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19-21).” 곧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의 지시를 받는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 1:11).”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심


그러므로 우리는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로 투쟁한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그럴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 임재하고 계시다는 증거다. 성자 예수께서 하신 약속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예수님은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23).”


이에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7).” 아직 우리는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이라 늘 한계에 봉착하나 내 안에 계신 진리의 영으로 붙들려 산다. 이는 곧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8).” 결코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이젠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3-14).”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고달픈 까닭은 딱 하나밖에 없다. 여전히 육신으로 살려하기 때문이다.


육신으로 살고 있지만 육에 속한 자로 살면 안 된다. 우리의 근심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어야지 그것으로 선을 도모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우리는 살면서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 우리의 근심으로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11).”


이로써 회개에 이르며 하나님의 뜻을 더욱 바라고 구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힘에 겨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곧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 8:15).” 여기서 ‘아버지’는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 ‘엄하고 무서운, 엄격하신’의 뜻을 갖는다. ‘아빠’는 그와 달리 아람어로 번역한 것인데 ‘친밀하고 온화한, 다정하신’의 의미를 갖는다.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니! 이를 성령이 증언하신다.


하나님의 상속자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16).” 그러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17).” 우리의 상속권은 그냥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적인 대상으로서의 권한이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 영광을 위해 고난도 받는다. 이는 확실하다.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 다음은 우리 삶의 열매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 7:4).” 그러느라 오늘 우리로 씨름하게 하시는 일이 때론 고난이다.


성령의 열매로 화답하게 하신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삶으로 삶에서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를 성령이 증언하신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말씀을 붙들고 있다 보면 그 깊이와 너비가 아득하고 고요하여 두렵기까지 하다. 경외심이 든다. 곧 내 안에 이는 마음 속 깊은 확신을 느낀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는 성령의 소리다.


결국 우리의 구원은 영원하다. 단지 이 땅에 몇 년 더 살고 못 살고의 문제로 가늠할 수도 없는 영원함이다. 그러므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17).” 고난도 달게 받을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보잘것없어 ‘그슬린 나무(슥 3:2)’ 같은 우리에게 저들을 구원하라 하신다.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유 1:23).” 이 사명이 귀하다.


지금은 몸을 입고 사느라 고생이나, 곧 몸의 속량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 8:23).” 이는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13).” 그러니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심이란 스스로 고난을 자처하는 일이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일이 이제는 싸워서 이겨야 할 고단한 전투가 되었다.


구원은 영원하다


구원의 모든 논의를 오늘 본문이 정리하고 있다. 삼위 하나님이 모두 일하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는 성령의 사역이다(26-27). 그리고 이어서 성부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의 보증이 되신다(28-32). 이를 성자께서 행하셨다(33-34). 이로써 삼위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되신다(35-39).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받은 구원을 결코 잃을 수 없다. 이는 우리가 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 먼저는 성령의 사역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 둘째, 이를 도우시는 이시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27).”


셋째, 성부 하나님이 보증하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 즉 구원은 모두의 것이나 아무나 구원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29).” 넷째, 우리는 대단한 존재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30).”


다섯째, 다시 말하지만 이 일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31-32).” 여섯째, 이를 성자께서 이루셨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33-34).”


일곱째, 이 모든 일에 대하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증이 되신다(35-39). 그러므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5).” 그러므로 아무 것도 우리를 위협할 수 없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36).” 이미 그 값은 지불되었고, 승리하신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7).” 그러니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8-39).”



나오는 말


오늘 우리가 믿는다는 이 믿음은 우리가 선택이면서 앞서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 전에, 예정하신 바,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일이다. 그러므로 승리가 보장된 싸움이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 두려워할 거 없다.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4:17).”


또한 우리의 이 은혜는 절대적인 은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32).” 하물며 죽어주시기까지 하여 살리신 구원인데 이를 포기하실까? 그러니 염려할 것 없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눅 12:29-30).” 곧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나님 앞에서의 성도는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33).” 우리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사 50:9).” 그러므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왜냐하면 우리의 중보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성자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중보자는 예수이시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34).”


그러니까 우리의 무기는 곧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5-37).” 이미 이긴 싸움이다. 그러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끓을 수 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