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전봉석 2019. 8. 15. 06:54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삼하 9:8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시편 7:10

 

 

사연과 사연이 있고 그에 따른 우여곡절이 있어 어느 가정이나 그 형편에서 다들 구구하였다. 늙으신 부친은 술에 절어 주정을 하였고 모친을 숨기듯 아이엄마는 모시고 나와 아이와 같이 식사를 하였다. 그 자리에서 엄마의 넋두리가 아이의 뇌리에 어찌 각인이 되었는지, 아이는 그런 엄마가 불편하였다. 병실의 또래 환자들은 계속 바뀌었고 그때마다 아이는 외롭고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 주섬주섬 아이에게 줄 과자나 젤리, 음료수를 챙겨 병원으로 갔다. 곧 다른 프로그램이 있어 한 시간 남짓 병실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종합한 내용으로는 줄거리를 알 수 없으나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마침 아이이모가 전화를 하였고 그런저런 이야기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 아이엄마의 고초가 오죽하겠나. 긴 한숨밖에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은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연민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마음을 믿음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성경의 원리는 간단하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36:27).” 나는 아이엄마와 카톡을 하면서 주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주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으시면 믿음도 구원도 속절없다.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는 경우도 많았다. 우상은 자신으로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천사장은 사탄이 되었고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났으며 가인은 이내 아벨을 죽였고 가룟인 유다는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다. 곧 내 안의 신념이 믿음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너무 혼란스럽다. 나름 열심이고 성실이고 충성인데 그 목적이 다 다른 것이다. 미신이란 그처럼 하나님이 다만 수단이 되는 것이다. 자기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말이다.

 

이를 반증하는 말씀이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한데 말씀과 실제는 다르다 하면 한 번쯤 진지하게 의심해볼 필요가 있겠다. 하나님은 나의 목적인가, 수단인가? 감히 누가 저를 배신하고 가정을 버린 남자를 이제와 용서하고 주의 마음으로대하시라, 강요할 수 있겠나? 하지만 그러기까지 우리 실상의 담금질은 계속될 것이다.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36:31).” 내가 누구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지난 날 나의 죄악 된 모습을 스스로 밉게 보리라.’ 누구를 원망하고 저주하다 그 시기와 장소를 다 놓칠 수도 있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미움조차 사치다.

 

돌아오는 길에 누구와 통화를 하고 이어서 누구와 통화를 하면서 저들의 이야기가 말씀을 더욱 뒷받침해주었다. 한 친구는 그 조카아이가 결국 감옥에 가 있다는 소리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가족들은 그리 된 것으로 더 안도한다고 하니 서로에게 골칫거리라. 이번에는 폭력이었으나 아무래도 신종 마약 따위의 운반책으로 돈을 벌지 않았겠나, 걱정들이 더 컸던 터라. 그러니 사는 게 다들 지옥 같다. 죽지 못해 산다. 늙으신 조부조모는 눈물로 여생을 지새우고 있고 그 부모는 남남이 되어 서로 외면하고 모르는 체 하고 있었다. 그러니 본인 이야기를 하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자신들은 다들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직도 거기가 좋으냐? 나는 그렇게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나는 내 의지로 그럴 수 없으나 내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이 그리 하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그러므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쉽지 않으나 가능하였다(13-14). 내가 할 수 없으나 나로 하게 하신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36:26).” 아니면 답이 없다. 내가 감히 누구더러 누구를 용서하고 용납하라고 할 수 있겠나? 우리는 할 수 없으나 주께서 그리하시기를, 주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내가 저이에게 해주었던 말도 그 때문이었다. 우리로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해서 말이다.

 

결국은 주님이 하신다. 주님의 기도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17).” 그대로 없던 일이 될 수 없는 것이 구원이다. 죄 사함만 있을 수 없고 거듭남으로만 그치는 경우도 없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요일 1:16).” 누구보다 주를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누구에 대한 믿음과 증오를 안고 살아간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한 번 이루신 구원의 과정을 중도에 포기하시지 않는다. 그 값은 이미 충분하였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2:14).”

 

이와 같은 엄연한 사실 앞에서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4-5).” 그럼에도 다들 자기가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여기면서 남의 얘기는 쉽게 하고 자신을 스스로 밉게는 여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36:31).” 나의 지난날을 무엇으로 사함을 얻을 수 있을까? 돌아보면 용서 받을 수 없는 자는 나였다. 그런 나를 이처럼 주의 자녀로 삼으신 것인데, 내 안에 여전히 누구를 증오하고 미워한다면 무슨 염치로 주의 사랑을 바랄까?

 

돌아와 주 앞에 섰다. 기도 제목으로 누구 이름을 적고 그의 사연을 생각하다 오늘 나에게 두시는 주의 은총이 참으로 감사하였다. 내 귀에 들리는 저들 이야기와 그 사연을 내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아이를 생각하고 그 엄마를 위로하며 누구 이야기에 그 조카아이로 함께 한숨을 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라. 다들 참 고약한 삶을 살면서도 고약하게 말씀을 듣지 않는다. 스스로를 밉게 보지 않는다. 그게 뭐? 하며 그 속에 억울함만 가득하다. 그러니 뭐라 한들 무슨 말이 들리겠나? 그런 인간을 어떻게 용서해?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하는 억하심정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다들 억울하고 분할 뿐이다. 그러니 자신들이 받은 용서에 대해서는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이어서 하나님을 믿는 일이 참으로 고역이라. 그런 말 듣기 싫고 저런 말씀은 불편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오늘 말씀은 므비보셋의 절규 같은 고백이 그 답을 제시한다.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삼하 9:8).” 우리는 모두 주 앞에서 이와 같은 고백밖에 달리 더 할 말이 무엇이겠나? 죽어 마땅한 나를 이처럼 용서하시고 오늘에 이르러 주의 은혜로 살게 하시는데, 내 안의 증오와 미움을 가지고 어찌 버틸 수 있겠나?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취할 수 있는 방패는 오직 하나뿐이다. 무엇으로 나를 방어할 것인가?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7:10).”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17).” 그러니 아이들만 성인이 되어서도 그 부모들의 미움과 갈등 사이에서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거였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11).”

 

나의 한 날이 돌아보면 온통 주의 은혜라.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12).” 그러므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는 담대하라  (0) 2019.08.16
어느 질문에 대한 답  (0) 2019.08.15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0) 2019.08.14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0) 2019.08.13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0) 2019.08.12