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사도행전 4:5-12 /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전봉석 2019. 4. 4. 13:03

20190407 주일

 

사도행전 4:5-12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4: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4: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4: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들어가는 말

 

-여럿 중 하나가 아니다

오늘 날 우리 시대를 정의하라면 합리적인 시대다. 화해와 절충과 타협을 덕목으로 한다. 이는 나름 그 시대마다 소위 말해 건축자들이 그리 세운 양식이고 사상이다. 저들은 이성을 신봉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회의한다. 그럼에도 오늘 날 그 과학의 폐단을 속속들이 드러나는데도 어쩔 수 없이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배척하고 거부한다.

 

그런 저들이 물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4:7).” 오늘 본문은 다소 엉뚱하다는 걸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었다. 저들 말은 누가 무슨 자격으로 저를 낫게 하였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와 같은 의료행위를 누가 하라고 승인하였느냐, 그 소리다.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앞서 감추지 않았고 투명하게 드러냈던 일이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3:6).” 어떤 물리적인 힘으로 한 게 아니다. 우리는 다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행할 따름이다. 여기서 누가 누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을 하면, 그런 권한과 학위를 누가 주었는가 묻는다. 다시 말해 자격증이 있는가 묻는 것이다.

 

우리의 권한은 다만 복음이다. 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는 다른 복음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8).” 이런 주장에 사람들은 경악한다. 그래서 교회를 싫어한다. 진리가 여기만 있다고 하니 듣기 싫어한다. 하지만 다른 게 없다. 연민은 사랑이 아니다. 엄연하게 사랑은 한 가지다. 때로 그 사랑은 냉혹하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4:10).” 오늘 우리가 붙들 것은 이것이다. 다른 이름은 주신 바 없다. 주님만이 사랑이다. 유일한 구주시다. 저들은 나름 자신들의 이상을 믿는다. 불교의 자비와 힌두교의 융합과 이슬람교의 정의와 유교의 도리와 철학의 합리와 같이 기독교는 그 가운데 하나의 진리가 아니다. 결코 상호 구원자는 없다. 가톨릭은 마리아를 예수와 함께 그리 여긴다.

 

 

1. 건축자들이 버린 돌

 

소위 저들은 건축자들로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건축한다고 여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세계의 평화와 평등을 추구한다. 그런데 과연 평화한가? 평등한가? 오늘 베드로는 이에 우리의 예수,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11).” 하고 일갈한다. 이는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하고 말씀하신 바와 같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9:5).”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 이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48).” 다른 길은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저들은 예수를 대적하는 데 있어 연합하였다.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4:5-6).” 저들의 관심은 누가 우리의 권위에 도전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더욱 분쟁없이 온전히 합해야 한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그런데 어디 그런가? 사람이 모이면 힘이 생기고 돈이 생기고 권력이 생긴다. 이를 놓치고 싶지 않아 분쟁하고 갈라지고 다투기는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2:2-4).”

 

왜냐하면 우리는 저들이 버린 돌의 위에 세워졌다. 이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4-25).” 세상 건축가들은 실제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다. 왜냐하면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3:19).” 저들은 빛을 싫어한다.

 

그리고 세상 권세를 가지고 묻는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4:7).” 어쩌면 우리는 저들을 상대할 수 없다. 이길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간구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1-2).”

 

같이 싸워서는 감당이 안 된다. 다만 우리가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벧전 2:13-14).” 그리하는 것은 저들의 권세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 앞에 복종하는 일이다.

 

 

- 답할 말을 준비하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4:9-10).”

 

이는 결코 저들을 위한 것이면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15:23).”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모습이어야 한다. 누구도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1:15).”

 

그러므로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9:33).” 하여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2).” 다만 주어진 일에 충실할 따름이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13:23).”

    

 

2. 우리의 초석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4:11).”

 

머릿돌은 집을 지을 때 그 칸과 칸을 받히고 서는 건축물 구조의 토대다. 우리는 결코 세상을 상대하여 이길 수 없으나 우리로 서로 하나가 되게 하시는 이를 붙들 따름이다. 그리하여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31:24).” 때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게 어렵고 고단하다 하여도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담대하라. 담대하라. 성경은 우리를 일깨우신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6:19).”

 

곧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장래의 영원히 살 집을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7:24-27).”

 

그래서 우리는 결코 헛되이 세워진 게 아니다. 나도, 우리 교회도, 여기 모인 우리들 하나하나도, 우리는 함께 지어져 간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0-22).”

 

우리의 초석은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1:20).”

    

 

3. 예수 외에 구원은 없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4:12).”

 

여러 대안을 찾는다. 서로 융합할 수 있는 종교적 화합을 꾀한다. 그러나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3:10).” 말씀을 헛되이 받으면 모든 게 무너진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결코 다른 길은 없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이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2:6-7).”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하나 연결되어 우리의 가는 길을 밝힌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다른 길은 없다. 다른 방법도 없다. 사람들은 그런 기독교의 주장을 혐오한다. 이기적이고 편협하다고 욕한다. 보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융화와 화합을 꿈꾼다. 순례의 길을 가고 도를 닦으며 서로를 용납한다. 거기에 가면 거기의 법도를 따르고 여기에 오면 여기에 법도를 따른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다른 어떤 종교와도 화합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곧 우리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로 너로 우리로 서로 하나 되게 하신다. 이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이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그래서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3:7).” 이는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2:18).”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

 

 

나오는 말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게 사랑이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 서로 두루두루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복음이 주어진 게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 되시는 우리의 구주는 그렇듯 무력하게 죽으실 리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저들 권세 잡은 자들과 손잡으면 되었다.

 

그러나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2:15-16).” 곧 우리로 언약의 자손으로 붙들어주려 하심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죽기까지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19:30).” 이 복음을 결코 헛되이 받지 말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

 

결코 우리에게 다른 이름을 주신 바 없다. 다른 길은 없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